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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미궁 속 2회차 NPC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덧붙임
작품등록일 :
2024.03.10 14:23
최근연재일 :
2024.04.07 13:05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75,272
추천수 :
3,737
글자수 :
149,495

작성
24.03.21 13:05
조회
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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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글자
12쪽

12

DUMMY

“아니, 그······. 가진 걸 다 달라고요?”


크레이그는 물론이고 가비엘도 당황해서 그리 묻자 온칼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한 게 아니라는 듯 입을 꾹 다문 채로 손을 까딱거리고 있으니 크레이그 일행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돈 벌러 왔다가 괜히 함정에 당해 죽을 뻔한데다 이젠 그나마 가진 것까지 다 털리게 생겼다. 시무룩해진 크레이그 일행이 주섬주섬 가진 것들을 전부 꺼냈다.


오늘 별로 벌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꺼낸 건 금 쪼가리 몇 개가 전부였다.


아마 여기까지 내려오기 위해 장비를 맞추고 식량을 샀을 텐데 이것조차 가져가지 못하면 오늘 하루는 공치는 걸 넘어서 적자가 날 터였다.


그래도 온칼로 덕분에 목숨을 구한 건 사실이고 그에게 마땅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크레이그는 손에 들고 있던 금 쪼가리를 가만히 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온칼로에게 내밀었다.


“부끄럽지만 가진 게 별로 없어 드릴 게 이것뿐이군요. 부족하다면 더 벌어서 드리겠습니다.”


온칼로는 크레이그가 내민 금 쪼가리를 가만히 쳐다봤다. 1급 모험가를 부려 먹은 대가치고는 너무나 적은 보수였다.


그러나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금 쪼가리를 챙긴 온칼로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는 침울한 얼굴이 된 크레이그를 향해 뭔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자 크레이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얼굴에 부딪히기 전에 잡아내는 걸 보니 확실히 실력은 있군. 온칼로가 말했다.


“가져가.”


날아오니까 일단 잡긴 잡았는데, 그게 뭔지는 몰랐던 크레이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거기엔 피 묻은 철 쪼가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인식표?”


모험가들의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인 철 쪼가리다. 크레이그는 이걸 왜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경험 많은 모험가인 가비엘은 바로 알아봤다.


“시체 회수꾼의 인식표로군요? 저희가 가져가도 됩니까?”


“난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너희가 가져가. 물어보니 이미 세 명이나 속여먹은 년이더군. 레토가 값을 잘 쳐줄 거다. 만약 너희 말을 믿지 않으면 내 이름을 써먹어도 괜찮다.”


그 말에 가비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크레이그가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있자 그에게 말했다.


“온칼로 선생께서 우리에게 사기꾼을 잡은 공적을 넘겨주겠다고 하신 거다. 미궁 안에서 같은 모험가를 공격하는 게 중죄인 건 알고 있겠지? 남을 속여서 다치게 한 것도 마찬가지야. 우린 이 인식표를 들고 돌아가서 영주에게 보상을 받으면 돼.”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크레이그의 얼굴도 환해졌다. 그는 인식표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다가 곧 얼굴을 굳히고서 온칼로를 향해 다가갔다.


또 왜? 온칼로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자 크레이그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저 크레이그, 일생 칼밥 먹으며 짐승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인간의 도리라는 걸 배우는군요. 선생께 신세 많이 졌습니다. 일생 형님으로 모시려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온칼로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내 아들뻘은 돼 보이는데 뭔 놈의 형님?”


“그럼 아들처럼 생각해주시지요. 아버지로 모시겠습니다!”


미친놈인가? 온칼로가 얼른 뒤로 물러났다.


“가비엘, 이 친구 머리를 좀 다친 것 같은데 지상으로 올라가면 신전에 데려가라.”


“저 멀쩡합니다, 아버지!”


이 나이에 털 수북한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다. 온칼로는 발작하듯 소리치는 크레이그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 거점을 빠져나왔다.


“······괜한 일에 시간만 뺏겼군.”


부지런히 내려가야 하는데 멍청한 신참 모험가 때문에 내려가진 못하고 오히려 위로 올라와 버렸다.


이미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건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라 온칼로의 걸음은 절로 빨라졌다. 이런 순간에도 고블린들은 지겹도록 튀어나오고 있었으니 조금씩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일단은 다음 거점까지는 가야 할 것 같은데.’


온칼로가 알기로 다음 거점은 지하 28층이다. 지난 거점이 지하 15층이었던 걸 생각하면 상당한 간격이 있는 셈이었다.


본래 거점이라는 건 모험가들이 미궁 탐색을 하면서 적당히 쉴 만한 곳을 임의뢰 설정한 것이라 그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거점간의 간격이 층은 공략 난도가 낮지만 지금처럼 간격이 넓은 층은 공략 난도가 상당히 올라갔다.


물론 온칼로의 실력으로는 지하 28층까지 홀로 내려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귀찮을 뿐이지.


‘한 번에 다 가지는 못하겠군. 꼭 거점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곳에서 쉬어야겠어.’


온칼로는 늙었다. 아무리 용사 요한과 함께 미궁의 주인을 무찔렀던 전설적인 모험가라고 해도, 어지간한 청년보다 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그 본질이 노인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는 슬슬 반복적인 행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건 미궁 탐색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걷고 또 걸어서 드디어 본래 있던 지하 17층으로 돌아온 온칼로는 다시금 속도를 올려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발걸음 소리와 무기 부딪치는 소리,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시끄럽게 울렸다. 멀지 않은 곳에 모험가 무리가 있다. 사방에서 여러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이번 층을 탐색하고 있는 파티가 여러 개인 듯했다.


넓디넓은 미궁에서 다른 파티와 마주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다른 파티의 기척을 이토록 자주 발견하게 되는 건 그만큼 미궁 탐색에 뛰어든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온칼로는 모닥불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의 모습을 떠올렸다. 참으로 덧없는 짓거리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온칼로는 주변의 소음은 신경 쓰지 않고 전진을 이어갔다. 아래로, 더 아래로. 시간의 흐름도 불분명한 미궁의 어둠 속에서 그러고 있으니 대체 몇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하 20층. 부지런히 내려왔으니 이제는 잠깐 쉬어도 될 터다. 다른 모험가라면 거점이 아닌 곳에서 잠깐 휴식은 취해도 식사하거나 잠을 청하진 않았을 텐데 온칼로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고블린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괴물 늑대의 비중이 커지는데 그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선 후각에 집중해야 한다.


육식 동물 특유의 누린내, 괴물 늑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 냄새가 강해지는데 그걸 맡아내면 적의 습격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요. 혹시 조상 중에 개가 있으십니까?’


‘갑자기 웬 조상 욕이냐. 남들 다 하는 일이야.’


‘장담하는데 그거 아무나 못 해요.’


‘사냥꾼은 다 해.’


문득 요한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나 못 하는 재주라고? 이것도 못 하면 사냥꾼 은퇴해야지.


‘은퇴?’


제기랄, 생각해보니 난 원래 은퇴해야 했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온칼로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딱딱한 빵을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남은 식량이······.”


온칼로는 몇 년 동안 메고 다녔던 낡은 가방을 쳐다봤다. 남은 식량으로 볼 때 지금 속도만 유지하면 지하 28층까지는 거뜬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일정은 일단 거기까지 간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적인 목적은 선두에서 미궁 탐색을 주도하고 있는 1급 모험가 무리와 합류하는 것인데 그들을 언제쯤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온칼로는 일단 휴식을 우선하기로 했다. 그는 칼을 손에 쥐고서 벽에 등을 기댔다. 그 상태로 잠을 청했는데 쪽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니 피로가 상당히 가셨다.


자는데 얼마나 시간을 소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쉬고 있을 수는 없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온칼로가 다음 층을 향해 움직였다.


지하 21층을 지나서 지하 22층. 이곳을 지나던 온칼로는 갈림길에 섰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곳에선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멈칫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이 기이한 감각을 무시하고 또 오른쪽으로 가려 하니 옷 안쪽에서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뭔가 하고 손으로 주웠더니 순간 머릿속이 찌르르 울렸다.


‘요한이 남긴 정보······.’


그 정보에 따르면 지하 22층에는 숨겨진 방이 있다. 요한과 함께 갔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히 거기에 뭐가 있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요한이 그토록 강해질 수 있었던 건 미궁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던 덕이야. 가뜩이나 미궁이 좀 더 어려워진 상황인데 구태여 그 정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요한은 오른쪽으로 가려던 몸을 돌려 왼쪽으로 향했다. 그가 알기로 왼쪽 길은 전형적인 함정인데 이대로 쭉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그 아래는 낭떠러지인데 그곳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다음 층에 도착하는 일 따윈 없다. 대체 어찌 돼먹은 구조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함정이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낭떠러지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처음에는 미친놈인가 했는데 잠시 뒤에 다시 기어 올라온 걸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낭떠러지 아래에 뭔가 있겠지.’


얻어먹을 게 있다는데 그냥 지나칠 이유도 없는 법이다. 온칼로는 원래라면 지나쳤어야 할 왼쪽 길을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걷던 중에 어느 지점을 발로 밟자 달칵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에서 창칼이 떨어지는데 온칼로는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달아 울리고 반짝이는 날붙이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끔찍한 꼴로 죽을 뻔한 온칼로가 미간을 좁혔다.


“함정이 더 있다고?”


미궁이 어려워졌다더니 이런 데까지 영향을 미쳤나? 온칼로는 쯧 하고 혀를 차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불 뿜는 함정이 나와서 당황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넘어갈 수는 있었다.


이런 건 원래 야만전사 이고르한테 몸으로 때우게 하고 나중에 주술사 테네벨레가 치유하는 식으로 넘어갔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확실히 더 아래로 내려가려면 파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군.’


이대로 선두의 공략조를 따라잡지 못하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옛날에 함께 모험하던 파티원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게 가장 나은 선택지일 테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레이먼도, 이고르도, 테네벨레까지 전부 미련 없이 미궁을 떠났으니까.


어쨌건 당장은 당장의 모험에 집중할 뿐이다. 온칼로는 뚜벅뚜벅 걸어서 길 끝에 섰다. 저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뿐.


저 아래로 떨어져도 다음 층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니, 뭔가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구조지만 오히려 그런 곳이기 때문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미궁이 달라졌으니 어쩌면 구조도 달라졌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요한을 믿기로 했다.


온칼로는 심호흡을 한 뒤에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끝도 없이 떨어지는 와중에 가만히 생각했다.


‘아닌가, 속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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