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연참입니다! 밤 9시 20분 전후로 다음화가 업로드되겠습니다!
-로스탐 님, 타im 님, 낙뎀주의 님, 후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어린아이 창 꽂기 놀이는 실재로 존재했던 바이킹의 풍습이었습니다. 이교도 대군세 당시 큰 피해를 받았던 잉글랜드에서 특히 많은 기록이 남았죠.
올비르 에이나르슨 이라는 이름의 바이킹은, 이 잔인한 놀이를 거부한 덕분에 '아이들의 친구(Barnakarl-바르나칼)'라는 조롱조의 이명을 얻어 역사에 남기도 했습니다.
말이 '아이들의 친구'이지 실재로는 '어린이 애호가', 혹은 '소아성애자' 수준의 조롱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 창대에 꽂는 것은 놀이로 치면서도 '전사의 명예'에 민감했던 바이킹식 윤리관은 현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시기 콘스탄티노플은 상업이 한껏 발달하며 중세물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길드의 형성과 발전이 잘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청색당과 녹색당의 쇠퇴 이후 대중정치의 일부분을 담당하는가 하며, 조합의 이권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제국 제 2의 도시 테살로니카에서는 이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코뮌(?!)자치정부가 수립되기도 했었습니다.
+노예 제도로 유명했던 로마 제국의 후신답게, 이 시기 동로마 제국에는 노예 제도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9세기를 지나며 노예제 자체는 많이 위축된 상태였고, 11세기를 넘어서면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 길고 긴 역사의 노예제가 사라진 이유는, 당연하지만 세제와 산업 구조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노예들한테 집안일을 맡기거나 농사를 짓게 시키는 것 보다는 소작농에게 땅을 빌려주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시대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임금노동자가 노예보다 가치있게 되면서 노예제가 폐지된 몇 백년 후의 미국과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바실리오스 2세의 무자비한 세제 개편과 토지 개혁 역시 노예제의 소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내용은 향후 소설 본문에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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