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잘하던 걸로 자살하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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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늑대와의 관계를 끊어내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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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
늑대는 앞발로 베개를 끌어다가 주름을 펴주었다.
"..죽음이 미오가 선택한 정답이라면, 내가 도구라면 말이야."
늑대의 털이 벌써 죽은 것처럼 빳빳해서 두려웠다.
"나를 써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죽기 좋게 바꿔도 돼."
"너는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는 망가진 물건이야."
말이 너무 모질어 자신의 가슴까지 찢어지는 듯싶었다.
'이게 내 정답이야.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평온할 수 있는데. 어쩌면 아키오 씨의 곁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자 끊임없이 슬프고 용기가 났다.
늑대는 그 말에 가슴을 울컥거렸다.
그런 늑대에게 부탁했다.
"..너가 죽여줘, 그러면."
죽고 싶지 않은 늑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도구로써 얼마나 가치가 떨어졌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미오는 눈을 꼭 감았다. 이젠 자버리고 말 것이다.
"너는 가치가 없어.. 이젠."
졸리니까, 졸리니까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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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어깨에 진득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늑대의 발톱이 자신의 어깨를 갉아먹고 있었다.
늑대의 눈이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조금은 놀랬지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단숨에 머리를 뽑는다면.'
"우리가 함께 많이 하던 거 해. 이렇게는 못 죽어."
구멍 나 피가 흐르는 어깨는 곧 회복될 것이다.
"먹어."
그의 주둥이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먹으라고."
"이게.. 정답이야?"
늑대는 입을 벌리다 물었다.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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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이 말썽을 부려서 죽지 못했다.
차마 컨트롤러를 놓쳤다고 말하긴 싫어 진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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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하루를 더 살아있음에 늑대는 크게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뭐가 즐거울지 잘 모르겠다.
하루 종일 주인의 신호를 기다리며 까만 벽을 바라보거나 이따금씩 그 안을 뛰어다니는 삶이 무엇이 즐겁다고.
'그러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늑대도 죽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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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자신의 가치관을 기르기 시작했던 때가 떠올랐다.
꼭 죽인 인간들의 이야기나 생각에 대해 이야기했고, 늑대는 나중에 자신이 여기를 벗어나게 된다면 꼭 행글라이딩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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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엄청 예쁠 것 같아. 거기서 맡는 바람도.. 좋을 것 같아."
보던 영화를 잠시 멈추고 대답했다.
"늑대 씨는 엄청 엉뚱하네."
"하나도 안 엉뚱해."
미오는 쓴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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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가 인간이 되지 않는 이상 평생 못할 경험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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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는 늑대가 보채는 걸 다그쳤다.
그런 사사로운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도 없었고, 가치관을 길러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랬다. 그때쯤의 미오는 우주선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분명 늑대도 그걸 바랄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합리화를 씹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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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다 해도 늑대가 행글라이더를 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뿐이지.
늑대가 많이 멍청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뺨을 쓰다듬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같이 밥을 먹지 않은 것도 그때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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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결정에 늑대가 토를 달거나 화를 내거나 슬퍼한 적은 없었다. 늘 알았다는 말만 했다.
잠시 그를 위해주는 척 해도 그뿐인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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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늑대가 행글라이더를 타고 싶다고 할 때, 미오가 보고 있던 영화는 ‘킬 빌’ 입니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할 게 없어서 본 걸로 압니다.
킬 빌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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