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체베트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글은 무협입니다. 원래 저는 서적으로는 김용 선생의 소설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문피아에선 글그린이님의 ‘친왕록’과 몽환님의 ‘명포수라공’만 선호작으로 추가했던 무협의 문외한입니다. 그나마 두 글 역시 지금은 오랜 연중으로 인해 카테고리마저 삭제되어버렸지요. 하지만 쟁패강호를 싫어할 뿐 무협이란 장르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 행여 글쓴이의 표현에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모르는 문피아의 보석! vol.2
많은 장르소설들이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대화에만 몰두하거나 행동에만 몰두한 나머지 ‘글로 쓰는 라디오방송’ 또는 ‘글로 쓰는 활동사진’으로 그치는 것이 오늘날 장르소설의 안타까운 점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들도 존재합니다. 특히 이곳 문피아엔 그렇지 않은 소설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죠. 그리고 도처에 산재해 있는 소설들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제가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려는
‘찌르레기는이제’ 라는 글입니다.
정규연재란에서 ‘에테르(ether)’님께서 쓰고 계시는 이 글의 미덕은 바로 ‘등장인물들의 드라마’와 드라마를 그려내는 특색 있는 ‘문장’으로 함축됩니다.
찌르레기는 이제의 등장인물들은 일반적인 무협소설에서 보여 지는 거창한 이유와 사건에 입각한 자극적인 삶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그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소하다고 해서 정말 소소한 일상은 아닙니다. 분명 다른 소설에서라면 아주 거창하고 매우 대단한 사건-깨달음 등과 같은-으로 표현될 것입니다만, 이 소설에선 그런 자극적인 삶조차 소소한 일상으로 착각할 정도로 부드럽게 그려낸다는 차이점이 존재할 뿐이죠. 그리고 그런 차이점을 느끼실 분들이라면 ‘찌르레기는이제’에 흠뻑 빠져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다음을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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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 마시겠소.”하고 오천민은 술병을 열어 보자 병속에 숨었던 술 냄새가 확 올라오는데, 여간 독한 술이 아니었다. 그는 술병을 흔들어 보며 웃더니 강 속에 집어넣어 강물과 섞어 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나 흥에 취하나 어느 쪽이나 취하면 그만이오. 물에 적신 술이라도 음과 함께라면 못 취할 것 없을 것이오. 화란아 비파 좀 타주련.”
그 말에 화란이 비파를 들고 조심히 타기 시작하자 아름다운 소리가 화란의 손에서 빠져 나오더라.
“거 좋은 소리구려. 내 사매역시 거문고를 좀 탈줄 아니 그것도 좀 섞어 보구려.”
설화가 거문고를 타자, 오천민 역시 호금을 들어 연주 하더라. 비파의 소리는 풀잎을 흔들거리고, 거문고는 물을 채가고, 호금은 배를 싣고 가니, 어느새 호흡이 맞은 남녀는 음에 취해 연주에 열중했다. 바람이 배위를 스쳐 지나갈 때 마다, 그 속에서 나온 음색까지 잡아가, 먼 곳까지 소리가 퍼져 한참동안 이곳저곳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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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는 장면 중 제가 좋아하는 장면을 가져왔습니다. 문장이 술술 읽히는 것을 넘어 문체 자체가 무언가 아련한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하지 않나요? 찌르레기는이제를 읽고 계신 분들이 ‘고무협의 향기가 난다’라며 추억에 젖어들고 계시는데, 저 또한 이런 향기에 취하게 만드는 에테르님의 필력을 높이 삽니다.
참고로, 저는 전문적인 글공부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야인 중에 야인입니다. 그리고 만약 풍부한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전문적인 글공부를 받아 문장력을 올리기보단, ‘어차피 내 맘대로 사는 인생, 먹고 사는 걱정만 덜고 내 마음대로 써보자.’는 생각에 입각해 그 시간에 돈을 한 푼 더 벌고, 교양서적 한권이라도 더 사 읽자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전문적인 글공부를 받으신 분들에겐 처참하게 난도질당합니다만,
들에서 풀 뜯어 먹는 야인 같은 저라도 어떤 문장이 아름다운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 맘대로 행동하는 철부지 같은 저라도 어떤 사람이 특색 있고 좋은 문장을 구사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찌르레기는이제의 문장, 아니 문체는 저의 마음을 홀려버렸고, 저의 손 역시 홀려버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추천 글을 쓰고 있는 것이죠.
어쩌다보니 추천 글이 길어 졌군요. 찌르레기는이제는 이런 분들에게 권합니다.
먼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사건들의 나열보단, 사건의 주체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튼튼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다음으로 속독으로 내용만 이해하는 분들보단, 정독으로 문장과 단어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내용에 빠져드는 분들께,
마지막으로,
글에서 향취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훌륭한 글을 소개해 드리는 것 사과드리며, 좋은 글을 쓰는 이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에르체베트 올림
덧 하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추천 글의 제목은 ‘네임즈’님의 추천방식을 표절했다는 것을 밝힙니다.
덧 둘. 에테르님의 ‘찌르레기는이제’에 이어 지난번에 추천해 드렸던 자판전사님의 ‘볼테르의시계’ 또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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