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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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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5,336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0.12.28 20:05
조회
811
추천
40
글자
18쪽

유논(4)

DUMMY

「······.」


···

···

···

···

···

···


「오랜만에 일지를 다시 손에 쥔다.」


「한 1년만인가. 체감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이 지난 것만 같다.」


「일지를 다시 쓰지 않으려 했지만, 지구에 도착했으니 이제 실험과 연구는 끝났다 생각하여 일지를 폐기하려고 했지만···그러지 못했다.」


「그간 내 곁을 함께했던 이 일지에 정이라도 든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일지에 꼭 일과를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 따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아무래도 내가 본능적으로 나의 연구가 아직 온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지를 버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지구에 도착했다.」


「내가 알던 그곳 푸른 별이 확실했다. 바다나 땅 속, 혹은 사막이나 정글 같은 곳으로 이동될 가능성도 엄두에 두고 있었으나, 소년이 납치된 곳의 차원 좌표가 한국의 서울이어서 그런지 약간의 오차가 있을지언정 한반도 땅 위에 떨어지게 되었다.」


「외딴 교외 지역에 나를 도약시킨 게이트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회수하려 했으나, 이미 한계에 도달한 차원문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탓일까. 열쇠를 써 보아도 먹통이다. 그대로 차원 간 통로를 연결한 채 문이 닫히지도, 위치를 옮길 수도 없게 되었다.」


「완벽히 고장이 나 버린 게이트, 지구와 환상세계 사이에 고정되어 버린 차원 굴곡 통로를 저대로 가만히 놔두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이미 게이트는 내가 제작했으되, 나의 역량을 뛰어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함부로 통로를 닫으려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구로 넘어왔어도 여전히, 나의 두 번째 고향인 환상세계와의 연결점이 남아 있게 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게이트를 조종하거나 열고 닫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아쉬워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지구와 환상세계 양쪽을 오갈 수 있게 되었거늘, 이 외에 무슨 기능이 더 필요하겠는가.」


「약한 수준의 흑색마법을 펼쳐 사람들이 이 근처를 인식하지도,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끔 결계를 만들어 놓았다.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내 마법이 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로 약해졌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다. 환상세계에서조차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 수준이 아닌 이상 눈치도 채지 못할 마법이었다. 지구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내 고향 사람들이 공간 단계에서의 은폐를 어떻게 알아차리겠는가?」


「그렇게 게이트를 감추고 나서, 인근의 도시로 이동했다.」


「내가 살던 당시의 정확한 년도가 기억나지 않아 확실하게는 알 수 없지만, 기술의 발달이나 주위 풍경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것은 같았다.」


「그래도 수 세기 수준이 아니라, 고작 몇십 년 수준의 차이로 그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 후로 몇 달간은 지구인으로서의 나 자신에게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신분증을 만들었고, 돈을 벌었으며, 몇몇 사람들과 친분을 다졌고, 고향에서의 여가와 식생활을 다시금 경험하기도 했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나는 내 고향에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돌아왔다. 내가 환상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충족감, 어딘가가 텅 비어 있는 느낌,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고향으로 돌아오면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도. 행복으로 가는 길은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 앞에 주어진 최대의 난제, 내 일생의 연구 대상이었다. 나 자신의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갈구할 수 있는 모든 욕구가 만족되어있는 상태? 그게 가능키나 하나?」


「그도 아니면 뇌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화학 작용에 불과한 것인가? 인위적으로 행복함을 촉진시키고 쾌감 중추를 자극하는 호르몬들을 내 뇌 속에서 생산하도록 명령한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이 생명체의 번식과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각인된 유인의 감정과 본능이라면, 나는 어째서 생존에 위험을 느낄 까닭이 없는 영생자인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행복을 갈구하지만 번식행위에는 욕정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행복의 기준, 그리고 불행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그리고 또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내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를 알려줄 수 있는 그런 기준선 말이다.」


「돈은 의미가 없었다. 당장 환상세계에서만 해도 나는 썩어 넘치도록 많은 재화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전부를 게이트 연구에 쏟아 붓고 나서도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돈은 나에게 행복의 기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권력을 원했다면 진즉에 환상세계에서 혁명국가의 제왕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마법사로 군림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평범한 것들 말고, 이곳 고향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행복의 길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환상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것들, 내가 고향에 대해 그리워했던 것들 중 하나인 안락한 문명은 어떨까.」


「확실히 편리하고, 또 중독성 짙기는 했다. 버튼만 물러도 배설물이 내려가는 변기와 푹신한 침대, 광활한 인터넷의 세계와 여러 가지 오락시설들. 거기다 시원한 탄산음료까지.」


「그러나 그 또한 다른 곳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던 것들이었다. 환상세계에서는 아니었을지언정, 수많은 차원들을 유람하며 들른 과학기술 발달한 문명들만 여러 곳이다. 그곳의 기술은 지구의 것보다 훨씬 안락하고 또 자극적이었다.」


「그러므로 지구에, 이 고향 땅에 내 행복이 묻혀 있다면, 고작 그 알량한 기술력만으로는 그것을 파헤칠 수 없을 터였다.」


「식문화는 어떨까. 확실히, 지구에 살던 시절의 나는 고향 땅의 음식보다 이국 요리를 좋아하는 취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맛보는 고향의 음식은 감동적이었다.」


「한동안 여러 고향 땅의 음식들을 탐닉하듯 먹었으나, 이것은 결국 일시적인 행복의 조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고향에서만 이룰 수 있는 종류의 행복도 아니었다.」


「과거에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른 세계에 떨어졌으니 고향 음식에 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지금 당장에라도 여러 요리들의 레시피를 배우고 식재료들을 공간의 틈새에 보존해 놓는다면,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환상세계에서 고향의 식문화를 즐길 수 있다.」


「요리에 투자되는 기술과 재료, 시간이 동일하다면 그 장소가 환상세계건 아니건 간에 맛도, 의미도 변할 리 없다.」


「결국 음식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바, 내가 찾던 영구적이고 또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이 아니었다.」


「마약이나 도박, 성교와 같은 저급한 종류의 쾌락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언급할 가치도 없고, 다른 활동들도 나에게 그다지 인상 깊은 자극을 선사하지 못했다.」


「스릴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들은 용병이나 기사 시절 전장에서 느꼈던 긴장에 훨씬 못 미쳤고, 학문 탐구의 열정이라면 나에게는 이미 마법이라는 영역이 있었다. 세계 각국의 관광지들 또한 환상세계에서는 훨씬 장엄하고 웅장한 장소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지구에 있어야 할 이유를, 고향 땅 어딘가 숨겨져 있을 거라 믿었던 행복의 근간을 찾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던 때였다.」


「문득 잊고 있었던 고향에서의 내 뿌리가 떠올렸다.」


「가족.」


「이제는 처음 지구를 떠난 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나, 막연한 그리움만을 안을 뿐, 정작 스스로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몰랐던 나.」


「어쩌면 나는 남들처럼 단순히 가족을 그리워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을 찾았다.」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정확히는, 그들의 유골이 남아 있을 납골당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들의 이름과 겉모습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시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 실종 처리된 과거 나의 신상정보와 가족관계를 확인하자 곧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빽빽한 격자 형태의 캐비닛들, 그리고 그 속에 비좁게 들어차 있는 재를 담은 항아리.」


「나는 그 항아리에서도, 속에 있는 재에서도, 옆의 기울어진 사진에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애정도, 상실감도, 행복함도. 무엇도 없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전혀 가족 같지 않았다.」


「그저 내가 실종된 지 37년이 지났다 했으니, 확실히 저들이 죽을 만큼의 시간이 흐르기는 했구나─싶은 정도의 감상만 들 뿐이었다.」


「눈에 한 방울 습기조차 차지 않았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게 되어버린 옛 가족을 위해 눈물 흘리기에는 이미 그들과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는 데이터에 적혀 있는 내 동생. 여동생의 현 거주지로 향했다.」


「공중주택, 아파트였다.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정확히 동생이 거주하는 층으로 공간을 치환할 수 있었으나, 지구인답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하층에서 올라온 엘리베이터 안에는 중년 여인이 타고 있었다. 버튼을 누르려고 찾아보았다. 17층. 여동생의 거주지. 이미 눌러져 있었다.」


「절로 눈길이 올라갔다. 무감정한 눈빛이 중년 여인을 훑자 무얼 쳐다보냐는 듯 건방진 어린놈을 대하는 시선이 돌아왔다. 나는 반응 없이 고개를 돌려 문 닫는 버튼을 눌렀다.」


「17층에 도착했고, 중년 여인은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나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도망치듯 들어갔다. 내가 웬 범죄자는 아닐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1704호. 여동생의 거주지라 적혀 있던 바로 그 주소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나이 든 여동생의 낯을 알아보지 못했고, 여동생도 실종되었을 적 그대로인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서로에게서 혈육의 정이나 익숙한 느낌을 받기는커녕, 여동생은 나를 수상한 사람으로 여겨 경계하기까지 했다.」


「이미 가족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관계였다.」


「직접 마주치고 나서야 알아차린 바, 내 행복의 끈은 가족들에게 있지 않았다. 어쩌면 이 행성에 그 실마리가 존재하는지조차 이제는 의문이다.」


「···이만 글을 줄여야겠다.」


···

···

···


「지난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을 장악했던 것은 지구로 오기 전보다 더욱 심해진 무기력함과 우울증이었다.」


「나와 같은 초인, 그것도 정신과 육체 모두 수천 년에 달하는 시공간의 괴리를 버텨냈을 정도로 강건한 대마법사가 우울증에 걸릴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지구인다운 행동이라 여겨 정신과에 들러보았더니 경도 우울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뿐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모든 것을 죽이는 세월의 풍파도, 육체의 괴로움도 아니었다. 목적의 상실이었다.」


「차원을 방랑할 때도, 시공간의 변곡점에 갇혀 있었을 때도, 나에게는 지구로 돌아간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가끔은 길을 헤매거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절망에 빠지는 일이 있어도 결국 버텨내었고, 끝까지 왔다. 그러나 이번 적은, 이번에 내가 해치워야만 하는 최종의 목적은 달랐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적은 내가 감히 그 자취를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지독하게 은밀했고, 또 고작 몇 년의 세월 동안 나를 이토록 지치게 만들 만큼 강력했다.」


「나는 이 강적에게 짓눌려 패배를 선언하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행복이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 행복이라는 것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애초에 불행하지도 않았을까? 행복이라는 게 실존하기는 하는 것일까? 그것이 나에게도 어딘가 존재하고 있는게 확실할까?」


「샤를로트는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봤던 것일까.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환상세계에서는 지구가, 그곳의 땅과 풍경, 사람들과 음식이 그리웠다면···지구로 온 뒤에는 도리어 환상세계가 그립다. 정말로 그랬다.」


···

···

···


「···그러나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보자.」


···

···

···


「이 땅에서 내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다.」


「‘행복’과 관련이 있다 여겨지는 모든 활동들을 섭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종 중독성을 지니는, 그리고 환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마약들이 유통되는 파티들을 돌아다녀 보기도 했고, 카지노에서 한동안 생활을 해보기도 했다.」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을 뿐, 그것을 감당할 여유와 굳건한 정신만 있다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방법들이었다. 물론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 말초적인 쾌락들은 내 굶주린 영혼을 충족시키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가정을 꾸리려는 노력도 해 보았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가장 고전적인 행복의 조건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가족을 잃어버렸다면, 가족을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여인과 이성적으로 교제를 하고 자연스럽게 부부로 발전해 가정을 꾸리는 자연적인 단계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나에게 생물학적인 끌림을 느끼는 여성들은 많았으나, 정작 나는 어떠한 여성에게서도 이성적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다. 오랜 기간 동안 교제하면 달라질까 싶어 아주 긴 시간을 함께 지내본 여인도 있었으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녀를 억지로 사랑하려는 척 노력하며 부부관계를 맺어봤자 그것은 나에게나,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에게나 불행이 될 터였다. 놓아주는 것이 옳았다.」


「그리하여 행복을 주는 부부관계는 포기하고, 대신 아이 하나를 맡아 양육해 보았다. 나에게 부성애라는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 속에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을지 확인해 보려는 요량이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식사를 먹도록,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아이는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 행복이 곧 나의 것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아이를 향해 웃는 얼굴을 지어줄 때에도, 내 마음은 언제나 얼어붙은 호수와 같이 명정했다.」


「결국 그 아이의 부모 역할은 나의 사역마들에게 맡기고 떠났다. 아이를 상실했지만, 이전보다 불행해졌다는 실감은 없었다. 그대로였다.」


「그 밖에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에 다녀 직업에 충실한 생활을 한다거나, 아니면 노인네답게 시골로 내려가 귀농의 삶을 살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전부, 단 하나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든다. 이 행성에는 정말 내 행복이 없는 것 같아서, 오직 불행, 불행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불행 대신 행복을 찾으려면 내가 여태까지 이곳에서 해보지 않은 것─그러니까 이 행성을 파괴하는 것 따위의 행위를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따위의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점점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

···

···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다.」


「내가 지구인인지, 환상세계의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환상세계에서는 다른 외모를 지닌 다른 곳 출신의 사람이라 배척받았고, 나 스스로도 그 때문에 외지인이라는 인식을 안고 살았다.」


「제국에서도 그랬다. 스스로 그곳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느꼈기에, 그곳을 나의 땅으로 바꾸고자 그리도 왜곡된 집착을 가지며 노력했었다. 고향인 지구에서는 다를 줄 알았건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비슷했다.」


「지구인들의 행동양식을 보고, 도저히 나 또한 같은 지구인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다. 같은 외모와 같은 고향 출신의 같은 민족임에도 그러했다. 그들과 나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지구를 배척했다. 이곳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느꼈다.」


「나는 지구인일까, 환상세계의 사람일까. 아니면 둘 중 무엇도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의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나, 환상세계를 한 번쯤은 다시 들러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

···

···

···

···

···


「다시, 게이트를 찾았다.」


「게이트는 마지막으로 감춰 두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이 방문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었다.」


「한눈에 눈치 챌 수 있었던 사실.」


「게이트가, 내가 사용했던 때보다 몇 배는 불어난 크기로, 차원의 통로를 열고 있었다.」


「과거에는 조금 넉넉한 1인용의 크기로 제작해,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갈 법한 크기였다면···.」


「···지금은 그 문을 통해 군대라도 드나들 수 있을 법한 폭과 길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작가의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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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유논(3) +7 20.12.27 823 47 13쪽
107 유논(2) +10 20.12.26 852 49 25쪽
106 유논(1) +10 20.12.25 852 46 20쪽
105 샤를로트(3) +3 20.12.25 809 42 17쪽
104 샤를로트(2) +12 20.12.24 818 42 14쪽
103 샤를로트(1) +19 20.12.23 851 48 13쪽
102 흑색마나(5) +5 20.12.23 840 46 14쪽
101 흑색마나(4) +17 20.12.22 846 52 18쪽
100 흑색마나(3) +23 20.12.21 834 52 15쪽
99 흑색마나(2) +21 20.12.20 869 46 15쪽
98 흑색마나(1) +15 20.12.19 871 45 16쪽
97 불쾌한 골짜기(3) +15 20.12.18 834 45 17쪽
96 불쾌한 골짜기(2) +5 20.12.18 807 37 16쪽
95 불쾌한 골짜기(1) +22 20.12.13 846 47 16쪽
94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5) +28 20.12.12 802 39 15쪽
93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4) +11 20.12.11 806 41 15쪽
92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3) +11 20.12.10 828 39 14쪽
91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2) +18 20.12.09 872 45 13쪽
90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1) +26 20.12.08 898 52 13쪽
89 외전-제국의 적(3) +23 20.12.05 847 51 16쪽
88 외전-제국의 적(2) +16 20.12.04 847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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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외전-Boy Meets Girl(7) +12 20.12.02 817 4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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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외전-Boy Meets Girl(4) +9 20.11.25 803 44 13쪽
82 외전-Boy Meets Girl(3) +13 20.11.21 824 42 14쪽
81 외전-Boy Meets Girl(2) +8 20.11.18 840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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