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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 님의 서재입니다.

축귀의 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후우우우니
그림/삽화
후우우우니
작품등록일 :
2017.01.10 15:45
최근연재일 :
2017.04.07 16:06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8,881
추천수 :
580
글자수 :
842,668

작성
17.03.31 11:21
조회
320
추천
3
글자
28쪽

7. 회귀순리전 5. 알현(後)

그동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v-




DUMMY

“으아아아아------!!!!!”

“사람살려-----!”


명정문에 기백 여 군사들이 속절 없이 쓰러져 갔다.

성길원, 윤손이는 병사들을 기를 쓰고 무너지지 않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이미 홍화문이 뚫릴 때 나모가비, 창귀호를 경험해 본 병사들은 용기를 가지기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몸통이 뚫려도, 창자가 흘러 내려도 창귀 호랑이들은 꾸역꾸역 밀고 들어와 병사들을 물어 죽였다.

나모가비는 그 큰 몸집과 나무자체의 맷집에 어찌할 방도가 없는 괴물이었다.

곧 병사들은 자포자기, 완전한 전의상실, 난중 공황상태가 전군에 퍼졌다.


“움직여라-! 살기 위해서라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라-!”


중간 지휘관들의 처절한 지시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지만 그를 압도하는 처절한 비명이 명정문을 금방 채웠다.


“사람살려-----! 살려줘---!”

“도망..... 어디로---! 어디로---!”


해명은 그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만 있었다.

아무 느낌 없이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해운, 그러니까 해운의 몸에 빙의된 상왕 동하군을 보았다.

동하군 또한 흰자위만이 남은 해운의 눈을 통해 말 그대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입을 열어 한 마디 혼잣말을 허공에 던졌다.


“내 업이 되겠구나....... 내 업이로다....... 잊지 못한 내 업이로다.......”


때가 맞게 혼잣말을 하는 동하군과 눈이 딱 마주친 해명은 동하군에게 원하는 바가 따로 있는지 물었다.


“상왕전하~ 따로이 하명하실 일리라도 있으십니까?”

“너는 이 많은 업을 어찌 감당하려 하느냐......”


해명 입장에서는 항현에게도 만날 때마다 듣던 물음이다보니 새로울 것은 없는 질문이었지만 동하군 귀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자 그 느낌이 새로웠다.


“전하께오서 마음이 아프시옵니까?”

“너는 어떠하냐? 이들이, 내 숙부 이유의 조정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 모두 너의 적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세상에 저의 적은 아무데도 없사옵니다~. 오로지 전하의 적을, 전하의 명에 받들어 토벌할 뿐이옵니다!”


사뭇 엄정한 해명의 대답에 눈을 뒤집은 해운의 입가에는 웃음이 감돌았다.


“나의 명을 받들었다? 그럼 너는 저들이 나의 적이라 이미 판단한 것이로구나? 나의 의중을 너의 짐작으로 추측한 것이구나..... 그렇지?”

“........”


해명이 잠시 말없이 머뭇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말을 만들어 냈다.


“세상의 순리에 비추어 보아 자신의 친형의 아들을 죽이고 그 위상을 훔친 자를 가만히 놔두는 것은 분명히 천명에 맞지 않는 것이옵니다! 또한 군주의 자리에 계시는 분의 따라야할 법은 하늘의 순리인 바, 이유를 죽이고 옥좌를 천명과 순리에 맞는 자에게 넘기는 것이 전하의 뜻임이 분명하실 것이옵니다-!”


일부러 힘을 주어 또박또박 주장하는 해명에게 동하군의 귀신이 비웃었다.


“내 마음도 네가 얘기하느냐? 후후후후~ 그럼 그렇다하자....... 저 업을 네게 혼자 짊어지라고 하는 것도 딱하구나. 내가 나누어 져주마. 그러나 저렇게 조선의 사람들이 함부로 죽어가는 것도 잠자코 못 볼 일이다. 네가 가능한 방법으로 저 사람들을 죽이지 말고 이제 그만 흩어지게 하라!”

“도망치는 것을 놓아주라 하명하시는 것이라면 그리 하겠나이다!”

“........”


동하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명은 호드기를 입에 물었다.

사람의 귀에 안 들리는 신호가 귀갱시들에게 하달되자 일방적 살육이 거기에서 멈추었다. 창귀호와 나모가비가 갑자기 멈추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본 나머지 생존 병사들은 공포와 의구심이 범벅이 된 눈빛으로 갑자기 멈춘 요괴들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들의 귀에 처음 듣는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미 붕어하신 상왕전하의 명을 받아 이 귀신부대를 이끄는 패역토벌대장군이다!”


말을 들은 병사들마다 얼떨떨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표정이었다.


‘상왕이라니? 이미 붕어하신.....? 누구.....? 동하군을 말하는 건가......?’

‘명을 받다니.....? 죽기 전에 내린 유언 같은 것이 있다는 건가.......?’

‘벌써 돌아가신 것이 십여 년인데....... 그런데 이 귀신들은 뭐란 말인가......?’

‘설마..... 저승에서 올라오셔서...... 귀신들을 몰고......?’


좌포도청의 성길원도, 내금위의 윤손이도, 다른 무명의 장졸들도 당최 말이 되지 않는 상황과 선언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해명은 그들이 상황을 이해하도록 기다려줄 이유가 없었다.


“상왕전하께오서 이유의 패역무도한 정권에 가담한 너희에게도 피 흘리고 죽는 꼴이 가엽다하시어 살 길을 열어주라 하시니 내 그 명을 받들 것이다! 지금 문정전 쪽으로 나가 선인문으로 빠져 나가는 자들은 이 이상 쫓지 않고 살려주리라! 홍화문으로 나가진 못한다. 선인문으로 나가라!”


해명의 생각에 홍화문으로 보내주는 것도 별 문제는 없었지만 괜한 심술이 나서 훌떡 옥천교만 넘어 바로 나갈 수 있는 홍화문보다는 멀리 돌아가야 되는 선인문으로만 나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병졸들은 멀리 돌아나간다고 불만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감지덕지, 허겁지겁, 혹시나 맘 바뀔 세라 쥐고 있던 당파창도, 환도도, 모두 던져버리고 선인문만 바라보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치지마라-! 우리는 이 나라 임금님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니라-! 도망치지마라-!”


내금위장 윤손이의 필사적인 고함이 명정문 앞을 뒤늦게 쩌렁쩌렁 울렸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뒤가 없는 필사의 각오도, 하나 뚫어준 활로에 여지없이 무너져 칠, 팔십정도 남은 병졸들 모두 지휘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염의 촌부로 변해버렸다.

전열이 완전히 무너져 지휘할 군이 없어진 윤손이는 결국 자신을 따르는 일부의 측근 병사만을 대동하고서 함인정에 있는 조정의 도당으로 물러났다.

결국 명정문 방어선에는 좌포장 성길원 하나만이 남았다.


“너도 도망쳐라-! 가는 자의 등에 칼을 꽂지는 않는다! 가거라-!”

“닥쳐라---!”


해명이 귀찮다는 듯 성길원에게 한 마디 던지자 성길원이 상처 난 늑대같이 거세게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 해명이 성길원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미 죽기를 각오하여서였는 지 성길원은 거침없었다.


“이 따위 귀신을 몰고 이 나라 지존이 계시는 궁궐을 범하는 네놈은 필시 제대로 된 놈이 아니다. 힘이 다해 이리 나랏 문을 내주는 것이 한일 뿐! 네놈이 개구멍을 열어준다고 목숨을 바라고 그 쪽으로 뛸 것 같으냐! 나는 여기서 죽을 뿐이다!”

“기가 센 놈이구나! 반갑구나! 너의 끝은 내가 맺어주마!”


해명이 쌍철극을 한 손에 하나씩 거머쥐고 성길원의 앞으로 나왔다.

가다가 잠시 멈춰 뒤의 동하군을 쳐다보았지만 동하군이 씌인 해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해명은 무반응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성길원의 앞에 나와 섰다.


“나는 패역토벌대장 해명이다! 내 하늘의 순리를 네 역겨운 시골 개 충성으로 꺾어 보거라!”

“네 이놈---!”


성길원이 처절한 기합을 던지며 환도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세로로 내리 그으며 전진해 나왔다.

사나운 기세였지만 밤새 피로에 지쳐 몸의 근육이 제대로 움직여질 리 만무했다.

해명이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아 비껴 내자 성길원은 자신이 달려오던 기세조차 갈무리를 못하고 비틀거리며 옆으로 던져 졌다.

입술을 악 물고 성길원이 일어났다.

해명은 넘어진 성길원을 덮쳐 단번에 죽이지 않고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배려가 성길원에게는 도리어 모욕이 되었다.


“네 이놈---!”


불같이 화를 내며 성길원은 환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이미 제식 정법에서 한참 모자란 어지러운 놀림에 힘 또한 보잘 것 없었다.

해명은 양손의 사술상우극을 하나씩만 움직이며 넉넉히 그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성길원이 숨이 턱에 차 결국 공격이 옅어지기 시작하자 해명이 성길원에게 제안을 했다.


“어떠신가? 우리 쪽에 서는 것이......? 우리는 이씨 왕조를 전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유만 내치면 되는 것이다!”

“주상전하의 존명을 턱턱 불러 제끼다니...... 고얀 놈!”

“무엇 때문에 이리 싸우는가? 어차피 관직이라는 것이 결국 밥그릇 아니던가? 네 밥은 챙겨 준다는 데 무엇이 문제야? 고집 그만 피워라!”

“귀신을 그리 잘 부리는 놈이니 나를 죽여 그 귀신을 부리려무나! 내 살아서는 흉한 네놈의 손을 절대 잡지 않는다! 퉷---!”


해명의 얼굴에 침을 뱉았지만 해명은 고개를 까닥 틀어 그마저도 피했다.

성길원은 환도를 몸에 가까이 붙이고 칼자루에 쥔 왼손을 완전한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온 몸을 던져 해명에게 육박했다.

상대의 칼을 몸통에 찔러 넣기 위해 모든 방어를 포기한 자살 공격이었다.

해명도 더 이상 협상이나 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사술극을 교차하여 쥐었다.


“이야야야야-----!”

“하앗-!”

“채애애애앵------!” “사--- 붘---!”


교차하여 쥐었던 사술극 하나는 두 손으로 맞잡고 찌른 성길원의 환도를 쳐 비꼇고 다른 사술극은 돌진해 들어오는 성길원의 목을 가로로 그었다.

목이 끊어진 성길원의 몸은 뛰어오던 관성으로 한 장 쯤을 더 뛰다가 그대로 주저앉으며 약간의 경련 후에 곧 행동을 정지했다.

몸과 떨어진 목은 해명의 발 아래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다 성난 얼굴을 위로 하고 멈추었다.


‘비합거사님이 오시면 이것도 얼귀갱시로 만들자고 하면 되겠군.............!!!!!! 응?!!!’


해명은 발 아래 굴러온 성길원의 머리를 보며 이제 사람의 목숨을 목숨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도 놀랐다.

이것이 거사를 이루는 데 잃어야하는 댓가인가 싶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든 묘한 감정에 갑자기 유일한 피붙이이고 가족인 해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여동생의 얼굴을 보자 거기에는 흰자를 보이며 까 뒤집은 눈으로 자신을 가엽게 바라보는 달관한 낯선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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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은 이제 더 이상은 항현을 죽이던가 해를 끼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종희까지 자신에게 끌어들여 자신을 방어하게 하고는 더욱 몸을 검은 사기로 지어 올린 다름누리로 숨어버렸다.


“저는 나서서 싸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둘 다 이리 숨을 이유가 있을까요?”


종희가 의문을 제기하자 비합은 일축했다.


“우리의 목적은 상대를 지연시키는 것이지,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도구로 써먹던 두 귀갱시를 잃은 상황이니 자중하세나......”


비합은 자신이 몸을 숨기고 있는 이 이공간에서 마지막 자신의 몸을 지켜줄 방어선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젠 일이 다 성사된 마당에 자신만이 강적을 맞아 싸우며 혼자 몸을 상할 수는 없다는 밥그릇 계산이 생각난 것이다.


‘설사 이 미로공간이 뚫린다고 해도 이미 창경궁은 다 뚫은거나 다름없으니 이젠 나서지 말아야지........’


비합의 생각이 어쨌거나 항현은 오백 열 두 기둥과 문으로 만들어진 기문둔갑진을 계속 해매고 있었다.


‘할 수 없구나. 다시 한 번 귀인(정령, 귀신 호랑이)을 소환하여 각 갈래로 보내봐야지.’

“흩어진 악을 쫓아 귀인의 범 떼를 푸노라,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하나 찢었도다,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둘 찢었도다,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셋 찢었도다,

하나가 쫓아 잡아 악을 넷 찢......”


항현의 주문을 듣고는 수빈이 말리며 얘기했다.


“항현 나으리, 그 주문은 귀신 호랑이들을 많이 소환하는 부림의 주가 아닌지요?”

“......예, 왜 그러십니까?”


항현이 주문을 멈추고 수빈을 바라보았다.

수빈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항현에게 우려를 한 마디 던졌다.


“나으리, 만일 이 미로를 돌파한다면 그 때는 해명과 싸워야 합니다. 그때는 어쩌시려 하십니까? 이리 기력을 많이 소진하시고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해명은 여러 귀신들을 사용하는 부림의 난힘자이기도 합니다. 그 많은 귀갱시나 나모가비, 창귀호들을 어찌 처리하시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이 검은 에움을 뚫는 것을 제게 맡겨 주세요.”

“!”


항현이 수빈의 신색을 다시 찬찬히 살펴 보았다.

이미 한 번 탈진을 한 수빈을 무리시키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미 수빈도 알아차렸다.


“나으리, 저도 자신이 있으니 드리는 말씀이에요! 맡겨주세요~! 저는 나으리를 금방 찾아 여기까지 왔잖아요?”


항현이 차마 제지를 못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급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또 걱정으로 해 달라고도 말을 못했다.

항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할 때, 수빈이 그냥 주문을 외워 버렸다.


“밝음의 새는 어둠의 쥐를 쫓나니

높이높이 나르샤 검게 숨긴 어둠을

밝게밝게 살피라-!

밝음의 새여-! 날아라-!

일광통찰조-!”


수빈의 손에서 밝은 빛을 뿜으며 빛의 새, 한 마리가 허공으로 높이 올랐다.

새가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며 부산하게 다니자 수빈은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으리 저를 따르세요.”

“예~ 수빈아가씨.”


항현은 수빈은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아직 비합을 제압 못한 상황에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법 많이 걸었다.

수빈은 여기저기 부산하게 걸으며 각 기둥을 이리 돌고, 문들을 저리 통과할 때마다 안쪽의 구조가 끝없이 서로 바뀌고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평생을 뒤져도 출구를 못 찾을 뻔 했군......’


생각해보면 지난 기문둔갑진은 팔문을 팔주(기둥)로 연결시켜 예순 네 개의 길과 목으로 되었던 구조였다.

가까스로 먼저 생문을 차지하며 이겼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여덟 문을 더 곱해 오백 열 두 개의 길과 목이 되어 있었다.

예순 네 개를 운 좋게 돌파한 것만 가지고 쉽게 생각했다가는 황당한 곳에서 막혀 헤맸을 것이다.

새삼 자신을 찾아 깊은 어둠 속까지 주저하지 않고 들어와 준 수빈에게 고마웠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항현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고맙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다.’


수빈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항현에게 말했다.


“여기에요. 여기에서 나갈 수 있어요!”


출구를 찾아 항현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 미소를 띈 항현의 얼굴과 딱 마주쳤다.

히죽이죽 웃고 있는 항현의 얼굴을 보고는 수빈이 약간 부끄러운 빛으로 물어 보았다.


“왜........ 그리 웃으셔요........?”

“!”


그제서야 항현은 자신이 멍청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아니........ 그게요........ 그러니까....... 웃는 이유가.......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 찾아와 주신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서........”

“....... 준모씨도 도와주러 온 거예요.......”

“아...... 뭐..... 그러시긴 하겠지만.........”


수빈이 부끄러워 준모를 핑계로 사용하자 항현도 공연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난데없이 그 자리에 없는 준모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준모, 이 사람은 어디 있는 게야, 이거......”

“.......”


수빈은 항현이 부끄러움에 못 이겨 툴툴대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자신도 미소를 지었다.

항현은 어느새 얼굴이 벌개졌다.

그런 항현을 달래기 위해 수빈이 한 마디를 더 건넸다.


“.......그래도 나으리를 먼저 만나 구해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어........예?........예.........”


항현이 어중띠게 대답을 하자 수빈이 홍조를 띤 광대를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주고받다가 이내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쉬이잌---!”

“형님-! 위험해요------!”


준모가 어둠을 헤치며 항현이 바라보던 쪽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항현의 뒤, 수빈이 바라보는 쪽에서는 사사모가 튀어 나왔다.


“나으리-! 위험......”


수빈이 항현을 안고 돌아섰다. 항현이 수빈쪽으로 넘어지며 수빈은 넘어지는 항현은 안아 막았다.


“푸우웈---!”


살갗을 저미고 창이 들어가는 소리, 항현이 안은 상태 그대로 수빈을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지만 이미 늦었다.

사사모, 긴 창이 박힌 등에서 핏줄기가 흘러 내렸다.

수빈의 눈이 감기며 밝음의 새도 그 빛을 잃어갔다.

검은 사악한 기운의 안개가 걷히며 종희가 사사모를 겨누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푸른 기가 도는 눈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수...... 수빈씨.....!”


준모가 사진도를 겨누어 주문을 읊조렸다.


“피에 젖어 한에 젖어

산마다 골마다 짐승뿐이네

맑은 하늘이 먹장구름불러

자신의 눈을 가리니

구름속 뇌룡의 번갯불이

더러운 악을 태워멸하노라-!

악멸뇌룡참-----!”


푸른 번개와 붉은 불꽃의 결합물이 종희를 향해 날았다.

종희가 사사모를 들어 창룡파미의 수법으로 그 불꽃을 사방으로 흩었다. 그러나 준모의 혼신을 다한 주법을 다 부수질 못하고 일부가 오른쪽 가슴에 격중했다.


“퍼어엉---!”

“헉-!”


종희가 그대로 뒤로 물러나 어둠으로 사라지자 준모가 그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항현이 그런 준모를 고함을 쳐 세웠다.


“준모---!”

“!”

“일단 이 어둠을 벗어 나야하네!”


항현이 등 어름에서 피를 흘리는 수빈을 안고 일어났다.


“그러나......”

“어서! 이 쪽의 문이 수빈아가씨가 지정해준 출구야! 지체하면 또 구조를 바꾸며 이 안에 갇히게 돼!”

“.........저 수빈누나를 상하게 한 것을........!”

“나와---! 어서---!”


항현이 준모에게 호통을 친 후, 바로 수빈이 마지막으로 지정한 문을 나오자 드디어 부서진 홍화문이 보였다.

뒤를 이어 검은 안개를 헤치고 준모가 나타났다.


“누나-!”

“........”


준모가 큰 소리롤 수빈을 불렀지만 감겨진 눈은 뜨이질 않았다.


“죽었어요?”

“.......”


준모가 겁을 내며 물었지만 항현은 아무 말도 없이 허리춤에 달린 주향선표를 꺼냈다,


“그래..... 그게 있었죠.”

“......”


항현이 주향선표의 뚜껑을 열고 그 송화밀삼차를 수빈의 입에 흘렸지만 수빈의 입술을 그 눈과 마찬가지로 닫힌 채 열릴 줄을 몰랐다.

송화밀삼차는 수빈의 볼을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

항현이 그런 수빈의 얼굴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준모! 그 기문둔갑진을 주시하게! 나와 수빈아가씨를 지켜주시게!”

“예? 아.... 그야...... 당연히......”


항현이 주향선표를 입에 대고 볼 가득히 송화밀삼차를 채웠다. 그제야 준모도 항현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뒤로 돌아섰다.

준모는 복잡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얼굴이 붉그락 푸그락했다.

첫 모금,

항현은 자신의 입술을 수빈의 입술에 포개어 수빈의 두 잎사귀를 벌렸다. 그리고 조금씩 흘려 넣으며 몸 안으로 삼키도록 목과 등의 정중선을 어루만져 주었다.

두 모금 째,

다시 항현은 수빈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열고 다시 송화밀삼차를 차분히 흘려주었다. 드디어 수빈의 몸 안에 삼키는 흐름이 느껴지고 갓 익은 딸기같은 혀가 작은 원을 그리며 뺨 속에서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그리 좋아요?!”

“그 얘기가 아니고-!”


항현이 준모의 말에 대충 성을 내어 대꾸하고는 다시 주향선표를 입으로 가져갔다.

세 모금 째,

수빈의 입술에서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항현은 차분히 송화밀삼차를 수빈에게로 흘려주었다. 그리고 입 맞추고 있던 상태로 수빈의 눈이 떠졌다.


“어마-!”

“수빈 아가씨!”

“누나!”


준모가 뒤로 돌아 수빈을 불렀다.

준모도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수빈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현과 수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항현이 수빈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기를 발하며 언성을 높였다.


“책임은 집니다---! 허락만 해 주십시오-----!”


준모가 항현의 말을 어이없게 쳐다봤다. 이걸 청혼이라고 하는 건가?하는 눈이었고 수빈은 아직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현을 쳐다보기만 했다.

창피해서였을까?

항현이 주향선표를 준모에게 주며 수빈의 치료를 부탁했다.


“등에 창(구멍, 상처를 의미)이 났으니 이것을 발라도 보시게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네.”


그리고는 수빈에게 말했다.


“바로..... 바로 주상 전하를 알현하기 위해 가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피해 몸을 숨기세요. 상대와 가능하면 싸우지 마시고요.......”

“.......”

“....... 아셨죠?”


항현의 지시에 수빈은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기만 하다가 문득, 제 정신을 차리더니 대답을 했다.


“.......네에........”

“준모, 수빈 아가씨를 모시고 적당한 곳을 찾아 다시 치료를 속개하게나, 그리고 말했다시피 충돌은 피하게. 숨어서 가능한 한 회피해! 알았지!”


준모는 여전히 어이없는 눈으로 전혀 안 세련된 청혼을 한 직장 선배를 쳐다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 뒤에 기문둔갑진의 사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빨리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들이 곧 나올 거예요!”

“아! 네.....!”


수빈이 준모의 부축을 받아 홍화문의 반대쪽으로 걸어 나갔다.

항현은 부서진 홍화문 쪽으로 날아들어 해명의 뒤로 육박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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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정도 명정문이 뚫리며 곧바로 박살이 났다. 다만 내금위장 윤손이가 피신을 하며 곧 적이 들이닥친다는 것을 알려 모두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조당의 신료들은 모두 양화당의 이유만을 바라보고 도망쳐 들어갔다.

이미 함양문도 나모가비, 창귀호 요괴들에게 장악당해 막혀있다는 것이 알려져 달리 도망칠 곳도 없었다.


함인정과 연결되는 선상의 전각, 환경전도 부서지고 양화당과 통명전 앞에 너른 터에는 해명과 그가 모시고 온 해운, 즉 선대의 폐위된 왕, 동하군 이동휘, 그리고 그 둘을 보좌하듯 늘어선 귀갱시와 창귀호, 나모가비들이 도열하듯 서있었다.


“패역무도한 이유는 상왕전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어라------!”


해명의 호령이 양화당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현영휘가 천천히 나오며 해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야단 비슷하게 소리를 쳤다.


“어딜 감히, 상의 존명을 함부로 지껄이는 게냐-! 무엄한지고!”


꾸짖는 듯 했지만 어조가 떨어지고 말끝을 길게 끄는 것이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해명도 그 작전을 알겠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 왔다.

실력이 앞서는 상황에서 거리낄게 없었다.


“현영휘, 늙은 여우 놈, 비열한 꾀만 내는 네 놈의 목은 이유의 목, 옆에 걸어주마!”

“이..... 이 무도한 놈! 흉한 별자(괴력을 가진 사람, 손가락이 많은 사람, 등에 점이 특정한 모양으로 나있는 사람등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 있는 사람들을 조선시대에는 별자라 부르며 차별을 했고, 심하면 사형도 당하는 중죄였다.)놈이 어딜 감히 조정의 큰 어른에게!”


황창성이 언성을 높였지만 해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로 이야기를 본론으로 끌고 가버렸다.


“지금 망령되이 임금행세를 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 있느냐-! 교활한 현영휘, 망나니 황창성 뒤에 숨어 임금님을 계속 할 성 싶으냐! 썩 상왕전하 앞에 나서거라-!”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해명은 다른 신료들이 물을 만한 미끼를 하나 던졌다.


“난 흉한 조정을 덮고 새로은 천하를 열려는 사람이다! 너희를 같이 죽일 생각은 없으니! 지난 계유년에 흉하게 권세를 탐한 개, 돼지를 잡으려는 것뿐이다! 이유만 내놓으면 다른 모든 신료들은 다음 천하에 중히 쓰리라---!”


신료들이 말은 없었지만 뒤 쪽으로 시선이 조금씩 이동했다. 명백한 동요였다. 현 임금 이유가 여기 있다는 발고였다.

해명이 사술상우극(四戌上吽戟)을 좌우로 벌려 서서는 눈빛들이 향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신료들이 해명을 피해 바람에 바닷물이 갈라지듯 좌우로 비켜났다.

칼을 든 내금위의 병사들도 해명의 흉맹한 기세에 물러나 곧, 윤손이와 몇몇 병사만이 이유의 앞에 칼을 들고 서있었다.


“그 꼴이 뭐요? 고작 한 줌의 병졸들 말고는 더 사람도 없는 거요?”


약간 명의 갑사들에게 둘러싸인 이유는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나? 권세를 얻어 재물을 탐하고 욕심을 있는 대로 채우고서는 댓가는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흠...... 그래서 이제는 어찌 댓가를 피하시겠소! 우리 어머니만큼 강한 난힘자라도 어디 쌓아 놓시었소?”


이유가 미소조차 멈추더니 해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젠 댓가를 피하기 위해 용을 쓰는 것도 지겹다. 정말이지....... 삶이라는 것이..... 임금이라는 것이....... 이리 힘겨울 줄 누가 알았겠느냐...... 쉬운 줄 알고 왔던 길이 쉬운 길이 아니었다. 치러야할 댓가가 누린 다음에 깔려 있는 길일뿐...... 세상에는 누리기만 하라는 법은 없더구나......”

“누릴 만큼 누리고 결국 깨달은 인생이 바로 그것이오? 값을 치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거.......? 남에게 그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쾌락을 누리고는 이제 값만 치르면 된다고......?”


해명이 어조에 살기를 띄우자 이유는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네가 억울한 것은 네 업보가 맞다. 너는 나의 목숨으로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 무엇을 피하겠느냐.......”

“전하~!” “전하~! 몸을 피하시오소서~” “전하~! 옥체를 보중하소서~!” “어흐흐흐흐흨~ 전하~”


방금 전까지 눈짓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던 수많은 신료들이 이제는 울었다.

오래된 의리때문인지, 혹은 교섭이 잘되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인지, 아니면 남들이 다 울 때 울지 않았던 죄를 나중에 벌 받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이유는 스스로 쌓아올린 위선의 탑 꼭대기에서 끝 모를 공허함을 맛보았다.


‘내 주위에는 이런 것들뿐이로구나....... 아니면.......’


이유는 주변으로 눈을 돌려 현영휘와 황창성을 보았다.

그들도 다른 신료들처럼 울고 있었다.

공범의 눈물은 다른 신료들보다는 조금 진심이 섞여 있으리라....... 그렇다고.....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유는 정말로 자신을 향해 철극을 들고 다가오는 해명에게 목을 길게 빼주었다.

고통스런 육체와 위선의 인생, 그리고 마음속 깊은 죄에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순간!


“서라-! 해명-! 전하에게서 물러나라-! 귀인일진격-----!”

“웃-!”

“콰----앙----!”


해명이 뒤로 물러나 항현의 귀인격을 피했다.

자연스럽게 항현은 이유의 앞에 내려 앉아 이유를 지키는 위치에 섰다.

항현이 사인검을 눈높이로 비껴들고 자신을 소개했다.


“전하! 전 축귀검의 사용벼슬을 하는 온항현이라 하옵니다!”


신료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인물에게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항현은 선언하듯 외쳤다.


“지금부터 제가 전하를 지키겠나이다---!”




완주 완료 다음 여정으로......


작가의말

양 조절을 좀 잘못했어요. 알현 편의 전, 중, 후를 하나로 모아 다시 나눠 볼까 하다가 그냥 올립니다. 

갑자기 폭탄처럼 글을 왕창 던져서 죄송해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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