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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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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작품등록일 :
2020.06.10 09:42
최근연재일 :
2020.06.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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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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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손에 쥔 쪽빛 동전들을 악력으로 쥐어짰다.

교단의 방사선 정화기술을 쏟아 부어 창조해낸 정화코인 무더기가 그의 손아귀 속에서 일그러지며 허공에 녹아들었다.


“······별 도움은 안 되는군.”


주변의 방사성 독기가 조금 옅어지는 기미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신체의 피폭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한 번 몸속으로 침투한 독기는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화코인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짓거리였다.


이곳이 괜히 독기의 골짜기라는 악명 높은 지명을 지니게 된 게 아니었다.

이곳의 사람들도 괜히 ‘독에 찌든 인간들’, 독인이라 불리게 된 게 아니었다.

그만큼 지독한 독안개가 골짜기를 감싸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시력을 지닌 마스터마저도 앞길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

그가 ‘마을로 가자’는 독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했다.

정화교의 여사제 또한 말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골짜기 내부 지형이나 길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다.

심지어 황녀가 골짜기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오리무중인 상황.

무작정 소녀를 찾아 이 불쾌한 골짜기를 뒤지는 것보다는 현지 독인들의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이 될 터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저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줘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그건 독인들의 마을이라는 장소에 도착한 후, 놈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난 뒤에 판단할 문제다.’


설사 함정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고작해야 독기에 찌든 돌연변이 식인종 야만인들의 마을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이쪽 파티는 일시적 동맹관계라고는 하나, 부상당한 소드마스터와 신체 온전한 정화교의 괴물 같은 전투사제가 힘을 합치고 있었다.

그 어떤 수작을 부린다 해도 대처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나 했건만······정말로 수작을 부릴 줄이야.’


마스터의 고요한 푸른 눈 위로 서릿발 같은 냉기가 스쳐 지나갔다.

인근을 뒤덮고 있는 그물망 같은 기감 속으로 웅크린 채 잠복하고 있는 독인들의 무리가 느껴졌다.

5인조, 명백히 이쪽을 노린 채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길을 인도하고 있는 두 독인들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매복한 지역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는 기색이다.

온통 부풀고 뒤틀려 표정을 확인하기 어려운 낯이었으나, 그래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챌 수 있었다.

저 낮은 수준의 지능으로 연기를 시도하는 것일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 야만인들 사이에서도 자기들 나름의 세력 다툼이 있는 모양이군. 흥미로운데.’


애초에 이쪽이 아니라 저 독인들을 노리고 매복한 또 다른 독인들의 무리였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세력 간의 싸움이 꽤나 치열한 것 같았다.

이러면 저들이 무엇을 요구하려 들지도 대략 감이 온다.


제국의 무력뿐 아니라 정치적 면에서의 1인자이기도 한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뒤따라오던 정화교 여사제에게도 가만히 있으라는 수신호를 보낸 뒤, 앞으로 나서는 독인 길잡이들을 지켜본다.


스스스슥-


이내 수풀 속에서 비대한 덩치를 지닌 독인들이 튀어나와 길잡이들을 순식간에 포위했다.

다섯과 둘의 싸움.

심지어, 두 독인들은 난쟁이처럼 체고가 작고 구부정한 것에 비해 새로 나타난 다섯 독인들은 훨씬 체격이 좋았다.

숫자에서도 밀릴 뿐 아니라, 무력의 질에서까지 밀린다.


일순 당황한 기색의 두 독인들이 뒤를 돌아보며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왜 거기에 있냐! 도와 달라!”

“나 너 도움 필요하다! 도와주면 나 너 돕는다!”


마스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그건 봐야 알겠지.”


그는 느긋한 발놀림으로 양측 독인들 무리가 대치하고 있는 중앙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덩치 큰 독인들의 대장 격인 듯한 살과 고름으로 뒤룩뒤룩 찐 돼지 독인이 앞으로 나섰다.


“골짜기 바깥사람? 끼어들면 죽는다. 우리, 배고프다.”



살벌한 협박이었으나,

제국제일검이 그따위 언사에 겁먹을 리는 없었다.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주춤하는 기색 하나 없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싸움을 벌이기 직전이었던 두 독인 무리들 사이의 위치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본래대로라면 저런 건방진 외부인 따위는 당장에라도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하지만, 그가 발하는 기묘한 압박감에 독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칫하던 차였다.


마스터는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설명할 기회를 주지. 저건 뭐 하는 놈들이냐?”


길잡이 역을 하던 두 독인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기죽은 표정을 하고 있던 그들은 골짜기 바깥에서 온 강력한 검사가 도와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화색이 되어 마구 떠들어댔다.


“나쁜, 나쁜 놈들!”

“개미잡이 마을에서 온 개-자식들이다!”

“개미잡이 마을?”


아무래도 독인들의 마을이 한 곳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흥미롭다는 듯 반문하자 덩치 작은 독인들은 술술 털어놓았다.


“우리는 벌잡이 마을! 말벌 잡는다, 먹는다. 그런데 개미들이 너무 많아졌다! 우리, 먹을 거 없다. 대신 개미잡이들, 기세등등하다. 배불러한다!”

“개미잡이들 아주 못-됐다! 우리 괴롭힌다! 약탈하고, 여자들을 데려간다. 혼내줘야 한다!”


파빌리안 스트라우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쪽은 전형적인 힘세고 나쁜 놈들이고, 너희는 그런 저쪽한테 괴롭힘 당하는 약하고 불쌍한 놈들이군.”

“맞다! 우리 불쌍하다! 도와 달라!”

“개미잡이들 나쁘다! 잡아먹어야 한다!”


왜소한 체격의 독인들이 두 외부인들의 힘을 등에 업고 무어라 열기에 띈 함성을 내지르려던 찰나였다.


서걱.


검붉은 빛살이 스쳐 지나갔다.

섬전과도 같은 발도 이후 태양수호자를 회수한 제국의 섭정공은 짧게 내뱉었다.


“힘세고 나쁜 놈들과 약하고 불쌍한 놈들 중에서 편을 고르라면······.”


바닥에는 난쟁이 독인들의 머리통 두 개가 나란히 떨어진 채, 눈을 부릅뜨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섭정공은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당연히 더 힘세고 나쁜 쪽을 택해야지.”


세력이 강성한 쪽을 돕는 것이 훨씬 편할 뿐더러, 보상을 얻기도 쉽다.

당연한 정치政治의 순리였다.


그리 말하는 섭정공의 뒷모습을 정화교의 여사제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가슴에 구멍 뚫린 마법사는,

난쟁이들의 마을을 보고 있었다.


키 작고 왜소한 독인들의 마을, 벌잡이들의 마을.

다만 그가 알던 것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5년 만인데, 많이도 바뀌었군.’


과거에는 개미잡이 마을과 함께 독기의 골짜기를 양분하던 강성한 독인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배고프고 지친, 시시각각으로 칼날 개미와 개미잡이 독인들의 습격을 받는 패잔병들의 무리에 불과해 보였다.

어딘가 뒤틀리거나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을지언정 활기찼던 마을은 음산한 식인귀들의 소굴로 변해 버렸다.

젊은 여인들도, 어린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사가 묵묵히 무너져가는 마을의 경관을 바라보던 때였다.


“그쪽이 필시, 마을을 개미들로부터 지켜준 구원자이시겠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인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잡이 마을의 장로, 구움-바라гупм-варьа라 합니다.”


독인이었다.

유논은 여인의 피부에 돋아 있는 푸른빛의 핏줄과, 뜯어고친 태가 역력한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분명 독인임에도 불구하고, 덜 흉측하게, 덜 독인답게 보이기 위해 피부의 종기나 고름들을 전부 갈아엎고 전신을 개조하다시피 한 흔적이 엿보였다.

게다가 말투도 독인 특유의 더듬대며 생각나는 대로 마구 내뱉는 식이 아니라, 문명인의 언어습관을 갖추고 있었다.


독기의 골짜기, 벌잡이 계파 독인들의 수장이 이런 인물일 줄이야.

겉모습만 보아도 범인은 아닌 듯 싶었다.


마법사는 던지는 투로 말했다.


“그새 마을의 장로가 바뀌었나 보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5년 전에 벌잡이들의 수장은 그쪽이 아니었거든. 훨씬 독인답게 생겼고, 독인답게 굴던 영감이었지.”


‘그에 비하면 너는 별로 독인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정체가 뭐냐.’ 라 돌려 묻는 유논의 말에, 여인은 태연히 대답했다.


“아. 그분은 개미잡이들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셨습니다. 지금은 제가 뒤를 이었죠.”

“흠, 그런가.”


유논은 참으로 애석해하며 말했다.


“괜찮은 영감이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강철 말벌들의 내장을 이용한 요리를 별미라며 참 좋아하곤 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인육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말벌 요리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죠.”

“······.”


유논이 기억하던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여인, 구움-바라는 잘 꾸며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를 시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구원자시여. 저는 진정으로 이 마을의 장로가 맞습니다.”


유논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보아하니 ‘진짜’가 맞긴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누가 너희들의 구원자지?”

“그야 당신께서······.”

“나는 너희들을 구원해준다고 말한 적 없는데.”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논은 순식간에 급변하는 주위의 날선 분위기를 느끼며 허공의 끝자락을 매만졌다.


“네놈들 마을을 대신 지켜준 사람에 대한 대접이 아주 시원찮군 그래······.”

“우리 마을의 형편도 지금 영 시원치 않아서 말이죠.”


이전까지의 부드럽고 공손한 모습은 전부 거짓이었다는 듯, 표독스러운 낯으로 쏘아보는 여인의 모습에 마법사는 옅게 웃었다.




* * *




“말도 안 돼······.”


소년은 탄성을 내뱉었다.

불가해의 영역에 속한 광경의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형편없는, 미숙한 솜씨로 싸우던 소녀였다.

곧장 달려들어 급소에 칼을 찔러 넣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독인들의 급소는 정상인들의 그것과 다르다.

오히려 범인들에게는 취약한 부위인 명치나 머리, 목 같은 부위들은 두터운 푸른 종기들로 뒤덮여 있어 단번에 큰 타격을 입히기가 어려웠다.


그랬기에 당연히도 독인들은 잠시 움찔했을 뿐 곧이어 겁 없이 달려든 여자아이-그 더없이 야들야들한 속살의 사냥감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이내 다섯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소녀는 일 대 다의 전투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공격들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뒤쪽으로 계속 밀려나고만 있었다.

그렇게 처참하게 밀리다가, 어느새 골짜기의 암반에까지 닿았고,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곧 다가올 소녀의 죽음을 더는 의심할 수가 없었던 바로 그 순간.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주억인 소녀가 몸을 낮춰 독인들의 다리 사이로 굴러 빠져나왔다.

민첩하게 자리를 벗어나며 병정개미의 칼날로 연달아 독인들의 가랑이 사이를 쑤신다.

생식기가 터진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의 몸에 여러 번 칼집을 내 안식을 선사한 뒤, 남은 이들을 노려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그저 압도적이었다.

사실 그가 제대로 본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아직 여럿 남아 있는 독인들을 칼놀림으로 떨쳐내고, 무어라 중얼거리며 손끝을 움직였더니 그 속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분명 크기도 작았고, 사람을 불태우기에도 부족한 불꽃이었으나 독인들을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악마의 불덩어리가 가랑이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움찔하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마법의 불꽃과 악랄한 칼부림에 짓눌린 독인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느새 소녀는 다시 돌아와 그와 마주보고 있었다.

독인들의 푸른 고름덩어리와 더러운 핏물들을 뒤집어쓴 모양새로 말한다.


“내가 뭐랬어, 다 죽여 버리고 온댔지?”


허세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곧 벌어질 일을 말한 것에 불과했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너···도대체 정체가 뭐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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