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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 님의 서재입니다.

미감아(未感兒)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대체역사

성겸
작품등록일 :
2021.08.14 19:43
최근연재일 :
2021.08.17 23:43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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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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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53,471

작성
21.08.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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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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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5. 목자불명반이일월(木子不明反而日月)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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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바보 녀석. 야, 임마. 글공부를 4년씩이나 하고 나보다 머리도 훨씬 좋은 놈이 이 정도 문장도 이해를 못 한단 말이야? 내 참, 기가 차서 원. 글공부 허투루 했네, 허투루 했어. 쯧쯧쯧.”


“아니, 그래서 도대체 무슨 뜻인데?”


형한테 저런 말을 듣는 것이 비록 분하기도 했으나, 지금으로서는 토를 달거나 불평할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다시 그 뜻을 물었다.


“그건 말이야, ‘이씨조선(李氏朝鮮)’의 첫 글자, 오얏 리(李)를 파자(破字)하면 목자(木子)가 되는 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목자불명(木子不明)이란 ‘이 땅 이씨조선에서 너의 출세는 불분명하다.’ 이 뜻이지. 그렇다면 반이일월(反而日月)에서 일월(日月) 역시 밝을 명(明)을 나눈 거니까, ‘도리어 명나라에 가야 한다.’ 이 말씀.”


형의 말을 듣자니, 그 해석이 실로 명쾌하여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옳다구나!'며 환호성을 질러댔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형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4년 동안 배웠던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이에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이제서라도 이토록 깔끔고 신통한 해답을 찾으니, 이보다 더 기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얼굴에는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만연했다.


형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기뻤는지 덩달아 미소가 입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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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지행시어족하(千里之行始於足下,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렷다.


비록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할지 알 수 없으나, 이처럼 방향을 잡음으로써 당장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은 조금 열린 듯 하니 이보다 더 희망적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와 형은 오랜만에 같이 대청마루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항상 밤만 되면 하늘 속 저 어딘가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오늘따라 유달리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마치 별을 처음 본 어린아이의 심정과도 같았다.


이제는 가야 할 방향도 잡은 마당에, 더는 이곳에서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명으로 가야 하는 나의 운명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열정과 설렘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잠이 쉬이 청해지지 않는 밤이었다.


“형··· 오늘은 잠이 잘 안 오네. 형도 그런가?”


“욘석아, 잔말말고 잠이나 빨리 자도록 해. 내일부터는 몇천 리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야성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하다.”


“그거야 나도 잘 알지. 걱정 붙들어 매셔. 그래도 걱정되겠지만.”


“동생이 내일 예고도 없이 몇천 리 길을 나선다는데 걱정이 안 될 수가 있나. 그래, 내가 부모님도 계시고 하니 너를 따라나설 수는 없지마는, 그렇다고 나몰라라 할 수도 없지 않겠냐.”


“그럼, 도시락이라도 싸주게?”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정말 몇 푼 안 되지만 명에 가는 길에 요긴하게 써줬으면 좋겠다.”


굳은 살이 박힌 손바닥엔 상평통보 몇 닢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돈보다는 형의 손에 더 눈길이 갔다. 형의 거칠고 단단한 손에는 그간 총구를 잡아온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에는 몇 푼과 함께 ‘부디 네가 해내다오.’라는 무언의 절규가 같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믿음이 의지를 굳건하게 만들고 새로이 단장되게 만들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하나로 통합이 된 듯한 이 기분.


반드시, 기필코, 해내 보이리라··· 미감아라는 이유로 견뎠어야만 하는 비통함을 끝내주리라······.


이튿날, 명으로 가는 배에 타기 위해 뱃사공에게 찾아갔다.


“어딜 가겠다고 이 이른 아침부터 나루터 앞에서 얼쩡대는 게냐? 어차피 이 섬 밖에 나가봤자 득 되는 거 하나 없을 터인데······.”


“명까지 가는데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아니, 지금 명을 가겠다는 것이냐? 흠··· 어디 보자. 못해도 두어 번은 갈아타야 할 것이니, 못해도 총 3냥은 들것이다.”


“3냥이나요? 쌀 한 가마니 값이잖아요······. 여기에 있어서는 제가 더 배울 것이 없으니 명으로 가고자 하는 것인데, 어찌 안 되겠습니까?”


3냥이라는 것이 별로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물가가 이렇게 비싼데 쌀 한가마니도 쉬이 살 수 있는게 아니거늘 한 푼이라도 가벼이 써서는 안 되었다.


“허유··· 그렇다면 그냥 포기하거라······. 뱃삯마저 준비하기 어려울진대, 명에 가서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참으로 무심하게 들렸지만, 결코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리고, 미감아의 현실을 알지 않느냐······. 명에 간다고 뭣이 크게 다르단 말이냐.”


“그렇다고 하여, 시도도 해보지 않고 어찌 포기를 하겠습니까. 우물 안 개구리마냥 지내야 한다면 뛰어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오르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글공부만 4년, 소과도 치렀으나 이곳에선 마땅히 펼칠 수 있는 게 없어 명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러니, 부디 사정을 살펴주십시오.”


뱃장수가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화난 것도 아니요, 멍 때리는 것도 아닌 것이, 무심한 얼굴이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한 줄기의 밧줄이라도 붙잡고자 하는 심정이었으니, 다른 길은 없었다.


“내아무리 천하디 천한 뱃사공이라지만, 네가 그리 말을 하니 모른체 할 수가 없겠구나. 좋다, 명까지 가는 데 한 냥만 받겠다.”


“정말입니까? 그리하여도 되겠습니까?”


“나머지 두 냥은 빚이다. 그러니, 조선에 돌아와서 꼭 갚거라. 언제 갈 참이냐?”


세상에··· 생각도 못한 은혜에 감사하기 그지 없었다. 나머지 두 냥은 기필코 훗날 다시 와서 전해드리리라.


뱃사람들끼리는 다 통한다고, 명까지 가는 총 경비를 1냥으로 들게끔 도와주고 2냥은 나중에 와서 갚으란 거였다.


“내일 모레 갈 참 입니다. 2냥은 기필코 잊지 않겠습니다.”


“내일 정오에 명으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때 오려무나.”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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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까지 알아보고 난 후에야 이제서야 명으로 간다는게 와 닿았다. 형을 두고 떠나는것만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서신이 있으니 그걸로나마 위안을 삼자고 했다.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다. 뭐가 있어야 말이지······. 아침부터 형은 산으로 나가지 않았다. 명으로 가면 이제 보기 어려울 테니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여느때보다 색다른 날이다.


모처럼 밥상에 고기도 올라왔었고, 개울가에서 멱도 감으며, 물장구도 쳤다. 마치 전장(戰場)에 나가기 전, 사기를 충족하듯이 즐거이 먹고 마시면서 말이다.


같은 촌락에 사는 다른 미감아들도 만났다. 생기 없던 얼굴들에 생기가 피어있었다. 다들 사뭇 다른 모습에 흠칫 놀랐지만, 나를 각성시키는 좋은 각성제가 되었다.


나환자라 하여, 미감아라 하여, 이러한 처우는 가당치도 않다. 그러한 차별은 이곳 조선에만 있으리라. 그러한 조선은 퇴폐(頹廢)할대로 퇴폐하고, 부패할대로 부패한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드디어 내일이면 새로운 시작을 들이겠구나. 이제 여기서의 서러움도 그만이고, 제대로 나의 재량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같은 처지에 정이 더해져 가면서 먹을 식량이 생겼다. 가고자하는 뜻이 있으니 길은 자연히 보이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굳센 각오를 하게 되었다.


찬찬히 마을을 둘러보니, 그동안 같은 하늘 아래에 이리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했나 싶었다. 소록도라는 조그마한 섬 안에 갇혀서 각기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도 각기 재능이 있으나 펼치고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이러한 사정을 바로잡고자 시국선언문을 썼으나, 부질없게 되버렸으니 시국선언문은 왜 있노라 생각했다.


조선에서 태어났건만, 이는 조선 사람만도 못하오. 그렇다고 명나라 사람처럼 귀히 대접받는 것도 아니오. 이를 어이 받아들일까······.


애통스러움을 부여잡아봤자 제 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것이 현실이니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라는 것이 원망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하고 싶은 게 있거든,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지.”


내가 명으로 가는 것 자체가, 다른 미감아들에게도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을터다. 그 누구도 내게는 저리 말해준 이가 없었다. 심지어 형조차도.


혼자서만 간직하고 혼자서만 생각했었다. 누군가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누군가 말을 해 주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내일이면 드디어 명으로 간다. 이로써 여기서의 정리는 다 한 것 같다. 매일 매일 지내오며 보내던 곳을 떠나보내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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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명을 향하여 21.08.14 10 0 9쪽
» 5. 목자불명반이일월(木子不明反而日月) 21.08.14 16 0 10쪽
5 4.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21.08.14 12 0 7쪽
4 3. 총은 역시 아닌 건가… 21.08.14 15 0 12쪽
3 2. 집총(執銃) 21.08.14 18 0 8쪽
2 1. 포수 말고는… 21.08.14 27 0 10쪽
1 序. 미감아 한야성 21.08.14 5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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