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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로

역천귀로(逆天歸路)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밬티
작품등록일 :
2023.06.26 16:53
최근연재일 :
2023.07.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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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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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화변인(禍變人) (5)

DUMMY

“서두르자.”

우람한 체격의 사내가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소년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아버지.”

“시간 없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커다란 장검 두 자루를 멘 아버지의 등이 순간 주춤한다.

소년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보폭을 평소처럼 넓히셔도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은 온통 장애물이었다.

발밑은 뾰족한 돌부리가 함정처럼 발을 딛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고, 눈앞은 빽빽하게 들어찬 낮은 관목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이것들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검은 숲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건 대체······.’

반투명한 형태로 허공에 둥실 떠 있던 마로는 문득 이 상황이 꿈속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 * *


덜컹. 덜컹.

마차의 흔들림에 마로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머리맡에서 그를 쳐다보는 팽자월의 시선과 곧바로 맞닿았다.

“역시. 사백께서 하신 말씀대로야. 점혈이 풀릴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이었어.”

팽자월은 앉은 자세에서도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마로가 물었다.

“부러진 검은 뽑아서 뭐 하게.”

“짧아졌으니 마차 안에서 휘두르기에는 더 좋겠지. 왜. 한 번 더 찔려보고 싶으냐?”

비좁은 공간.

사방이 막혀 밖이 보이지 않는 마차 안은 긴장감이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팽자월의 것. 마로는 오히려 느긋했다.

“자만하지 마라. 오늘은 네놈의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정말 그러했다. 마로의 눈에는 팽자월의 빈틈이 수도 없이 보였다. 다만 몸이 눈을 따라가지 못했다.

“풉!”

팽자월이 참지 못하고 마로의 얼굴에 직격으로 침을 튀겼다.

상체를 일으켜 앉은 마로가 거적 같은 옷자락으로 얼굴을 쓱 문지른 뒤 물었다.

“그래. 그자는 어디에 있지?”

“누구 말이냐.”

“너와 함께 왔었던 이를 말함이다. 어디에 있느냐.”

마로는 석신기를 찾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마로와 팽자월 둘뿐이었다.

마부석에 앉았나 싶어 앞쪽 칸막이를 열어 보았으나, 생면부지의 노인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명공 사백을 찾는 모양인데, 이미 늦었다.”

“뭐?”

“사백께선 네놈을 내게 맡기시고 다른 용무를 보러 가셨거든.”

팽자월은 마로를 위아래로 훑어보는가 싶더니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흠. 흠. 그건 그렇고, 너는 점혈을 푸는 법을 어찌 익힌 거냐? 절정의 고수라도 쉽사리 혈도를 풀 수는 없었을 텐데.”

“점혈? 그게 뭐지?”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팽자월은 어쩌면 이것도 화변인의 능력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거저 주어진 능력이라, 자각하기도 전에 폭주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말도 안 되는 치유력을 지녔으니, 그로 인해 점혈이 풀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별 상관은 없었다.

석신기가 점혈을 해 두었던 건 마차 안에서 난동이라도 부릴까 싶어서였지, 팽자월이 깨어난 마로에게 당할까 걱정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긴장이 된다. 고작해야 거지꼴의 어린 녀석인데.

아무래도 이성을 잠시 놓쳤다는 사실이 자꾸 생각나서였을지도 모른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말하지 않았느냐. 건륭파로 데려간다고. 잡아먹지 않으니 걱정은 마라. 우리는 네 화변의 원인을 조사하고 폭주하기 전에 안정화할 방법을 찾으려는 거다.”

“거참. 말이 통하지 않는군. 대관절 화변이 무엇이기에 이리도 나를 귀찮게 하느냐.”

팽자월이 미간을 구겼다.

“화변(禍變). 말 그대로 거대한 재액을 말하지. 그게 사람에게 씌었으니 화변인이라 하는 것이고.”

“그게 나라는 것이냐? 무슨 근거로?”

“단전이 없는 범인(凡人)이 내가 고수와 같은 기운을 뿜어낸다든지, 상식 밖의 괴력을 보이거나 말도 안 되는 괴이한 능력을 펼쳐내는 이들. 너도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느냐.”

팽자월이 말한 것은 화변인의 특징 중에서도 극히 일부.

저마다 천차만별의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기에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리석은······. 무지가 하늘에 닿았구나.”

마로가 개탄하듯 중얼거렸다.

팽자월의 말대로라면 인간도의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화변인에 해당할 것이다.

“네가 알지 못하는······!!”

마로가 말을 하다 말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괴이하다.’

빠르게 다가오는 흉한 기운에 마로의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뭐. 뭘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당장 마차를 세워라.”

“염병하. 어이쿠!”

덜컹.

마차가 돌부리에 걸렸는지 크게 한번 들썩였다.

팽자월은 한 손을 창틀이 얹어 버티면서도, 다른 한 손은 여전히 검병에 대고 있었다.

마로가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그대로 검을 뽑아 목을 벨 생각이었다.

마로의 표정이 시시각각 기괴하게 변했다.

“이건 대체······.”

쿠콰쾅!

무언가가 마차 아래에서부터 솟아올라 바닥을 뚫고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굵은 나무의 뿌리처럼 보이기도 한 것이 정확히 팽자월과 마로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마차를 두 동강 내었다.

허공에서 박살이 난 마차 안에서 마로와 팽자월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왔다.

“장 아저씨!”

미처 피하지 못한 마부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가 곤두박질치더니 머리가 터져 즉사하고 말았다.

팽자월은 착지하자마자 마부에게 달려갔으나, 이미 절명해버려 더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끄극. 끄그극.

발아래로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로가 양손을 앞으로 모아 수결을 맺다가 이내 허탈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아······.”

“너. 너 지금···!”

그 모습이 팽자월의 눈에 들어왔다.

행색이 워낙 남루했기에, 운이 없어 화변에 당한 거지 녀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능숙하게 수결을 맺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하긴 했다.

콰쾅!

하지만 이를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하늘로 치솟았던 나무뿌리가 돌연 방향을 바꿔 팽자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어디냐. 본체가.”

팽자월은 부러진 검을 휘둘러 나무뿌리를 밀어내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애초에 이곳은 허허벌판.

주변에 나무는 보이지 않았으니, 필시 멀지 않은 곳에 이를 부리는 자가 있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뚝.

돌연 나무뿌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팽자월은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며 천천히 뒷걸음쳤다.

나무뿌리의 뾰족한 끝부분이 뭔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으로 빙글 돌더니, 마로가 서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멈췄다.

“너.”

그런 나무뿌리를 향해 마로가 말을 걸었다.

“너는 어째서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지? 네게 섞여 들어간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

마로는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나무뿌리가 대답할 리가 없었다.

“위험해. 거기서 비켜!”

팽자월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를 신호로 삼은 것처럼 멈춰있던 나무뿌리가 다시 움직였다.

빠르게. 마로를 향해서.


쿠쾅!

마로가 서 있던 자리에서 흙먼지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팽자월은 뛰어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검을 앞으로 내민 채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가슴 위로 끌어당겨 한 손으로 간단한 수결을 맺으며 주문을 외쳤다.

“풍(風)! 파(波)!”

팽자월의 왼손에서 넘실거리던 내력이 빠르게 법력으로 변환되며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왼손에서 출발한 바람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앞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술법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팽자월의 법력은, 마로를 휘감은 흙먼지를 모두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팽자월이 뿌드득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들려던 순간.


“곤지향(坤地向) 삼십 장 앞에 술자(術者)가 있다.”

멀쩡한 마로의 목소리가 흙먼지를 뚫고 팽자월에게 전해졌다.

곤지라면 남서를 가리키는 것일 테니.

팽자월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눈에 힘을 주어 한 점을 노려보니 뭔가 보이기는 했다.

“저놈이 화변인이라는 거냐?”

마로의 물음을 뒤로 하고, 팽자월이 남서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가 장 아저씨를···, 너는 오늘 곱게 죽을 생각은 마라.”

“대체 뭐지······.”

달려가는 팽자월의 뒷모습을 보며 마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굵은 나무뿌리를 양팔로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의 괴력 때문인지 나무뿌리는 그 자리에서 꿈틀거리기만 할 뿐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왜 네놈이 영기를 품고 있는 거냐.”

이것저것 뒤섞여 혼탁하긴 했고, 양도 미미하긴 했다.

하지만 이 나무뿌리는 분명 영기를 조금이나마 품고 있었다.

인간도에 떨어져 지금까지 영기를 전혀 느껴보지 못한 마로로써는 이 상황이 이상할 뿐이었다.

“호오. 이놈 보게.”


샤아아아아.

혼탁하고 옅은 나무뿌리의 기운이 정순한 기운으로 뭉쳐진 마로의 체내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로도 이런 현상은 처음 겪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붙들고 있던 나무뿌리를 놓아버릴 뻔했다.

하지만 분명 이건 영기가 틀림없었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양팔에 더욱 힘을 주어 버텼다.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챘는지, 나무뿌리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네놈. 본체와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그거참 잘 되었다.”

적은 양이지만 이렇게 기운을 빨아들인다면, 본체로 달려간 팽자월에게도 분명 도움은 될 것이 분명했다.


* * *


“크흣!”

팽자월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한 몰골이었다.

조금은 자아가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본능을 표출하는 것인지 모를.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전신이 나무껍질로 뒤덮여 있고, 곳곳에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굴은 절반만 남아 있었는데, 입이 있어야 할 자리를 나무껍질이 덮어버려 굶주림을 호소하는 말이 웅얼거림처럼 들렸다.

길게 늘어진 양팔이 땅에 닿아 그 아래로 파고들어 있었다.

분명 마차를 부수고 마로를 덮친 그 나무뿌리가 분명했다.

뚝. 뚝.

몸에서 흘러내린 검은 물이 그의 발밑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춤을 췄다.

“끄어어어어!”

돌연 화변인이 몸을 비틀며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몇 번이나 어깨를 들썩거리더니, 왼팔을 위로 들어 올리며 땅에서 뽑아내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

팽자월은 뒤를 돌아보았다가 멀리 나무뿌리를 붙들고 있는 마로의 신형을 확인하고는 다시 화변인을 노려보았다.

마로가 붙들고 있는 것이 화변인의 왼팔이 분명했다.

치이익.

몇 장의 부적을 품 안에서 꺼낸 팽자월이 부러진 검신에 대고 쓱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발화(發火).”

그와 동시에 검을 쥔 오른손에서 내력을 발출했다.

검을 휘감은 내기가 파란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팽자월은 다시 품 안에서 한 장의 부적을 꺼내 검신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에 던져 넣었다.

이번에는 별다른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적이 타오르며 푸른 불꽃을 붉게 물들였다.

“끄으윽.”

팽자월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푸른색의 불꽃은 열감을 느낄 수 없는 형태였으나, 붉은색으로 바뀌자 순식간에 검신을 뜨겁게 달궜기 때문이었다.

“곱게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팽자월은 화변인을 향해 검을 겨누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마치 궁신탄영의 수법을 쓰는 것처럼 상체를 뒤로 쭉 빼었다가 몸 전체를 앞으로 퉁겨내었다.

쌔애애액!

엄청난 속도의 빠르기로 쏘아져 가기에, 부러진 검이라고는 해도 그 위력이 반감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가만히 멈추고 있던 화변인의 오른쪽 팔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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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탐지능(探知能) (2) 23.07.05 10 0 12쪽
10 9화 탐지능(探知能) (1) 23.07.04 13 0 12쪽
9 8화 화변인(禍變人) (7) 23.07.03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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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화변인(禍變人) (5) 23.06.30 15 0 12쪽
6 5화 화변인(禍變人) (4) 23.06.29 16 0 14쪽
5 4화 화변인(禍變人) (3) 23.06.28 16 0 13쪽
4 3화 화변인(禍變人) (2) 23.06.27 29 0 13쪽
3 2화 화변인(禍變人) (1) 23.06.26 23 0 12쪽
2 1화 아수라장(阿修羅場) 23.06.26 42 0 14쪽
1 서(序) 23.06.26 69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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