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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부동명왕전(不動明王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alskg
작품등록일 :
2024.03.21 06:14
최근연재일 :
2024.04.06 0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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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01

작성
24.03.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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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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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4쪽

1. 악연(惡緣)

DUMMY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라, 순간적으로 공포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명교주와 생사결을 벌였을 적에도 두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늘. 


“제 단전을 어찌 고치셨냐고 물었습니다.”

“시주. 그것이 정말 궁금하십니까?”


웃으면서 묻는 승려의 말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배워 봤자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내가 단전을 고쳐줄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 후회는 없으십니까?”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늘, 어찌 후회를 논하고 슬픔을 논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스님께서 고쳐주신 단전으로 다시 무공을 쌓아 올려 학살을 자행하고 다닌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업을 쌓게 되는 것이지요.”


업이라. 불가의 무학 구결에서 몇 번 보았던 이야기다. 


“업이라?”

“그 업이란 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인데, 사랑과 마찬가지로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이 업이란 보살님이 마시려던 차에 있던 독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유난히 지반이 무른 벼랑의 자그만 땅덩어리가 될 수도, 혹은 강호 절대고수의 칼날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 말은 틀린 듯하오. 결국 사람이란 모두 죽지 않소? 소림의 달마도, 무당의 장삼봉도, 본교의 천마조사께서도 결국에는 돌아가셨소. 그러니 내 귀에 그것은 그저 약자의 자기 위안으로밖에 들리지 않소만.”


승려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었다. 


“하면, 스님.”

“예.”

“혹시, 그 업이란 게 진짜 있다면 말입니다.”


승려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애로운 미소를 여전히 띤 채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니,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타인에게 쉬이 말하지 못 하는 말들을 입 안에 품기 마련입니다. 시주를 이해합니다.”

“.. 그런가요.”


난생처음 들은 말이었다. ‘나를 이해한다’라.. 나는 다른 이들을 이해해야만 하는 위치에서 평생을 있었으니까. 아주 조금의 어리광이라고 봐도 좋다. 어째서인지 이 승려 앞에서는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운기조식을... 음?”


말을 이으려다가 말고, 나는 내 단전에 남은 내공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것인가.


“저, 스님. 제가 지금껏 쌓았던 내공이 다 어디로..”

“그것은 단전을 고치는 대가입니다.”

“..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는 이야기다. 물론 절세고수라는 지극한 계위까지 오르며 축기했던 내공과 무공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번 생에는 얼마나 더 멀리... 또한 높이 갈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강자존을 따르는 명교의 교도라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에 했던 실수 없이 무공을 연성한다면 아마도 훨씬 더 높이 갈 수 있을 터. 


“.. 의외로 담담하시군요. 강호인들에게 무공의 고하란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들은 게 다가 아닌가 봅니다.”

“물론 무위야 소중합니다만... 지금은 더 높이, 다시 한번 쌓아 올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다만 궁금할 뿐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제가 이번에는 어떤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다만 궁금한 것은 그것이었다. 내 모든 자질과 오성, 그리고 그에 맞는 수련 방법과 무공. 그 모든 요소가 합일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마공을 연성하시렵니까.”

“.. 글쎄, 정종 무학을 익힌 경험이 없으니. 몸에 가장 익었던 마공을 익혀야겠지요.”

“길이 그것 한 갈래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뜻을 새로 세웠다면 무릇 공부도 새로 닦아야 하는 법.”

“그 말씀은...”


마공 말고 다른 무공을 익히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공이 쉽고 빠르게 성취를 쌓기에 적합하기에 마공만 익혔을 뿐. 


“금강무경(金剛武經).”

“.. 이름이 불가의 무학 같소만.”

“불가의 무학이 맞습니다. 심공(心功)과, 병장기를 사용하는 초식들이 하나로 엮였지요.”


강호에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무학이 없지는 않다. 지금보다도 더욱 옛적,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시대의 종사로 있었던 시절에 그러한 형태의 무학이 많았다고 했다. 


“전에 보여주셨던 장법 한 수도, 금강무경에 있던 무학이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또한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 정말입니까? 내가 보았던... 사람을 해하는 무학과는 그 결이 달라 보이던데.”


내 물음에 승려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꺼냈다. 


“쉽게 쌓아 올린 무위는 쉽게 잃어버리기 마련이지요. 시주께서는 이미 죽은 마뇌의 망령으로 사실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를 결정하셔야만 합니다.”

“새로운 인간이라... 글쎄, 그런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아쉽게도 죄가 많은 몸이라, 지은 죄들을 전부 없는 셈 치고 새 인간으로 태어날 수는 없지 않겠소. 그것은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도 예의가 아니지.”


그러자, 승려가 허허롭게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시주, 지금 당장 마공을 연성하신다고 한들 가까운 시일 내에 명교에 복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 음, 그러기엔 힘들지. 명교주의 무위 역시 천하제일을 논할 만하니까.”


내가 연성했던 혈수마공(血手魔功)은 마공 중에서도 특별히 성취가 빠르기로 유명한 혈공(血功) 계열의 무학이다. 무공보다는 사술에 가까운 공부. 


그걸 익히더라도 당장 명교에게 복수하는 것은 무리다. 비록 천마의 상징인 천마신공을 익히지 못해서 천마의 별호를 갖지는 못했지만, 무위만을 놓고 따져 보았을 때 당대의 명교주는 역대 천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하니까. 


“하면, 당장 무공의 고하가 아닌 다른 것으로 겨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무공의 높고 낮음은 단지 한때일 뿐입니다. 전 세대의 천하제일인이 작금의 절세고수에게 죽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그 무위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닌 한은, 무공보다도 평생 바뀌지 않을 것을 겨루는 게 옳겠지요.”


내가 평생을 배워 왔던 강자존의 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반감이 들기는커녕, 뭔지 모를 해방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 그 평생 바뀌지 않는다는 건 대체 무엇인지요.”

“그것을 찾는 것은 시주의 몫이지요. 사람마다 그 삶의 방식이 다르니 말입니다.”

“어쩐지 스님께서는 답을 알고 계실 듯합니다만..”

“시주, 저는 답을 알려주는 자가 아닙니다. 외려 질문을 던지는 자에 가깝지요. 제 경우에는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불법(佛法)을 담은 경전일 것이고, 강호의 이름 모를 협객에게는 죄 없는 백성들의 얼굴에 웃음을 피워내는 무공일지도 모르지요.”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 있어, 나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방금은 중요한 건 무공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시주. ‘협객의 무공’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과연 ‘무공’일까요, 아니면 ‘협객’일까요.”

“협객... 이겠지요.”

“시주, 묻건대 협객이 무공을 잃었다고 협행을 멈추겠습니까? 무복을 입은 몸에 이제는 승복을 걸치든 관복을 걸치든, 본래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지 않겠습니까.”


승려의 말을 들어보니, 진정 중요한 것은 가치보다는 무엇이 가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 즉 마음의 강함인 듯했다. 어쩌면 무학의 심공을 익히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 


내가 파헤쳤던 정종의 심공에 이와 비슷한 구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도 무림 정상에서 제일을 논하는 심공들인데도, 막상 이를 지키는 자들이 구파일방과 무림세가를 통틀어서도 잘 없는 듯하여 의아해했던 옛 기억도 난다. 


“요컨대 마음의 문제라..”

“문답은 여기까지만 하고, 시주. 저를 따라오시지 않겠습니까?”

“.. 따라와라? 갑자기 그게 무슨...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마을로 가야지요. 언제나 위에서 바라보고 있어서는 더욱이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불도를 이루어 성불하고자 하는 수행자라도, 때로는 몸을 숙여 밑바닥을 살피고 난 뒤에야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지요.”


불도의 성불을 마도로 해석하자면 탈마(脫魔)의 경지다. 마도에서의 지극한 깨달음을 얻는다면, 마귀조차 벗어나 보다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인다는 의미다. 


“뭐, 그럼 한 번 가십시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밖이 상당히 추우니, 제 가사를 걸치시는 게 좋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만년설이..”

“저는 괜찮습니다.”


하긴 이 승려의 경지라면 만년설은 무슨,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빙정설호(氷精雪湖)에 맨몸으로 들어가도 추워하지 않을 것이다. 


“.. 그러면, 염치 불고하고.”


언제 세탁했는지 마뇌 시절에 입었던 무복을 내밀길래 그 의복과 흑의장삼, 그 위에 망토처럼 승려의 가사를 걸쳐 입었다. 그러고 나니까 조금은 버틸 만했다. 승려는 회색 승복만을 입고선 이후에 석장을 들고 길을 나섰다. 


한데 석장의 모습이 꽤 낯설었다. 붉은 나무로 된 지팡이 위에 고리로 된 장식물이 아닌 도끼처럼 생긴 날붙이가 수평으로 붙어 있었다. 지팡이라기보다는 생각하기에 호신용 장병기에 가까운 무기. 


“이건 선장(禪杖)이라고 하는 무기입니다. 수행을 위한 여행길에 오른 무승(武僧)에게 주어지는 무기이지요.”

“선장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과 별개로, 나와 승려는 일체의 대화도 나누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길을 걸었다. 


내려온 마을은 별것 없는 산골 마을이었다. 대대로 땅을 일궈 먹던 화전민들이 정착해서 마을이 된 듯했다. 때문에 뭐 크게 대단한 것도 없었다. 


“아이고, 스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혹시 음식이 부족한가요? 아니면 솜이불이나? 말만 하세요. 비록 이놈이 평생 땅이나 부쳐 먹고 살던 촌놈이지만은, 혹여 우리 스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야 전국을 뒤져서라도 가져올 테니까요.”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괭이를 짊어지고 길을 가던 중년의 사내가 승려를 알아보고는 기쁜 손님을 맞이한다는 듯이 후다닥 달려왔다. 


“아닙니다. 그냥 평안하신지 찾아뵈었을 뿐입니다.”

“아유, 스님께서 방문하신 이후에는 편안합니다. 또 유난이던 팔다리도 요새는 아프지가 않고, 이제 건강도 점점 좋아져서 10년은 너끈히 더 살 느낌이라니까요? 거 삼재공이니 뭐니 하던 무공보다도, 스님이 몇 번 두드려 주시니까 이게 이처럼 편할 데가 없어요.”

“몸이 편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영원히 깃들기를.”

“나무아미타불.”


사내가 합장하며 구결을 읊자, 승려는 합장을 했는데, 그 모양새가 꽤 특이했다. 손바닥을 모두 붙이지 않고 어긋나도록 모아서 열 손가락을 모두 드러내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불교 사찰의 합장과는 꽤 다르고, 마찬가지로 소림사의 반장(半掌)과도 다르다. 그렇다고 서장 라마승들의 문파인 포달랍궁(布達拉宮)도 아니었다. 이 승려의 소속은 밝혀지지 않은 불가 계통의 신비 문파인 것일까. 


“어머, 스님 또 오셨네요! 옆에 청년은 누구신가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마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니까 더 많은 사람이 승려를 알아보고 반겨 주었다. 평생을 교에서만 있었던 내게는 사뭇 낯선 광경이었다. 만약 내가 명교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등장했더라면... 아마 이들은 공포에 떨었겠지. 


사람들의 살가운 인사를 하나도 무시하지 않고 일일이 다 받아준 승려가 향한 곳은, 마을 변두리 구석의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다. 보시를 받고자 간다고 하더라도 줄 게 물 한 바가지도 없을 것만 같은 가난한 구석. 


“제가 왔습니다.”


승려의 말에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웬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렸다. 


“으응? 누가 왔다고..?”

“먼젓번에 왔던 승려입니다.”

“아! 석 선사께서 오셨구나. 어서 오시오, 쿨럭..”


목소리는 늙은 사내의 것이었는데, 막상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웬 젊은 처자였다. 게다가, 시골구석에서는 보기 드문 미인이기도 했다. 


“다시 들러주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저는 입 밖으로 한 번 뱉은 말은 어기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당연하다는 듯이 물을 한 잔 내밀면서였다. 그것을 받아든 승려는 마시지 않고, 그것을 내게 건넸다. 


“저요?”

“목이 마르시지요? 드시지요.”


마침 목이 마르기도 한 터라서 나는 그가 내민 물을 단번에 마셨다. 


“.. 자, 그럼 이제 일하러 가시지요.”

“응?”

“물을 얻어 마셨으면 일을 해야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건 아닙니다. 장작을 패면 됩니다.”

“장작이라?”


그래봐야 결국은 도끼질 아닌가. 나는 교에 있었을 때 부법(斧法) 비급서도 여러 개 보고, 구결을 개변했었던 경험이 있다.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 정도야 뭐.”

“그럼 해보시겠소?”

“물론입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연참이 있습니다. 7시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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