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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라K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자성
작품등록일 :
2020.09.28 22:36
최근연재일 :
2021.01.08 19:10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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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99
추천수 :
1,248
글자수 :
577,156

작성
20.10.0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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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입학 시험 (2)

DUMMY

5분이 지났다.


적지 않은 수의 인원들이 빠져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크는 아니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좀 더 강해져서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남은 이들은 처음 온 것이어도 자신감이 있거나, 만용이거나, 혹은 예전에 나갔다가 재입학을 시도한 자들이었다.


“반이나 빠져나갔군.”


교장인 리칼은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흔히 있는 일이다.

오크들이 사는 숲에서 생존하라는 말에 겁을 먹고 나가는 이들은 많았다.

매 년 벌어지는 일이라 감흥이 없었다.


그럼 이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


그리 생각하며 리칼이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였다.


“와, 와, 와! 잠깐만요!”


웬 소녀가 정신없이 뛰어왔다.

새하얀 설산이 떠오를 정도로 순백한 머리카락, 그 설산 속에 파묻힌 사파이어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청색 눈동자.

그러나 우아한 색감과는 다르게 장난기가 다분히 느껴지는 몸짓이라 괴리감이 느껴졌다.


“방금 막 사람들 우르르 나가던데, 입학식 벌써 끝났어요? 그럼 안 되는데!”


혼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방 뛰는 소녀.

그 탓에 계속해서 감돌던 긴장감이 맥없이 풀려버렸다.


겨우 만들어둔 분위기가 와해되어버리다니.

리칼은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극적인 연출이···’


오크를 풀어둔 숲?

목숨이 아까우면 도망쳐라?


그딴 짓을 황제는 입학생들에게 시키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자신에게 위협을 끼치지 못하는 자들이라 해도, 언젠가는 강해질 수도 있으니 키워줘야 하니까.


그리고 보통 특이한 자들은 귀족 출신이 아니라 평민 출신에서 나온다.

그 평민 출신들 중에서도 크게 될 새싹들만 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오크를 풀어둔 숲에 들어갈 정도는 되어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리칼은 오크를 풀어둔 숲에 들어가는 시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은 자들에게 제군들은 이미 가능성을 증명했다며 정식 입학을 허가해줬다.


이러한 가능성의 시험은 외부로 누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혹여나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 누가 듣는다면, 마법의 방해를 받아 우스갯소리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전통.


그런데 저 지각생 때문에 흐름이 끊긴 것이다.


“아직 안 끝났다. 뭐 때문에 늦었지?”


리칼의 목소리는 사나웠다.

가능성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서는 극적인 흐름이 필요하거늘, 그것이 깨져버렸으니 분노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아, 그게 말이에요. 저는 제가 귀족 출신인 줄 알고 왼쪽 길을 갔거든요? 그런데 몰락한 귀족이라서 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 참내. 몰락하면 귀족 아닌가? 출신이라는 말을 그럼 쓰지 말든가!”


그 말에 진혁도 어느 정도 공감은 했다.

리릴이 자연스럽게 평민 출신의 길을 선택했을 뿐이지, 리릴 또한 따지고 보면 귀족 출신이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래서 귀족 출신 쪽으로 갔다가 돌아온 것인가···”


리칼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터트릴 수가 없었다.

단어 선택의 실수로 인해 길을 잘못 든 학생에게 교장이라는 자가 호통을 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조용히 고개만 까딱거렸다.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눈치채고서 소녀는 호다닥 운동장에 들어갔다.


‘흐름이 끊긴 것을 어쩐다···’


리칼은 잠시 고민했다.

오크를 풀어둔 숲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임시 입학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난이도는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이는 지금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가능성을 말해봤자, 가슴 깊이 새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가능성을 품고 있고, 그것을 증명하였노라고 말해봤자 밋밋하게 다가올 게 뻔했으니까.


‘그렇다면.’


리칼은 헛기침을 하고서 말했다.


“그대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무운이 있기를 빌지. 잠시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대들을 임시로 담당할 교관들이 올 것이다. 면담하도록.”


리칼이 강단에서 내려오자, 뒤에서 기다리던 교관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아직 가능성을 입증하지 않았는데 면담을 하라니, 보통 면담은 정식 입학이 확정된 이후에 해왔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교관들에게 리칼은 말했다.


“흐름이 끊겼다. 학생들의 긴장감을 드높이는 수밖에.”


계획은 이랬다.


임시 입학생들은 면담을 하고, 조원이 발표될 때까지 긴장감을 계속해서 느낀다.

그 긴장감을 느끼는 동안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한순간의 충동으로 남기는 했으나, 진짜 생존할 수 있을지 스스로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장기전에 약한 이들이 제 발로 나갈 수도 있고, 남아있는 학생들도 정신적으로 피로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이게 더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좋다.

리칼은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싫어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평민들의 자존감은 귀족보다 뒤떨어지기에.’


가능성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마음에 쌓아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귀족과 자신을 비교할 테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악령이나 악마가 생겨서는 안 된다.’


그러니 철저히 예방한다.


“교장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교관들은 리칼이 교내로 들어가자 일제히 손을 올려 경례했다.

그리고 명부를 들고서 운동장에 갔다.

명부에는 포기한 이들이 빨간 줄로 그어져있었고, 남은 이들은 파란색 글자로 적혀있었다.


“자, 학생들 여기 놀러온 거 아니다. 지금부터 교관이 부르면 따라오도록.”


진혁은 군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장의 연설은 대대장의 말 같았고, 교관들은 진짜 말 그대로 군대의 교관들 같았다.

특히 교관 주변에 조교들이 패기 넘치게 돌아다니는 모습은 틀림없이 훈련소였다.


‘하긴, 취지가 다른가.’


이 세상의 아카데미를 마냥 학교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엄연히 황제가 귀족이 될 자들을 뽑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던가.

지구의 학교와는 존재하는 이유부터가 달랐다.


“리릴, 리릴 학생은 이쪽으로 옵니다.”


조교 한 명이 말했다.

그 조교의 곁에는 헤─ 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연두색 머리카락에 연두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분명히 교관이었으나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홀로 꽃밭을 거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품은 마력의 양에 진혁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강하다.’


저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강함은 숨길 수 없다.

조교의 통제 하에 모인 학생들도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긴, 훈련소 소대장이 등신 같이 처웃고 있어도 무시하면 좆 되지.’


군대로 비유하니 간단했다.

진혁은 리릴과 함께 조교의 부름을 따라 걸어갔다.

그 곁으로 지각한 소녀가 따라붙었다.


“오오! 너도 나랑 교관님이 같구나?”


“네, 네에···”


“에이, 존댓말을 왜 써? 우리 동급생이잖아~”


“그, 그렇지만.”


“너 몇 살인데? 난 15살이거든.”


“저도 15살이에요···”


“뭐야! 나이도 똑같은데 말 놓으면 되겠네! 말 안 놓으면 이제부터 대화 안 함! 수고!”


“네, 아니, 그, 그러니까, 으, 응···”


리릴은 소녀의 페이스에 완전히 잡아먹혔다.

소녀는 사교성이 밝은 것 같은데, 리릴은 그렇지 않다.

세상을 사람으로 배우지 않고 책으로 배웠으니까.

지금 리릴은 거친 파도를 맞닥트린 종이배의 심정일 것이다.


“난 에리나라고 해. 너는?”


“리, 리릴.”


“리리릴?”


“아니, 리릴.”


“아하, 아니리릴?”


아니, 어쩌면 소녀는 사교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혁은 리릴과 에리나가 나눈 대화를 듣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름이 리릴이라고. 왜 말귀를 못 알아듣냐?”


“헉! 네놈은 누구냐!”


에리나는 갑자기 성인 남성이 대화에 끼어들자 경계심을 드높였다.

진혁은 그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자기 소개를 하려고 했지만,

에리나는 2절, 3절, 뇌절까지 해대고 있었다.


“아하, 네놈은 우리를 파악하기 위해 숨어든 조교렷다? 스파이라서 조교 모자를 안 쓴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내 눈은 속일 수가 없지!”


“내가 진짜 조교면 어쩌려고 당당하게 반말을 쓰는 거냐?”


“후후후! 멍청하긴, 난 아까 은근슬쩍 교장에게도 말을 놓았도다!”


“아.”


진혁은 자기도 모르게 ‘아’라고 탄식했다.

이때까지 나눈 대화로 두 가지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에리나가 친해지면 굉장히 귀찮을 것 같은 유형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친해지기 싫다고 해도 달라붙을 유형이라는 것이었다.


‘귀찮은 게 꼬였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리릴의 반응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때까지 차분한 시냇물만 따라가다가 거친 파도를 만나니 신기한 것일까?

리릴이 에리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은근한 선망이 깃들어있었다.


‘뭐, 주인 아가씨가 괜찮다면야.’


진혁은 리릴의 기분이 괜찮은 것 같아 보이니 넘기고, 주변을 둘러봤다.

레이라는 다른 교관님이 걸린 것인지 저 멀리서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진혁도 함께 흔들어줬다.


“똑바로 정렬합니다. 지금부터 명단 다시 부를 테니 호명 받은 학생은 대답합니다.”


딱딱하게 조교는 명단을 불러나갔다.

명단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는 교관을 따라 움직였다.


그때 진혁은 군대와 아카데미의 차이점을 하나 찾았다.

적어도 발을 맞춰서 걷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왼발, 왼발, 왼발, 왼발.’


하나둘셋넷,

하나둘셋넷,

그럼에도 진혁은 왠지 모르게 발을 맞춰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억지로 맞춰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교관연구실─오로리’라고 적힌 방이었다.

임시 교관의 이름이 오로리인 것 같았다.


“지금부터 교관님의 면담을 시작합니다. 호명하는 학생은 들어가서 면담하도록 합니다.”


조교는 학생의 이름을 호명했고, 이름이 불린 학생은 방 안에 들어갔다.

대기하는 학생들은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았다.

리릴의 옆에 착 달라붙은 에리나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헤헤 웃었다.


“리릴, 너 진짜 되게되게 귀엽게 생겼다!”


“아, 으···”


리릴은 무슨 말로 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역시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대화법 같은 책은 불태우기를 잘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인 아가씨가 대화를 잘 이어나가기 어려워하면, 소환수가 나서줘야 하는 법.


그렇다고 해서 리릴의 귀여움을 찬양하는 대화에 어울려줄 이유도 없었다. 리릴이 대화에 낄 수 있는 주제를 꺼내야 했다.


“그런데 너, 입학식 늦게 와서 뭐가 뭔지 잘 모르지 않냐?”


“뭐가뭐가? 내가 뭐를 모르는데?”


“면담이 끝나면 조합이 안 맞는 3인으로 1조가 만들어져. 그리고 그 3인 1조는 오크 두 마리가 있는 숲에서 일주일 동안 생존해야 하지.”


진혁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임시 입학생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절망감, 혹은 그것을 떨쳐내려는 용기.


에리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에리나를 리릴이 다독이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의도였다.


그런데 에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이 반응이 아닌데.


“넌 안 무섭냐? 무려 오크라고. 감당할 수 있겠어?”


“오크를 내가 왜 무서워해야 해?”


한순간.


에리나는 장난기를 거두고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무엇이라 형용해야 할까.

진혁은 어울리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섬뜩했다.


그 미소와 동시에 흘러나온 마력이, 너무나도 차가워서 섬뜩함은 증폭됐다.


“그거 그냥, 멍청한 돼지들 아니야?”


작가의말

오크들한테 말이 심하네 ㅜ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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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환수가 된 헌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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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책임감과 즐거움 +5 20.10.08 1,085 22 12쪽
14 모키디 도적단 (3) +1 20.10.07 1,081 26 12쪽
13 모키디 도적단 (2) +6 20.10.06 1,115 21 12쪽
12 모키디 도적단 (1) +3 20.10.05 1,164 23 12쪽
11 용병 고용 +5 20.10.04 1,296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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