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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연재수 :
287 회
조회수 :
295,334
추천수 :
14,095
글자수 :
1,877,846

작성
20.12.18 23:30
조회
806
추천
37
글자
16쪽

불쾌한 골짜기(2)

DUMMY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인사를 안 받아주네? 거 참 섭섭해라.”


모두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도플갱어가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던 때.

윌리엄 스왈로우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워어어어어어어─!


체고만 2미터를 가볍게 넘기는 거구의 시체 기사가 지반을 두부처럼 부수며 달려들었다.

도플갱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 팔을 낚아채서, 이리저리 쥐고 흔들며 땅바닥에 처박아 버린다.


쾅─!


대지가 울리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자기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처참히 당하는 모습에 전투사제가 눈살을 찡그렸다.

그만큼이나 강렬한, 순수한 폭력의 세례였다.


쾅─콰지직.


다시 반대쪽으로 들어 올린 뒤 내리찍었는데, 이번에는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도플갱어의 몸이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붙잡고 있던 팔의 근육이 비대해지며 회색 핏줄이 튀어나오고, 다리는 이전의 세 배 가까이 굵어지며 발끝으로 암반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돌쇠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덩치를 자랑하며, 흉악하게 일그러지고 망가진 얼굴로 히죽 웃는다.


죽음의 기사의 괴력에 힘없이 밀리던 몸도 어느새 안정을 찾았다.


끼이익-하고 조금 뒤로 꺾이는가 싶더니, 팽팽하게 힘 대결을 시작한다.


여태껏 힘 대 힘에서 져본 일이 없었던, 그러나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워본 적은 없었던 데스나이트 돌쇠는 당황했는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회색빛 주먹이 작렬했다.


퍼──────억


시커먼 갑주를 단숨에 깨부수고 명치를 직격한 일권一拳.

이미 죽은 신체가 잠시나마 생전의 습관대로 숨을 훅 들이쉬며 고개를 숙였다.

중력에 지배받아 힘없이 떨어지는 그 머리를 말의 그것만큼이나 두꺼운 무릎이 힘차게 올려쳤다.


콰직.


무언가 으깨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기사의 투구가 통째로 깨부숴졌다. 차가운 핏물이 코와 눈, 입에서 흘러나온다.


“뭐, 별거 없군.”


도플갱어가 싱겁게 말하며 비틀거리는 돌쇠한테로 다가가 마무리하려던 때였다.


대단히 많은 날갯짓소리와 짐승들의 거슬리는 울음이 들렸다.

검은 박쥐들이 떼로 몰려들어 도플갱어의 거대한 동체를 붙잡았다.

언데드 뱀파이어, 토미의 솜씨였다.


한쪽 팔이 완전히 박쥐들에 의해 봉쇄되다시피 한 채 저항하는 도플갱어의 두 다리마저 정체불명의 액체가 착 달라붙어 묶어버린다.

데스나이트 특유의 파괴적인 근력으로 어떻게든 벗어나려 힘을 줘 보지만, 근육만 터질 듯 부풀어 오를 뿐 끈적이는 액체는 꽉 붙잡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윌리엄 스왈로우의 죽은 아내, 액체화 능력자의 솜씨였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는지 아직 자유로운 다른 한쪽 팔이라도 움직이려던 도플갱어였으나, 그새 정신을 차린 죽음의 기사 돌쇠가 달려들었다.

남은 한쪽 근육질 팔을 전신을 이용해 붙잡아 뒤로 꺾어 버린다.


도플갱어는 기묘한 희열에 찬 신음소리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사지가 속박당한 채, 고개 숙이고 큭큭 웃고 있는 도플갱어를 향해 다가가는 한 사내.


윌리엄 스왈로우가 있었다.


잘 사용하지도 못하는 장검을 어설프게나마 들고 걸어가는 그 중년 사내의 뒷모습에서는 기묘한 결의마저 느껴졌다.


“오, 우리 윌리엄이 아니야. 만나서 반가워. 마침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았─”


촥-!


문답무용으로 검을 휘두른다.

위에서 아래로, 붙잡아둔 죄수를 처형하듯 칼날이 목덜미를 내려찍었다.


“─는데 말이지. 이렇게 급하게 굴 것까지 있나? 천천히 대화로 해결해 보자고.”


그러나 데스나이트의 강철 같은 겉가죽을 그대로 모사한 도플갱어의 목덜미였다.

그 위에 옅은 자국만 남았을 뿐, 곧바로 튕겨나간 칼날에 윌리엄 스왈로우는 손이 저린 듯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당황하지도 않고 고개를 주억인다.


“쉽사리 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


그가 팔을 휘젓자 지하에서 시체들이 올라왔다. 이전의 거친 전투를 거치고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진 그것들이 네크로맨서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검을 쥔 손을 감싸고, 부족한 팔과 하체, 전신의 근육을 누더기처럼 달라붙어 보충한다.

시체들의 갑옷을 입은 채, 더욱 커지고 더욱 단단해진 윌리엄 스왈로우가 검을 들었다.


동작 하나하나에서부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이건 네놈이 부린 난동으로 죽은 내 동료들의 몫이다.”

“아니, 잠깐. 좀만 기다려봐···.”


도플갱어가 뒤늦게 당황한 듯 소리쳤지만,

들어줄 리 없었다.


콰지지지직─


검이 공기를 베고, 목을 베었다.

검이 살갗을 파고들어가는 절삭음부터 달랐다.


절반쯤 잘려나가 덜렁덜렁한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도플갱어가 난감한 듯 웃었다.


“아이, 거 참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하네.”


하는 수 없지─

푹 한숨을 내쉬며, 거대한 근육질의 몸이 풍선에 구멍 뚫리듯 쪼그라들었다.


창백하던 사자의 피부가 다시 밝게 변하고, 눈동자가 요사스러운 보라색 빛을 뽐냈다.

자신만만한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툭 내뱉는다.


“스왈로우. 지금 뭐하는 짓이지?”


그것은 죽지 않는 자들의 왕이었다.

말투와 어조, 세세한 제스쳐까지.

눈빛마저 평소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윌리엄 스왈로우는 순간 움찔했으나, 이내 분노에 가득 차 소리 질렀다.


“그리고 이건, 네놈이 그리도 우습게 알며 모욕해댄 대왕님의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힘을 실어 파괴적으로 내리 꽂히던 검이 도중에 멈추었다.


우뚝.


윌리엄 스왈로우는 경악한 표정으로 손을 떨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그의 동공.


도플갱어의 몸은 죽지 않는 자들의 왕의 그것에서 한차례 더 쪼그라들고 변모해, 이번에는 십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드가 만약 깨어 있어 그 얼굴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 ‘어?!’ 하고 소리쳤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독기의 골짜기에서 그녀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 적 있던 정체불명의 소년, 유진의 얼굴이었다.


윌리엄 스왈로우는 크게 충격 받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내 아들을 어떻게 한 거냐.”

“왜 그러시나? 아들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초짜 아버지처럼. 당신 그렇게 연약한 사람 아니잖아.”


해맑은 소년의 얼굴로 사악하게 웃으며, 도플갱어가 말한다.


“윌리엄 스왈로우, 네가 잊지 못해 데리고 다니던 네 죽은 아들, 유령의 몸으로 독기의 골짜기를 떠돌아다니던 유진 스왈로우Eugene Swallow는 내가 데리고 있다.”

“···어디에 있지?”


골짜기의 소년, 유진은 윌리엄 스왈로우가 도플갱어를 추격하는 도중 실종되었던 유령 아들이었던 것이다.

분명 시드가 그와 함께 다녔음에도 독인들은 골짜기를 여자아이 혼자서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시드가 갇혀 있던 동안 홀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전부 다 유진이 이미 죽은 유령의 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시드가 그와 접촉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네크로맨서의 자질이 있기 때문이었을 터.


그리고 시드의 친구이자 전 길잡이, 도플갱어에게 사로잡힌 소년 유진은 가족을 너무나도 아껴 그들이 죽은 이후에까지 함께 다니는 네크로맨서, 윌리엄 스왈로우에게 있어 역린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가?”


사람을 애태우는 악마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함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윌리엄 스왈로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까이 와봐.”

“···알았다.”


어차피 놈은 자그마한 소년의 몸속에 들어가 있다. 게다가 팔다리 전부 그의 수하들에게 붙잡혀있는 상태라 옴짝달싹도 못할 터였다.

시체들과 결합해 이전보다 강하고 단단해진 현 상태의 그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딘가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약간의 위험쯤은 감수해야만 한다.


윌리엄 스왈로우는 그런 판단을 내리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실수였다.


도플갱어의 입가가 주욱 찢어졌다.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던 피오네가 뒤늦게 이상함을 느끼고 경고했다.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윌리엄 스왈로우는 이미 도플갱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뒤였다.


허물을 벗어던진 뱀처럼, 껍질을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검은 그림자가 소년의 몸을 뚫고 튀어나왔다.

눈 깜짝할 새에 시커먼 인형이 윌리엄 스왈로우의 배에 손을 찔러 넣었다.

새까만 촉수가 검붉은 핏물을 쏟아낸 뒤 빠져나왔다.


피오네가 재빠르게 반응해 달려갔으나 소용없었다. 도플갱어의 기습이 상상 이상으로 순식간에 시작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윌리엄 스왈로우의 몸에서 피가 왈칵 솟아올랐다.

그는 무어라 할 말이 있다는 듯 피오네의 팔을 붙들었으나, 끝내 말하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다.


피오네가 사제단과 함께 지혈하며 어떻게든 죽어가는 그를 살려보려 노력하던 때였다.


네크로맨서의 의식이 캄캄해지자 수하 언데드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광폭해져 자기들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전투사제들을 공격하기도 하는 모습에 피오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윌리엄 스왈로우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지.”


어느새 죽지 않은 자들의 왕의 모습으로 다시금 변모한 도플갱어가 유유자적하게 걸어왔다.


“그와 그의 수하 언데드들 간의 의식 연계는 너무나도 굳건해서, 다른 때였다면 비집고 들어갈 아주 작은 틈조차 없었겠지만···지금은 다르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한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몸이 지상 최강의 네크로맨서의 것이라 했던가? 과연 그리 부를만해. 실로 대단한 지배력이야. 네크로맨서가 기절한 뒤 생기는 작은 틈을 이용해 저렇게까지 뇌를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줄이야.”


피오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을 적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아군을 아군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지. 그런 와중에 또 제 주인이 공격받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너희들을 공격하는 데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는 힘들겠더군.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죽이고 나면 달라지려나.”


함께 윌리엄 스왈로우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던 전투사제에게 나직이 말한다.


“도플갱어가 말하는 것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를 지키고 있으십시오. 윌리엄 스왈로우가 죽으면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모릅니다.”


굳게 고개 끄덕이는 전투사제를 뒤로하고, 피오네는 앞으로 걸었다.

도플갱어를 마주했다.


놈이 뜬금없이 히죽 웃는다.


“나는 윌리엄 스왈로우를 죽이고, 더 나아가 저기 마술쟁이 꼬맹이까지 죽여 버릴 거야. 그 괴물 스승이 무섭긴 한데, 후환을 남겨두는 것보다야 낫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될 것 같거든. 도망치는 데에는 자신이 있기도 하고. 윌리엄 스왈로우가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쫓아다녔는지 들었어? 완전 가지고 놀았는데. 재밌었지.”


피오네는 눈곱만큼도 반응하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로 주먹을 들었다.

그 굳건한 신념과 의지로 가득 찬 여전사의 모습에 도플갱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너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 말에 발을 옆으로 한 번 내딛었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움직였는데?”


장난기 넘치는 말투에도 피오네는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재미없다는 듯 입맛을 다신 도플갱어가 말했다.


“굉장히 믿음, 의지, 뭐 그런 거로 똘똘 뭉쳐 있어 보이네. 나 그런 사람 자주 봤어. 제일 까다로운 유형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거 알아?”


또다시 눈알이 움푹 들어가고, 고개가 비틀리며 꺾인다. 온몸 골격이 다른 존재로 변화하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도 다 한군데씩은 약점이 있더라고. 너는 어떨까?”


잠시 뒤, 푸른 머리칼에 하늘빛 눈동자를 한 나체의 여인이 눈을 찡긋했다.

다름 아닌 피오네, 그녀 본인의 모습이었다.


“어디···네가 어떤 사람인지 볼까.”


피오네는 주먹을 뻗었다.


이제껏 전투를 계속하며 축적해둔 물리적 에너지가 일점에 모이며, 가공할 속도로 공기를 부수고 꽂힌다.

그 순간의 주먹만으로도 음속을 돌파한 충격파가 대기를 울렸고, 흙먼지가 날렸다.


그러나 도플갱어는 멀쩡했다.


“잊었어? 지금 이 순간만큼, 난 너야. 넌 나고.”


곧게 뻗은 손바닥이 주먹을 막아낸 채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바위를 부수고 강철을 꿰뚫을 법한 일격 안에 담긴 에너지가 전부 손바닥 하나에 흡수되어 버린다.


피오네의 목소리. 그러나 전혀 다른 발랄한 어투. 도플갱어가 여사제의 기억을 읽으며 소리쳤다.


“오, 거물이셨군. 정화교 이단심문관들의 수장. 그러나 돌연변이들을 사냥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잠적, 파견사제로 자유도시에 이동···정화교의 실체에 대해 지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겠어?”


피오네는 가로막힌 주먹을 비틀어 도플갱어의 팔목을 잡은 뒤 끌어당기고 얼굴을 가격했다.

그러나 그 모든 충격을 흡수한 도플갱어는 여전히 멀쩡한 낯으로 말했다.


“어때? 내가 말해줄 수 있는데. 정화교단의 추악한 실체와, 그들이 저지르고 또 덮으려 했던 사악한 과거. 궁금하지 않아?”


피오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플갱어는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옛날에─아, 그렇게까지 옛날은 아닌가? 아무튼, 정화교단이라는 단체가 세워졌어. 이 세상에 굳건히 뿌리박은 오염된 마력, 방사능을 전부 정화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가득 찬 세력이었지. 마치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이번엔 도플갱어가 역공을 시작했다.

피오네와 정확히 똑같은 자세와 움직임, 그러나 아직 지치지 않아 훨씬 민첩한 근접 무술의 연속.

그러면서 숨이 차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말을 계속한다.


“처음에는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어. 그도 그럴 것이, 방사능과 결합한 마력이 어디 보통 물질이야? 몹시 끈질기고, 또 위험한 그것을 퇴치하고 정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 그래서 그들의 노력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어. 참 안타까운 일이지.”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내며 그 충격을 흡수하고, 또 다시금 공격하는 난타전이었다.

격렬한 전투로 지친 피오네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

이제는 피오네가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력의 존재마저 위태위태해질 지경에 처하자, 정화교단의 설립자들 중 한 명이 기발한 생각을 해냈어. 그는 이렇게 말했지.

‘방사능에 오염된 대지와 사람들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오염된 마력이 그들에게 침투해 오염 현상을 일으키는지를 면밀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멀쩡한 땅에 오염된 마력을 주입하고, 멀쩡한 사람들에게 오염된 마력을 주입하는 실험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맞아, 정화교단의 실험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어. 자연환경과 사람 몸을 이용한 비인도적이고 끔찍한, 사람이 아닌 괴물들이나 할 법한 그런 실험이었지.”


일방적으로 도플갱어가 피오네를 몰아붙이는 구도.

어느새 두 피오네의 전장은 시드가 자고 있는 곳 근처까지 가까워졌다.


“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 곳곳에 널린 게 방사성 물질들이고 오염된 마력인데 뭐. 문제는, 실험 장소와 실험 대상자들을 구하는 것이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정화교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없고, 교단의 땅에다 오염된 마력을 살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단 말이야? 그래서 그들이 찾은 적격지가 있었지.”


시드의 바로 옆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바위의 옆면까지 물러난 피오네를 그 위에 짓누르며 신나게 이야기한다.


“괘씸하게도 정화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사는 곳. 그러면서도 다른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아 실험의 대상이 되기에는 참 적합한 곳. 마침 환경실험과 생체실험을 둘 다 할 수 있는 요건이 전부 갖춰진 깨끗한 땅. 한때 풍요의 골짜기라 불리던 곳이었지.”


도플갱어는 피오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맞아, 이곳 독기의 골짜기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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