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임경배 님의 서재입니다.

권왕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임경배
작품등록일 :
2012.10.31 18:24
최근연재일 :
2012.10.31 18:2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8,950
추천수 :
4,709
글자수 :
106,196

작성
11.02.25 04:26
조회
32,354
추천
180
글자
8쪽

권왕전생 - 28

DUMMY

어쨌거나 일단 성직자였으므로 레펜하르트는 실란에게 존댓말을 썼다. 뭐, 그도 정말 이 소년 신관이 오크들을 돌봐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런데 실란이 납득한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아, 그렇네요.”

그러다니 저만치 걸어가서 끙끙대는 오크들에게도 치유술을 써주는 것이다. 쉬고 있던 기사들이 혀를 차며 실란을 말렸다.

“하, 신관님. 그것들은 침만 발라도 알아서 낫습니다. 뭐 하러 기운을 소모하십니까?”

심지어는 오크들 본인도 당황한 눈치였다.

“괜찮다. 높은 신관. 우린 안 아프다.”

“진짜 괜찮다. 안 아프다.”

“가만히 있어요.”

오크들을 제지시킨 뒤 신성한 기운을 그들의 사지로 흘린다. 하피들의 깃털에 꿰뚫려 찢어진 근육이며 피부가 점차 아물며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오크들이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한다. 신관. 감사한다.”

방실방실 웃으며 실란은 오크들을 말끔히 치유한 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레펜하르트는 입맛을 다셨다.

“쩝, 분명 좋은 녀석이긴 한데…….”

치유술을 구사할 정도로 높은 권능을 지닌 성직자라 할지라도, 저렇게 노예들에게까지 친절을 베푸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저 아이의 심성이 바르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저걸 가지고 오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다고 볼 순 없다. 아마 저 소년 성직자는 개나 고양이, 말들이 상처를 입어도 저렇게 열심히 치유술을 써주겠지. 이건 인격이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전체의 머릿속을 사로잡은 절대적인 가치관, 사고방식의 문제다.

‘아, 갈 길이 멀구나.’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스테반 역시 한 것 같았다. 그가 기사들을 독려해 채비를 갖추게 한 뒤 레펜하르트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 길잡이! 빨리 길안내를 해라!”

어지간한 기사라면 빈말로라도 다친 데 없냐고 물을 법 한데, 아주 막무가내다. 그야말로 길안내 외의 다른 용도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

‘그래, 그럼 착실히 안내만 해주지. 뭐.’

원래는 몬스터의 습격을 피해서 편한 길로 안내해 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레펜하르트는 입을 비죽이며 그냥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진해서 죽 가다가 좌회전입니다. 전방에 개울 있으니 감속하세요.”

막 출발하려던 스테반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뭔가? 그 괴상한 말투는?”

“아뇨, 아무것도.”



3.


시린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헐벗은 골짜기,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한 무리의 일행이 저마다 바닥에 퍼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헉헉헉…….”

에드워드 경은 가쁜 호흡과 함께 일행을 살펴보았다. 자랑스러운 알티온 기사단의 일원들이 지금은 완전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번쩍이던 갑옷은 찌그러지고 흙먼지로 더럽혀져 고철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다, 다들 휴식을 취하도록 하라!”

그들은 방금 전까지 스무 마리가 넘는 오우거들과 싸우며 간신히 여기까지 물러난 후였다. 하필이면 길목에 오우거 부락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도 하피며 바실리스크, 다이어 울프 등 강력한 괴물들과 쉴 새 없이 싸웠으니, 천하의 알티온 기사단이라 하더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법사 토드도 성직자 실란도 전신이 땀과 흙먼지 범벅이 되어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기사들 중 하나가 하소연하듯 사방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 작은 산맥에 뭔 몬스터들이 이리 많은 거야?”

‘왜긴. 유적 방향으로 그냥 무식하게 직진했으니까 그렇지.’

스테반이 대놓고 ‘길 안내만이 너의 존재가치다!’라고 외쳤으니, 레펜하르트도 그의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원래는 몬스터들의 서식지 사이로 길을 타고 가서 유적에 도착하는 것이 정석이거늘 그걸 무시하고 죽 직진했으니 각종 몬스터들을 안 만날 수가 없었다.

‘난 거짓말 안 했어. 이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물론 몬스터와 싸우느라 늦춰진 시간은 신경 껐다. 중간에 일 생겨서 늦어지는 건 안내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는 마법사였다. 자고로 마법사란 인종은 편협하고 쪼잔한 법이다.

‘절대 괴롭히려고 한 거 아니야. 열심히 시키는 대로 했잖아?’

할딱대는 기사들을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말고 레펜하르트는 슬쩍 오크 노예들의 상태를 살폈다.

오크들도 지치긴 마찬가지였지만, 기사들과 달리 꽤 기력이 남아 있었다. 앞장서 전투를 한 것이 아니라 뒤에서 숨어만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전투 와중에 다 죽어나갔겠지만, 레펜하르트가 티 안 나게 돌봐준 덕에 다들 찰과상 하나 없이 이 자리까지 와 있었다.

기사들조차 지친 상태인데 고작 길잡이와 노예들이 멀쩡한 걸 보고 의아하게 여길 법도 하건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선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들이 노예와 평민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단적으로 증명하는 부분이었다.

한편, 스테반은 엘프 렐시아의 시중을 받으며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숨을 고르며 계곡 저편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과연 클로드 경께서 죽음을 당한 곳답군. 이런 작은 산맥에 이렇게나 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니…….”

새삼 자신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 지 실감이 난다. 스테반이 다시 한 번 위대한 가문의 영광을 위해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될 겁니다. 설마 휴식이 필요하십니까?”

스테반은 얄미울 정도로 멀쩡한 이 길잡이 청년을 보며 이를 갈았다. 분명 말투는 정중한데, 어째 ‘천하의 기사 분께서 고작 이 정도로 지쳤을 리는 없겠지요?’라고 비꼬는 것처럼도 들린다.

“모두 일어나라!”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스테반이 여기저기 퍼져 있는 수하 기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기사들과 마법사, 성직자 소년이 모두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잡이 청년이 태연스레 계곡 안쪽을 가리켰다.

“슬슬 다 왔습니다. 이제 이 얼어붙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되지요.”

스테반이 걷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레펜하르트는 빙긋 웃었다.

‘그럼 슬슬 도착해야겠네.’

어차피 주변에 더 이상 들이댈 몬스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스테반 일행은 한껏 경계하는 모습으로 골짜기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략 30여 분 쯤 후.

“오오! 이곳인가!”

스테반이 감격에 겨워 외쳤다.

“틀림없습니다, 스테반 공자님.”

에드워드도 감동한 얼굴로 목소리를 보탰다.

그들의 앞, 좁아진 골짜기 사이에 반 쯤 무너진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현 대륙의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태였다. 마름모꼴로 좁아지는 건물 외벽 위로 원형의 천장이 얹혀 있었다. 재질은 평범한 화강암, 오랜 풍상으로 외벽 여지저기가 벗겨진 것이 보인다.

틀림없었다.

그들의 목적지, 위대한 기사 클로드 경이 눈을 감은 곳.

고대의 유적, 팔톤이었다.



*************************************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권왕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권왕전생 14권, 10월 30일 출간되었습니다. +8 12.10.31 3,167 9 1쪽
43 권왕전생 13권, 9월 27일 출간됩니다. +8 12.09.22 2,057 4 2쪽
42 권왕전생 12권이 출간되었습니다. +11 12.06.22 2,019 10 1쪽
41 권왕전생 11권 출간되었습니다. +11 12.05.23 1,816 5 1쪽
40 권왕전생 10권이 출간되었습니다. +7 12.04.30 1,897 7 1쪽
39 권왕전생 9권이 출간되었습니다. +17 12.03.05 2,360 6 1쪽
38 권왕전생 8권이 출간되었습니다. +14 11.12.01 2,482 5 1쪽
37 권왕전생 7권 출간되었습니다. +13 11.10.26 2,435 4 1쪽
36 권왕전생 6권 출간되었습니다. +17 11.09.23 2,696 10 1쪽
35 권왕전생 5권 출간된 것... 같습니다.... +22 11.08.26 3,756 9 2쪽
34 권왕전생 3권 출간되었습니다. +31 11.04.26 5,327 9 1쪽
33 권왕전생 1,2권 출간되었습니다. +105 11.03.24 12,959 32 1쪽
32 권왕전생 - 32 +138 11.03.11 34,541 186 7쪽
31 권왕전생 - 31 +89 11.03.05 30,478 155 7쪽
30 권왕전생 - 30 +129 11.03.02 31,985 170 7쪽
29 권왕전생 - 29 +104 11.02.28 30,523 170 7쪽
» 권왕전생 - 28 +117 11.02.25 32,355 180 8쪽
27 권왕전생 - 27 +98 11.02.23 31,999 169 7쪽
26 권왕전생 - 26 +102 11.02.21 32,591 168 7쪽
25 권왕전생 - 25 +79 11.02.19 32,273 152 7쪽
24 권왕전생 - 24 +115 11.02.17 34,703 154 7쪽
23 권왕전생 - 23 +90 11.02.15 34,236 155 8쪽
22 권왕전생 - 22 +102 11.02.13 35,159 144 8쪽
21 권왕전생 - 21 +92 11.02.12 34,793 158 8쪽
20 권왕전생 - 20 +111 11.02.11 36,005 155 7쪽
19 권왕전생 - 19 +92 11.02.09 37,791 177 7쪽
18 권왕전생 - 18 +82 11.02.07 37,221 165 7쪽
17 권왕전생 - 17 +70 11.02.06 38,117 152 8쪽
16 권왕전생 - 16 +70 11.02.05 36,461 149 7쪽
15 권왕전생 - 15 +62 11.02.04 36,469 133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