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04.06 16:15
최근연재일 :
2022.05.29 21:25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96,535
추천수 :
5,234
글자수 :
328,730

작성
22.05.18 21:25
조회
2,928
추천
84
글자
12쪽

히든 페이즈 (4)

DUMMY

46.


“지금 뭐라고?”


김우영은 벙찐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도통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걸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 남자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혜성처럼 나타난 길드 ‘유성’의 인원이자, 오래전 심사를 담당했었던 F급 헌터.


‘그러니까 고작 F급 헌터가 내 말을 무시했다는 건가?’


그는 미간을 구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몹시 불쾌했지만 가능한 한 친절을 담아 말해주기로 했다.


“제 설명이 부족했나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린 여기에 캠프를 지을 겁니다. 이건 모두에게 강제되는······.”

“귀가 안 좋으신가.”


한지혁은 혀를 차며 대꾸했다.


“우린 연합에서 빠질 겁니다. 그러니 신경 끄고 할 일 하시라고요.”


한지혁은 더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 앞을 샛별의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길을 막아섰다. 김우영이 말했다.


“뭘 믿고 나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시죠. 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쪽이야 말로 실수하지 마시죠.”

“하, 내가 왜 당신 따위랑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차유라 헌터는 가만히 계실 겁니까?”


돌연 시선을 받은 차유라는 멋쩍게 머리를 긁더니 한지혁을 향해 물었다.


“꼭 가야하는 거죠?”

“뭘 물어. 짐이나 챙겨.”

“끙······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차유라는 호다닥 펼쳐졌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김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한숨을 푹 내쉰 김우영은 서슬 퍼런 시선을 더더욱 날카롭게 치켜떴다.


“미리 경고하죠. 지시에 불응한다면 무력으로 대응할 겁니다.”

“글쎄요. 저도 싸우고 싶진 않는데요. 시키는 건 또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지라······.”


차유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스터가 결정한 일인데 일개 길드원이 뭘 어쩌겠나요. 그러니 저한테 뭐라 하지 마시고 아저씨한테 직접 따지세요.”

“아저씨라뇨? 그게 무슨······?”


어벙한 눈으로 시선을 돌린 김우영을 향해 한지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도 경고 하나 하죠.”

“?”

“무력을 쓰든 뭘 하든 싸울 거라면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할 겁니다. 그럴 목적이라면······ 네, 어디 한 번 막아보세요.”


그들 사이로 다시금 싸늘한 정적이 휘감겨 침만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김우영을 비롯한 샛별은 별 수 없이 한지혁 일행을 놓아줘야만 했다.


‘전력의 누수를 걱정한다면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일 수는 없을 테니까.’


대신 그는 으름장을 냈다.


“분명 후회할 겁니다. 나중에 원망해도 저흰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요.”

“네, 그러세요.”

“해오름 길드를 적대한 것도 후회하게 될 겁니다. 당신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진짜 혓바닥이 긴 양반이네.”


몇 번이고 거듭 설득하고자 말을 거는 김우영을 보며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생각인지, 혹은 어떤 확신을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저의가 수상했다.


‘저 정도로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그는 전력의 누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로 다른 길드를 억압하고 있었다.

해오름 길드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무력행사라도 하겠다는 늬앙스까지 뿜어냈다.

그래, 거기까진 이해한다.


‘고작 우리 세 명을 붙잡겠다고 저리 길게 늘어지는 이유는······ 흐음.’


한지혁은 상념을 벗어던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개 속으로 들어섰다.

김우영의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당장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지극히 단순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요. 망자의 미궁은 결코 쉬운 던전이 아니니까.”


한지혁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이곳의 공략법은 단순합니다.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네?”

“정확하게는 해야 할 일을 빼고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해야 할 일?”


그리고 천천히 검을 뽑아들더니 정면의 안개를 단칼에 베어내면서 말했다.


“사냥.”


허공을 가로지르던 화살촉이 부러지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앞의 안개가 확 걷어지면서 건너편의 흑색 돌로 이루어진 탑이 나타났다.

첨탑 위로는 스켈레톤 궁수가 활시위를 당겼고, 열린 성문 사이로 말 탄 스켈레톤이 포효했다.

스켈레톤 나이트라 불리는 놈이었다.


“이곳에선 사냥만이 유일한 정답이거든요.”


바로 뛰어든 한지혁이 스켈레톤 나이트의 몸통을 갈라냈다.

이윽고 차유라도 불꽃을 쏟아내면서 첨탑 위의 스켈레톤 궁수를 직격시켰다.


“힐!”


거기다 신성 마법 계열인 ‘힐’은 언데드에게 꽤 치명적인 기술이 되었다.

김요한도 나름 전장을 뛰어다니며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준 것이다.


‘단순 힐만으로는 C급인지라 치명타는 먹일 정도는 못 된다 해도······.’


후추딜은 꾸준하게 들어갔다.


흐윽, 흑흑흑!


한편 한지혁은 흑색탑 구석에서 서글프게 울고 있던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쯤은 투명해진 그녀의 얼굴엔 눈 쪽이 새카맣게 파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밴시야. 물리 공격은 안 통해.”

“저한테 맡겨주세요!”


차유라가 빠르게 다가서자 밴시가 고개를 바짝 들고 소리를 내질렀다. 밴시의 주변으로부터 서리가 휘몰아치고 땅이나 벽면이 얼어붙었다.


끼아아아악!


하지만 화력을 올린 차유라의 불꽃을 감당해낼 정도는 못 되었다. 불꽃에 휘감긴 밴시는 비명을 연신 질러대다 허무한 울음과 함께 흩어졌다.

메시지는 바로 떠올랐다.


[‘망자의 탑’을 정화했습니다.]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허공에서 빛 무리가 일더니 각자의 앞으로 대략 세 개의 상자가 나타났다.

좌측부터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으로 구별되는 색감의 상자들.


“마, 만져도 되는 거예요?”

“괜찮아. 이걸 얻으려고 사냥한 거니까. 대신 보라색 상자를 열어.”

“보라색······ 알겠어요.”


일행은 천천히 상자의 뚜껑을 열어 그 보상을 각자의 손에 쥘 수 있었다.

한지혁이 얻은 건 피 묻은 단검이었다.


“꽝이네.”


뒤이어 김요한은 찢어진 드레스를 얻었고, 차유라는 허름한 코르셋을 확인했다.

죄다 꽝이었다.


“가자, 시간이 없어.”

“어······ 네!”


한지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망자의 탑을 빠져나와 다시 안개로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안개를 헤치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사방에 움막이 세워진 어느 마을이었다.


키아아아앗!


그리고 그들을 반겨주는 건 눈에 혈안이 된 채로 침을 뚝뚝 흘리는 수십 마리의 구울 떼.


“차유라, 전부 불태워버려!”


쏘아진 차유라의 불꽃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구울 떼를 통으로 불태웠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한 마리의 구울은 사이한 울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이는 한지혁의 몫이었다.


스거어어억!


순식간에 그 목을 베어내자 이번에도 일행의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구울의 군락’을 정화했습니다.]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보라색 상자를 선택한 한지혁은 다시금 그 내용물을 공유했다.


“이번에도 꽝이야.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이후로도 안개를 거쳐 다른 구역을 공략하기를 서너 번은 더 반복해야 했다.

좀비를 상대로 싸우기도 했고, 스켈레톤 혹은 밴시를 또 쓰러트리기도 했다.

사냥과 보상 획득의 연속.

같은 방식으로 몇 번을 더 사냥하고 나서야 한지혁은 원하던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차유라가 다급히 외쳤다.


“떠, 떴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김요한과 한지혁의 보라색 상자는 꽝꽝 소리만 들려왔다.


“······바로 이동할까요?”


차유라의 말에 한지혁은 어스름한 달을 올려다보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네? 하지만 얻은 건 하나뿐인데.”

“오늘은 그걸로 어떻게든 될 거야.”


한지혁은 주변을 적당히 물색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냈다.

그리고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려던 김요한을 제지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네? 하지만······.”

“별 수 없어요. 이곳에선 쉬는 것도 사치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김요한이었지만 그는 일단 말을 잘 따라줬다.


“유라야, 너도 그건 집어넣고 가만히 있어.”

“네? 밥도 못 먹어요?”

“미안한데 여긴 그래. 먹어서도, 마셔서도, 또 자서도 안 되거든.”


황당한 요구조건에 차유라는 시무룩한 얼굴로 육포를 가방에 넣었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김요한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굉장히 악랄한 곳이군요.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 하는 곳이라······.”

“나름 합리적이기도 해요. 안 먹어도 안 죽고, 안 자도 살 수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욕구는 그대로잖아요.”


이는 망자의 미궁이 유난히 어려운 던전으로 분류되는 이유였다.


‘배는 고파도 먹어선 안 돼. 목이 말라도 마셔선 안 돼. 아무리 졸려도 잠 들어선 안 돼.’


“우린 여기서 사냥을 하고 보상을 얻는 것만이 허락된 겁니다. 그걸 명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김요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시선을 돌려 안개가 펼쳐진 수풀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다른 헌터들은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들은 ‘이 정보’를 아직 모르잖아요.”


한지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겁니까? 우리가 당장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건 그렇지만.”

“정신 차려요. 우리가 실패하면 그들은 진짜로 전멸하고 마는 꼴이 될 수도 있어요.”


시간은 흘러 하늘에 뜬 달에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질 즈음이라 할 것이다.

한지혁이 말했다.


“차유라, 아까 그거 줘 봐.”


차유라는 가방에서 허름한 망토를 꺼내어 한지혁에게 건네었다. 썩은 내가 나는 물건이었지만 한지혁은 거침없이 망토를 일행과 함께 덮어쓸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누더기 망토’를 착용합니다.]

[당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집니다.]


다만 크기가 크질 않아서 세명이 부둥켜안아야만 겨우 덮어쓸 수 있는 정도였다.


“오늘은 이렇게 버텨. 어쩔 수 없어.”

“으으······ 네.”


세 사람이 거지꼴로 누더기 망토를 눌러쓴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스스스슷.


한지혁은 안개 근처를 지나가는 수상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기다란 낫을 쥐고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림 리퍼(The Grim Reaper).’


직역하자면 ‘저승사자’란 이름을 가진, 망자의 미궁 특유의 몬스터였다.


‘······왔군.’


그림 리퍼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슬슬 걸어와 이쪽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몇 번이고 허공에 낫을 휘둘러보고 머리를 갸웃하면서 입김을 내뱉었다.

다행히 녀석은 누더기 망토를 뒤집어 쓴 일행을 발견할 수 없는 듯했다.


-그으으······.


기이한 신음을 흘린 녀석이 낫을 질질 끌면서 멀어져갔다.

안개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호흡마저 조심하던 차유라가 물었다.


“저, 저게 대체 뭐예요?”


차유라의 몸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실제로 귀신을 본 것이나 다름없긴 했으나, 그 반응은 새삼스럽긴 했다.

오늘날 A급 헌터로 분류될 정도로 강자가 된 차유라가 싸우기도 전에 몸을 떤 꼴이니까.


“그림 리퍼, 말 그대로 사신인데······ 여기서는 세계관 최강자나 다름없어.”

“어떻게 저런 존재가 25층에 있을 수 있죠? A급 몬스터도 저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지. 정상적이진 않지. 다만 미궁의 특징이 그래.”


한지혁은 말없이 안개 너머로 사라진 그림 리퍼의 뒷모습을 쫓았다.

녀석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너무나도 빤한 일이었다.


[‘망자의 미궁’의 첫 날이 지났습니다.]

[‘그림 리퍼’가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10명의 ‘망자’가 수거되었습니다.]


다시 떠오른 달빛 아래로 일행의 시야를 잠식한 어느 메시지의 행렬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알고 보니 검술 천재였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1 22.05.30 585 0 -
57 예정에는 없던 일 (6) +3 22.05.29 1,450 54 13쪽
56 예정에는 없던 일 (5) +4 22.05.28 1,631 50 13쪽
55 예정에는 없던 일 (4) +3 22.05.27 1,774 54 13쪽
54 예정에는 없던 일 (3) +3 22.05.26 1,838 63 12쪽
53 예정에는 없던 일 (2) +2 22.05.25 1,978 66 12쪽
52 예정에는 없던 일 +6 22.05.24 2,100 69 12쪽
51 망령 감옥 (4) +11 22.05.23 2,219 71 13쪽
50 망령 감옥 (3) +8 22.05.22 2,328 72 12쪽
49 망령 감옥 (2) +2 22.05.21 2,528 70 13쪽
48 망령 감옥 +3 22.05.20 2,670 77 12쪽
47 히든 페이즈 (5) +2 22.05.19 2,834 82 13쪽
» 히든 페이즈 (4) +3 22.05.18 2,929 84 12쪽
45 히든 페이즈 (3) +4 22.05.17 3,097 85 12쪽
44 히든 페이즈 (2) +3 22.05.16 3,252 81 13쪽
43 히든 페이즈 +2 22.05.15 3,563 90 12쪽
42 야시장 (4) +3 22.05.14 3,699 91 13쪽
41 야시장 (3) +3 22.05.13 3,681 88 13쪽
40 야시장 (2) +2 22.05.12 3,805 85 13쪽
39 야시장 +3 22.05.11 4,034 88 13쪽
38 데뷔전 (7) +4 22.05.10 4,274 90 13쪽
37 데뷔전 (6) +6 22.05.09 4,182 96 13쪽
36 데뷔전 (5) +5 22.05.08 4,271 88 12쪽
35 데뷔전 (4) +3 22.05.07 4,326 94 13쪽
34 데뷔전 (3) +5 22.05.06 4,476 86 13쪽
33 데뷔전 (2) +5 22.05.05 4,639 90 13쪽
32 데뷔전 +3 22.05.04 4,876 92 13쪽
31 말했잖아, 혹독할 거라고 (2) +4 22.05.03 5,007 89 13쪽
30 말했잖아, 혹독할 거라고 +2 22.05.02 5,115 97 13쪽
29 두 번째 재앙 (6) +3 22.05.01 5,198 9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