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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매니저가 천재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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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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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5,432

작성
24.09.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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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8화 복 덩어리라고?

DUMMY

-넌 너무 오버 해.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적당히 해. 적당히.

-존재감이 과하잖아?

-너무 딥하다고! 적당히 해 적당히!


대학로 지하 극장에 처음으로 섰던 무대에서 선배에게 들었던 말은 그랬다.


하나의 작품.

하나의 배역.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말했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자 보자 하니 안되겠다.


강정호 지하 극장의 건물주이자 단장인 강정호가 나섰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매일 술이나 쳐 먹을 줄 알면서 네놈들이 하는 건 연기가 아니다. 저기 신재균이 빼고 모두 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배역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이 몰입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쌓아온 커리어를 두고 사람들은 말했다.


[주말 안방 극장의 제왕 ‘신재균’ 신작 발표!]


[드라마계의 거장 민은숙 작가가 직접 뽑은 실력파 배우 ‘신재균’]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전천후 연기 천재의 등장]


진짜가 나타났다고.


팬들의 사랑을, 자신을 알아봐 준 은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뵙는 거라 여겼다.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작품을 시작한 뒤로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은 없다.


오직 작품.

오직 연기.


누군가의 생을 연기하며 보여주는게 즐거웠던 초심은 사라지고 흥행에 대한 압박감이 숨통을 조였다.

그렇게 조금씩 숨이 막혀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 숨통이 트이는 중이다.


김성연.


‘아니. 정유하.’


소년과 남자 사이의 어딘가의 시절을 보내는 남자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심장이 박동하고 혈류량이 증가한다. 기분 좋은 고조감이 전신을 고양한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즐거움이 피어 난다. 도파민이 생성된다.


정유하의 연기는 그랬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밀려온다.


지금껏 이런 연기를 마주했던 경험은 손에 꼽았다. 한 평생 연기에 헌신한 대선배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떻게 사람이 한순간에 바뀔 수 있지?


단지 무대 위로 올라오는 그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몰입을 끝냈다.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방심할 수 없다. 신재균은 극의 핵심인 주연. 한 명의 연기자로 촬영을 즐기기에 앞서 작품의 흥행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유하의 연기는 결코 놓쳐서는 안됐다. 레코딩된 연기는 편집을 거쳐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야 한다.


그 동안 연기는 해본 적 없다고?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잡아먹힐 생각은 없다.


‘나는 주연이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조연에게 연기로 잡아 먹히기엔 그의 경험과 내공은 얕지 않았으며 자존심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우러진다.

극 중 김철수와 김성연이 되어서.


점점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고요한 침묵이 내려 앉은 성곽 위.

긴 밤이 짧게 느껴질 만큼 촬영은 막힘 없이 이어졌다.


테이크 그리고 오케이.


컷이라는 말 한번 없이 촬영은 신속하게 전개된다. 이건 촬영을 하는게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


손지석과 도연수는 눈을 마주했다.


“손 선배. 지금부터 다음 씬부터는 저희도 나가야 하는데. 나 조금 떨리네?”

“·········.”


도연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두 사람의 연기는 과연 그랬다. 악의 없는 미친 연기력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저기서 살아남아야 한단 말이지?


물론 손지석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역시 잔뜩 긴장한 채였으니까.


.


나익현은 미동조차 없이 프리뷰 모니터를 바라 보았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춘 베테랑 카메라 감독의 뷰는 나익현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두 배우 사이에 기 싸움이 있었다더니 기우였습니다.”

“기 싸움? 그런 일이 있었어? 어쩐지 분위기가 썰렁하더라니. 뭐 잘 됐어. 덕분에 죽자 살자 연기하잖아. 마음에 쏙 들게 말이야. 자네도 그렇지 않나? 편집할 맛 좀 나겠는데.”

“예.”


나익현은 흘흘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거 내가 있을 필요가 있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유명한에게 슬쩍 물음을 던져 본다. 손 안에 요상한 쇳덩이를 들었다 놨다하던 유명한은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거 사람이. 예의 상이라도 필요하다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괜히 입을 삐죽거리지만 딱히 부정하기엔 뭐했다. 개별적인 오더도 없이 원하는 그림을 뚝딱 뽑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정유하와 신재균 저 두 사람의 몰입이 극한에 달한 상황이다. 괜히 몇 마디 말을 건네다 몰입이 깨지는 건 원하지도 않았다.

하여 나익현이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오케이! 다음 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끼 스텝들이 어미새를 따라하듯 다음 씬이라는 말을 크게 외친다. 현장이 어수선해진 사이. 두 남자는 각자의 감정을 컨트롤 한다.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감은 채 심상을 정리한다.


“아. 재밌어. 진짜 재밌어.”


밤이 무르익어 갔지만 현장의 열기는 사그라 들 줄 몰랐다.

진작에 촬영이 끝난 손지석과 도연수는 팔짱을 낀 채 현장을 떠날 줄 모른다. 편한 장소가 아니면 글이 안 나온다던 민은숙은 아예 책상 하나를 차지한 채 미친 사람처럼 키보드 자판을 두들긴다.


‘이게 다...’


정유하가 합류한 시점부터였다.

나익현의 어깨가 들썩였다.


.


끄응!


정유하는 앓는 소리를 냈다.


무슨 촬영이 저녁 나절부터 해 뜰 때까지만 잡혀 있다. 극 중 김성연은 결코 낮에 움직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만은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첫 만남에서 당당하게 연기를 리드하겠다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김성연 그 자체인 정유하의 연기 앞에서 신재균의 연기는 김성연으로 마주했던 김철수가 분명했다.


과연 주연다운 모습이었달까.


거기에 손지석과 도연수의 연기는 또 어땠는가.


드라마의 특성 상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라이트한 콩트를 맛깔나게 펼치는 두 사람은 과연 주연과 명품 조연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여기에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스텝과 적시 적소에 개입하는 나익현 감독, 유명한 피디가 더해지니 괜히 민은숙 사단의 위명이 새삼스럽게 대단해 보였다.


밤샘 촬영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얻은게 많다.


머리 속 스위치를 자유자재로 온오프할 수 있게 됐다.

놀라운 점은 이 스위치가 한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트리거’가 발동했던 역할들의 스위치가 각각 존재했다. 이걸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당시 배역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미 아주 오래전 개봉한 작품들이 많은 까닭에 장기자랑 정도에 써먹을 수 있겠다만은 나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조금의 앎도 귀중한 법이었으니까.


지금까지의 정보를 추려보자면 스위치가 생기는 트리거는 밝혀진 바로는 영상 매체, 사람, 대본 정도가 됐다.


한 작품에 한 배역만 존재하진 않았지만 여성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결론을 내렸다.


배우의 입장에서 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정체 불명의 능력을 알아가기 위해선 결국 머리 속 스위치를 딸깍 거리게 만드는 트리거를 찾아야 한다.


영상 매체로 얻은 스위치는 이미 방영이 된 작품인 관계로 출연 기회가 없다.

사람의 경우엔 이게 어떻게 트리거로 연결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은 대본이라는 소리인데.


“팀장님한테 대본 좀 구해달라고 해야겠네.”


초호화 조건으로 계약을 마치며 2년 간의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마땅히 차기 작품 활동에 지원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서울 충무로의 어느 골목.

오래된 노포 식당.


슬레이트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선 나익현은 금새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 두 병을 까? 이 주정뱅이 노인네야 그러다 단명한다.”

“내비둬라. 마이 웨이 걸어 간지 60년 차다. 네가 내 마누라도 아닌데 참견 하지 말고 갈 길 가라. 나는 내 갈 길 갈테니까.”

“그러고 싶은데 자네가 길치잖아. 이 친구야.”

“그렇긴 하지.”


세월이 가득한 누런 벽지부터 새까만 바닥과 연식이 느껴지는 동그란 의자가 가득하다. 동년배들이 가득한 식당은 닷지 형태다. 연배가 비슷한 사장은 철판 위 부속 고기를 굽다 말고 소주 잔과 수저를 내민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자카야에 푹 빠져 있다더라고.”

“다 늙어 묫자리 알아보는 노인내가 젊은 이들 가는 곳은 뭣하러 알아보나?”

“트랜드 아니냐, 트랜드. 은퇴하기 전에 퇴물 소리 들을 생각 없다.”


쪼르륵.

적당히 익은 부속 고기들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앞에 놓이고 술잔을 채운다.


“오정석이 입원했다면서.”

“말도 마라.”

“조졌구만.”

“그럴 일 없다.”


단번에 잔을 들이킨 두 노인은 말 없이 고기 한 점을 씹는다.


“민은숙이가 콕 짚은게 오정석이 아냐?”

“맞지.”

“그럼 망했지. 민은숙이 마음에 드는 놈이 그 놈 밖에 없었다는 소리잖아. 기사들 봤나? 난리도 아니다. 하여간 들쥐 떼들이 따로 없다.”

“영화 한다는 놈이 드라마 판에 뭔 관심이 그렇게 많아?”

“천하의 나익현이 고배를 마신다는데 오죽할까.”


다시 술잔을 채우고 잔을 부딪힌다.


“크으! 그러는 너는 어떠냐? 곧 촬영 한다면서 통 소식이 없는 것 보니 남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옘병. 맘에 드는 놈이 없다. 다들 시원찮아.”


나익현과 나란히 앉은 노인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집 불타는 줄 모르고 강 건너 불 구경 중이셨구만.”

“이렇게 아둔하니 영화밥만 평생 먹었지.”

“내가 현장밥 먹는 이유랑 똑같구만.”


두 노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


“내가 괜찮은 놈 하나 추천해줄까?”

“아서라. 연기자는 필요 없다.”

“세상이 어느 시대인데 배우니 연기자니 구별하냐. 급해 보여 선심 썼더니만. 됐다.”


나익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와 연기자.

미묘한 어감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연기하는 사람 보고 연기한다고 대수라고. 아직 술 남았잖아. 마저 먹고 가게.”


나익현이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자 술잔을 채우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선심 쓰듯 하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피식 웃음을 흘린 나익현이 말을 이었다.


“내 현장 살려낸 복 덩어리 있어.”

“복 덩어리라고?”


노인의 눈에 흥미가 어렸다. 나익현 이 깐깐한 노인내의 마음을 휘어 잡은 놈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연기 아주 기똥차게 하는 놈 있다.”

“노망이라도 들렸어? 내가 조연 구하는 건 알고 있지? 드라마 판 얼굴 다 팔린 조연 들이 미려고 그러는 거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 하는 놈이 무슨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다고. 쯔쯧. 관심 있으면 현장 한번 들려. 아이고. 이틀 밤을 샜더니 삭신이 쑤신다.”


충무로의 거장 마지막 잔을 비워낸 나익현이 미련없이 자리를 떴다. 그 빈자리를 지켜보던 노인은 문득 떠올렸다.


‘오정석이 하차했다. 하지만 촬영은 예정대로 진행 됐고.’


‘오정석의 배역에 스페어로 투입된 배우가 있다.’


그리고 나익현은 말했다.


‘내 현장 살려낸 복 덩어리가 있다고.’


몇 개의 단서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니 그림이 제법 괜찮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하지만 연기력만큼은 베테랑 감독을 흡족케 할 정도.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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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012화 내가 그거 한번 해보려고 해 NEW 12시간 전 103 2 14쪽
11 011화 그래서 저 친구야? 24.09.18 146 3 12쪽
10 010화 그 때부터인 것 같다 24.09.17 160 4 11쪽
9 009화 거절하겠습니다 24.09.16 168 4 13쪽
» 008화 복 덩어리라고? 24.09.15 174 3 12쪽
7 007화 시작하시죠 24.09.14 178 5 12쪽
6 006화 물론 24.09.13 191 3 12쪽
5 005화 연기 했어요 24.09.12 213 3 14쪽
4 004화 해보겠습니다 +2 24.09.11 238 4 14쪽
3 003화 그 연기 뭐야? +1 24.09.10 271 7 14쪽
2 002화 아무리 봐도 배우신데? +1 24.09.09 284 6 14쪽
1 001화 덧칠 +1 24.09.09 310 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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