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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추사번 님의 서재입니다.

금태양 남부 대공은 함락시킨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경추사번
그림/삽화
경추사번
작품등록일 :
2024.02.26 14:54
최근연재일 :
2024.03.17 23:56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815
추천수 :
43
글자수 :
72,296

작성
24.03.01 15:10
조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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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탕아의 귀환 (1)

DUMMY

7화. 탕아의 귀환 (1)



오테로스의 언덕으로부터 불어온 따스한 산들바람이 목제 창문을 넘어 금발의 꼬마 아이가 쪼그려 앉아 귀를 대고 엿듣고 있는, 자그맣게 벌어진 돌벽의 틈새 사이로 새어 들어간다.

그러나 안에 있는 인물들은 그 바람을 느낄 새도 없이 서로 말다툼이 한창이었다. 


“아무튼 전 페르난도 백작이 이교도와 사통하여 낳은 사생아를 모실 생각 없습니다!”


한 사내가 얄팍하게 생긴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커다란 탁자에 나란히 앉은 인물들에게 단호히 말했다.


“훌리오! 말이 심하오. 그건 그저 소문일 뿐이오.”


“하! 소문이라 쳐도 그 출신을 어찌 믿는단 말입니까? 에두아르도 주교님.”


“하지만 일찍이 백작께서 적자로 입적하여 장자로서의 정당한 상속권이 있지 않소?” 


며칠 전, 페르난도 백작은 봉신과 가신들에게 자신의 첫 번째 아들, 알폰소를 백작령의 후계자로 공표했다.

허나 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오테로스 백국이 자리한 칼리엔테 반도는 알레테오 교단의 루비오인과 탈림교의 아스와드인들이 서로의 진리와 믿음을 위시하여 죽고 죽이는 전란의 땅.


알폰소는 이웃 백국들과 탈림교 토후국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지원을 나간 당시에는 아직 후계자였던 페르난도 백작과 눈이 맞은 어느 한미한 기사 가문의 딸에게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페르난도 백작은 알폰소를 적법한 아들이자 장자로 받아들였다.

한데 최근 알폰소의 어머니가 사실 탈림교도라는 이상한 소문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드문드문 새치가 난 중년인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좌중을 바라보았다.


“다들 이교도 놈들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알지 않소이까?”

“수레바퀴보다 큰 사내들은 모두 죽이거나 눈이 뽑히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아버렸소.”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중년인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탁자를 ‘쾅’ 치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칼리엔테 성전기사단에 들어간 내 아들이···이십여년 전 놈들에게 처참히 당해 사지가 뜯겨 돌아왔소!”

“그 개새끼들을 평생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놈들의 더러운 핏줄을 어찌 내 위에 두고 발 뻗고 자겠소!”


이미 서로 간의 원한과 갈등은 깊을 대로 깊어진 상황.

오죽하면 루비오인 강경파들은 아예 혈통을 조사하여 탈림교의 아스와드인 조상이 나온다면 작위를 박탈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추세였다.


“어허! 기예르모 남작. 아무리 백작이 자리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은 자제해 주시오.”


리넨 천으로 짠 수수한 하얀 사제복과 망토를 입은 노인, 에두아르도 주교가 진중한 목소리로 기예르모 남작에게 자제해 달라는 손짓을 하였다.


“우라질! 들으라지요 뭐!”


“기예르모 남작!”


몇몇 사람들이 기예르모 남작의 편을 들며 말했다.


“애초에 그 사생아의 어미가 살아있었으면 이런 논쟁도 없었을 것 아니요?”


“게다가 정작 그 어미의 기사 가문은 오래전 멸문한 곳이고. 에잉~!”


알폰소의 혈통 문제로 한창 언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번엔 누군가 후계자 선정에 관한 또 다른 쟁점을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백작님의 둘째이자 기예르모 남작님의 외손자인 아우렐리오님이 더 후계자로서 어울리지 않소?


그러자 얼굴을 붉히고 열변을 토하던 기예르모 남작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맞소! 총명한 우리 외손자가 그 사생아 따위보다 더 훌륭한데 말이오.”


“레글라(루비오인의 관습법)에 따르면 모든 자식이 상속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데 어째서 백작님은···.”


“다 백작님의 뜻이 있으시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봉신과 가신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의견으로 나뉘어 회의장의 분위기가 격화되어 가는 가운데.

구석진 복도의 벽 틈새로 엿듣고 있던 금발 꼬마 아이의 등 뒤에 누군가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루멘, 여기서 뭐 하니?”


“으앗!”


 이제 갓 10살이 된 조그만 체구의 아이, 루멘은 화들짝 놀라 앞으로 자빠졌다.


“아야야···.”


“하하하!”


루멘은 손으로 무릎을 쓰다듬다 고개를 들어 누가 자신을 놀라게 했는지 올려다보았다.

짧게 자른 검푸른 머리와 매끈한 구릿빛 살결.

아버지 페르난도를 닮아 준수한 외모와 햇살과도 같은 주홍색 눈동자를 지닌 그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알폰소 형···.”


“곧 검술 훈련 시간인데 코빼기도 안 보여서 찾아다녔더니만, 여기 있었구나. 하하!”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루멘이 고개 높여 올려다봐야 할 만큼 커다란 체구와 탄탄하게 잡힌 근육이 돋보이는 청년, 알폰소.

올해로 16살이 된 그는 이미 백작령의 기사들과 겨뤄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하여 작년부터 진검을 들고 가문의 검술을 수련하기 시작한 루멘을 종종 손수 지도해주었다.


“아하하···그게 형···.”


그의 눈길을 피하며 멋쩍게 웃는 루멘을 보자 알폰소는 나지막이 짓궂은 웃음과 함께 소매를 걷었다.


“흐흐흐.”


그리고 굳은살이 박여있는 양손을 한번 쫙 펼쳐 보이고는.


“아하하하하! 아하핫! 형! 잘못했어! 이히히힛!”


방심한 루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감히 형을 걱정하게 만들다니 루멘!”


“아하하핫! 미안해! 미안! 아핫! 항복! 항복!”


꺄르르 웃다 튜닉 사이로 드러난 루멘의 뽀얀 옆구리를 한 번 더 집요하게 간지럽히던 알폰소는 그의 항복 선언에 그제야 멈추었다.


“앞으로 어디 갈 때 미리 말이라도 하고 가라고, 인석아!”


“알았어. 미안해, 형···히힛!”


아직 여운이 남았는지 웃으며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훔치던 루멘을 알폰소가 번쩍 안아 들었다.


“아 형! 나 이제 다 컸대도!”


“다 크긴 무슨. 읏쌰~!”


아주 어릴 적부터 그의 형, 알폰소는 줄곧 이런 식으로 장난치며 자주 목말을 태웠다.

알폰소의 커다란 어깨에 올라탄 루멘은 잠깐 투정을 부렸지만, 딱히 싫진 않은지 이내 얌전해졌다.


‘응?’


한데 얌전해도 너무 얌전해졌다.


“루멘, 오늘은 그거 안 하는 거냐?”


루멘은 꼭 목말을 타면 으레 제 형을 군마 삼아 말을 타는 기사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럴 때면 알폰소도 투레질 소리를 내며 맞장구쳐주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조용했다.


“어? 아···아냐. 형 그리고 이제 그런 거 할 나이는 지났다니까~.”


“어쭈~. 요즘 수사님이랑 책 좀 읽는다고 벌써 다 컸다는 거야?”


루멘은 10살의 나이에 이미 여러 학술서를 읽을 정도로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오테로스의 수사들과 주교에게서 칭찬이 자자했다.

알폰소가 타고난 무예와 검술의 기재라면 루멘은 뛰어난 기억력과 총명함을 타고난 것이다.


알폰소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대충 몇 번 고개를 끄덕이거나 알았다는 시늉을 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루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의 기분이 영 좋아 보이지 않자, 알폰소는 까슬까슬한 턱을 매만지며 궁리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루멘에게 말했다.


“그래···네가 스스로 컸다고 했으니···.”

“오늘은 기마 자세 20번씩 10회다!”


“으에엑?! 20번씩?!?”


“흐흐흐···오테로스의 기사들은 거기에 무거운 갑옷까지 입고서 한다고?”

“뭐~ 아직 코흘리개라는 걸 인정하면 평소처럼 10번씩 5회로 줄여줄 수 있다만~?”


“으윽···.”

“하···할 수 있어!”


“흐흐, 그래! 이제 남자다 이거지?”


“우으···근데 형은 왜 그렇게 기마 자세를 좋아하는 거야?”


불평하며 생각 없이 던진 루멘의 질문에 천천히 훈련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알폰소의 눈빛이 빛났다.


‘앗···이런···.’


그의 형은 백작령 내에서도 유명한 수련광.

언제나 장난기 많은 그의 형이었지만, 검술이나 체력단련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이 돌변한다.

루멘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순 없었다.


“호오~. 좋은 질문이야. 루멘.”

“자고로 검술은 말이지, 하체를 먼저 단련해야···.”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알폰소의 장광설.

하지만 루멘은 다행이라 여겼다.

훈련장으로 가는 동안 그가 몰래 복도에서 뭘 엿듣고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됐으니.


“그리고 피데오스를 자주 먹으면 체질이란게 바뀌거든. 예를 들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있는데···.”


어쩌다 하체에서 피데오스로 간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알폰소의 훈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루멘은 다시금 회의장에서 있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봉신과 가신들 사이에서 오간 그의 형, 알폰소의 출신을 둘러싼 여러 소문.

그리고 루멘, 자신을 언급하면서 오테로스에는 파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파벌···.’


루멘은 그의 가정교사, 앙헬리오 수사가 가르친 제국의 역사를 떠올렸다.


관습법에 의해 균등히 나눠진 땅을 두고 상속자 간에 벌어지는 골육상쟁.

그 아래에 속한 봉신과 가신들의 피 튀기는 전쟁.

그렇게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노린 도적 떼와 야만인들의 침략과 약탈.

무릇 한 나라와 영지의 몰락은 분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냐아냐. 거기까지 가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상이 지나친 것 같다···.’

‘괜한 우려겠지?’


그러다 열변을 토해내던 알폰소가 갑자기 말을 멈추곤 루멘에게 말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아버지와 형이 알아서 할 거다.”


“그걸 어떻게···?”


“그리고 마음이 심란할때는 뭐다? 기마 자세 20번씩 10회다~.”


“아, 알폰소 형! 제발!”


“으하하하!”


루멘은 호탕하게 웃는 그의 형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형은 어찌 보면 단순할지 모르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지만, 그의 형에게 혹여 심려를 끼칠까 걱정한 루멘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생각지 않고 알폰소와 따라 웃기로 하였다.


“하하하!”


형제의 웃음을 머금은 바람은 성내의 복도를 타고 따뜻한 언덕을 넘어, 눈부신 오테로스의 태양으로 높이 올라갔다.


그 바람은 10년 만에 다시 예전의 기억처럼 부드럽게 루멘의 얼굴을 스쳤다. 


긴 여정 동안 어느새 초여름을 맞이한 이곳은 쨍쨍한 햇살에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는 오히려 이 따스함이 그리웠다.


“케케케···. 결국 다시 와버렸군···.”


언덕을 뒤덮은 누런 풀과 낮은 관목들 위로 듬성듬성 커다란 바위들이 제 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칼리엔테 반도 중부의 세카야 고원.

그 고원에서 프리오 산맥부터 흐른 유일한 강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홀로 우뚝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

차가운 제국의 여느 성들과는 달리 고원처럼 따뜻하고 밝은 노란빛의 성벽.


“여명빛 성···.”


여명빛 성이란 별명을 가진 솔레스 성은 오테로스 백국의 백작이 기거하는 곳이자 루멘이 나고 자란 곳.

프리덴지츠에서 떠난 지 스무날하고도 이틀.

마침내 루멘과 일행은 오테로스 백국의 경계에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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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검은 코트의 조련사 24.03.17 12 1 10쪽
12 황금 태양 24.03.16 15 1 12쪽
11 탕아의 귀환 (5) 24.03.07 26 1 13쪽
10 탕아의 귀환 (4) 24.03.06 29 1 11쪽
9 탕아의 귀환 (3) 24.03.05 27 2 14쪽
8 탕아의 귀환 (2) 24.03.04 42 2 12쪽
» 탕아의 귀환 (1) 24.03.01 53 3 11쪽
6 길 위에서 +1 24.02.29 69 3 13쪽
5 돌아갈 준비 (2) +2 24.02.28 71 4 11쪽
4 돌아갈 준비 (1) +2 24.02.27 88 6 11쪽
3 술꾼의 노래 +2 24.02.27 97 6 10쪽
2 프리덴지츠의 썩은 정어리 가 +2 24.02.26 113 6 15쪽
1 금발의 양아치 +3 24.02.26 174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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