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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피 님의 서재입니다.

장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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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피
작품등록일 :
2020.08.05 00:57
최근연재일 :
2021.02.04 22:54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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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19,526

작성
21.02.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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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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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화

DUMMY

“끄아아악!”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눈에 칼이 박힌 채 소리를 내는 사냥감은 나 샤젤도 그동안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그가 비명을 지를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들었고, 눈에서 뿜어내는 것은 피가 아닌 붉은 불꽃이었다.


칼이 박혀있어야 할 눈부분은 비어있었다. 정확하게는 해골처럼 뼈만 남아있었다. 그가 신음하며 단검으로부터 얼굴을 떼어놓았다. 구멍이 뚫린 뼈 사이가 점점 피와 근육과 살들로 채워져 간다.


“후우...으... 짝사랑은 아픈 법이죠.”


신음을 참으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까와는 다른 격앙되고, 흔들리며 불안정한 목소리다. 그에 대한 내 첫인상이 맞았다. 그는 자신이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졌었고, 제정신도 아니었다.


“당신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하나 남은 멀쩡한 눈으로, 당황하고 있는 시안을 노려보며 그는 손가락을 접었다가 폈다. 거친 숨을 내빼며 그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시안은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그 정보상인에게 달려들었다. 한 번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대를 어중간하게 살려뒀다가는 보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동시에 나도 석궁을 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갑작스러운 돌풍에 화살이 날아가 버렸다. 아무래도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선 붙어야 할 것 같다. 허리춤의 벨트에서 단검을 뽑았다.


시안의 칼날이 그 놈의 목을 베려고 하자 그는 맨 손으로 그 날을 쥐어 잡았다. 생채기가 났어야 할 루카스의 손에는 얼음덩어리가 박혀있었다. 시안이 팔을 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의 손으로부터 뿌연 김 같은 게 서리더니 칼날이 루카스의 손과 함께 얼어붙었다. 시안은 팔의 장치와 장갑을 벗은 후에야 그 괴물로부터 떨어질 수 있었다.


피부의 재생을 제외하면 불과 얼음은 라바티아의 술사들이 쓰던 사언과 비슷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영창도 하지 않았고, 손에 룬이 그려진 장갑 같은 걸 끼고 있지도 않았다. 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시안이 분하다는 듯이 이를 물고 있는 걸 보니 그도 대책이 따로 없는 듯 보인다. 우선은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가 도망치게 내버려 둘까?


나와 시안은 그 괴물이 공격해 올 타이밍을 재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자세를 흩트리지는 않았다. 루카스의 피부가 거의 다 붙었다. 그는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고 양쪽 눈으로 또렷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나?’ 나는 침을 삼켰다. 시안은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멍청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 거기에 지금 내가 휘말려 버린 거다.


나는 루카스가 금방이라도 이 쪽에 얼음이나 화염구를 던지진 않을까 주시했다. 숲이니까 불을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얼음 파편이 날아올 확률이 높다. 나는 엄폐물 쪽으로 조금씩 발을 움직였다. 아니, 발을 움직이려고 했었다. 시안과 나는 바닥이 신발과 함께 얼어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후, 참 무례한 사람들이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나는 억지로 발을 들어 올리려다가 그대로 엉덩이부터 넘어졌다. 시안은 입으로 욕을 내뱉으며 신발을 벗어버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맨발로 얼어붙은 진흙 위에 서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는 많은 틈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자세를 풀며 그대로 싸움을 종결시켰다. 오히려 등을 보이며 아까 날아갔었던 빵 모자를 주워 먼지를 털었다. 그 후 모자를 머리에 썼다. 싸울 의지 자체가 없는 듯 보였다.


“제 부탁, 들어 주실 거죠?”


의외의 말과 의외의 담담함이었다. 방금 전의 다툼이 잠깐 헛것을 본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처음 봤을 때와 몇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빵모자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과 웃는 얼굴에 짜증이 조금씩 묻어 나왔다는 것이다. 뭐, 눈을 찔리고 살아남은 채 구멍 뚫린 모자를 쓰면 보통 짜증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다. 왠지 우리가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부탁이 뭐지?”


내가 물었다. 한 쪽 눈을 흘겨서 시안을 보았다. 오래 알고 지낸 탓에 그의 표정을 보며 생각을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으며, 틈을 봐 루카스를 죽이고 싶으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분해하고 있다. 나 샤젤도 의미가 없는 석궁을 내려놓았다.


“사람 하나를 좀 구해 주십쇼.”

“사람?”

“예. 계획대로라면 칼디아 지역 쪽으로 갈 겁니다. 어차피 벤디후크에서 멀지 않은 지역입니다. 성에 들르면 늦으실 테니, 칼디아의 모릇타 산을 먼저 들러주세요.”

“그 쪽은 라바티아 영토야. 우릴 유인해서 죽이기 가장 좋은 산이지. 심지어 누님에게 거짓말을 흘려서 나를 죽이려던 놈을 어떻게 믿지?”


시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팔은 내리고 있지만 시안의 칼날은 여전히 밖에 꺼내진 상태다. 루카스도 그 날이 빛나는 것을 보고 있다.


“당신들이 쓸모가 있는 한 아직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전 정보상이자 사업가고, 사업가는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꽤나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루카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그를 쳐다본다. 혹시 시안이 이해 못 했을까봐 구태여 말을 붙였다.


“누구와는 달리 말이죠. 실망이 큽니다.”


루카스는 코웃음을 쳐 보였지만 시안은 이 기 싸움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안이 소매 안쪽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건드리자, 빠져나왔었던 칼날이 소리를 내며 건틀렛 장갑 위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처음에는 우리가 꽤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도 않군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면... 누군가 시켰다는 건가?”


그는 쉽게 이야기가 딴 길로 새는 편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말을 이어 가는 게 습관이 된 걸까? 그러나 말이 많아지면 더 많은 정보를 뱉게 되는 것은 본인이다. 시안은 침착하게 그의 말을 끊으며 본인의 질문을 이어갔고, 루카스가 답했다.


“글쎄요. 고객의 정보에 한해서 저는 입이 무거운 편이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제게 일을 시키시지 않을 테니까요.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고통 앞에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시안은 기가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루카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살아있을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이곳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있을 것을 알았다는 건 몇 시간 일을 전해 들었다는 건데, 그럼 이 근처에도 배신자가 있다는 이야기군.”

“...흠, 그렇게 되나요?”


루카스는 고의인지 실수인지 계속해서 정보를 흘리고 있다. 그 나름대로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리를 이용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다 보니 섣불리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서로 묻는 말에는 다 답해주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대화가 성립한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시안이 물었다.


“왜 직접 하지 않지?”

“저는 여기서 따로 찾는 게 있어서요.”

“그게 뭔데?”

“음,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일을 끝내시면 말씀드리죠. 그것도 보상의 일부라는 느낌으로...”


시안의 일방적인 질문 세례가 끝이 났다. 나는 고용인이었고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듣고 있었다.


“덧붙여서 아직 병사들을 모집하셔도 안 됩니다. 라바티아 군이 몰려오기라도 하면 일이 더 꼬일 테니까요. 그렇다고 믿을만한 용병들을 키예트에서 빼오면, 탐욕스러운 의원들을 감시할 인원과 당신의 사랑하는 누님을 보호해줄 인원이 부족하잖아요.”


시안은 말없이 루카스의 빵모자를 쳐다보고 있다. 모자의 구멍이 아까보다 더 커진 듯한 기분이 든다.


“몰락해가는 나라의 지도자들이란 참 안쓰럽죠. 제가 그 기분 잘 알거든요. 공작씩이나 됐음에도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니. 세상에...”


루카스는 이제, 아까처럼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도 하지 않는다. 시안의 표정이 아까보다도 어두워졌다. 차라리 실연당한 소년의 얼굴이 나았을 것이다. 뭐 자업자득이지만.


“자,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목적지에 가보시면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보상을 얻으십쇼. 아! 길은 나무에 표시를 해뒀습니다. x자로 칼집을 내놓은 나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시면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죠.”


시안은 입 안쪽으로부터 자기 입술을 씹으며 짐을 챙겼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오늘은 아마 그에게 있어 최악의 날이었을 것이다.


“성에는 들르지 말고 가십쇼. 모릇타 선까지 직선으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시간이 맞을 겁니다.”


모릇타 산이라고 했던가. 어차피 벤디후크를 가로지르긴 하지만 미묘하게 성과는 떨어진 위치에 있다. 몰래 들러서 정비하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루카스의 정보력을 보니 그러지도 못할 것 같다.


애초에 우리가 이 자리만 벗어난 뒤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안이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애새끼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다음 목적지는 모릇타 산으로 결정된 것 같다.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이상한 녀석이다. 나는 진즉에 했어야 할 근본적 질문을 해보았다.


“너는, 대체 뭐지. 아군인가?”

“질문이 많은 걸 보니 두 분 다 거짓말쟁이의 말을 꽤나 신용하시나 보군요.”


그가 밝은 얼굴로 내게 미소를 짓는다. 확실히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거짓말로 연명하는 그에게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대화에서 말을 많이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시안은 이미 짐을 챙겨 멀리서 걷고 있었다. 나도 등을 돌려 그를 따라갔고, 루카스는 이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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