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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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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9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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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4,242

작성
23.07.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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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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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3. 만남 (3)

DUMMY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방이었다. 1층에서 사람들이 카드게임이 한창 즐겼던 방 말이다. 나는 그 방에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분명 나는 어젯밤 백작의 집무실에서 있었는데, 어떻게 1층에 내려왔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나 두통이 심하던지 나도 모르게 손으로 이마를 짓눌렀다. 그때 나는 한 손에 카드를 들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게 뭐야?”


구겨진 카드는 카드게임에 썼던 카드였다. 그걸 내가 왜 들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거기다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바지는 찢어졌고, 신발은 먼지투성이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내 모습은 이상했고 방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병과 술잔만 나뒹구는 방에만 있으니 어제의 모든 일이 환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분명 내가 보는 건 현실이었다.


나는 불안감을 가진 채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레이놀즈! 레이놀즈 씨! 백작님!”


계단을 오르며 소리쳤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백작과 함께했던 집무실로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었다.


백작도, 그와 함께 마셨던 차도 보이지 않았다. 휑한 모습은 어제와 똑같았고, 나는 그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체 내가 왜 기억이 없는 걸까. 그리고 백작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는 이 수상한 저택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바로 앞 계단에 무언가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나와 달리 그것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다름 아닌 페리였다. 그는 한 손에는 반쯤 채워진 술병을 든 채 어딘가를 응시했다. 바로 곁으로 내가 다가왔는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페리. 아직 여기 있었어?”

“다들 떠났어. 아침이 되면 그래야 해. 이 저택에서 지켜야 하는 약속이지.”


페리는 말하면서 입에 술병을 가져다댔다. 어제도 상당히 취해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눈빛은 이상하게도 또렷했다.


나는 어제 페리가 겪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백작에게 아부를 떨었던 모습과 여자들에게 이끌려갔던 모습 모두. 그래서 페리를 다시 만나니 경계심이 가득 생겼다.


내가 그의 곁에서 멀어지려고 하는데 페리가 술을 마시면서 물었다.


“어제 백작이랑 무슨 일이 있었어?”

“뭐? 레이놀즈 말이야?”

“누구?”

“백작 말이야. 나는 레이놀즈랑······.”


솔직히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물론 그와 나누었던 대화 모두 머리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페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내 예상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페리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벌겋게 변한 눈을 보니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페리. 너 괜찮아?”

“레이놀즈. 그게 백작님의 이름이라는 말이지? 나는 전혀 몰랐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버지니아 대학교에서는 없을 것 같은데.”


페리는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여전히 시뻘건 눈을 깜빡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별안간 빈 술병을 내게 던졌다. 빠르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술병을 얼른 피했다. 얼굴을 스쳐 지나간 술병은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이 망할 자식!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말로 정신이 나갔어?!”

“에디, 벌써 그렇게 백작님이랑 친해졌을 줄은 몰랐네. 아, 맞아. 백작님이 널 만나고 싶어 했지. 그래서 내가 널 여기로 데려왔지. 그런데도 내게는 성의조차 보여주지 않았어.”

“미친 소리 그만하고 정신 차리라고.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나한테는 중요해. 그리고 어제 백작님 덕분에 잘 놀았으면서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거야?”

“···뭐?”


나는 페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였지만 분명 그 모든 말은 진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더니 페리가 씩 웃었다. 붉어진 눈에 웃고 있으니 그 모습이 너무나 기묘했다. 나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어제 그렇게 부어라 마신 사람이 누구지? 누구보다 도박에 열중했던 사람이 누구지? 다 에드거 앨런 포, 바로 너잖아.”

“헛소리 하지 마, 페리.”

“헛소리? 아, 이제 보니까 기억이 아예 없나보네? 하긴 그렇게 술을 마셨으니 기억이 없지. 그럼 너, 어제 백작님한테 1천 달러를 빌려서 도박을 했다는 것도 기억에 없나?”


이제 나는 페리의 말을 술주정으로 무시할 수 없었다. 1천 달러라니! 1천 달러면 대학을 4년 내내,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큰 금액이란 말이다!


그 사이, 페리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금방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나 그는 멀쩡하게 내 앞에 섰다.


그리고는 내 멱살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어이, 에디. 내가 왜 백작님께 잘 보이려고 하는지 알아? 너 같은 대학생한테도 1천 달러라는 거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부자라고. 나는 이 저택에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대학교가 아니라 백작님 옆이라는 걸 말이야.”

“망할! 놔, 페리! 네가 레이놀즈한테 무슨 생각을 갖고 있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왜 너 같은 놈한테 백작님이 관심이 보이는 줄 모르겠네. 말해 봐, 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완전히 맛이 간 페리를 나는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는 그의 팔을 붙잡고는 힘껏 꺾었다. 순간, 그가 손아귀를 풀더니 뒤로 물러나다 계단을 헛디뎌서는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페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죽은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 저택을 벗어났다. 이 미친 곳을 당장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참을 달려 간신히 버지니아 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강의실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꼴이 말이 아니었고, 너무 피곤해서 곧장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로 가는 길에 백작의 저택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쳐다봤지만 그들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페리의 말처럼 모두가 저택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니 깜짝 놀란 얼굴로 해밀턴이 서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이 듣는 라틴어 수업의 교재를 들고 있었다.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거만하게 카드를 던지던 해밀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내가 아는 것처럼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에 불과했다.


“어, 음, 에디. 괜찮아? 지금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는데. 수업은 들을 수 있겠어?”

“해밀턴. 너도 알고 있어?”

“무슨 말이야?”

“어제 내게 있었던 일 말이야.”


해밀턴은 내 물음에 움찔거렸다. 그 반응에 해밀턴도 어제의 내 모습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어마어마한 도박빚을 졌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페리가 그랬어. 나 어제 도박으로 1천 달러나 썼다고. 그게 사실이야? 너도 어젯밤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나 기억이 전혀 없어.”

“에디, 여기서는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면 안 돼. 그건 우리들의 약속이라고.”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냐. 내가 진짜 1천 달러나 빚을 졌냐고?”


나는 흥분하여 해밀턴에게 덤빌 듯이 물었다. 기숙사에서 나온 몇몇 학생들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며 지나쳤다. 하지만 나는 그런 눈길을 무시했다.


해밀턴은 얼른 눈을 굴렸다. 그 모습에 나는 그 모습에 나는 기억에 전혀 없는 어젯밤의 내 모습을 점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밀턴은 주변을 둘러보다 정말 낮은 목소리로,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귀띔했다.


“에디. 페리 말이 맞아. 너는 어제 도박빚을 졌어. 어제 갑자기 잔뜩 흥분한 채 나타나서는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와서 카드게임을 참가했다고.”

“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어.”

“당연히 백작이 빌려줬지. 네 옆에 백작이 서 있었어. 너는 그 사람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

“그래서 백작이 얼마나 나한테 줬는데.”

“100달러. 그 돈 모두를 판돈으로 걸었어. 단 한 게임에.”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딴 짓을 했는지 나 스스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존 앨런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나는 가난한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100달러라는 큰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겠나!


씁쓸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는 어제의 기억을 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몇 번 카드게임을 하니까 1천 달러나 빚을 졌다는 거지? 백작한테?”

“맞아. 백작이 순순히 너에게 돈을 빌려줬어. 마치 즐겨도 된다는 듯이 말이야. 나는 그 저택에 오가면서 백작이 학생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걸 본 적이 없었어.”


어이없게도 나는 그 말에 왜 페리가 나를 아니꼽게 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페리를 떠올리며 해밀턴에게 물었다.


“술도 엄청 마셔댔고?”

“게임하는 내내. 마지막에는 잔뜩 취해서 고래고래 노래까지 불렀어. 그러다 의자 옆으로 쓰러져서는 이렇게 됐지.”


해밀턴이 내 몰골을 가리켰다. 어젯밤 나는 페리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했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나는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동시에 그제야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빚이 상당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1천 달러는 간단히 숨길 수 있을 만한 빚이 아니다! 당장 이 사실이 존 앨런에게 알려졌다간 당장 날 학교에서 쫓아낼 것이다!


백작을 다시 만나 사정을 빌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나는 해밀턴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그의 모습에 나는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점점 멀어지려는 해밀턴을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해밀턴. 나, 너랑 같은 테이블에서 카드게임을 했지? 그럼 내 1천 달러는 너랑 그 테이블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나눠가졌지? 넌 얼마나 땄어?”

“에디. 돈을 잃는 사람이 있으면 딴 사람도 있는 게 게임이야. 네 덕분에 나는 집에 손을 빌릴 필요가 없게 되었어.”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날 탓하지 마. 게임에 참가한 건 너야. 그리고 백작한테 1천 달러나 돈을 빌린 건 너라고.”

“망할! 나는 애당초 백작의 저택에 가고 싶지도 않았어! 도박 따위도 할 생각이 없었다고!”

“도박? 무슨 말이지, 포? 학교에서 도박을 했다는 겐가? 그리고 백작은 또 누구지?”


나와 해밀턴이 얼른 고개를 돌리니 기숙사 사감이 서 있었다.


머리가 희끗하고 이마에 주름이 새겨진 중년 남자인 사감은 오랫동안 기숙사에서 학생들에게 교칙을 알려줬다. 그만큼 완고했으며 학생의 이탈에 매우 민감했다.


역시나 사감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와 해밀턴에게 다가왔다.


“포, 방금 도박이라고 했지? 대학생으로서 그게 할 짓인가? 대체 어디서 도박을 했다는 거야? 그리고 이 술냄새는 또 뭐고?”


해밀턴은 즉시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멀리서 다른 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신처럼 부릅뜬 눈으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날 보고 있었다.


그건 허상이 아니었다. 분명 현실이었다. 학교에서 숨겨야 할 금기를 밝힌 나를 모두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감은 그런 학생들의 눈빛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를 타박했다.


“포, 왜 말이 없지? 바른대로 말해. 어디서 술을 마셨지? 도박이 어디서 한 거고? 누가 같이 갔지?”


나는 당장 도망쳤다. 사감의 강압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수십 명이 노려보는 눈빛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달렸다. 그러나 여전히 사방에서 눈빛이 비수처럼 쫓아왔고, 결국 나는 다시 학교 밖으로 내쫓기듯 도망쳐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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