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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부동명왕전(不動明王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alskg
작품등록일 :
2024.03.21 06:14
최근연재일 :
2024.04.06 00:0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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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추천수 :
26
글자수 :
76,701

작성
24.03.21 19:30
조회
227
추천
4
글자
12쪽

1. 악연(惡緣)

DUMMY

“더 할 말이 있느냐?”

“.. 친절하기도 하셔라. 우리 교주님께서... 내 걱정도 다 해 주시고.”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닌 듯하구나.”


아니긴 무슨. 하단전에 금이 갔고, 중단전은 완전히 깨졌다. 그나마 상단전은 멀쩡한 상태지만, 이 상태로는 얼마 못 가서 죽을 것이 눈에 훤하다. 


“하면, 이제부터 교주령을 내리노라.”

“.. 교주령?”

“마뇌(魔腦), 천운강(天雲講). 지금 이 순간부터 호법전주(護法殿主)의 직위를 해제하고, 총군사(總軍師)의 직위도 마찬가지로 해제한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뭐?”

“무공은 이미 폐해진 듯하니 되었고. 그래도 한때의 친우로서 마지막 예를 지킨 것이야. 목숨만은 살려 주겠네.”


그러니까, 지금 저 말은... 나를 교에서 내쫓겠다는 의미다. 내가 태어났고, 평생을 일했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 그러니, 두 번 다시 강호 무림에 나타나지 말고 쥐 죽은 듯 조용히 살도록. 그것이 내 마지막 자비네. 그러니 이만 하산하도록.”


이건 잘못되었다.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잠깐.”


검은 장포를 입은 군왕마냥 걸어가던 여인이,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또 무어냐.”

“그 노괴들 때문이야? 당파? 그 빌어먹을 늙은이들이 또 미친 개 헛소리를..”

“..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이건 안 되겠다. 상단전으로 연신 꽂혀 드는 교주의 의념이, 이제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음을 내게 알리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단전 두 곳이 동시에 회생 불가의 상태로 돌입했건만, 어째서인지 몸의 통증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찢어지는 듯하지만... 정말 전혀 아프지 않았다. 


십만 대산의 밤은 추웠다. 이제는 무공을 잃어 한서불침(寒暑不侵)도 아니게 된 몸뚱이가 쉬이 감당할 만한 추위가 아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없이도 절세의 경지에 오른 교주와 겨루느라 의복도 이곳저곳이 헤져서 찬 바람이 들었다. 


“.. 빌어처먹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쫓겨났다. 아, 그것보다는 일단... 너무 추웠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극양의 내공을 다루는 심공을 만들 거야.”


‘극양의 무공이라... 정말 그런 걸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몸의 피가 점점 얼어붙는 추위 안에서도 나는 잡생각을 계속했다. 죽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에 가까웠다.


아,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발이 추웠는데, 이제는 조금도 춥지 않았다. 기적이라도 일어나 무공을 회복하게 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제야 나는 내가 몇 시간을 걷다가 이내 지쳐서, 끝내 먹지 못해서, 목이 말라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도. 


“.. 하아..”


으르렁- 


어디선가 낮게 깔리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터벅터벅- 하며 걸어오는 네 발 짐승. 주황빛 가죽에 검은 문양을 마문(魔紋)마냥 온몸에 새긴 대호였다. 


“호랑이 밥이 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변사체가 되는 게 더 나을까..”


몸뚱이 크기로 보건대, 그냥 흔한 호랑이도 아니었다. 산의 자연지기를 잔뜩 머금고, 몸에 내단을 품은 영물에 가까워진 호랑이다. 


으르렁- 


“.. 고놈, 참... 골골대는 것 좀 보게. 그것참 기운찬 놈이로세.”


나는 구태여 몸을 일으킬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일 힘이 없었다. 팔도 다리도, 사지에 마비가 온 듯했다. 


이어서 천지를 울리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녀석이 내게로 달려들었고, 죽음을 직감한 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최선을 다했는데 교주에게 패했고, 따라서 설산 한 가운데에서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스러져 간다. 


‘걷지 못하는 마도는 이처럼 허무한 것이로구나.’


조금이나마 후회가 들었다. 내가 교에서 했던 악행이라곤 정사마의 여러 무공을 연구하고 개량한 것밖에 없지만... 그 무공으로 숱한 죽음을 일으켰으니까. 


“.. 좆같군.”


나지막이 뱉은 한 마디가 유언이 될 터였다. 


.. 그래, 분명히 그래야 할 것인데. 죽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유언이 욕지거리면 좀 그런가? 그래서 하늘이 내게 시간을 또 준 것일까. 


‘뭐, 그럴 리가 없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얼어붙은 눈꺼풀을 겨우겨우 떼고 나니, 내게 등을 보이고 있는 웬 사람의 모습을 보였다. 춥지도 않은지, 다 낡아빠진 장삼과 가사를 입고 웬 창 같은 걸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이 없어서 더 추워 보였다. 


“.. 어이하여 이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느냐.”


으르렁- 


이제 알겠다. 내 눈앞의 이 사내는 승려였다. 그것도 축생과 대화를 시도하는, 단단히 정신 나간. 


“스님, 비키시오... 말로 될 상대가 아니외다. 나를 노리고 있으니, 한 발자국씩 뒤로 걸어서 도망가시오.”

“허, 그러하냐. 웬만하면 말로써 계도하려 했건만... 가망이 없어 보이니.”


승려에게도 적의를 표하기 시작한 호랑이가, 길게 울음을 토해내며 그 거대한 몸을 날렸다. 영물답게 걸음걸이에 보법의 형식이 깃들어 있었다. 


“스님!!”


내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그 승려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한 손바닥을 앞으로 내뻗어 보일 뿐이었다. 무공인가 싶었으나... 좀 달랐다. 기파도 존재하지 않았고, 경력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장법? 아니다. 저것을 감히 무공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땅을 구르는 짐승으로 태어나 격이 그 하늘에 가 닿은 영물조차도 한낱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게 하는. 무공, 술법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어떤 무언가. 


“어찌..”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몇 시진 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웬 돌로 된 천장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삼화취정(三花聚頂)이 해제된 반동에 두 단전이 크게 상한 여파까지 한 번에 파도처럼 몰려와서 그런 것인가. 


“.. 허허, 눈을 뜨셨군요. 다행입니다. 며칠 동안 앓으시던데.”

“여긴..”

“이름 모르는 동굴입니다.”


이름 모를 승려는 자신의 가사는 내 밑에 깔아주고, 척 봐도 얇아 보이는 장삼만을 입고 있었다. 


“배가 고프실 줄로 압니다. 일단은 드시지요.”


그리 말하고, 그는 놋쇠로 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내게 내밀었다. 주변에서 공양을 받아 온 음식인 듯한데. 객잔에서 파는 듯한 여러 음식이 한데 모여 섞인 잡탕밥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내가 교에 있었을 때 자주 먹던 방식이었다. 식사할 시간도 부족하게 무공 비급을 연구하고 개량하고, 때때로 창시해내야만 했었던 마뇌의 식사는 항상 잡탕밥이었다.


“.. 잘 먹었소.”


나는 혹시나 승려도 배가 고플 것을 배려해 반 정도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도 보시를 받아 온 음식을 다 먹는 것은 사람도 못 된다. 


“배가 고프지 않으십니까? 더 드시지요.”

“승려가 돌아다니면서 공양받은 음식을 내가 다 먹으면 부처께서 노하실 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아닙니다. 저는 배도 고프지 않으니, 마저 드시지요.”


그러면서 재차 건네는 발우를 뿌리칠 수가 없어,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다 먹은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으니, 그가 그것을 가져가 눈을 녹인 물로 깨끗하게 닦았다. 


배도 채웠겠다, 조금 살 듯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기대어져 있는 석장(錫杖) 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다른 물건은 없었다. 


“.. 이보시오, 스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명교인이오.”

“그렇습니까.”


승려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두려움과 당혹감을 숨기려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그래서 뭐가 잘못되었냐는 투였다. 


명교(明敎). 사마외도의 대표 격으로 뭇 강호인들에게는 마교(魔敎), 그보다 조금 점잖은 표현을 고수하는 백도의 무인들에게는 천마신교(天魔神敎)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단지 정종 무학뿐만 아니라, 사술이나 법리를 거스르는 마공도 스스럼없이 연성한다 하여 교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무림 공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그냥 명교인도 아니외다. 명교 총군사, 마뇌(魔腦)라 불렸던 사내가 바로 나요.”

“그렇습니까.”


승려는 여전히 초연한 반응이었다. 명교 무사 하나만 나타나도 백도 놈들을 호들갑을 떨곤 하던데. 


“아하, 내가 무공을 잃어서 허세를 부린다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시주께서 마뇌라 불렸음은 알고 있습니다. 일찍이 절세지경에 올랐던 뛰어난 고수임도 알고 있고요.”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생각하기에 명교인들도 상당히 미친 자들인데, 지금 이 승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조차 되지 못한다. 물론 이 사내 역시도 무공이나 술법... 비슷한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덤덤할 수는 없다. 


“한데 왜 나를 구하셨소?”

“부처님의 자비는 신앙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믿는 중생들에게만 자비를 보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외면한다면 이를 어찌 부처라 하겠습니까.”

“.. 불가의 사상은 몹시 바보 같군.”


그 명교의 수뇌조차 고통받는 중생으로 여기고, 구원하고자 하다니. 매우 바보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승려께서 사랑이라니. 그건 파계 아니오?”

“사랑이란 때때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자비, 연민, 애정, 연모, 삿된 쪽으로는 음욕, 탐욕, 질투 등등의 여러 감정의 모습을 빌릴 때가 있습니다. 단지 사내와 여인 사이에 생겨나는 감정만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불가의 가르침이야말로 소림이나 아미파 등의 불가 계열 문파의 무학의 구결을 궁구하는 데 도움이 될 터였으니. 


“스님.”

“왜 그러십니까.”

“.. 내게서 뭘 바라시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승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명교의 총군사, 호법전주, 마뇌... 당장 같은 사도 대방파에게 나를 데려다 놓아도 상상도 못 할 보상이 떨어질 거요. 무림맹에 데려다 놓는다면 보상에 더하여 천하 협객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터지. 한데 그 모든 것을 마다하고 나를 살려놓은 이유가 있을 게 아니오.”


내가 강호에서 은원이 있는 사람들만 해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같은 사도 대방파는 기본적으로 나를 적대하고, 백도 정파는 내게 파훼 당한 무공들 때문에 그 사파들보다도 더 나를 적대한다. 애초에 무림 공적이니 오죽하겠는가? 


“시주께서 무림맹에 가시면 더욱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 그건 아니지.”

“그렇다면 시주를 그곳으로 데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하면, 나를 천천히 말려 죽일 셈이오?”

“죽음을 원했다면 애초에 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승려였다. 내가 마뇌에 무림 공적이란 것도 알고 있는데, 거기에 더하여 나를 구했고, 또한 그래 놓고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그럼 난 떠나 보겠소.”


떠본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승려는 선선히 허락해 주었다. 


“그러시지요.”

“.. 됐소. 어차피 단전도 깨져서 나가봤자 별로 살 필요도 없을 거요.”

“단전이라면 고쳐 놓았습니다. 떠나고자 하시면 떠나셔도 무리 없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 단전을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분명히 교주에게 당해서 부서져 있어야 할 내 단전이 모두 멀쩡한 것도 알아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승려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탈을 쓴 신선이라 일컬어지는 절세고수들조차도 완전히 흩어져버린 단전을 도로 복구하는 기예를 보여준 적이 없거늘. 


“..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멍청한 물음에 승려가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주께서는 무엇을 물으시는지요.”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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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악연(惡緣) 24.03.23 156 3 13쪽
2 1. 악연(惡緣) 24.03.23 184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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