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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나키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의 종언 : 차크나세인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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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나키
작품등록일 :
2018.02.04 22:01
최근연재일 :
2018.02.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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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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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Prologue 너의 사형식 (1화)

DUMMY

천사의 종언 : 차크나세인의 성녀

Prologue #0-1 : 너의 사형식





넌 나의 노래.

넌 나의 연극.

넌 나의 이야기.


너는 내가 만들고 연주하는

나의 무대.




* * *




뎅그렁ㅡ


종이 울린다.


뎅그렁, 뎅그렁ㅡ


주기적으로, 반복적인 운율로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고 있다.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맑고 청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슬프고 애타게 느껴지기도 했다.


종소리 자체가 구슬프기보단, 종소리가 울리는 이유와 상황이 종소리를 구슬프고 슬프게 만들고 있다.


철컥, 철컥ㅡ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철컥이는 금속성 소리도 같이 들린다.


규칙적인 종소리와 달리 금속성 소리는 불규칙적이고, 종소리처럼 맑거나 은은한 소리도 아니었다.


철컥, 철컥ㅡ


그 금속성 소리는 한 사람의 발목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소리의 근원이 되는 발목에는 검은색 쇠사슬이 묶여 있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묶인 쇠사슬이 땅에 비벼지고 끌리면서 철컥 소리가 났다.


발목에 있는 쇠사슬에는 검은 쇠구슬까지 달려 있다. 쇠사슬이 움직일 때마다 쇠구슬도 함께 움직이며 그 무게감을 더했다.


쇠사슬과 쇠구슬의 육중한 무게에 짓눌린 발목은 상처와 피멍으로 너덜너덜해져 있다. 상처가 있는 부분은 발목뿐만이 아니었다. 팔과 얼굴, 목덜미까지 구석구석 잔상처가 없는 곳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 외에도 핏자국이 흰옷을 듬성듬성 적시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몸속까지도 상처투성이로 예상됐다.


철컥, 철컥ㅡ


발목에 쇠사슬을 걸고,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은 채, 상처투성이의 초췌해진 모습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다. 지치고 힘없는 무기력한 발걸음이었지만 그 발걸음 하나에 많은 사람이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라 함은 단순히 몇십 명, 몇백 명 수준의 인원이 아니었다. 몇십, 몇백, 몇천을 넘어 몇만의 사람들의 시선이다.


철컥, 철컥ㅡ


몇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을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는 그 대상은 초췌하고, 지저분하고, 상처 입은 상태였다. 입고 있는 옷마저 허름한 흰옷이다.


평범했다. 초라했다. 작고 약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의 이목은 더욱 집중됐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고 초라한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평범하고 초라한 것보다는 특이하고 화려한 것이 더 이목을 끌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정반대였다.


평범하고 초라할수록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특이하고 화려한 것보다, 평범하고 초라한 것이 더욱 파격이었으니까.


그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온 대륙의 존경과, 영광과, 찬양을 한몸에 받던 성녀(聖女)의 이런 몰락한 모습을.


"......."


대중은 침묵했다.


수만의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울리는 소리는 그녀의 발에서 나는 쇠사슬 소리와 식을 알리는 종소리밖에 없다. 존경, 권위, 영광 그 모두를 잃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하나인 생명, 그녀의 생명을 뺏어갈 사형식의 개회를 알리는 종소리.


"......."


대중은 침묵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는 사형식은 일반적인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용서받지 못할 대죄를 저지른 악질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공개 사형식이다.


본보기가 돼야 하고 많은 대중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특성상 공개 사형식은 연쇄살인, 영아강간, 근친상간 등 하나같이 끔찍한 죄를 저지른 죄인들이다. 그런 중죄인들을 모아 일 년에 한두 번씩 대광장에서 공개 사형식을 거행했다.


이 공개 사형식에 끌려 나오는 사형수들은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흉악 범죄자들이었고, 대중은 그들을 향해 야유와 돌을 던졌다.


몇몇 사형수들의 경우 사형대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분노한 대중의 돌에 맞아 죽은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 흉악 범죄자들이 걸었던 길을 그녀도 걷고 있다. 수많은 관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 사형수들은 땅을 밟을 권리도 없다 해서 깔린 검은 카펫 위를 걷고 있다.


그러나 대중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단 한 달 전만 해도 더러운 검은색 카펫이 아닌, 황금으로 자수가 되어 있는 영광스런 붉은색 카펫 위를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철컥, 철컥ㅡ

탁ㅡ


그녀가 긴 검은색 카펫을 따라 사형대의 앞까지 도착할 때까지 관중은 침묵을 지켰다. 야유는 물론 돌팔매질도 없었다. 일반적인 사형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보내던 대중의 분노와 살기 어린 눈빛조차 없었다.


다만, 어쩔 줄 몰라 하는 혼란스런 눈빛만이 있을 뿐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권위, 영광만 있던 것이 아니라 대중의 사랑까지 받던 성녀였기 때문에. 다들 이 상황에 대해 믿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검은색 카펫의 끝에 도착한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더 이상 걸을 카펫이 없다. 검은 카펫이 끝난 지금 이제 발걸음을 옮길 곳은 사형대의 계단밖에 없다.


열 계단 남짓한 사형대의 계단.


그녀는 고개를 들어 계단의 끝을 보았다. 계단의 끝에는 피로 물든 참수대가 보였다.


이 열 계단만 오르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더는 괴로움과 고통을 지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했는데, 다짐했는데도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이 전(前) 성녀로서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사형대의 계단 위로 한 발자국 옮겼다. 작고 소심한 동작의 발걸음 하나. 그러나 지금까지 옮겼던 어떤 발걸음보다도 어렵고 무거운 한걸음이다.


그런 자신의 뒷모습을 수만의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마치 그들의 시선이 등을 떠밀 듯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런 그녀의 등 뒤를 한 쌍의 눈동자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를 지켜보는 그 눈동자는 일반 대중들의 눈동자와는 달랐다. 경악, 의혹, 혼란 등 다양한 감정의 색을 띠고 있던 대중의 눈동자와 달리 그 눈동자는 차갑고 냉철한 빛을 띠고 있다.


또한, 눈빛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장소도 달랐다. 대중들처럼 광장에 바글바글 모여 지켜보는 것이 아닌, 혼자만의 뚝 떨어진 외진 장소에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또르르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던 남자는 근처의 포도주 한 병을 들어 잔에 따랐다. 투명한 유리잔에 포도주가 채워졌다. 이윽고 진한 자줏빛으로 변한 유리잔을 휘휘 저으며 그 아름다운 빛을 잠시 감상한 후, 근처의 의자에 여유 있는 자세로 앉았다.


"좋군."


휘휘 흔드는 포도주잔에서 풍기는 깊은 향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랑게산 적포도주. 아끼고 또 아끼던 포도주였다. 오직 이날을 위해 참고 아껴둔 포도주.


"건배."


포도주잔을 허공으로 들었다. 잔을 들고 몇 초간 건배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받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곳에는 오직 그 혼자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건배였으니까.


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하나, 둘, 셋.


정확한 보폭으로 세 발자국을 움직이자 탁 트인 유리창 밖으로 모든 것이 보였다. 넓은 대광장, 넓은 대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중들, 관중들이 둘러싸고 있는 사형대, 사형대의 꼭대기에 위치한 참수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인 '그녀'까지.


전체적인 광경을 쭉 훑어본 뒤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의 시선 끝에 그녀가 들어왔다. 한없이 작고 초라한 그녀가 보였다.


터벅, 터벅


지금 주인공이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참수대를 향해 착실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지금 이 무대의 주인공이 최종 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는 웃었다. 그 광경을 보며 그는 웃었다. 옅은 미소가 아닌, 입꼬리가 노골적으로 올라가 있는 명백한 웃음이다.


최고다.


그렇게 생각했다. 좋았다.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 발자국 더 앞서나갔다. 이제 그와 유리창 사이의 거리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의 거리밖에 없다.


"안타깝군."


안타까웠다.


유리창에 막혀 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자세히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 몸, 손, 발 등을 포함해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표정까지.


그가 지켜보고 있는 곳은 대광장에 있는 건물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약 10여 년 전, 그가 세운 건물로 현재 호텔로 사용하고 있다. 겉모습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그저 평범한 호텔이었지만 특이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호텔의 3층이 비어있는 것이다.


호텔에서 층 하나가 비었다는 것이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손님이 없어서 비워놨을 수도 있고, 내부공사를 하는 기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손님이 없어서도 아니고,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닌 아무런 이유 없이 계속 비워두고 있다면 한 번쯤 의문을 품을만하다. 건물이 세워진 이후로 10년간 계속 비어 있다면 더더욱.


10여 년간 기다려왔다.


그가 서 있는 이 호텔도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지은 것이었다. 이 사형식을 가장 좋은 각도, 좋은 위치, 좋은 시점에서 보기 위해 만든 호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3층을 비워놓은 것이다. 3층은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했다. 아니, 이 호텔 전체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이 순간이 지난다면 이깟 호텔 따위, 폭삭 무너져 내려도 상관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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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2 Prologue : 너의 사형식 (2화) 18.02.18 40 0 10쪽
» #0-1 Prologue 너의 사형식 (1화) 18.02.04 6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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