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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역천귀로(逆天歸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밬티
작품등록일 :
2023.06.26 16:53
최근연재일 :
2023.07.06 18:25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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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3,490

작성
23.07.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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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화 화변인(禍變人) (6)

DUMMY

* * *


혼탁한 기운이 양팔을 통해 흘러 들어오자 마로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그 안에 섞인 영기는 1푼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전신의 모든 기로가 폐쇄된 상태였으니 제대로 운행되지 못하고 곳곳에 정체되고 있었다.

몸의 반응이 늦는 것이 이러한 탓인가 싶었다.

하지만 미미한 양의 영기조차 아쉬운 상황.

마로는 나무뿌리를 꽉 끌어안은 채 더욱 힘을 줬다.

“흠······.”

그나마 나아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기운에 직접 반응하는 안력(眼力)쯤일까.

그 덕에 멀리 떨어진 팽자월과 화변인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쯧! 저 정도의 저급한 술법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야.”

조금 전 흙먼지를 날리려 풍술(風術)을 펼쳐낸 것도 마로의 눈에는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딱 하나, 쓸만하게 보이던 것이 있었는데.

“저놈은 숨는 것만 잘하네.”

마로가 팽자월을 처음 보았던 순간, 진유근의 그림자에 숨어 있다 튀어나온 모습은 조금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해 살짝 놀랐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

수라도에 있던 때도 그렇고, 전쟁에서도 숨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과 상대를 피해 숨는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

그런 건 이해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격이 다르니까.


그렇게 얼마간을 쳐다보았을까.

“어이쿠! 이런.”

마로는 팽자월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는 땅 밑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 * *


화변인의 몸에 팽자월의 붉은 불꽃이 옮겨붙기 바로 직전.

지면을 깨부수고 솟아 오르는 나무뿌리가 그의 목을 찔러왔다.

“흐읍!”

팽자월은 쏘아져 가던 속도를 단박에 줄일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검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실전이 부족한 그는 공격할 줄만 알았지, 피한 후 반격하는 노련함은 갖지 못했다.

아니, 완전히 피하지도 못했다.


촤아악!

“끄아악!”

나무뿌리가 일직선으로 솟아오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목을 향해 쏘아져 오면서, 팽자월의 움직임을 쫓아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치명상은 피했으나, 오른쪽 옆구리에 깊숙한 자상이 생기고 말았다.

뚝. 뚝.

핏물이 점점이 떨어졌다.

화변인의 발밑에서 일렁이던 검은 기운이 순간 움찔하더니 팽자월이 흘린 핏물을 향해 꾸물거리며 촉수를 내밀었다.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옆구리를 감싼 팽자월이 뒷걸음쳤다.

“후우. 후우우.”

그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 한번 검을 고쳐 쥐고 화변인을 겨눴다.

“그래. 양팔을 다 땅에 파묻었는데, 내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구나. 네놈이 펼친 회심의 수가 나를 일격에 죽이지 못했으니, 이제는 네놈이 죽는 일만 남았다!”

“끄어어. 끄어어어!”

공격 도중에 검을 회수했다고는 하나, 공격이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었다.

불꽃 일부가 솟아오른 나무뿌리에 옮겨붙었기 때문이었다.

쿠쿠쿠쿠.

불을 끄려는 것인지 화변인은 나무뿌리를 세차게 흔들다가 다시 땅속으로 끌어당겼다.

이를 노려보던 팽자월이 다시금 검을 겨누며 화변인을 노려갔다.

취이익! 멈칫.

그때 팽자월의 눈에 그가 앞서 흘렸던 핏자국이 보였다.

화변인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며 번져 나온 검은 촉수가 핏물에 닿자,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검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독인가?’

만약 그렇다면 달려들던 도중 뒤로 물러난 것이 오히려 천운일지도 모른다.

팽자월은 흘깃 고개를 돌려 마로의 상황을 보았다.

마로는 여전히 화변인의 다른 한쪽 나무뿌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보니, 왠지 모르게 머리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사백께서 이르시길······.’

팽자월이 몸을 옆으로 빼내며 검을 쥔 오른팔에 내력을 집중했다.

‘···화변인을 상대할 때는 비겁함은 생각지 말라 하셨다.’

피이잉!

그의 오른손에서 검이 떠나는 순간.

반대쪽으로 튀어 오른 그의 몸이 흐릿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키에에에에!

콰콰쾅!

화변인의 왼쪽 어깨에 박힌 검을 둘러싼 기운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터져 버렸다.


* * *


딱히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을 앞에 두고 이럴 줄은 몰랐다.

뚝. 뚝. 뚝.

무언가 빠르게 마로의 옆을 스치듯 지나쳤는데.

모습은 감추었어도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까지는 감추지 못한 모양이었다.

팽자월이 지나간 자리를 빨간 핏물이 점점이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화변인의 왼쪽 어깨 일부가 터져 나가자.

미친 듯한 몸부림이 땅속을 거쳐 마로가 끌어안은 나무뿌리까지 전해졌다.

마로는 더욱 힘을 주어 나무뿌리를 끌어당겼으나.

처음보다 절반 이상 쪼그라든 나무뿌리는 더는 내어줄 것이 없다는 듯 뚝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콰당.

버티던 힘이 사라지자 마로는 순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다른 한쪽의 나무뿌리가 빠르게 땅 밑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호라. 다른 한쪽도 다 빨아먹으면 되겠구나.”


흠칫!

마로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다가오던 느낌이 한순간 멈춰 섰다.

화변인은 양팔 모두를 땅에서 뽑아내고는, 이내 본체를 움직여 마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나를 이런 것들과 같이 취급했단 말이로구나!”

도망친 팽자월에게 들으라는 듯 마로가 크게 외쳤다.

그러고는 다시 멀리서 달려오는 화변인의 본체를 향해 소리쳤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네놈의 몸에 섞여 있으니, 나로서는 묵과할 수 없겠다. 하여······ !!”


퍼어엉!

반쯤은 떨어져 나간 왼쪽 어깨를 덜렁거리며 달려오던 화변인이 아예 팔을 통째로 뜯어내 마로에게 집어던졌다.

휘릭 날아오던 화변인의 왼팔이 마로의 머리 위에서 폭발했다.

수백 수천의 나무 조각들이 마로에게 쏟아져 내렸다.

마로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불쑥 내밀어 수결을 맺었다.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는 간단한 방어 술법이었다.

‘아차!’

그러나 마로의 눈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우웅.

빨아들였던 기운 중 혼탁한 기운만을 남겨두고 영기가 모조리 머리끝으로 모여들더니.

지금껏 한 번도 되지 않던 술법이 마로의 손끝에서 펼쳐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때.


촤아악!

갑자기 화변인의 위쪽에서 팽자월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양손에 쥔 짧은 단검을 휘둘렀다.

“끄어어어!”

화변인의 목 주변으로 두 가닥의 검흔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허공을 밟고 다시 위로 도약한 팽자월의 모습이 흐릿해졌다가 마로의 등 뒤로 나타날 무렵.


툭. 데구르르.

화변인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 * *


같은 시각. 건륭파 산문 앞.

석신기가 흰 도사복을 입은 웬 여도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자월이만 두고 먼저 오셨다고요?”

“같이 오려 했지. 하지만 선각산 부근에 변고가 생겼다고 화급히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지 뭐야.”

“화변인을 붙잡았다면서요.”

“아직 정신이 멀쩡한 아이야. 녀석을 시험해 보았는데, 폭주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

“그래도 그렇죠. 아직 배움이 모자란 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올려놓으신 것 아니에요?”

“명혜 사매. 그 녀석의 사부가 누구인지 잊었어?”

명혜라 불린 흰 도사복의 여도사가 석신기의 말에 더 크게 발끈했다.

“아니! 그걸 아시는 분이 그래요? 아직 그 아이는 화변인과 일대일로 싸워본 적이 없다고요!”

석신기가 능글맞게 웃으며 대꾸했다.

“사매가 화를 내니 얼굴에 두 송이의 붉은 꽃이 피는군. 그래서 다들 사매를 가리켜 홍화선녀라 부르는 건가.”

“이··· 이··· !!”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별호를 짓다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명혜는 그 별호가 듣기 싫은지 석신기에게 더 화를 내었다.

“대사형도 없는 마당에! 사형이 또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금방 다녀온다니까, 글쎄.”

“매번 이런 식이었잖아요!”

석신기는 화를 내며 달려드는 명혜를 상대하기 어려웠는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뒤로 물러섰다.

“아무튼, 화변을 조사하는 건 사매에게 부탁할 테니까.”

“싫다고요!”

“그럼 사매 말고 누가 해. 사문에서 명혜 사매보다 술법을 더 잘 쓰는 이가 누가 있지?”

석신기가 씨익 웃으며 다시 뒤로 몇 발짝을 물러섰다.

“금방 올 거야. 다녀와서 이야기하지.”

스르르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신기의 신형이 허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건륭파 산문 앞에는 씩씩대며 발을 동동 구르는 흰 도사복의 여도사만 남게 되었다.


* * *


후욱. 후우욱.

가쁜 숨을 토해내던 팽자월이 문득 옆구리의 상처를 내려보았다.

상처는 처음보다 더 벌어져 있었으나, 지혈을 한 것인지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마로를 보았다.

마로는 양손을 들고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끝··· 났다. 이제. 가자.”

하지만 마로는 대답이 없었다.

솔직히 지금이라면 도망쳐도 다시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허어. 돌겠군.”

인상을 찌푸린 마로가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팽자월을 보았다.

“이봐. 끝나긴 뭘 끝나. 마무리 안 해?”

“마무··· 리?”

“그놈 안 죽었어.”

“뭣?”

마로의 말에 화들짝 놀란 팽자월이 쓰러진 화변인에게로 급히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쓰러진 몸뚱이도, 거기서 떨어져 나온 머리통도 이미 생기를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화변인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던 검은 기운도 땅속으로 스며들었는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뭐야. 지금 나를 놀리는 거냐? 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도망치기라도 하려던 것 아니냐?”

“쯧! 어리석긴.”

마로가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어이가 없어진 팽자월이 다시금 마로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순간.


휘이익.

화변인의 얼굴 반을 덮고 있던 나무껍질에서 줄기 하나가 쭉 뻗어 나오더니 쓰러진 몸체에 닿았다.

“늦기 전에 어서 아까 그 불꽃을 꺼내 태워라!”

여유를 부리던 마로가 갑자기 급하게 소리쳤으나.

슈슈슉.

이번엔 몸체에서 몇 가닥의 줄기가 뻗어 머리통을 휘어감고 끌어당겼다.

“이런 제길!”

팽자월이 급히 품속을 뒤져 부적을 있는 대로 꺼냈다.

하지만 이미 검은 처음 폭발에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단검에 불을 붙이기엔 검신이 너무 짧았다.

“뭐해! 빨리 불붙여!”

팽자월이라고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다만 좀 전에 느꼈던 그 열기를 단검을 들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거 이리 내!”

빠르게 다가온 마로가 손을 쭉 뻗으며 단검을 낚아채려 했지만, 팽자월은 마로의 손을 툭 쳐내며 노려볼 뿐이었다.

“너도 한패잖아.”

“뭐???”

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화변인은 잘렸던 머리를 빠르게 붙여가고 있었다.

“아아······.”

부적을 손에 쥔 팽자월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발화부는 있는데 화마부(火魔符)가 없어.”

“그게 뭔데.”

그러는 사이, 화변인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로와 팽자월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로는 그대로 양팔을 벌려 화변인의 몸을 끌어안았고, 팽자월은 부적을 내던지고 단검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왼팔이 사라진 화변인은 몸을 비틀며 오른팔을 들어 올렸지만.

마로는 이조차 막으려는 듯 더 강하게 힘을 주며 끌어안았다.

‘왜 몸통에서는 기를 빨아들일 수 없지?’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마로가 생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갔다면, 화변인은 마로에게 기운을 빼앗기고 팽자월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일은 전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몸통이나 팔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건, 그저 좀 전에는 운이 좋았다는 뜻이리라.

꾸물. 꾸물.

사라졌던 검은 기운이 화변인의 발밑에서 다시 나타났다.

치이이익.

검은 기운이 마로의 발목까지 끓어올랐다.

뜨끔 하는 느낌과 함께 발목의 피부가 벗겨지며 핏물이 흘러내렸다.

화변인의 앞에서 단검을 쥐고 공격하던 팽자월이 입술을 짓씹으며 뒤로 물러섰다.

화변인의 몸 전체를 덮은 나무껍질 곳곳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치이이익.

“끄으! 뭐 하는 거냐! 밥을 떠 먹여줘도 못 먹느냐!”

그러자 팽자월이 버럭 소리쳤다.

“단검이 안 박힌단 말이다!”

화변인의 몸을 군데군데 덮고 있던 나무껍질이 어느새 전신을 모두 덮고 있었다.

한 번 잘렸던 목까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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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탐지능(探知能) (2) 23.07.05 10 0 12쪽
10 9화 탐지능(探知能) (1) 23.07.04 13 0 12쪽
9 8화 화변인(禍變人) (7) 23.07.03 12 0 12쪽
» 7화 화변인(禍變人) (6) 23.07.01 14 0 13쪽
7 6화 화변인(禍變人) (5) 23.06.30 15 0 12쪽
6 5화 화변인(禍變人) (4) 23.06.29 16 0 14쪽
5 4화 화변인(禍變人) (3) 23.06.28 16 0 13쪽
4 3화 화변인(禍變人) (2) 23.06.27 29 0 13쪽
3 2화 화변인(禍變人) (1) 23.06.26 23 0 12쪽
2 1화 아수라장(阿修羅場) 23.06.26 42 0 14쪽
1 서(序) 23.06.26 69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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