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런치 님의 서재입니다.

신입 매니저가 천재배우였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런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9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2,439
추천수 :
51
글자수 :
65,432

작성
24.09.16 12:20
조회
168
추천
4
글자
13쪽

009화 거절하겠습니다

DUMMY

성도 엔터테인먼트 매니지 3팀 소회의실.

문이 열리고 종이 박스를 안아든 정광수가 들어온다.


“후우!”

“?”


둔중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올라온 종이 박스 안에는 흰 종이들이 가득했다. 땀을 닦아낸 정광수가 진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어제 말했던 대본들이야. 가볍게 어떤 느낌인지만 살펴봐.”

“이렇게 빨리 준비해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나 감독님 현장에서 쪽 대본으로 그런 연기를 펼치는 놈한테 연기 소홀해질까 봐 걱정하는 것도 기우 같고 그냥 느낌이나 보라고 가져왔다. 흐흐.”


양과 늑대의 시간 촬영이 한달 반은 남은 시점이다. 보름 정도는 소요될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일 처리가 빠르다.


“안 그래도 바쁘실텐데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게 다 매니저들 업무고 계약 내용인데. 자 아무튼 위쪽은 드라마고 아래 쪽은 영화 대본이야.”


족히 수십 개는 될 것 같은 분량의 대본들이 정유하 앞에 놓였다. 영화, 드라마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아, 그리고 계좌 확인했어?”

“계좌요?”


정유하는 무심결에 폰을 들었다.

은행으로부터 온 알람이 있었다.


‘헙!’


어쩐지 오늘은 촬영이 없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출근하라더니 이유가 있었다. 정유하는 간신히 헛숨을 삼켰다. 성도 엔터로부터 출연료가 입금 됐다.


‘0이 몇 개야?’


내적 비명이 터져 나오는 걸 억지로 밀어 넣는다. 돈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격언을 떠올린다.


“흠. 입금 됐네요.”

“어이고. 우리 정 배우 액수가 상당할텐데 놀라지도 않네?”


무척 놀랐습니다만.


“연기 좀 하는 배우 중에 작품 끝나지도 않았는데 설레발 치는 배우가 어딨습니까. 제가 볼 땐 정유하는 그럴 사람 아닙니다.”


뭐라 해명을 하기도 전.

손지석이 소회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런 사람 맞는데요.


“하긴. 입사하면서 급여도 안 물어보는 사람은 또 처음이긴 했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지석이 너도 돈보단 작품만 따지잖아.”

“배우라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겁니다. 팀장님.”


맞장구 치던 정광수가 별안간 손뼉을 쳤다.


“아 뭔지 알겠다. 이거 성공 공식이잖아. 돈은 쫓는게 아니라 쫓아오게 만든다 뭐 그런 거.”


정광수는 감탄사 토하며 정유하를 향해 엄지를 치켜 세운다.

그 뒤로 레이아웃 되어 비추는 손지석은.


끄덕!


짧고 간결하게 신뢰 가득한 고갯짓을 보여준다.


아닌데.


그런거 아닌데.


기쁨의 탭댄스라도 추고 싶던 마음이 짜게 식는다. 정유하는 들썩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다들 바쁘실텐데 저는 그럼 대본이나 보겠습니다.”


이거 제대로 눈에 들어 오려나 모르겠다.

물론 대본을 찾아보는 목적은 트리거를 찾기 위함이다.

배우로서의 성공보다는 아무에게도 말 못할 비밀의 근원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를 떠나 배우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이상 커리어에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정광수가 구해준 대본들은 모조리 읽으며 감을 잡아볼 생각이다.


“어. 그래. 오늘은 크게 일정도 없고 차질만 안 생기면 편하게 행동하시고. 대신. 지금 잠깐만 시간 내자.”

“네?”

“뵐 분이 있거든.”


.


성도 엔터테인먼트.

별을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설립한 작은 매니지먼트가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진출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여년.


한국을 삼분하던 기존 대형 기획사들을 제치고 아이돌부터 배우까지 모두 섭렵하는 거대 공룡이 되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학재 대표다.


“정유하 배우. 반갑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학재 대표님.”


성도 엔터의 최상층.

통창으로 들어오는 채광이 가득한 사무실은 크고 넓다. 크기에 비해 장식품은 많지 않아 깔끔한 느낌이다.

그 중앙 접객용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던 이학재가 몸을 일으켰다.


슬림하지만 탄탄한 근육들이 정장 아래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광수와 비슷한 양상의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은 시선이 슬쩍 태블릿으로 향한다.


“정광수 팀장에게 받은 정유하 배우 연기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귀하신 분께서 누추한 연기를 왜?


“정말 잘하더군요. 민 작가가 대뜸 찾아왔는지 알 정도로요. 진작에 한번 만날 생각이었는데 우리 정 팀장이 작품 활동 중엔 안된다고 단단히 못 박지 뭡니까?”


민은숙 작가님이 이학재 대표님을 찾았다고?

갑자기 눈 앞에 실크 잠옷이 아른거린다.


“아, 대표님. 그 때는 우리 정 배우가 연기를 잘할 줄 몰랐습니다.”

“그럼 지금은?”

“문제 없다고 생각해서 바로 기별 드렸습니다. 당일 나온 쪽대본 가지고 신 배우하고 원 테이크 행진을 하더군요.”


원 테이크.

달리 말하면 NG 없는 촬영을 이어갔다는 말이다.


하물며 쪽대본이다.

현장에서 급히 받아든 대본이란 말이다.


영화로 성도를 이 자리까지 올렸기에 쪽대본이 가진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대사와 억양, 행동과 뉘앙스까지 모든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학재가 의외라는 듯이 눈을 빛냈다.


“쪽 대본으로 신 배우와 합을 맞췄다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 연기력이 상당할텐데?”

“신 배우 연기는 상당하다는 말도 부족합니다. 대표님. 현 시점 남자 배우 1티어잖습니까. 물이 제대로 올랐습니다. 이젠 미친놈 소리로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신재균의 연기는 와일드하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이치에 따라 상대를 겁박하고 윽박지르며 잡아 먹는 스타일.

하물며 쪽대본을 든 신인 배우가 버티기엔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겠지.


“그 신 배우와 대등한 연기를 펼친게 정유하 배우고?”

“맞습니다. 천생 연기해야 할 정도로 난 놈이라고 자부합니다.”

“정 팀장 안목은 인정하지.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맞겠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광수가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학재의 시선은 테블릿과 정유하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거 참.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의 여운이 가시기 전인데 더 놀랄 일이 있다니 믿기지 않군.”


영상 속 멈춘 화면은 첫 촬영 날의 영상이었다.

정유하와 손지석이 극중 박이서를 둘러싸고 치열한 격투를 벌이는.


‘이렇게 대놓고 금칠을 한다고?’


정광수와 이학재 사이.

얼굴에 금칠 발림을 당하고 있던 정유하는 뻘쭘했다.


따지고 보면 성도 엔터의 최상층 이학재의 사무실로 올 때부터 그랬다. 갑작스럽고, 뜻밖의 연속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그래서 그냥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이학재와 정광수에겐 사뭇 다른 느낌으로 전해졌나 보다.

가만히 정유하를 쳐다보던 두 남자가 눈을 마주했다.


“물건이죠?”

“어디 물건에 비할까? 굳이 비교하면 국보급 물건 정도 되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귀한 분이 오셨는데 너무 세워둔 것 같아. 자 다들 앉읍시다.”


이학재가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 자리를 권한다. 이어서 마실 거리까지 물어보는가 싶더니 직접 차를 내왔다.


“향이 좋습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이학재의 말처럼 향긋한 향이다. 차에 대해 문외한인 정유하마저도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


“정 배우가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스케쥴 있는 배우를 오라 가라 할 정도로 못난 대표는 아닙니다. 다만, 한 식구가 된 마당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모셨습니다.”

“아닙니다, 대표님.”

“물론 정 팀장이 허락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만남은 스케쥴이 모두 끝난 이후가 됐겠지요.”


정광수 팀장님은 확실히 능력이 있어 보였다. 현장에서도, 사무실에서도. 회사의 가장 높은 분에게도 인정을 받는 걸 보면 말이다.


‘만약 내가 쪽대본을 들고 제대로 못했다면 정광수 팀장님은 이 자리를 주선하지 않았을 거야.’


자신이 맡은 연예인에 대한 케어가 확실하다. 정유하가 보인 뛰어난 퍼포먼스 이슈가 사라지기 전 기가 막힌 타이밍에 대표와의 미팅을 주선했다.


성도 엔터의 대표라면 그 스케쥴도 빡빡했을 텐데.

새삼스럽게 정광수를 바라보니 대표님 몰래 눈을 찡긋 거린다.


“각설하고 이렇게 얼굴만 보자고 만난 건 아니고 따로 할 말이 있어섭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대표님.”


이학재는 정광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정 배우.”

“예. 대표님.”

“내가 정 배우를 제대로 밀어줘 볼까 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솔직히 감이 잡히지 않아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연예계의 공룡 기업 성도의 대표가 밀어준다는 말이.


“종편 드라마의 주연급 조연. 나쁘지 않은 스타트에요. 하지만 새 바람이 불고 있잖습니까? OTT. 초대형 기획이 예정돼 있습니다.”


이학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갈색 광택이 도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봉투를 챙긴 이학재가 다시 응접용 쇼파에 앉았다.


“월드 스타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


꼼꼼하게 대본을 살펴본다.

평생 연기라고는 해본 적 없고 당연하게도 대본을 본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딸깍.


딸깍.


괴롭게만 느껴졌던 소음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대본이라는 트리거로 말미암은 스위치를 통해 작품의 파이를 확인한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일까 그 동안 놓치고 있던 디테일을 느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소리가 나는 작품도 있다. 소리의 크기가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지만 여러 번 소리 나는 경우도 있다.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작품들이 다수였고, 그보다 조금 커진 소리가 들리는 것도 여럿 있었다.


양과 늑대의 시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 극명해졌다.


‘김성연 역에 비하면 소리가 모두 작아.’


이로 말미암아 추측해보건데 소리의 크기가 작품 속 배역과의 싱크로를 나타내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지만 그럴싸한 추측이라고 생각된다.

정유하는 손에 든 대본을 내려 놓았다.


“······.”


이학재 대표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월드 스타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팬 데믹 이후 구독 공유 플랫폼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OTT 시장이다.

경쟁이 과열되며 주춤하는 모양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위상은 드높기만 하다.


하물며 성도의 대표가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작품이라면 스케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작품에 밀어주겠다는 말을 장담했다.


-절 좋게 봐주시고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계로 나아가 보자는 제안 앞에서 정유하는,


-거절하겠습니다.


완곡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학재 대표님이 내민 시나리오에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이걸 거절할 줄 몰랐다는 듯 정광수는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렸고.


이학재 대표님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별 다른 말을 부연하지 않을 까닭에 대표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점수를 깎아 먹지 않았을까.


때 마침 들어온 비서는 이학재 대표님에게 다음 일정이 있다 말을 전했고 그 자리에서 대화는 끝이 났다.


정광수는 섣불리 대답한 것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현 작품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라며 정유하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이게 6시간 전의 일.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역시 이학재 대표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 성공을 확신하고 큰 투자들이 더해진 작품이다.


대단하신 작품임은 분명하다. 제대로 살펴본 것이 아니지만 작가부터 연출까지 출중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머리 속 스위치는 켜질 줄을 모를까?


‘경우의 수는 세 가지.’


이 스위치가 정유하에게 어울리는 배역에게만 울린다는 가정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학재 대표가 확신하는 기획작이 폭망한다던가.


마지막으로 스위치가 시나리오에는 반응하지 않는다던가.


3번째 경우는 확률이 희박했다. 이미 다양한 트리거를 겪었던 이력이 있다. 머리 속 스위치는 분명 정상 작동하고 있다.

과거에 주목해보면 그 특징은 더더욱 두드러진다. 책, 사물, 인물까지 종 잡을 수 없는 트리거들이 정유하를 방구석으로 집어 넣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말.


솔직한 심정으로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딜가나 알아보는 대스타의 길이다. 따라오는 부와 명예는 당연했고 욕심이 났다는 걸 부정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는 스위치와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저주인지, 기적인지 판가름하는 일은 인생에 주어진 숙제였다.


욕심은 스위치에 대해 모든 걸 안 뒤에 내도 늦지 않겠지.


결국 답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시험이 끝난 뒤가 될 것이고, 선택에 따른 책임은 스스로의 몫이다.

정유하는 지금에 충실하길 선택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풍성한 추석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신입 매니저가 천재배우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012화 내가 그거 한번 해보려고 해 NEW 18시간 전 105 2 14쪽
11 011화 그래서 저 친구야? 24.09.18 146 3 12쪽
10 010화 그 때부터인 것 같다 24.09.17 160 4 11쪽
» 009화 거절하겠습니다 24.09.16 169 4 13쪽
8 008화 복 덩어리라고? 24.09.15 174 3 12쪽
7 007화 시작하시죠 24.09.14 178 5 12쪽
6 006화 물론 24.09.13 191 3 12쪽
5 005화 연기 했어요 24.09.12 213 3 14쪽
4 004화 해보겠습니다 +2 24.09.11 238 4 14쪽
3 003화 그 연기 뭐야? +1 24.09.10 271 7 14쪽
2 002화 아무리 봐도 배우신데? +1 24.09.09 284 6 14쪽
1 001화 덧칠 +1 24.09.09 311 7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