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웃어야 한다.(4)
“제가 생각하는 개연성은 일종의 약속이에요.”
약속?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최지은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성준은 허리를 바짝 세우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연성이라는 건 일종의 약속이죠. 독자와 작가간의 이 글에서는 이 정도는 허락된다는 경계를 잡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음. 예를 들어서 실제로 사람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게 가능하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마치 시적 허용처럼요.”
“장르적 허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장르에서는 어느 정도 현실과 걸맞지 않은 것이 허용되죠. 그런데 이 허용이라는 게 모든 장르에서 동일하게 허용되는 게 아니잖아요. 같은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작품에서는 허용되는 게 어떤 작품에서는 허용되지 않죠.”
“뻔한 이야기 아닌가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뻔한데. 다들 잘 모르시더라고요. 작가님도 잘 모르시고요.”
“제가 모른다고요?”
“모르니까 자꾸 설명하시잖아요. 이 부분은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된거다. 이게 내가 잘못한게 아니라 작품 내적으로 이렇게 설정이 되어 있다.”
지성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잘못된 건가?
“이상합니까?”
“선을 잘 못 그으시는 것 같다는 거죠.”
지성준은 잠시 최지은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했다.
“솔직히 저는 지금 주임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 설명을 드리자면······.”
최지은은 살짝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회귀물에서 회귀는 개연성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어떤 이유에서건 회귀를 한다고 해서 독자분들이 ‘아 이건 이상하다.’라고 느끼지는 않죠. 회귀물은 회귀를 전제로 시작되는 거니까요. 그럼 회귀물에서 회귀는 작품의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거죠?”
“물론이죠.”
최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예요.”
“예?”
“그게 착각이라고요. 만약에 회귀한 주인공이 4~5권 쯤에서 위기에 처했는데 거기서 다시 시작지점으로 회귀하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나겠죠.”
댓글란이 폭발하겠지.
그리되면 회귀물이 아니라 루프물이 되어버릴 테니까. 아니, 애초에 루프물이라면 그 이전에 몇 번이고 루프를 했어야 할테니까. 루프물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왜요? 회귀물에서 회귀는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작품내의 장치잖아요. 그런데 왜 초반의 회귀는 이해해 주는데 중반의 회귀는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그야······.”
지성준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측면은요?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은 위기를 극복하죠. 그런데 그 위기라는게 사실은 일반인들은 잘 겪을 수 없는 일들이죠. 전 세계에서 주인공에게만 떨어지는 위기에 가깝거든요. 확률로 따지면 적어도 일억분의 일?”
최지은이 열변을 토했다.
“해외로 나갔다가 테러에 휘말리기도 하고 생명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는 게 보통이죠. 그런데 잘 나가던 주인공이 어느날 교통사고로 죽어서 작품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난리가 나겠죠.”
“이상하잖아요. 사실 주인공은 일반인들에게는 벌어질 일도 없는 확률의 사건을 몇 번이나 겪는 건데 그런부분은 개연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받아들이던 독자분들이 대한민국에서만 일년에 오천명씩 죽어나가는 교통사고 사망이 주인공에게 벌어지면 뜬금없다고 화를 내시죠. 확률적으로 따지면 후자가 더 말이 되는 거 아닌가요?”
확실히 확률로 따지면 그렇지.
“더 웃긴건 지금 회귀물 초반에 당연하다는 듯이 주인공이 교통사고로 죽어서 과거로 돌아오거든요. 똑같은 교통사고인데 어떤 시점에 벌어지느냐에 따라서 작품적 허용이 달라져요. 그런데 작가님은 이걸 인과의 측면으로 자꾸 설명하시는 거예요.”
인과가 아니다.
앞 뒤가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럼?
“이건 약속이에요.”
“약속······.”
“이 부분까지는 우리가 이해해 준다. 하지만 이 선을 넘으면 그건 너무 나가는 거다. 그걸 독자와 작가가 조율해나가는 거죠. 도입에서 짧게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그 이후로는 주인공의 행보와 보여지는 세계관으로 이 세계에서 어디까지가 허용되는지를 맞춰나가는 거죠.”
이해할 것 같았다.
같은 판타지라도 작가가 어느 부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개연성은 달라진다.
기본적 마법인 ‘힐’이라고 해도 어떤 작품에서는 단순 보조용 마법이 되는 반면, 어떤 작품에서는 잘라진 팔을 붙이고 떨어진 목을 붙이는 마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 것이 독자와 조율이 되지 않았을 때 문제가 벌어진다. 이전에 전능하게 설정되어 있는 ‘힐’을 보여주었다면 주인공의 팔이 떨어져나가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만약 그런 장면 없이 떨어진 팔을 마법으로 붙여버리면 실소가 나올 테니까.
“조율이라.”
“그 조율을 하는 방법의 문제예요. 사건과 대화로 이해시킬 것인가? 아니면 설명과 묘사로 이해시킬 것인가. 작가님은 그 부분은 설명과 묘사로 하는 편이죠. 하지만 최근의 트렌드는 사건과 대화에 그 설명을 녹여내야 해요. 게다가 작가님은 그 선을 잘 못잡아서 자꾸 설명하고 설명해서 독자들을 그 선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시잖아요.”
지성준은 암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설명충이라더니.
왜 그런 소리를 듣는지 알 것 같다.
“감각이 있는 분들은 그저 작품을 많이 읽는 것 만으로 이 선을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하시죠. 그래서 사건이 벌어져도 이전에 이미 벌어진 사건들의 연계만으로도 뜬금없다는 장면이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작가님은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하세요. 게다가 부족한데다 또 확신도 없어서 자꾸 본인의 글을 의심하는 거예요. 이 부분이 혹시 설정상 걸리지는 않을까? 그러면 앞에 좀 더 넣어야 하나? 그럼 이 사건을 추가해야 하는데? 그럼 이 사건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또 설명 되어야 하는데?”
“그만 맞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진짜 뭔 말인지 알겠다고요.”
지성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까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방법을 마련해야겠네요.”
최지은이 선언했다.
“일단 지문을 최대한 빼세요.”
“지문을요?”
“죽이되든 밥이되든 대사만으로 최대한 설명하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반드시 지문이 들어가야할 부분이다 싶은 곳이 아니면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지 마세요. 물론 이렇게 해도 작가님은 기본적으로 타 작가님들보다 설명이 더 들어가겠지만 일단 줄이기라도 해 보자고요.”
“해보겠습니다.”
최지은이 갑자기 쿡쿡 웃었다.
“왜 그러시죠?”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웃던 최지은이 힘겹게 말했다.
“신입사원 같아요.”
“예?”
“예스맨이라고 해야 할까? 뭐든 해보겠다고 하는 신입사원같아서 좀 재밌어서요. 이상하네요. 이런 분이 아니셨는데.”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건 그 쪽도 마찬가지지.
만난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웃는 얼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들의 관계가 그동안 그만큼이나 경색되어 있다는 뜻일까?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한 지성준이 괜히 말을 돌렸다.
“그런데 편집장님은?”
“부장님은 다른 작가님과 미팅이 있어서요.”
“미팅이라.”
“저희가 이번에 작가님처럼 같이 작품 만들고 있는 분들이 더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예. 들었었죠.”
“최대한 요일이 겹치지 않게 미팅을 잡고는 있는데, 사정이 있으신 분들이 계셔서 미팅일자를 조정하다보니 오늘처럼 동시에 두 분이 오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말인 즉슨.”
지성준이 과장되게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전 버림받은 거군요.”
“더 믿는거죠.”
“저를요?”
“아니요.”
최지은이 씨익 웃었다.
“저를요.”
“그거 굉장히 거북한 발언 같은데.”
“어머? 왜요? 저 엄청 신뢰받는 기획잔데.”
“그렇다고 해두죠.”
쓸데 없는 말을 나누면서 지성준은 밖으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작가라.
그러고 보면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가 몇은 더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신경을 쓰지 못한 게 아니라,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다.
그와 같은 처지의 작가라.
혼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못해서 출판사의 힘을 빌려서라도 지탱받아야 하는 작가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여기가 무슨 재활병원처럼 느껴진다.
글을 고치는 건지 작가를 고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뭔가를 고쳐나가는 과정이니까.
똑똑.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
최지은이 짧게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정일훈이 안으로 들어왔다.
“호랑이띠?”
“제 뒷담화를 하고 계셨군요. 이런.”
정일훈이 찰떡같이 말을 알아듣고는 너스레를 떤다.
“작가님. 옆 방에 다른 작가님 와 계시는데, 가서 인사라도 나누시겠습니까?”
“다른 작가님요?”
저리 말하는 걸로 보아서는 그보다 연배가 있거나 선배일 것이다.
“예. 어떠세요? 잠시 인사라도?”
흥미는 있다.
흥미야 있지만.
지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할게요.”
“예?”
“다음에 뵙죠. 다음에. 지금은 제가 다른 작가님 뵙고 인사하고 뭐 그럴 여유가 없어서요.”
“아······.”
지성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최지은을 향해 말했다.
“그럼 오늘 미팅은 끝난거죠?”
“예. 뭐.”
“그럼 가 보겠습니다. 설명을 최대한 줄인 대화체형식의 원고로 시놉당 스무페이지 정도라고 하셨죠.”
“그정도면 되요.”
지성준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앉아 있을 수 없었는지 최지은과 정일훈도 그의 뒤를 따른다.
“안 나오셔도 되요.”
“작가님 벌써 가시게요?”
“할 말 다 했는데 여기서 어물쩡대고 있어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거죠. 가서 일해야겠습니다.”
“일하러 가신다는데 잡을 수도 없고, 그래도 좀 더 계시다가 식사라도 같이 하시지 그러세요.”
“다음엔 그럴게요. 그럼.”
지성준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닫힌 문을 응시하던 둘은 누구랄 것도 없이 낮은 한숨을 쉬었다.
“뭔가 사람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정일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은 좋은 신호 같은데요.”
“의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오버워크만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정일훈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웃었다.
“그래도 작가가 의욕이 있어보이니 기분은 좋다.”
“원고 보면 안 좋으실텐데.”
최지은의 마지막 말이 정일훈의 기분을 울적하게 바꿔놓았다.
“나아지는 게 없어?”
“아뇨. 나아져요.”
“그럼 됐지.”
“쥐꼬리만큼요.”
“끙.”
정일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차피 하루이틀만에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잖아. 그 전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예. 그렇긴 한데요.”
한데요?
정일훈이 최지은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나올 말은 무엇일까?
“어쩌면 생각보다 빠를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어쩌면.”
최지은은 슬며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지금은 지난하지만 이 지난한 고행이 끝났을 때, 그들 앞에 놓여질 원고는 어쩌면······.
“기대되네요.”
“응?”
“아니에요.”
최지은이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 작가의말
그런 거 없다.
ps 후원 보내지 마세요 ㄷㄷㄷㄷㄷ
와 나 작연은 후원 안 되는 줄 알고 농담했는데 후원들어온 거 보고 깜짝 놀랐네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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