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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chCat의 서재

씨앗을 뿌려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atchCat
작품등록일 :
2017.06.26 17:42
최근연재일 :
2017.08.04 18: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983
추천수 :
24
글자수 :
182,626

작성
17.06.27 17:43
조회
149
추천
2
글자
11쪽

2화.여행의 시작(2)

DUMMY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산속에 집을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람을 어째서 피하는 것인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 대부분은 이에 해당한다.

죄악의 마녀들과 이들의 추종자라는 적대세력이 있지만 이와는 달리 산적과도 같은 이들 역시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유순한 성격의 에반이지만 만에 하나 자신을 위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쫓아낼 정도의 배짱 정도는 있다.

에반은 허리춤에 걸려있던 작은 낫에 손을 대면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이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조금 낡은 회색빛 로브를 걸친 사내가 에반을 향해 팔을 흔들고 있었다.

밭보다 조금 더 위쪽인 언덕 위에 서있는데다가 후드에 가려져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행히 산적 같은 건 아닌듯해보였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 정도일 것이다.

안심의 한숨을 내쉬면서 낫에서 손을 떼고 낯선 이를 향해 대답했다.


“무슨 일이시죠?”


상대가 반응해준 것이 기뻤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언덕을 내려와 에반이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면도를 한지 조금 오래되었는지 입가에는 수염이 자라나 있어서 조금 더러워보였고 옷과 배낭에는 흙과 때가 묻어있어서 한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귀찮게 해서 미안합니다. 지나가던 음유시인인데 길을 잃어서 말이죠.”


에반은 자신이 사는 곳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른 마을로 가본 적은 없었고 가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이 남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에반을 해치거나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닌 것 같아보였다.

에반은 그의 질문에 손짓으로 방향을 가리키면서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마을이라면 오신 방향과 반대로 하루정도 산을 타고 쭉 내려가시면 바로 나올거에요.”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일보시죠! 이만 가보겠습···!?”

“?”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든 길을 가려던 순간 음유시인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더니 이내 뭐라고 말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어······. 어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놀란 표정이 후드 아래에서도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등 뒤에 뭐라도 있나 싶어서 돌아봤지만 에반의 눈에는 방금까지 갈고 있던 밭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봐요? 괜찮아요?”


더운 날씨에 오랫동안 길을 잃어서 더위라도 먹은 것인가 싶어서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진정시켜보려고 하자.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음유시인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다급하게 에반의 오른손을 붙잡고 금이라도 발견했는지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았다.

이쯤 되면 불쾌감이 들기에 뭐라고 화라도 내려는 찰나.


“이것···이것 보시오!”

“네?”


음유시인은 에반의 오른손을 들어 그의 눈앞에 그대로 가져다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왜 당황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지?”


분명 오늘 오전에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거 얼룩이나 멍이 든 것처럼 보였던 푸른 자국은.

생전 본 적없는 이질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양으로 변했으며 이제는 손등뿐만이 아니라 오른팔을 타고 그려져있었다.

손등에 그려진 초승달과 그 아래에 그려진 꽃처럼 보이는 그림이 하나가 손등에 작게 그려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이를 보호하듯이 나무뿌리 같아보이는 선들이 팔을 타고 올라가있었다.

아직 해가 하늘에 떠있는 한낮인데도 문양에서는 푸른색의 빛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음유시인은 근처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지 에반의 어깨를 붙잡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는 이야기할만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댁으로 가서 이야기하죠.”

“아···네?”


음유시인이 아니라 사실 의사나 사제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라도 지금 문양은 병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 또한 방법이리라.

어차피 내일 마을로 향할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지금 알아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에반은 생각하며 음유시인의 등에 떠밀려 집으로 향했다.

<···>

“그렇게 당황하시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어차피 이 산속에서 자리 잡고 사는 사람은 저밖에 없거든요.’라고 덧붙이면서 에반은 말했다.

음유시인은 집에 도착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확인하고 이따금씩 창문 밖을 확인하기도 했다.

조금 진정했으면 좋았기에 에반은 그에게 물을 한 컵 따라주었다.

그러자 그는 쉬지 않고 들이마시더니 조금 요란하게 컵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물어봐도 되겠다고 생각하기에 에반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대체 뭔데 그러시는 거죠?”

“일단 설명 드리기 전에 앞서 제가 수도에서 왔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수도에서 왜 이런 곳까지?”


음유시인은 에반의 질문에 조금 떨떠름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재작년 겨울의 마지막 날에 수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아뇨? 보다시피 세간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자리 잡고 사는지라.”

“그렇다면 모르실법도 하군요. 저는 교황청에서 직접 임무를 받고 이야기를 전파하는 음유시인입니다.”


교황청이라면 플린델에서도 가장 높으신 곳 아닌가.

아무리 세상물정 어두운 시골청년인 에반이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교황청에서 직접 임무를 내릴 정도라는 것일까.


“재작년이면 신성세기 999년이죠. 그 해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처럼 이단자들을 화형식에 처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화형식······.”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최근에 이르러서 시작된 교황청의 새로운 방식이다.

본래 이단자들이나 죄악의 마녀들의 추종하는 이들을 심판하는 일은 평소라면 이단심문국 내에서 은밀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매년 마지막 날에는 죄가 큰 이들을 선별하여 시민들에게 적나라하게 화형식을 보여준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이 방법 덕에 시민들은 확실히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들은 제대로 보호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날만큼은 제대로 거행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진행 중에 취소되었다는 말이 맞겠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음유시인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에 힘겹게 말을 이었다.


“신탁이 내려온 겁니다. 그것도 천년 만에 말이죠.”

“네!?”


신탁, 신의 목소리, 이는 오직 1세대 교황이었던 루칸의 피가 이어진 자들만이 들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신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 받을지도 모르는 것이 이곳 플린델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2세대 때부터 신탁은 제대로 내려오지 않았다.

기록상으로는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적혀있기에 교황의 입지는 언젠가는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플린델의 보증 없는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신탁이 약 천년 정도 만에 다시 내려왔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신탁의 내용은 ‘나의 아이들 중, 나의 선택을 받은 아이들에게 나를 직접 만날 권리를 부여하노라.’였다고 합니다.”

“신을 직접 만나게 된다고요?”


혹여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무언의 끄덕임뿐이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실인데 직접 만나게 된다는 것은 교황은 물론 사제들 중 그 누구라도 들으면 놀라서 기절할만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화형식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죠?”

“거기서 문제가 일어난 겁니다.”


음유시인은 검지로 1을 만들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꽤나 과장스러운 사람인가보다.


“신탁에는 뒷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그 선택받은 아이들을 ‘어떻게 알아내는가?’ 이었죠.”


그저 선택받았다고 말하면 겉보기에는 그게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다.

사람을 믿게 만들려면 눈에 보이거나 들리는 증명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신께서도 분명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뒷이야기는 ‘선택받은 아이들에게 나를 찾아올 수 있는 길잡이를 선물하겠노라.’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오른팔에 달려있는 그 문양이죠.”


음유시인은 손가락을 들어 에반의 오른팔을 가리켰고 에반은 다시 한 번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지 아까와 같이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겁니다. 그 날에는 힘들게 잡아낸 마녀의 직계 혈통을 화형식에 처하기로 했었는데 말이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필이면 그 이단자의 오른팔에도 문양이 나타났던 겁니다.”


죄악의 마녀들은 오래전부터 플린델과 싸워온 적대세력.

사실상 플린델이 존재하는 의의라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때문에 플린델에서 내세우는 이념은 죄악의 마녀를 적대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 마녀와 가장 관계가 있는 이단자에게 신을 마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마녀나 다름없는 존재가 순식간에 성인이 되어버린 셈이죠. 실제로 그 사건 이후로 교황청에서는 신께서 마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다고 성녀로 부를 정도니까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자신이 세간과 동떨어져 사는 동안에 수도에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만일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에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음유시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로 끝낼 이야기가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신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요! 그 뭐냐. 다른 생각은 안 드시나요?”


탁자를 탁 내려치면서 음유시인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돌아간 대답이라고는.


“엄···그다지요?”

“신님을 만날 수 있다니까요? 역사에 이름을 날리게 될 기회에요!”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요. 귀찮기도 하고, 힘들게 먼 여행을 떠나자니 그냥 농사나 하면서 사는 것이 더 좋고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라면 마음을 바꾸겠어요. 신님의 노여움을 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음유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에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에 에반이 알려주었던 마을을 향해 나아갔고 창문을 통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반의 시야에서 곧 사라지게 되었다.

음유시인이 사라지고 난 집에서 에반은 의자에 앉아 뒤로 조금 젖힌 채 오른손을 들어 달과 꽃이 그려진 문양을 보았다.

여전히 문양은 빛나고 있었다.


“밤길에 넘어질 일은 없겠네.”


방금 전의 음유시인이 들었다면 놀라서 기절할만한 말을 하고는 에반은 문양을 바라보면서 계속 말했다.


“신이라니 기회라니 말이지. 그런 거 난 필요 없는데 말이야.”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도 아닌 말을 에반은 이제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안에서 중얼거리면서 의자를 삐걱 일뿐이었다.


작가의말

글을 작성한지 두번째 날입니다.

앞으로도 저녁 6시 경에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오탈자는 언제든지 댓글로 알려주시면 최대한 빨리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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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17.06.26 186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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