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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아서. 님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니알아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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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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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호질 1 - 사자후

DUMMY

휴브리스(ὕβρις)

서막 - 호랑이가 꾸짖다(虎叱)




신이 만들고, 신이 떠나버린 세계


끝없는 전란과 오만함이 남아버린,

모든 오랜 가치가 케케묵은 시대에

용기와 사랑을 외칠 이유가 있는가




1.


그건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넓은 평야이자 곡창이었던 울란바토르 평야가 별 의미도 없을 청야 전술로 인해 한 달도 넘는 기간 동안 끝도 없이 불타오른 직후.


결국 남은 건 잿빛 황무지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광 말곤 아무것도 없을 죽음만이 가득한 대지에.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십만이 넘는 생명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진군할 때마다 대지를 울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대군.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였기에 그렇게 보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


인산인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군세가 역동하는 파도처럼 크게 움직이며 하늘을 뒤덮을 만큼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다.

지난 이십여 년간 끝도 없이 미뤄져왔던 두 제국의 전면전이 드디어 성사되게 되었으니.


하늘에 두 태양은 있을 수 없고, 하늘의 자식인 천자 역시 단 한 명 밖에 있을 수 없는 법.


그러한 기치 아래 용호상박의 두 제국과, 두 황제, 두 영웅이 이곳 울란바토르 평야에 모였다.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양대 국가인 알 실라 제국과 우량카이 제국이 끝도 없는 소모전을 그만두고 드디어 가용한 모든 전력을 이끌고 이곳에서 대치하게 된 것이다.


알 실라 제국 판테라 황제의 진군은 지난 23년간 파죽지세와도 같이 계속 이어져왔고.

우량카이 제국의 수그리바 카간(Kağan), 혹은 수그리바 황제는 천재적인 지략과 명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전술로 이에 맞서왔다.


23년, 두 제국의 전쟁은 그렇게나 오랜 기간 동안이나 계속 이어져온 것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싸움도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찾아왔다.


모든 것을 불사르는 불꽃과 같은 기세로 우량카이를 잡아 먹던 알 실라의 공세가 이제 우량카이의 수도, 쿠룬(庫倫)에 닿았기 때문이다.


시야를 방해하는 구조물이 단 하나도 없는 울란바토르 평야 어디에서든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면 지평선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성채인 황도 쿠룬성을 볼 수 있었고.


이는 우량카이가 더는 후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도 바로 앞 평야에서 치러지는 전쟁.

즉 이 전쟁은 우량카이 제국에게 있어서, 수도를 등지고 바로 그 앞 평야에서 싸우는 배수진 그 자체인 전쟁이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사생결단의 싸움.

이 싸움의 승자가 대륙을 지배할 다음 패자(霸者)가 될지니.


훗날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울란바토르 대전쟁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펼쳐진 역사에 길이 남을 전술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게 되며.


전기수들과 재담꾼들은 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도중에 끊는 걸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청중들이 자신에게 수많은 엽전 세례를 던지도록 할 수있게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윽고 양대 제국 중 한 세력인 우량카이군의 진군이 멈췄다.


드넓은 평야에 펼쳐진 끝도 없을 인해의 격류를 이루면서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미늘 갑옷과 창과 활.


그리고 위용 넘치는 군마들의 위세는 너무나도 당당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인류와 대국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들이 평원 전체를 활용해 넓게 나열한 일자진형은 우량카이 제국이 대륙을 3할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인 망구다이(Mangudai) 전술을 펼치기에 아주 적합했다.


망구다이란 모든 군인들이 모두 활과 화살을 갖고 화망을 만들어내며 경장기마병이 기동력을 살린 산개진을 펼치면서.

대량의 화살이 만드는 변수 속에 평범한 기병의 기동력을 아득히 넘는 소인족과.

걸어다니는 철퇴나 마찬가지인 거인족을 절묘하게 전장에 투입하여 흩어진 적들을 분쇄해내는 전술.


이러한 망구다이 전술은 대륙 전체에 이미 퍼질 대로 퍼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 전술이었지만.


그런 잘 알려진 전술이라도 이것이 엄청난 숫자의 병력으로 실행된다면.

거기에 압도적인 화력을 보유한 우량카이 제국의 무수한 대포의 포문이 열리고 투석 병기들이 하늘에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과연 상대가 어떤 나라 어떤 종족이라도 감히 그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우량카이 제국의 백성들은 적어도 23년 전까지는 모두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얼마 전까지 우량카이의 영토였던 대지의 절반이 알 실라의 영토가 되었다.


수그리바 황제가 인생의 전반부를 바쳐 얻은 영토의 절반을 하루아침에 모두 빼앗긴 것이다.


그 정도로 판테라는 두려운 적이었다.


그야말로 대지는 천하반분지계의 형세였으나.

그럼에도 오늘의 전쟁 결과에 따라, 천하는 다시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날 하루에 한 해, 여신 루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수그리바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수그리바 황제는 지난 이십여 년간 소모전으로 끝없이 약해진 국력을 최대한 쥐어짜 내.


그리고 일부러 패배와 도주를 반복하며 적을 수도와 장 가까운 평야로 유인해내는 육참골단의 계책으로 겨우 단 한 번 운용할 수 있으며 두 번은 절대 없을 대군을 전장에 내보내는데 성공했다.


다섯 개의 군단, 열다섯 사단.

만 이천의 중대, 십만의 대군.


그중 일만이 기마병이며, 우량카이 제국의 기술력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만들 엄두도 나지 않을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중장병만 해도 천여 명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평민 남성이 유사시에 모두 병사로 동원될 수 있는 유목 국가의 특징 덕분에 가능한 숫자였다.


나라에 있는 말이란 말은 그 용도를 불문하고 모두 징병하고.

타국의 거인 용병들까지 돈으로 사서 만들어낸 처음이자 마지막인 항하사(恒河沙)의 대군이었으니.


십만 대군의 진형이 완성되고, 하늘을 뒤덮던 흙먼지가 가라앉자, 그 대군의 앞에 수그리바 카간이 홀로 섰다.


원숭이와 닮았지만 기품 넘치며 결코 볼품없지는 않은 용안.

살아온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새긴 듯한 주름살, 위엄 넘치는 황제 수염.


그야말로 한때 천하를 지배했던 용자 다운 외모였으며.


태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빛 전신 갑옷과, 여신 루카의 천 개의 눈과 손을 나타내는 프랙탈 무늬가 섬세하게 새겨진 황금관이 황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전설 속 가장 위대한 루카족의 원숭이 왕인 투전승불이 세상에 재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전군은 들으라!


우량카이 제국의 백전불패의 용사들이여!


우리들이 승리의 영광에 취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들에게 끝없는 절망만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이 늙은 황제이자 카간의 마지막 부름에 그대들이 지금 이날, 이곳에 모여주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들의 대적자는 이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을 대학살자이자.

일말의 자비라고는 느낄 수 없는 잔학하며 파렴치한 되놈인 판테라다.


저 자는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을 이 황제의 이름을 사칭하고.

자신이 마치 이 세상의 지배자라도 된 마냥 의기양양하며.

열두 성신께서 내려주신 대지의 은혜를 짓밟는 천인공노할 대죄를 저질러왔다!


그렇기에, 짐은 오늘.

우량카이 제국 역사상 가장 용기 있으며 위대한 용사들인 자네들의 힘을 빌어 그 악인을 처벌하고자 한다.


자, 가자!

대의를 품은 전사들이여!


주신이자 가장 위대하신 여신인 루카의 대리인으로서, 저 자를 처 부수고 이 세상에 아직 정의는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일 때가 왔다!



수그리바 카간은 위엄 넘치며 패자 다운 품격으로 어째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가.

어째서 이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진솔한 연설을 했다.


이내 각 중대 단위로 카간의 연설 내용이 하달되었다.


카간의 연설을 들은 어떤 이는 감격에 겨워 울기도 하고.

어떤 이는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모든 이들이 황제의 위대함을 연호하며 갖고 있는 무기들로 대지를 뒤흔들며 황제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십만의 대군이 내뱉는, 그리고 무기로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대지가 진동하고, 말들이 불안에 떨며, 또다시 흙먼지가 퍼져나가고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마른 바닥이 갈라지며 대지에 짙은 선을 남겼다.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인류 삼천 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세였으며, 그 상대가 만약 화신일지라도 분명 승리할 수 있음이 틀림······.


『닥쳐라!』


그 순간.

문자 그대로, 사자후(獅子吼)가 그들을 덮쳤다.


그 많던 흙먼지들이 전부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먼지 속에서 그림자만이 보이던 군사들의 모습이 다시 태양 아래에 선명히 드러났다.


사자후의 여파로 그 민낯이 모두 태양 아래 드러난 십만 대군은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그 사기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흐트러져있었다.


어떤 이들은 선채로 기절했으며.

어떤 이들은 말의 고삐를 놓치고 낙마했고.

어떤 이들은 넋이 나간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미친 듯이 날뛰는 말들을 최대한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고막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 자리에 오줌을 지렸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십만 대군의 함성을 한 번에 상회하는 그 어마어마한 사자후를 내뱉은 것이 단 한 명의 인간이며.


진짜 사자가 천지를 뒤흔들며 포효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는 인간의 언어가 담겨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자후는 '닥쳐라'라는, 인간이 자주 할 법한 말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그 의미를 뇌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성이 남아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말이 없는 침묵 속에, 귀를 울리는 이명만이 전장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사자후를 내뱉은 건, 십만 대군과 대치하고 있던 단 한 명의 인간이었다.


3m는 족히 넘어갈 인간답지 않은 덩치.

온몸이 터질듯한 근육으로 가득한 다부진 체구.

이를 뒤덮은 아름답고도 덧없는 새하얀 털.

어떤 진묵보다도 더 짙을 검은 줄무늬.

하늘에 뜬 태양보다도 더 형형히 불타는 비취색 눈동자.

인간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송곳니와 주홍색 코에.

흰 가락 수염, 호랑이의 형상을 그대로 새긴 용안.


마치 백호가 대지에 두 발로 선 듯한 형상의 인간.


그곳에 서 있는 건 대륙의 열두 인간종 중 호랑이와 닮은 아슬란족에 속한 인간이었으며.


그 자는 머리에는 자신이 하늘의 자식임을 증명하는 십이류 면류관을.

몸에는 자신이 신의 대행자이자 대지의 주관자임을 밝히는 열두 가지 상서로운 문양이 보(補)로 수놓아진 십이장 대례복을 입고 있었다.


상의는 검고, 하의는 희며.

음양의 조화를 이룬 비단옷 위에 해와 달, 별자리가 흉배(胸背)에.

거대한 호랑이가 배래에.

산과 불꽃이 허리춤에, 술잔과 꿩, 해초가 소매에 새겨져있고 쌀알과 도끼가 어깨에 새겨져있다.


누구라 할지라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자가 바로 알 실라 제국의 판테라 황제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고 과시적인 모습.


하지만 그 복장은 비록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엔 충분했음에도 황금 갑옷을 입고 있는 수그리바 황제에 비하면, 결코 전장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면류관과 대례복은 종묘제례와 같은 황실 의식에서 황제가 자신이 일월성신(日月星神) 루카의 자식임을 과시하기 위해 입는 제사복이지, 전장에서 입기 위한 갑옷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평야 한가운데에 홀로 선 판테라 황제에겐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대례복과 면류관 이외에는 가마도, 시종도, 수행인도, 호위병도.

무릇 황제라 불리는 자에게 으레 따라붙어있어야 할 수많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하늘의 아래와 대지의 위에, 그는 오로지 홀로 서있었다.


판테라는 그 다음 순간 대례복의 넓은 소매 안에서 작은 청동 향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더니.


향에 불을 붙이곤 두 무릎을 대지에 꿇은 채, 두 눈을 감고 무언가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 화려한 복장과 반비례하는 단출한 의식은 비록 아주 단순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하늘에 올리는 제례 그 자체였다.


이는 그야말로 기행, 미친 자의 우행, 광인의 만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위였다.


황제나 장군 등이 전쟁을 앞두고 전장에서 단출하게나마 약식 제사를 올리는 것쯤이야 흔한 일이었으나.


그걸 하필이면 적군의 진형과 대치한 바로 눈앞에 홀로 서서 행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나 있겠는가.


하지만 눈앞의 황제를 칭하는 미치광이는 십만 명의 이목을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지.

개의치 않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세 번의 절을 올리고는 향을 손으로 짓눌러 끄고, 청동 향로를 버리고 나서 그 자리에 다시 홀로 섰다.


그리고 외쳤다.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그리고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백호를 닮은 황제는 방금 전의 사자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온 평야에 떵떵 울려 퍼질 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사람이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있는 자,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자, 저 거짓 황제에 현혹되지 않은 현명한 자는 모두 앞으로 나오라! 그리고 무기를 손에서 버리고, 바닥에 머리를 대고, 온몸을 조아려 짐에게 네 번 절하라! 하늘 아래 존재하는 유일한 황제인 이 판테라에게, 충성과 성의를 보여라."


그러고는,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사자후에 귀가 먹지 않은 이들조차 자신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그렇게 하면, 그 자의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아니, 목숨을 빼앗지 않는 데에 더해, 그 가족은 모두 이번 만행을 저지른 대죄에서 면책될 것이며, 그 자는 진정한 천자를 알아본 공으로서, 알 실라 제국군으로 편입해 본래 누리던 것과 대등한 관직과 월봉(月俸)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마."


우량카이 제국군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물론 판테라 황제가 말하는 파격적인 조건에 혹한 것은 아니었다.


대개 저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냐는 반응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눈에 보이는 전력 차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우량카이의 수그리바 황제는 이 대륙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십만 대군을 준비했다.


반면 판테라 황제는 무엇을 했는가.


고작 한다는 게 단 하나의 호위도 없이 전장에 홀로 나타나 제사를 지내더니.

큰 소리를 내지르곤.

그다음 무턱대고 항복하라는 요구라니.


대체 세상 어느 바보 천치가 그런 요구에 응하겠는가.


전쟁은 신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건 서당 개도 아는 사실이었다.


항복이란 건 장군이나 황제가 압도적인 전력 차와 열세를 느꼈을 때나 하는 것이지, 병졸 따위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판테라 황제는 이런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망언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열을 세는 사이에, 머리를 조아리고 충의를 보여라. 그렇게 한 자는 살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한 자는 죽을 것이다."


판테라는 그렇게 말한 후, 그가 말한 대로, 열부터 하나까지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누구도 판테라 황제의 요구대로 무기를 버리거나,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


수그리바의 군세는 십만, 반면 판테라는 고작 하나.


설령 이 자리에 선 것이 십만의 대군이 아닌 지성 없는 가축들이었어도 둘 중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누구나 잘 알 것이 분명했다.


"판테라여,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구나. 목소리가 크다 해서 전쟁에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그대가 강하다고는 하나 결국엔 인간일 뿐. 그대의 군사들을 모두 버리고 그대 혼자 맞서봐야, 이 대국 우량카이의 모든 국력을 쏟아 완성한 이 십만 대군 앞에선 결국 범 앞의 하룻강아지에 불과할진대. 이순(耳順, 60세)도 채우지 못한 겨우 그 나이에 노망이 들은 것이냐."


수그리바가 조용히 읊조린 그 말을 들은 건 겨우 황제의 주변에 선 몇 십의 군사들 밖에 없었으나.


황제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들은 이들에게선 다시 끝을 모를 사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지난 몇 년간 마음속 한켠에서 결코 지우지 못했던 침략자의 위협에 대한 불안감 그 자체인 존재.

제국의 영토를 계속해서 갉아먹던 눈엣가시인 판테라를 지금 이곳에서 치울 수 있게 되었으니.


대체 누가 쉬운 승리를 눈앞에 둔 쾌감에 몸을 맡기지 않겠는가.


결국 이번에는 진형의 전열로부터,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퍼져나가듯 환호성과 함성.

그리고 황제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또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섯······."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카간!"


"다섯······."


함성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판테라의 입모양을 읽고 그가 아직도 숫자를 세고 있다는 걸 눈치챈 수그리바 황제는.


마치 눈앞에 선 황제이자 카간인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며 그 뒤의 병사들만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판테라의 그 눈빛에 영문 모를 혐오감을 느꼈다.


그리하야 오른손에 작은 분노를 담아 올리는 것으로 전군에게 신호했다.


그건 개전을 알리는 신호였고.

그 즉시 찰나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짧은 시간 만에 각 중대로 개전 명령이 퍼져나갔다.


어떤 진형, 어떤 전술을 사용하는 도중이라도 우량카이 제국의 개전 명령이 가지는 의미는 아주 명료했다.


망구다이 전술의 첫 번째.

그건 우량카이 제국의 모든 병사가 갖고 있는 활과 화살을 꺼내, 적을 향해 발사한다는 의미였다.


십만의 화살이 온 평원을 가로질러 곡선을 그리며 판테라가 서있던 곳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화살의 비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대 장관이었다.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모순적인 방패로도 도저히 막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화살이 마치 의지를 가진 메뚜기 떼가 곡식을 휩쓸듯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를 유린했다.


카간은 분명 장관임은 분명하나 젊은 시절 수백 번 가까이 보아왔기에 질릴 대로 질린 그 광경을 무표정으로 보았다.


내심 이번엔 수많은 시체의 산이 아닌, 단 하나의 시체만을.

그것도 그 꼴 보기 싫은 가짜 황제의 시체에 마치 고슴도치 가시처럼 화살이 박힌 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많은 화살이 쏟아져서야.

인간의 형태라도 유지하고 있으면 운 좋은 편일 게 분명하니, 고슴도치가 된 판테라를 보지 못해 아주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그리바의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빛나갔다.


빽빽이 바닥을 채운 수많은 화살들이 꽂힌 곳의 정중앙.


십만의 화살 포화가 가장 많이 쏟아진 그곳엔 마치 판테라가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구체 형태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떠한 화살도 바닥에 박히지 않은 원형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원형을 중심으로, 주변에 무수한 화살이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십만의 화살이 쏟아졌음에도.

판테라 황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부동했다.


이는 마치 의지를 가진 화살이 그를 두려워해 피해 가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둘······."


그리고 제국군 그 누구도, 다시 활시위에 새 화살을 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가 아직도 숫자를 세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넋 나간 듯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하나······."


"저, ······전군, 진군하라! 저 자의 수급을 가져오는 자는 나의 사위로 삼도록 하겠다!"


수그리바 황제의 호령에도 십만 대군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 붙박은 생물이었던 듯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영. ······. 끝났다. 그대들에게 기회는 충분히 주어졌으며, 이 천자는 이곳에 십만이라는 생명이 있음에도, 그 모든 생명이 모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짐승들이라는 사실에,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겠노라. 그대들은 지금부터, 천자의 마지막 자비를 배반한 멍청함을 죽음과 함께 후회하게 될 것이다."


판테라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면류관을 벗어 바닥에 내던지고.

대례복 상의를 손톱으로 찢어 강철보다도 강인한, 백호와 닮은 육체를 드러내 보였다.


십만 대군에 맞서는 것은 단 한 명의 황제이자, 동시에 알 실라 제국에 단 한 명 밖에 없을 보병이었다.


알 실라는 우량카이의 십만 대군 앞에 단 한 명을 내놓았지만.

이는 동시에 알 실라의 모든 병력을 내놓은 것과 그리 다를 것도 없었다.


걸친 것이라곤 겨우 바지저고리 한 벌, 가진 무기라곤 송곳니와 손톱뿐.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제국의 모든 병사보다도, 아니 어쩌면 이 지구의 모든 인간을 다 합친 것보다도 강했으니.


역사상 최강의 화신, 패호황 판테라.


지난 23년간 단 한 명, 단신의 힘으로 우량카이 제국의 영토 절반을 빼앗고, 스스로를 천자라 칭하며 또 다른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남자.


하늘 아래 하나 밖에 존재할 수 없을 황제란 이름을 둘 존재하도록 한 젊은 패자.


그다음 순간 또다시 사자후가 내뱉어졌다.


사자후를 내뱉으며 분노로 일그러진 판테라 황제의 용안은 전설 속 치우천 그 자체였다.


엄연히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던 방금 전의 외침과는 달리.


이번에 내뱉어진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사자후는 그 자체가 고대 시절 존재했던 음파 병기와 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고작 거대한 소리에 불과한 것임에도 마치 태풍이 일어난 듯 그 경로를 따라 땅이 깊게 파이고.


수천 명에 달하는 병사가 하늘로 치솟았고.

귀가 예민한 일부 종족은 머리가 터져 죽었으며.

군마들은 발광해 이성을 잃은 채 날뛰며 낙마한 병사들을 짓밟아 죽였다.


방금 전까지 사기로 들끓던 병사들은 심각한 이명에 의해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는 침묵 속 세계에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지옥도가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강 건너 일인 듯.

혹은 도축장의 돼지라도 된 듯 아주 조금도 미동하지 않으며 그 광경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판테라는, 그 자리에서 크게 도약했다.


화살이 박혀있던 주변의 지면은 그 충격으로 뭉개져 십여 미터 가량 되는 분화구 같은 형상을 만들며 깊게 파였다.


판테라는 방금 전 하늘을 뒤덮은 화살보다도, 그리고 제국에서 자랑하는 어떤 대포나 투석 장치보다도 더욱 높이.

그야말로 우주에 닿았다는 말밖엔 통하지 않을 정도로 높이 날아,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추락했다.


마찰열로 인해 붉게 타오르는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유성이 직격한 듯했다.


판테라 황제가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병사들은 선채로 탄화되어 인간 형태의 검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주변 일대는 마치 거대한 질량 병기가 충돌하기라도 한 듯 주변 모든 암석이 녹아내려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때까지도 운 좋게 살아남은 우량카이 제국군 일부는 깨달았다.


열을 센 것.


고작 자신의 육체에 담긴 힘만으로도 인류를 멸할 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가 고작 자신들 같은 미천한 존재를 위해 열이나 세어줄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한 것은.


코끼리가 평생 동안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자의 자비를 걷어찬 카간과 자신들이 대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저 물리적인 힘만으로 있을 수 없는 대폭발을 일으킨 판테라는.

고열 및 급격한 냉각으로 인해 주변 지형의 모래와 석회암이 변형되어 유리처럼 변해버린 폭심지에서.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 나왔다.


이미 그 주변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단 1초라도 오래 살기 위해 자신들의 수도, 쿠룬이 있는 동쪽 방향으로 달려서, 혹은 기어서 도망치고 있었으니.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판테라의 몸 주변에서 새하얗고, 시커먼 두 종류의 투기(鬪氣)가 천천히, 조금씩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괴력난신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 기이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면서도 뒤돌아 그 광경을 볼 용기가 있는 자들은, 이에 크게 절망했다.


굳이 저런 걸 쓰지 않아도.

그 육신에 담긴 순수한 무력만 사용하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을 찢어 죽이는 데는 충분할 텐데.


굳이 저것을 꺼낸다는 것은 정말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으니.


황제는 그다음 순간 아주 가볍게, 구름을 밟듯 여유롭게 한 걸음 내디뎠고.

그러자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최대한 황제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이들과 황제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만약 그 광경을 본 제국군이 황제가 축지법을 쓴다고 주장한다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건 당연한 건데 뭘 그리 놀라냐 웃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이윽고 황제가 두 팔을 휘두르자 검고 흰 두 권능이 백호의 손톱 형태로 휘둘러졌다.


그건 마치 백호가 거대한 창호지를 찢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공간 그 자체가 찢어지는듯했다.


검은 음(陰)의 투기는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뒤틀고 부숴버리고.

흰 양(陽)의 투기는 주변 모든 것을 팽창시키며 폭발시켜버린다.


음양의 조화, 생성과 소멸이라는 만물의 이치를 담은듯한 힘이었다.


전신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공간에 새겨진 검은 투기에 납작하게 빨려 들어가 철공 형태로 압축되어 바닥에 굴러떨어지고.


한때 인간이었던 것과 강철 조각이 흰 투기에 의해 마치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겨 수천 조각으로 나누어져 바닥에 흩뿌려진다.


두 가지의 기운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온을 동반해 시체에서 흩뿌려진 피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붉은 연기를 피우며 증발해 사라져버렸으며.


찢긴 시체의 단면은 그냥 숯덩이와 어떤 구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커멓게 타올랐다.


그건 마치 이 세상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아름다운 산수화 위에 진한 묵을 덧칠해 그림을 망치고.

거기에 이어 종이 그 자체를 찢어버리기까지 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강철 갑옷을 두부보다도 더 쉽게 뭉개버리고, 사람 한 명을 털에 사는 이 한 마리를 터뜨려 잡듯 아주 손쉽게 터뜨려 죽인다.


대폭태쇄(大爆泰碎).


이 세상 모든 것을 부술 힘.


그것이 바로 전륜성왕이라 불린 무신 아슬란과, 그 화신인 판테라 황제가 가진 권능이었다.


성벽 위에서 투석기가 쏘아졌다.

산처럼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바위는 작은 자갈처럼 잘게 분쇄됐다.


대포도 쏘아졌다.

포탄은 황제의 주변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튕겨나가 제국군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산을 뽑아들고 하늘을 뒤덮을 기개였다.


우량카이 제국에서 누구보다도 이름 드높은 명장과, 무신, 장수, 용사, 무엇이라 불리든 좋을 강자들이 옛 무구를 꺼내들고 그의 앞에 다가섰다.


황제는 그 무엇도 들지 않은 맨손의 손톱을 교차로 휘두르는 것만으로 바둑판 형태의 검풍을 일으켜 수십의 명장들을 깍두기처럼 썰어버렸다.


갑옷을 입은 인간이 허공에 휘둘러진 손톱에 닿지조차 않았음에도 선 채로 조각조각 나는 모습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이를 계속 보느니 차라리 두 눈을 뽑아버리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인 광경이었다.


"흐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황제는 미친 듯이 웃었다.


판테라 황제가 웃었냐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판테라 황제는 누구보다 진지했다.


단 하나의 목숨을 빼앗는데도 매우 진지하게, 정성을 들여서.

사람 목숨을 앗는 데에 개미 목숨 빼앗을 때와 동일한 정도의 노력밖에 들지 않으면서도.


단 한 명을 죽이는데도 최대한 세련되고, 섬세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십만을 쓸어버리는데 단 한순간이면 충분할 텐데도, 그저 꿋꿋이, 세심하게.


그들이 최대한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빠르게 죽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온정을 발휘하며 살육을 반복하고 있었다.


"으하하하, 아하하하하하!"


그럼 어느 황제가 웃었는가?


그 광경을 보며 미친 듯 웃고 있는 건 판테라 황제가 아닌, 수그리바 황제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어리석다는 점에선 별반 다를 게 없음에도.

그저 운이 좋아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자신의 병사들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모습을 추하게 지켜볼 뿐인 보잘것없는 늙은이.


아, 참으로 우스웠다.

희극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인간이 아직도 자신의 목 위에 머리가 달려 있는 게 단순한 우연 덕분이란 걸 깨닫는 순간.

삶은 부조리극이 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십만 대군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였다니.

사람 목숨이 파리만도 못하다니.



그들의 목숨은 화신에게 맞서기로 결심한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끝이 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측은히 여긴 판테라 황제가 전쟁 전 미리 제사 지내줘야만 할 정도로.

우린 이미 한참 전부터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는데.


어째서 우리들은 자신의 천명(天命)이 이미 다한 것도 모른 채 스스로가 강하단 망상에 빠져 되도 않는 객기나 부리고 있었던 것인가.


지난 20여 년간, 수그리바가 직접 소모품으로서, 전술의 일환으로서, 시간 끌기용 미끼로서.

판테라 황제가 있는 전선으로 보낸 병사들 중 단 한 명도 살아돌아온 이가 없었던 게 바로 이런 의미였던 것인가.


화신이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지식으로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십만 대군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한 존재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한 것이 이러한 미증유의 사태를 만들고야 말았다.


어떻게, 고작 단 한 명만, 딱 한 명이라도 이 광경을 본 자가 살아 돌아왔다면.


수그리바와 이 불쌍한 자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고작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만으로도 헛되이 죽지 않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째서 저 천자의 크나큰 뜻과 자비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와 가족의 목숨을 아무 의미도 없을 만용, 알량한 자존심에 집어던졌는가.


고작 한 시진 후, 두 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싸움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우량카이 제국군의 십만의 병사 중,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은 훗날 울란바토르 대전쟁이 아닌.

울란바토르 대학살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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