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깃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기가 항복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2차 포에니 전쟁 시기의 기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로마의 권역에서 쓰였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로마가 기록에 미친 제국이었던 것도 아마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중에서 흰 깃발이 항복-혹은 대화의 의지를 표시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당시의 불가리아는 국교 또한 정교회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었던 영향을 받아 군제 또한 로마의 영향 아래에 있었습니다. 마갑기병인 카타프락토이가 전장의 주력으로 활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페체네그 용병 또한 활발하게 이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군제 측면에서 로마의 영향력을 짙게 받았던 국가이기 때문에 1018년의 완전 복속 이후 불가리아 군은 자연스레 동로마의 지방군(테마)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덕분에 20여 년에 걸친 소모전 이후에도 동로마의 총 병력 수는 불가리아 전쟁 이후 오히려 크게 늘었습니다. 그것에 비해 작중 시점은 13년 빠른 1005년이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 지도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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