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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의 서재

낙제 기사는 검을 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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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1.10.31 16:48
최근연재일 :
2021.11.12 18:3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72
추천수 :
2
글자수 :
6,903

작성
21.10.31 16:56
조회
39
추천
2
글자
5쪽

프롤로그

DUMMY

“멋진 기사가 되서 돌아올게.”


이룰 수 없는 약속을 나누었다. 피나는 노력도 간절한 바람도 무의미했다. 희망으로부터 비롯된 맹세는 지키고자 했던 대상의 죽음으로 허무가 되었다.

발전도, 감흥도 없는 피폐한 나날의 반복.

하염없이 울고, 부르짖고서야 겨우 구석에서 죽어가기를 관두었다.

나는 절망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울기를 거부했다.


“또 무보수냐.”


붕대에 싸인 손끝은 의뢰서를 쥐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명예도 주어지지 않는 하찮고도 가난한 소원.

어디선가 비웃음이 들려왔다. 요란한 분위기에 경멸과 질투가 어우러졌다.

익숙한 일이라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려듣고 싶었지만, 끝자락을 쥔 손톱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고야 말았다.


-찌익.


“아.”


짧은 실성을 흘리며 찢어진 종이를 고이 접었다. 내용은 읽지도 않았다. 일을 가릴 자격이라고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저도 모르게 찌푸린 눈살은 보기 싫은 풍경을 짓눌렀다.


“못 본 사이 꽤나 흉악해졌구먼.”


문득 들려오는 낯선 야유.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목소리가 몹시도 익숙했기에, 차마 흘려듣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스승님.”


평소라면 허울뿐인 미소라도 지어보이겠으나, 쉽사리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분명 숨을 쉬기만으로 벅차기 때문이리라.

가면을 쓰는 순간 질식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었냐.”


거짓말은 나오지 않았다. 괜찮다며 고개를 젓는 일조차 내게는 불가능했다. 긍정도 부정도 해내지 못한 채, 미간의 주름만을 간신히 풀었다.


“독종이 별 일이야,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군.”

“과찬이십니다.”


한 마디 내뱉고서야 하염없이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소리를 주워담을 수만 있다면, 주워담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지? 마음 같아선 위로라도 해주고야 싶지만, 뭐 알다시피 내가 사려 깊은 사람은 아니잖냐.”


스승은 짧게 웃었다. 비어있는 소리였다.


“···알고 계셨군요.”

“하나뿐인 애제자인데, 조금은 참견해도 괜찮지 않겠냐.”

“너무 과분해서 문제인데요.”

“고놈 참 허세는. 어리광 좀 받아주려 했더니만 누가 애늙은이 아니랄까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흘러가는 정적 속에서 스승은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 뿐이었다. 먼저 말을 걸었지만, 대화를 주도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의지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거겠지.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한 명의 스승으로서 제자의 노력에 보답해주고 싶어 했다. 믿고, 기다리고, 독려해주었다.

이보다 불공평한 관계는 없다고, 이제는 조금 자각한 셈이다.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네 주관이고.”

“예, 주관이죠. 하지만 저는 이제 못 버티겠습니다. 스승님의 위상과 명예가 하찮은 무능아 하나 때문에 떨어지는 꼴을, 더는 못 보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했다.

바닥이나 벽에 처박힐 각오는 진즉에 마쳐두었다. 뭣하면 천장이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의 표정은 잔잔했다.

둘뿐인 복도를 고요가 휩쓸었다.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포기한 녀석에게 더 할 말은 없다.”


하얗게 타오르는 재가 입술에 닿고서야, 스승은 말을 뱉었다. 떨어진 꽁초를 짓이기고, 무심하게 걸음을 옮겼다.

스쳐지나가는 한순간만, 잠시 그의 손이 어깨에 머물렀다 떠나갔다.


“하나만 말해두마, 리시스.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수치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웠고, 그렇기에 지금까지 곁에 두었던 거야.”


그래, 만일 당신이 나보다도 먼저 나를 포기했더라면 아직까지도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을 테지.

이제야 겨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켜주고 싶었던, 누구보다 소중했던 한 사람을 잃고서야. 그 사람의 희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나는 비로소 체념할 수 있었던 거다.


“이걸로 마지막이겠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의뢰서를 펼쳐보며, 쓴웃음을 지어냈다.

약속을 이루지 못한 소년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줄 소원.

이 의뢰를 계기삼아 길었던 망상으로부터 헤어 나오리라.

같잖은 결의를 다지며, 결실 없는 노력의 흔적을 주머니에 비집어 넣는 나였다. 아직 찬바람이 부는 계절도 아니건만, 어째선지 두 손을 꺼내놓기가 싫었다.


“고맙다고 해주고 싶었는데.”


결국 나오는 것이라고는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한 마디였다.


“미안해, 정말로.”


나는 기사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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