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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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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7
최근연재일 :
2015.02.25 07:03
연재수 :
176 회
조회수 :
219,427
추천수 :
7,304
글자수 :
818,771

작성
12.09.25 03:50
조회
1,953
추천
60
글자
7쪽

회색시대-2.흐릿한.(5)

DUMMY

고발이 아니었다.


-너였다며. 네가 사제들한테 말해서 우리 아빠가 잡혀간거라며?


다만 그림이 움직이는 게 신기했고, 그걸 말했을 뿐이었다.


-진, 그런게 아니야.

-가! 가버려! 다시 오지마! 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진에게 사과하러 찾아 갔었다. 소소하게 다투고 나면 서로 사과하곤 했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인휘 아저씨도, 히르 아저씨도 그렇게 된 줄 몰랐다. 아니, 모른 척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전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경정님.”

“그래, 지시한대로, 소각조는 평소대로 작업하고, 우린 이곳에서 잠복한다.”

“예, 알겠습니다.”


카르는 일스와 함께 저택 뒤편에서 대기하고, 기도와 소각을 맡은 심문관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하인들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비명소리가 났다. 저택이라고는 해도 알 아마스 공과 같이 대귀족이 아니라,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으니, 아마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왜 심문관이 되기로 했던가. 일스 경정 말대로 왜 그때 죽지 않았을까, 왜 다른 일도 아니라 이 걸 하고 있을까. 대기하며 도둑을 기다리던 카르의 마음 속에 끊임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 날 이후에 끊임없이 되새기던 질문들, 부끄러워 차마 말로 꺼낼 수 없는 대답들.


-가! 다시 오지 마! 넌 친구도 뭣도 아니야!


그렇게 외치는 진에게 아무말 못하고 등을 돌려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수도원 사제들과 수도승들은 카르를 칭찬하면서도 의심의 눈을 보냈다. 그 아이와 친구였기에, 혹여나 불경한 것들을 배우지 않았을까 싶어서. 어디에서도 마음 편할 수 없었다.


-아하하!


아무것도 모르는 수도원의 고아들이 뛰어 놀고 그것을 멀찍이 바라만 보았다. 그 아이들을 늘 뒤에 내버려두고 진에게 갔었는데, 혜인에게 갔었는데, 인휘 아저씨에게, 히르 아저씨에게 갔었는데. 이제 갈 곳이 없다.


-카르 오빠 뭐해? 얼른 와! 사람 수 모자라단 말이야!


아이들이 불렀다. 떼쟁이에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이 불렀다. 갈 곳 없던 아이는 그렇게 그들에게 달려갔다. 이제 친구도 아니라고 말 한 아이가 가슴 한편에 늘 걸려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죄를 잊게 해줄 친구들, 형제들이 있는 것이다.


-난 이기적인 사람이 좋아.


일스 경정의 말이 맞았다. 이기적이었다. 친구가 아니라고 선언한 아이는 여전히 친구이고 싶었고, 가족이 없으면서도 형제가 있길 바랬다. 또한,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고아원을 나가야지. 뭘 하겠느냐?


고아원 원장 수도승이 그리 말했을 때, 선택권은 몇 가지 없었다. 이 또한 일스 경정이 옳았다. 죄책감은 잠시 묻어두고, 살고 싶었다. 제대로 사람답게. 고아원을 나간 다른 이들처럼 뒷골목을 전전하는 못난 인생 살고 싶지 않았다.


“소각조가 나오고 있다. 다들 준비해. 곧 나타날 거다.”


정화의식을 맡은 사제가 심문관들과 함께 그림을 들고 나왔다. 카르의 눈에도 그림이 보였다. 작은 그림이었지만, 멀리서도 알아보았다.


“저건……”

“호, 역시 알고 있군.”

“예…….”


카르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일스 경정이 빙그레 웃었다. 인휘 아저씨의 그림이었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 바 없어도, 인휘 아저씨의 그림만큼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모작들이 있어도, 그림 속의 그 따스함만큼은 따라올 수 없었으니까. 카르는 꾹 이를 물었다. 저런 그림들은 남지 않고 태워졌고, 태워 봤다. 그림 같은 거 많이 보고 그렸었다. 인휘아저씨 곁에서. 하지만 그림이 좋은 게 아니었다.


“생명과 창조는 온전히 그 분의 것이며…….”


사제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을 즈음에, 담벼락 위에 그림자가 보였다. 일스가 낮게 외쳤다.


“대마법탄 발사 준비.”


대기조 모두가 허리춤에서 대마법탄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때 퍽 소리와 함께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달리 예고 없이.


“대마법탄 발사!”


일스가 외쳤고 모두가 대마법탄을 던졌다. 안개는 금새 사라졌지만 어느새 도둑은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실례.”

“으악!”


도둑은 사제를 발로 걷어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손에는 그림이 들려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당황한 심문관이 멈칫 하지만,


“뭣들 하나! 발포하라! 추적하라!”


일스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과 사제 근처에 있던 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르 역시 달렸다.


-이단심문소에서 심문관이 부족하다고 한다. 6개월 훈련 후에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겠느냐?


망설였었다. 진은 자신을 친구가 아니라고 했지만, 여전히 멀리서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미쳐버린 아저씨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 제 손으로 그 일을 하고자 한다. 애초에 그림을 좋아한게 아니었다.


-카르 오빠, 고아원 나가서 뭐할거야?


두려움에 떨던 아이가 그리 물었다. 정해지지 않은 듯하지만 너무나도 명확한 미래만이 앞에 있는 아이들.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림 따위를 좋아한게 아니었다. 진이 좋았다. 혜인이 좋았다. 인휘 아저씨가 좋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이 좋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 실수였을 뿐이었던 일이란다. 나 또한 그것 한번 가져보는 욕심이 있단다. 그래서 죽지 않고 여기에 있단다. 똑 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것 한번 가져보고자.


“발포해!”


타탕, 타탕, 총소리가 나지만, 아직 도둑은 달렸다. 어지러운 표적을 맞추는 것은 썩이나 어려운 일, 카르는 멈춰서서 똑바로 도둑의 등을 보았다. 총을 들어 겨누었다. 흔들리고 있는 표적이지만흔들리지 않는 중심.


-탕!


“맞았다!”


도둑이 쓰러졌다. 사람들이 달려갔다. 복면의 도둑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눈이 카르의 눈과 맞았다. 카르는 총을 내렸다. 가지고 싶었다. 그 따뜻함을. 여기에는 없을지라도, 어딘가에 있을 그것을.

도둑이 그를 바라본다. 원망이 담겨있었다. 분노가 담겨있었다.


“안 돼! 막아!”


도둑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일스가 외쳤다. 파팟, 하는 소리와 함께 도둑이 사라졌다.


“어? 어디, 어디에 갔지?”


퍽, 어리둥절하는 심문관 하나를 일스가 발로 찼다.


“멍청한 새끼! 공간이동 마법이다!”

“허! 그런 고급마법을……..”

“젠장, 일이 복잡해졌군.”


일스의 발길이 한번 더 날아가고, 카르는 그녀를 맞추었던 자신의 총을 보았다. 그을음 내가 난다. 그저 가지고 싶었다. 그 따뜻함을.


“찾아! 고급마법이다. 다쳤으니 실현이 완벽하지 않았을 것이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 탐색을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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