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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Cat의 서재

씨앗을 뿌려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atchCat
작품등록일 :
2017.06.26 17:42
최근연재일 :
2017.08.04 18: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984
추천수 :
24
글자수 :
182,626

작성
17.06.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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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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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3화.여행의 시작(3)

DUMMY

사람은 아주 쉽게 죽는다.

그것은 에반이 12살 때 알게 되었던 사실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알기 위해서 가족을 잃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을 외반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대 겨울 사태.

플린델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사상자를 일으켰던 사건이다.

더위 때문에 땀으로 몸을 씻어낼 정도의 여름에 일어났던 믿기 힘든 일.

하늘에서는 겨울이라는 부를 단어조차 힘들게 만들 정도로 눈이 쏟아져내려왔으며 겨우 일구어놓았던 작물들은 남김없이 하루아침 만에 시들어버렸던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교황청에서는 죄악의 마녀들이 저지른 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누가 어째서 저지른 것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불명이다.

에반 역시 그 피해를 입은 수많은 피해자들 중 한명이며 그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첫날에는 우선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작물부터 모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알 겨를이 없었기에 우선 식량부터 모아야했었다.

하지만 급하게 모은 식량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눈에 선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식량은 바닥나기 시작했으며 추위 또한 점점 심해졌기에 도움의 손길을 받기 힘든 산에서 에반의 가족은 고립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마을에 다녀오마.”


사흘째에 이르렀을 때, 에반의 아버지는 직접 마을로 내려가서 도움을 청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집밖에는 심각할 정도의 눈이 내리고 있었으며 허리에 닿을 정도까지 쌓여있었다.

하루 정도면 도착할 마을이었지만 이만한 눈을 헤치고 나가려면 시간은 더 걸릴 것이며 무엇보다 가는 도중에 얼어죽을 가능성도 있다.


“금방 돌아올 테니 기다리렴.”


옛날 이야기였다면 아버지는 식량을 한 아름 품에 안고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대 겨울 사태가 일어난 지 일주일 정도에 이르렀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누군가 문을 두드려 줄 것이다.

똑똑.

아버지란다.

문을 열어주렴.

그렇게 말이다.

조금만.

앞으로 조금만 더.

문을 두드리는 희망의 소리를 에반과 그의 동생, 그리고 어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열흘에 이르렀을 때는.

더 이상 식량이라고는 없었다.

2주 정도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께서 잠시 집을 비우시더니 문을 열어 본 적 없는 고기를 문 앞에 올려다놓으셨다.

불을 피울 장작이 없었기에 날것 그대로 먹어야만 했으나 어차피 먹을 식량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긴 시간을 굶어야만 했던 에반과 동생에게는 너무나도 맛있던 식사였다.

어머니도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버지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밖에서 조금만 기다리다가 들어가겠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이제 저녁이니까···!?”


기다리다 못해 문을 연 순간 에반은 ‘그대로 열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다리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고서 숨을 멈춘 어머니가 쓰러져있었다.

새하얀 눈 위에는 붉은 피가 묻어나가던 중 얼어버렸기에 그 색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아직 어린 에반은 어머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며 시체를 집안에 데리고 와서 최대한 담요로 덮어주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바라는 희망 따위는 신에게 다다를 일이 없었다.

파리 한 마리 꼬이지 않으며 썩지 않는 시체는 두 어린아이의 정신을 깎아 먹을 뿐이었다.

울고 싶었다는 생각이 에반과 그의 동생의 머릿속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님에게 잘못했다고 기도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사실이다.

고작 12살짜리 어린아이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에반은 사람과 만날 일이 적었던 산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누군가와 다툰다는 짓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3주째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동생을 껴안으면서 의식을 유지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었다.

이제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동생 역시 죽게 된다.

동생만은 살리고 싶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었다.


“도와주세요.”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누군가 저 문을 두드려 주리라.

그래.

똑똑하고.


‘똑똑’

“!”


그것은 희망의 소리였다.

구원의 소리였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목숨을 거두러 온 사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안에 누구 없나!”

“그냥 부수고 들어가세!”


이것은 꿈이었다.

오늘날까지 에반을 괴롭히는 과거의 악몽.

하지만 악몽은 언젠가는 깨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깨어나게 되었다.

에반은 기쁜 나머지 껴안고 있던 동생을 붙잡고 흔들었다.


“론! 사람이 왔어! 살았어!”


하지만.


“다른 곳에 더 있을지도 모르니 더 찾아봐!”


악몽에서 깨어나면 또 악몽을 꾸게 된다.


“론?”


악몽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동생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추위로 인한 몸의 떨림조차 더 이상 없었다.

그저 힘없이 목을 떨어트린 채 공허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론! 정신 차려! 론!”


거짓말.

악몽.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한동안 마을에서 에반은 우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모금 마시는 뜨거운 우유가.

따스한 장작 난로가.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다행히 마을에는 수도로부터 지원물품이 오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째에 이르렀을 때.

그제야 대 겨울 사태는 멈추었다.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이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으며 그 많던 눈들은 이틀 만에 전부 녹아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이 끝난 후에 에반은 결정했다.


“전 돌아갈게요.”


가족이 함께 하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에반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나서서 말렸다.

어째서 그런 곳에 돌아가느냐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에반은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가족의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요.”


단호하게 말하자 마을사람들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사태가 끝나고 돌아온 집안을 정리하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아버지에게서 조금밖에 배우지 못한 농사를 다시 한다는 것 역시 힘들었다.

무엇보다 가을이 시작할 무렵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역시 힘든 작업이었다.

이따금씩 마을 사람들에게서 농사를 하는 법을 배우고 먹을 것을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에반은.

훌륭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힘들지만 제 몫은 할 수 있는 농부가 되었다.

잊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극복해나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째서?”


악몽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그 날로 끝나지 않았다.


“대체 왜?”


에반은 창문 밖을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겨울이 끝나고 따스한 봄이 찾아왔다.

씨앗을 뿌리고 땀을 닦아가면서 한 해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는 시간이다.

오늘따라 아침이 평소보다 춥게 느껴졌다.

덕분에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이렇게나 늦게 꽃샘추위가 찾아올 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창문 밖을 바라본 순간.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과 같은 대량의 눈이.

회색빛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의 악몽은.

다시 한 번 이어지고 있었다.

농담도 이런 질이 나쁜 농담이 없다.

이래서는 씨를 뿌려도 작물이 자라날 리가 없다.

새싹조차 틔울 수 없다.

시기로만 따진다면 그때보다 더 나쁘다.


“설마······.”


에반은 오른손을 들어 보았다.

아직도 오른팔의 푸른 문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어제와는 다르게 좀 더 밝게 빛났으며 화살표와 같은 빛이 집 밖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이 방향으로 걸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어제 음유시인이 말한 대로 이 문양은 길잡이 역할을 하는듯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음유시인이 헤어질 때 한 말이 스쳐지나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라면 마음을 바꾸겠어요. 신님의 노여움을 사고 싶지는 않거든요.’


감히 내가 직접 선택하였는데 거절하느냐.

신님께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거절할 수 없게 에반이 스스로 오게끔 만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하하······. 뭐 이런 어린아이 같은 신님이 다 있담.”


맥없이 웃으면서 에반은 침대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쿡쿡대며 웃더니 이윽고 웃음은 멈추었다.

그리고는.


“아 좋아! 좋다고! 그쪽에서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에반은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집안을 들쑤시며 온갖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찬장에서 각종의 식기구들을.

남아있던 기름과 소금들, 식량, 그동안 조금씩 모아왔던 돈들, 조잡한 단검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쓸 만한 도구들을 큼지막한 가죽 가방에 우겨넣었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 두툼한 겨울용 털옷을 꺼내 입고 가방을 메고는 문을 거칠게 열었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으며 시간이 흐른 탓인지 신발을 덮을 정도로 쌓여있었다.

발을 내딛자 뽀득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밟는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졌다.


“두고 보라고!”


에반은 오른손을 들어 문양의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긴 여행을 시작했다.

신이 보낸 도발을 받아들이며.

에반의 머릿속은 단 하나만의 생각이 차지했다.


‘농사를 망치는 악랄한 짓을 벌인 신에게 한마디 따지고야 말겠다.’


작가의말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조금 이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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