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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월 님의 서재입니다.

에픽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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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월
그림/삽화
작품등록일 :
2016.02.02 16:43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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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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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15

작성
16.03.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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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3. 저는 작가님을 믿습니다 .(1)

DUMMY

“하신데요?”

“오늘 전화 왔는데 하신다고 하네. 조금 있으면 도착하실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준비할게 뭐 있어야죠.”

정일훈은 혀를 끌끌 찼다.

대답이 영 깔끔하지 못하다. 불만스러움이 단단히 어려 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들다니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서 아까부터 자꾸 틱틱대냐고. 왜? 뭐가 문젠데?”

“아니요. 그런 거 없는데요.”

최지은은 억울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 동작도 뭔가 과장스럽다.

“담당 바꿔줘?”

최지은은 한숨을 푹 쉬고는 대답했다.

“솔직히 저는 편집장님이 왜 지성준 작가님한테 집착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지성준 작가가 왜?”

“전형적이잖아요. 스토리는 재미없고 소재는 뻔하고, 글 좀 잘 쓴다고 자기가 무슨 순문학 작가인 줄 아는 사람.”

“그래도 글 잘 쓴다는 건 인정하는 모양이지?”

최지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도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전혀요. 잘 쓴 글이란 목적에 어울리는 글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는 필력도 최악이잖아요.”

“그렇지.”

정일훈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꾸 신경 쓰시는 거예요. 냉정하게 말해서 이번에 영입한 작가들 중에서 제일 가능성 없는 사람 아니에요? 문체는 굳었고 자존심 세서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먹을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지.”

정일훈은 가볍게 웃었다.

지성준이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최지은이 하고 있는 말은 작가 지성준에 대한 매우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평가였다.

“이번 작품 읽어봤어?”

“그 인필트레이션인가 하는 글요? 애초에 제목부터 구려요. 그런 제목으로 연재할 배짱이 있다는 건 인정해주고 싶네요. 글은 뭐 말 할 것도 없어요. 길기만한 설정놀음에 쓸 데 없이 시니컬한 전개에 끝도 없이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정일훈은 열이 올라 혼자 주절대는 최지은이 흡족했다.

애정과 증오는 반대편에 있지만 한 편으로는 동일한 점이 있는 감정이다. 적어도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애정과 증오는 방향성을 함께한다.

남의 글을 보고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그 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말과 같다.

정말 글이 끔찍했다면 화를 내기보다는 포기해버리는 게 보통의 반응이니까.

그 모든 것을 짐작하면서도 정일훈은 넌지시 물었다.

“뭐 개인적으로 얽힌 일이라도 있어? 왜 이렇게 화를 내?”

“화 내는 거 아니에요. 다만 지금부터 그 작가님하고 글을 만들어야 할 걸 생각하니 답답해서 그렇죠. 편집장님은 진짜 그 작가님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정일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이 날뛰는 망아지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인필트레이션은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지?”

“당연히요.”

“그럼 그 작가 데뷔작은 읽어봤어?”

“아뇨. 안 찾아 봤는데요.”

“니가 기획 들어갈 작가 데뷔작도 안 찾아봤어?”

정일훈의 목소리가 커지자 최지은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작가가 거절했다지만 정일훈이 지성준 작가의 기획을 언급한 것은 그 이전이다. 당연히 찾아봤어야 했던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판이 엎어졌다는 말을 듣고 관심에서 지워버렸다.

“죄송합니다.”

“같이 글 만들어야 할 작가 작품도 안 읽어보는 주제에 뭐 잘났다고 그 작가가 이러니저러니 하고 있어? 옆에서 말하는 건 쉽지. 막상 너보고 글 쓰라고 하면 그만큼이나 쓸 수 있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정일훈이 정말 화가 났다 싶을 때는 어설프게 변명을 시도하지 않는 게 났다. 그리고 변명거리도 없었기에 최지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만 연발했다.

정일훈은 잠시 최지은을 노려보다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프로스트 나이츠라고 못 들어봤어?”

“예?”

“프로스트 나이츠(Frost Knights).”

“읽어 본 기억이 나는데요. 그게 왜요?”

“그거 지성준 데뷔작이야.”

“네? 진짜요? 편집장님?”

최지은은 깜짝 놀랐다. 프로스트 나이츠라면 그녀도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 작품이다. 명작이다 싶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볼 만 했다.

“아니. 그걸 쓰시던 사람이 지금은 왜.”

“더 재미가 없어졌냐고?”

“예.”

정일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발전했으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야. 작가가 발전했으니까.”

“발전했는데 왜 더 재미가 없어져요?”

정일훈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혀를 찼다. 최지은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처음 데뷔작을 쓸 데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손 가는 대로 쓰는 거지. 그런데 글 보는 눈이 늘고 글 쓰는 필력이 늘고 전개를 짜 맞추는 구성력이 늘다보니까 글의 허점이 보이는 거야. 그냥 써도 될 곳에서 개연성이 거슬리다보니 쓸데없는 사건과 설명이 추가되고 허술하고 가볍게 넘어가야 할 곳이 거슬리다보니까 점점 더 많은 게 붙게 되지.”

“글 보는 눈이 좋아지고 필력이 좋아지니 오히려 글이 재미없어 진다구요?”

“응. 이상하지?”

최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야. 의외로 글의 허점을 잘 보는 사람이 글을 쓰면 재미가 없는 경우가 허다해. 조금의 허술함도 못 넘기고 앞뒤를 완벽하게 맞춰서 글을 쓰다 보니 자꾸 군살이 붙고 전개가 느려지고 파격이 사라지거든.”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흠. 보자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래. 엄청난 신검이 있어서 그걸 통해 힘을 얻는다고 치자. 그럼 일반적인 작가들은 이 신검을 얻는 방법이 간단해. 절벽에서 떨어지면 검이 바위에 꼽혀 있거나 동굴 안에 있는 거지.”

“그렇죠.”

“그런데 지성준같은 작가는 그 신검이 주인공의 앞에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완벽하게 설정해야 하는 거야. 개연성이 완벽하게. 예를 들면 3대조 조상이 그 검을 준비하면서 주인공이 이 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주변 인들에게 각자 다른 미션을 남기고 그 미션이 하나하나 이루어져서 최종적으로 주인공이 자연스레 그 곳에 도달하게 된다? 뭐 이런 식으로?”

“복잡하네요.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

“없지. 전혀 없지. 그런데 글의 허점이 잘 보이게 되면 전개를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우연성’을 혐오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정작 대부분의 독자들은 신경을 전혀 안 쓰는데도 말이야. 그러다보면 글의 속도감이 떨어지게 되는 거야.”

“이해했어요.”

“절벽에 떨어져 검을 줍든 아니면 하늘에서 검이 떨어지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검이라는 힘을 얻고 나서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이는가.’거든. 보통의 작가들은 이걸 잘 이해 못해서 글이 들쑥날쑥 한 거고 어떤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이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 설정을 짜도 재밌는 작품이 나오지. 문제는 지성준 작가 같은 타입인데.”

정일훈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 작가는 감이라는 부분이 떨어져서 힘을 어떻게 얻든 뒷 전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 못해. 앞부분의 개연성이 완벽해야 뒷부분이 납득이 간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거든.”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네요.”

“그렇지. 굉장히 피곤한 작가지. 그런데 글에 힘이 있어. 감정묘사는 절묘한 수준이고 캐릭터도 개성 있지. 그런데 글에 사설이 너무 길고 쓸데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게 드러나지가 않아. 니가 할 일이 이거야. 이 작가 글에서 기름기를 쭉 빼서 다이어트 시켜봐.”

최지은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쉬우면 지금까지 다른 담당들이 왜 안했겠어요.”

최일환은 간단히 반격했다.

“그게 쉬우면 월급 받고 일하는 너한테 시키겠냐?”

“편집장님 진짜 밉다.”

“너한테 이쁨 받으면 난 끝난 거야.”

우우우웅.

책상위에 놓은 스마트폰이 진동하자 정일훈이 전화를 받았다.

“예. 작가님. 도착하셨나요? 어디세요? 예? 현관 앞이요? 아 작가님 잠시만요!”

정일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지성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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