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더마냐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문호세대

나는 어느 세대에 속할까 생각해봤더니 나이상으로 문호세대였다.

그리고 다치지 않을만큼만 싸운다는 말... 딱 들어맞는다.

이전 세대가 싸우는 걸 보고 자랐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님을 알고 있고...

딱 대학에 입학하던 해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더는 이전처럼 목소리 높여 민주주의를 외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본 게 있고 들은 게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도 거리에 나가 정부를 향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때의 학생운동의 화두는 쌀 수입 반대였고 국가보안법 철폐였고 미국 반대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만으로 민주주의를 얻었다고 여기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더이상 민주주의를 외치기는 어려웠겠지.

그러나 김영삼씨의 삼당합당은 정말이지... 하, 그도 또한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싸웠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기를 통째로 배반해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바로 김문식이다.


93년, 전세계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우르과이 라운드로 본격적인 발톱을 드러내고 똑똑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이 사회를 어떻게 망치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그 폐해를 경고했다.

농촌사회는 붕괴되고 빈부의 격차는 극심해질 거라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들이 예언한 대로 되었다.

그 당시 고작 스무살이었던 나는 그런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쌀이 수입되면 안된다는 감상적인 이유로 거리에 나갔고, 민주정부가 됐는데도 불합리한 국가보안법이 남아있는 것을 항의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고, 그런 것들을 외쳤다는 이유로 내 친구들이 잡혀가는 것에 분노해서 보도블럭을 깼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편이 아니었다.

방송과 미디어는 학생운동의 과격함과 사상의 불순함을 강조했고... 그것은 학생운동의 족쇄가 되었다.

물론, 학생들 사이에 주사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은 다양하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학생운동을 외면했다.

<힐러> 를 보면서 가슴을 쳤던 게...

내가 그랬었다.

당시 방송국에 쳐들어가서 "진실은 이렇습니다. 방송국은, 신문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정말 해적방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학생운동은 학생들 사이에서마저 고립되었고 시간은 흐르고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 사회인이 되었다.

IMF가 터진 세상은 적자생존의 정글로 변했고 신자유주의는 가속화되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만인을 대상으로 투쟁한다.


문호를 대표하는 나는 90년대 중반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던 것 같다.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지쳤고,

스무살에는 보이지 않던 학생운동 내부의 일그러진 맨얼굴에도 실망했고,

그것이 더 왜곡된 형태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냥 안 보고 안 듣고... 편안해지고 싶었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지고... 나는 냉소했다.

'당신들이 선택한 것이다' 라고...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결과로 그 자녀들까지 고통받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물론 나 또한 고통받고 있지만 나는 받아들였으니까... 제대로 싸우지 못한 내 몫이라고...

그렇지만 이제는 좀 싸웠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일어나 연대하고 쟁취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수퍼맨이나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구원하는 힘은 스스로에게 있다.

'나'는 나약하고 할 수 있는 게 적지만 '우리'가 되면 달라진다.

정후가, 영신이, 문호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지만 '우리' 가 되니까 달랐던 것처럼.


외부에서 흔들어대는 힘에 넘어가지 않고,

신뢰와 의리,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해서 이 세상을 바꾸어나갔으면 좋겠다.  


오늘.. <힐러>

어르신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갈라놓으려 할지,

정후와 영신, 문호는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날지 자못 기대가 된다.


댓글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 쓰기가 제한된 상태입니다.

  • 댓글이 없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9 내 일상 | 와! 깜짝이야!!! 15-10-01
8 내 일상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15-09-14
7 내 일상 | 마음을 울리는 글 15-09-14
6 내 일상 | 사랑이 구원한다 15-09-12
5 내 일상 | 일단 푸념부터 하고... 15-09-07
4 내 일상 | 근황 *2 15-08-20
3 내 일상 | 다만 사랑할 수 있을까요? *1 15-05-28
» 내 일상 | 문호세대 15-02-09
1 내 일상 | 부러운 글 *1 14-12-08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