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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스마
작품등록일 :
2023.05.12 00:35
최근연재일 :
2023.06.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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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3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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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DUMMY

두 갱단의 두목들을 암매장하고 무웅은 새벽 해가 어슴프레 떠오를 즘에 숙소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눈을 감자 다시 자신이 떠나온 미래가 나타났다. 일 년이 지났지만 악몽같았던 그 때의 상황을 머리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데, 머리는 아직 미래에 두고 온 것같은 느낌도 받았다.



무웅 대위는 사실 백 살을 채운 노병이었다. 이미 퇴역할 시기가 지났지만 반군이 승낙하지 않았다. 무웅 대위의 몸은 다 망가진 상태였다. 약물을 동원한 신체 강화와 인조 장기 교체 등 여러 수를 써 가며 버텨왔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고장난 기계인간처럼 되어서, 전투는 커녕 걷기조차 힘들 정도가 됐고 결국 사령부도 그를 전장에 다시 내보낼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패색이 짙어진 반군 사령부는 자원의 부족으로 부상병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했다. 절반의 기계인간인 무웅 대위의 몸 구석구석은 염증과 녹슬은 부품으로 부풀어 올랐고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은퇴는 차라리 사치라고 할 수 있다.


무웅은 퇴역은커녕 이제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안락사를 요청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죽는 것이 가장 편하리라 생각해왔다. 먼저 죽는 전우와 부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갈수록 폐허가 돼가는 숙소 바닥에서 자신의 신음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


“이기적이라니까.”


라파엘 장군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무웅이 그 말을 무시하고 “제 몸을 실험용으로 사용해도 좋습니···.”까지 말하자 장군은 말을 잘랐다.


“지금 죽는게 물론 편하긴 하겠지만 지난 50년 동안 전사로 보낸 세월이 아깝지 않은가?”


“...”


“사실 전세를 바꿀만한 극비 작전이 준비 중인데 자네를 적임자로 추천할 생각이야.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해 주게.”


...


반군 사령부가 준비 중인 작전은 놀라운 것이었다.


무웅이 충격 속에 마음을 바꾸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웅은 이기적인 죽음 대신 전우와 후세를 위해 한 번 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맡기로 했다.


...


무웅은 다시 30세가 됐다. 70년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환생인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가능할 줄 몰랐다. 목숨을 건 동지들이 연방 세력의 기지에서 핵심적인 신기술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사실 연방군이 그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어렴풋이 듣고 있었다. 반군이 연전연패 하는 이유가 어쩌면 그 것때문이라는 말이 장교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


공부를 깊게 해 본 적 없는 무웅은 도무지 원리를 이해할 수도, 과거로 회귀 후 벌어질 일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명령만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두운 회색 눈빛을 가진 라파엘 장군은 무웅과 마지막 대면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 양반이 이렇게 부드럽게 말할 줄도 아는군.’


무웅은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라파엘 장군은 저항군에서 가장 강한 사령관이었다. 수십 년 동안 무수하게 많은 상관과 부하들을 잃으면서 그는 강철같은 사나이로 단련됐다.


실제 나이가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다. ‘나보다 30살은 더 먹지 않았을까···.’


“완전한 기술도 아닌 것 같고, 우리가 그걸 100% 활용할 줄도 모른다. 잘못되면 자네는 그냥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어.”


“상관없습니다. 안락사 한 셈 치겠습니다.”


“자네가 세상을 바꾸게 된다면 나는 그 세계에는 없을지 모르지. 하여간 내게도 부디 편안한 안식을 가져다주게나.”


무웅은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장군을 바라보았다.

···


무웅이 남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국경지대의 깊은 산 속에 떨어졌을 때, 그는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너무 좋았다.


눈도 좋아진건지, 공기가 좋은건지 세상도 아주 깨끗이 보였다. 몸도 매우 가벼워졌다. 

‘당연하지. 짐들을 벗었으니...’


수십년 동안 몸에 달고 다닌 각종 신체 강화 장비와 무기들을 벗어버린 맨 몸은 너무 가볍고 상쾌했다. 무웅은 주름도 상처도 없는 매끈한 자신의 몸을 보고 감격해서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은밀히 마을로 잠입해 빈 농가에 도착한 무웅은 비로소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30대 남자의 깔끔한 얼굴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린, 젊은 시절의 추억이 일부 되살아났다.


‘내가 30세에 뭘 하고 있었더라?’


무웅은 70년 전쯤 자신이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707 특임대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 파견됐었다는 사실을 흐릿하게 기억해 냈다. 모두 평화 유지 임무에 따른 것으로 당시만 해도 특별한 전투 경험은 갖지 못했었다.


반군 기술자로부터 시간여행에 대해 브리핑을 받을 때 무웅은 남미로 보내질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지구 자기장과 상관이 있다는 식으로 기술자는 말했다.


“지구에서 자기장이 가장 강한 지역 중에 하나가 그 곳이네”라고 어두운 얼굴의 기술자는 지도를 가리켰다.


자기장이라는 기술적 문제 외에도 라파엘 장군은 전략적인 관점에서 반군의 새로운 기지는 남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미래의 전쟁은 북반구에서 시작되는데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은 남미 산간지역에 반격의 기지를 만든다는 구상인 듯 했다.


···


“자네를 쭉 지켜보고 있었어.”


모처럼 조용해진 산속 은신처에서 무웅과 마주 앉은 실바는 볶은 커피콩을 한 줌 입에 털어 넣고 씹다 뱉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제 자네 정체를 알 것 같아.”


“?···”


“너는 돈 때문에 여기 있는 게 아니야. 여자도 안 찾고 술도, 연기(마리화나)도 안 좋아하고 시간만 나면 눈감고 멍청히 앉아 있지.”


‘그건 명상이라고 해. 그리고 너도 100년쯤 살아봐. 돌부처가 될 수밖에 없지’라고 말을 해 줄까, 무웅은 잠시 고민했다.


“치노! 너 그놈들과 한 편이지?”


‘?’


무웅은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다음 말을 재촉하는 표정으로 실바를 쳐다보았다.


“FARC에서 보냈나?”


FARC은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산 게릴라 조직으로 무웅이 자리 잡은 국경지대 소도시에는 아직 큰 영향력이 미치지는 않고 있었다.


“아니지. 너는 동양인이니까 혹시 센데로 루미노소?”


[센데로 루미노소]는 페루의 농민 좌익 게릴라로 중국의 마오쩌둥 사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중국인 일부가 가담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세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웅은 잠시 생각하다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참에 실바에게 할 말을 좀 해야 했다.


하룻밤에 갈레노와 라울이라는 두 갱단 거물이 사라지자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국경 산악 지대에 자리 잡은 [라 빠스 데 디오스(신의 평화)] 시는 크게 술렁거렸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오랫동안 평화라고는 볼 수 없던 이곳에 처음 보는 동양인이 나타나고, 전쟁이 격화됐으며, 두 거물이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무웅은 실바를 전면에 내세워 마을을 안정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갈레노에게 조직원을 공급하던 마을에 전령과 식량을 보내고 전쟁은 끝났다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무웅은 실바를 새로운 두목으로 추대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에게 숨겨둔 현금과 식량을 풀자고 제안했다.


“전부 다 풀자고?”


“음. 빨리 민심을 잡아야 하니까.”


그러니 실바가 무웅을 공산당원으로 의심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 마을에서 수년 동안 사람이 매일 죽어가는 전쟁이 벌어져도 군부나 중앙 정부, 심지어 좌익 게릴라조차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이 마을의 전략적 중요성이 낮은 데다 경제적 가치도 별 볼일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산당이 출현해 마을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돌면 군부와 게릴라의 전선이 마을까지 도달할 수 있다.


중앙 정부도 무시하지 않을게 당연했다.


무웅은 심각한 표정으로 “실바, 나는 나 자신만 믿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중미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고 깨달은 게 많아.”


말을 잠시 멈추고 실바의 표정을 살피며 침을 삼켰다.


“난 아무 소속도 아니네. 자유롭게 살고 싶어. 비록 무기를 팔아먹고 살아왔지만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건 더 이상 보기 힘드네.”


“공산주의니 뭐니 그런 건 상관없고 그렇게 보든 말든 중요하지도 않아. 자네가 이 마을을 지키는 걸 돕고 싶네. 물론 언젠간 떠날 날이 오겠지.”


“...흠, 자네는 이상주의자였단 말인가.”


실바는 약간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말꼬리를 흐리며 말했다. 좀처럼 믿기 어렵다는 뜻이리라.


...


이 때쯤 사령부에서 지령이 와야 했다. 그러나 바위산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사령부와 쌍방향 통신이 안되고 일방적인 지령만 받을 수 있어서 매우 답답했는데, 그나마 갈수록 지령이 도착하는 텀이 길어지고 있었다.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무웅은 스스로 다음 단계 작전을 구상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갱단 전쟁으로 수십 명의 조직원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에서 운동 신경 좋은 청년들을 모아 준군사훈련을 해야 했다. 무장할 무기도 더 구해야 한다.


지역을 무웅과 실바가 장악했다는 소식은 어쨌든 정부와 게릴라 모두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들은 정세를 살피러 스파이를 보낼 것이 틀림없었다.


북부에 있는 강력한 마약 조직 [까바따]도 조심해야 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벌어진 전쟁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살아남은 조직을 뒤에서 치려고 할 수 있어서 무웅이 경계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주의를 크게 끌지 않으면서 조용히 세력을 강화해야 한다. 사령부에서 어떤 지령이 갑자기 내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다 해야 하니 초조해지는구만.’


무웅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보좌하다 전장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전우들을 생각했다.


좋은 뜻으로 뭉쳤지만 대부분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참모가 필요해.’


무웅은 문득 자신을 거쳐 간 부하 중에 남미에서 거주하던 이들을 떠 올렸다.


‘당연히 지금 여기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고 아마 20대쯤이겠지.’


무웅의 기억이 맞다면 앞으로 20년 후쯤 만나게 된다.


‘지금 그들을 만나는 게 미래에 영향을 미칠까?’


무웅은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갱단 전쟁의 결과도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원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갈레노가 아직 살아서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을까’

‘내가 등장하고 갱단 두목이 모두 죽은 것이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닐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비 효과로 미래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르륵 눈이 감길 무렵, 갑자기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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