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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내 제자가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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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정
작품등록일 :
2024.03.12 05:24
최근연재일 :
2024.03.19 22:45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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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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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쪽

3.스승과 제자.

DUMMY

3.스승과 제자.




공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라일라의 모습을 보니 제도에서 화형으로 죽임당한 미래의 라일라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울컥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지만.


“어? 뭐야, 생존자가 있었잖아?”

“······.”


뒤따라온 예커젝이 뒤에 있었기에, 또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보는 라일라의 모습 때문에 꿀꺽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어 라일라와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생기가 없는 눈이다. 삶의 의욕이 없는 그런 죽은 눈 말이다.


만약 그리핀 상단이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라일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이곳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나와 만난 것은 ‘운명’이 아닐까?


물론 첫 만남은 비참하게 끝났지만, 두 번째 만남은 그렇게 끝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바꿀 것이다.


“그만 놓아주자꾸나.”

“······.”

“두 분을 이곳에 그대로 두면 너무 춥잖니.”


두 구의 시체를 보며 부드럽게 말하자, 죽어있던 녀석의 눈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종이에 물감이 서서히 번지듯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라 있던 눈물샘이 다시금 울컥하고 차올라 라일라 눈에 가득 담겼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흑흑··· 우리, 엄마··· 아빠···.”

“아저씨가 도와줄게.”


그렇게 손을 내밀자, 녀석은 제 나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나에게 안긴다. 부모님이 목숨을 잃어 무서웠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서웠다고 말하며 말이다.


“으아아앙- 흐아아앙!”

“···그러니, 울지 말렴.”


얇고 가볍고 작은 몸이다. 폭 하고 내 몸 안으로 들어와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녀석의 그 보드라운 갈색 머리칼을 쓸어주며 등을 다독여 줬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일까? 뒤에 있던 예커젝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작게 입만 벌린 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이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마을 유일한 생존자 같은데? 한 7, 8살쯤 되려나?”

“···그럴 거야.”

“이것 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난감해.”


난감하다는 말은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미래가 뻔하다는 것을 알기에 예커젝이 내뱉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구해지긴 했지만 고아인 것은 사실. 상단에 알려 제도로 데려가겠지만,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딘가로 팔려 가게 되는 것이 이곳의 삶이었다.


그만큼 전쟁고아는 너무도 많았고 그것을 제국에서 모두 감당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척 보아도 여자아이.


남자아이보다 더 힘든 삶을 예커젝은 순식간에 그린 것이다.


‘과거에도 그리핀 상단은 경황이 없어 라일라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맡았지.’


잠시 예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씨, 왜 내가 이런 애를 맡아야 하는 거야?>


<······.>


<젠장맞을, 따라오든가 말든가. 너 알아서 해! 쳇.>



···세상 끔찍한 말을 어린애에게 뱉었구나. 난.


“일단 고인은 우리가 수습하고 아이는 상단에 보고해야지.”

“아- 그래. 그래야지. 음.”


정신을 차린 예커젝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작은 손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본다. 아직도 훌쩍이는 녀석에게.


“···이름이 뭐니?”


당연히 알고 있는 이름을 물어봤다.


“흐끅- 흐끅- 라, 라일라요오오···.”

“그래, 라일라. 내, 이름은 제이든이란다.”

“훌쩍, 아저씨. 히끅- 으으-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아빠아아···. 으아앙-!”

“괜찮아. 괜찮아.”


라일라.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역시, 나의 제자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쌍하게 세상을 떠났던 나의 제자. 라일라.


그런 라일라를 다독이다 이내 조금 힘을 주어 품에 안아본다. 그 과정이 놀랐는지 녀석은 울음을 순간 멈췄고.


“아저씨가 지켜줄게.”


그에 나는 조용히 읊조리듯 그리 말했다.


“그러니 걱정마렴.”


그러자 눈물을 흘리던 라일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힘이 없는지 녀석은 축 늘어져 버렸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예커젝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지만,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멈춰 세웠다.


“제이든-”

“쉿-!”

“?”

“잠든 거야.”


우리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갑자기 쓰러져 놀랐었더랬지.


스윽-


“아무래도 먼저 아이를 챙긴 다음에 수습해야 할 것 같아.”

“후우··· 그래, 그렇게 하지. 그나저나, 아이 다루는 법이 제법 능숙한데? 어디 숨겨둔 딸이라도 있던 거 아냐?”


머리를 긁적이며 농담을 던지는 예커젝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품 안에 공주님처럼 안겨 잠들어 버린 라일라를 데리고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을 빠져나와 상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저, 정말이야?”

“맘대로 생각해라.”

“헉! 충격적인데···.”


라는 물음으로 놀란 목소리를 뱉는 예커젝의 엉뚱한 얼굴이 궁금하긴 했지만, 녀석의 말을 다 받아주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수습과 기도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니 말이다.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라일라를 데리고 상단 사람에게 가니, 무척이나 따스하게 녀석을 받아주었다.


과거 경황없던 그리핀 상단 사람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나는 ‘바뀐’운명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었다.


“제가 돌볼게요. 제이든.”

“아- 그···.”

“괜찮아요. 다른 문들은 바쁘고 저는 한가하니까요.”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

“네! 휴우~ 불쌍한 아이. 가여워라.”

‘과거엔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던 사람과 자연스레 대화도 하고 말이지···.’


상단 사람 중에서도 라일라에게 관심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상단주의 딸인 아리아 노바로였다. 과거에는 크게 다친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마차 밖으로도 나와보지 않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니 관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상단주인 아버지가 아픈데, 무슨 옛 상인들의 법도를 지키냐고. 그냥 마을을 빨리 벗어나자고 마차 안에서 얼굴도 보이지 않고 소리만 질러댔었지.’


몇 안 되는 과거 기억을 상기시킨 나는, 측은한 표정으로 라일라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폐허가 된 마을로 달려갔다.


그곳으로 가니 이미 용병들과 상인들이 수습하기 위해 옮겨 놓은 수많은 시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끔찍한 상처, 적나라한 민낯은 참으로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마물이 시체를 파먹을 수 있으니 땅에 그대로 묻을 순 없소.”

“마물이 시체를 먹으면 그 시체도 마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런가···.”

“그만큼 마물과 마족이 끔찍한 존재라는 거지. 휴우.”


관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갑작스레 그런 것이 주변에 있을 리 없었다. 시간적 여유도 넉넉하지 못한 일행들이고 말이다.


“그럼 한데 모아 화장합시다.”

“그러는 게 좋겠소이다.”


그 때문에 시체들은 하나로 모아 화장 하기로 서로 뜻을 맞췄다. 시신들을 하나로 모아 장작과 함께 불을 붙여 태운다.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 누구도 불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엄숙한 가운데, 우리는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었고.


특히 나는 라일라의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제대로 했다. 과거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넘어갔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생은 라일라를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과거와 같은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깊이, 가슴속으로 애도했다. 그들은 하나뿐인 제자의 소중한 부모님이었으니까.


그리고 반성했다. 과거의 나는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 일을 먼저 떠난 부모님이 알았다면 얼마나 노했을지, 지금 생각하면 다시금 가슴이 시려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모든 것이 마무리되자 상단 사람들과 용병들은 이제 마을을 벗어날 준비를 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함이로군.”

“영지 간의 전쟁에도 참여하는 것이 용병인데, 뭘.”

“그건 민간인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잖아. 자네도 표정이 썩 좋지 않으면서 뭘 그래.”

“······.”


구슬땀을 흘린 나와 예커젝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물론 나는 돌아오자마자 가야 할 곳이 있었지만.


“어디가?”

“아까 그 꼬맹이 보러.”

“헛- 천하의 제이든이 아이를 걱정하는 거야? 정말 내가 아는 제이든이 맞나 몰라? 허허.”

“시끄러.”


가볍게 예커젝에게 중지를 날린 후 상단 마차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짜증 나 뭐라 더 하고 싶었지만, 라일라가 걱정되었으니 그게 더 우선이다.


‘녀석,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닐 텐데···.’


지금쯤 잠에서 깼을까 싶던 그때.


“으아아앙-”

“!”


갑작스레 들려오는 어린애의 울음소리. 분명 라일라일 것이라 확신한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내가 아는 상황과는 다른 무언가가 생긴 건가?


그런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괘, 괜찮다니까. 여긴 안전한 곳이야. 조금만 닦자, 얼굴이 더러워서···.”

“으아아앙- 싫어-”

“······하아.”


내가 발견하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딱 봐도 그랬다. 스스로 민망한 지 날 발견한 아리아 아가씨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댔다.


“그··· 제이든. 이, 이건. 제가 아이를 울리려고 한 게 아니라요.”

“압니다. 알 것 같습니다. 아가씨.”


짧지만 라일라를 데리고 다녔던 나였기에 아이가 어떤 맘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라일라가 그대로 잠들어 버려, 나와 아리아 아가씨는 더 편한 곳에서 누워 자라고 마차에 옮겼었다. 땅바닥에 자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하지만 갑작스레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 앞에서 눈을 뜬 라일라는 어린 마음에 겁을 먹을 먹어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것일까?


호다닥-


“훌쩍- 아저씨!”

“···아.”

“······.”


라일라 녀석은 아리아 아가씨 품에서 벗어나 얼른 내 쪽으로 달려와 덥석 안겨버렸다. 참으로 민망해져 버리는 상황에 나도 멋쩍어 목덜미를 긁적였고 아리아 아가씨의 얼굴도 난감함으로 가득 찼다.


“그··· 깨어난 김에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주려고···. 그랬던 거예요.”

“······.”

“그런데 갑자기 크게 울어버려서. 하아···.”

“이해합니다. 아가씨.”

“후우. 아이는 쉽지 않군요. 후우, 나름 잘해보려고 했는데.”

“원래 아이는 어렵습니다.”

“훌쩍- 훌쩍-”


난, 내 뒤에 숨은 라일라의 머리를 쓸어내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천천히 다독였다.


“라일라. 널 위해 마차까지 내어주신 분이야. 너무 무서워하지 말렴.”

“훌쩍··· 우우···.”

“자고 일어나 환경이 변해서 겁을 먹을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그렇죠.”

“그렇군요. 뭔가··· 그, 아이 라일라라고 했죠? 아무튼 제이든을 잘 따르네요. 혹시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뇨. 혼인도 하지 않은 총각입니다만··· 그래도 조금 아이를 다뤄본 경험은 있는지라.”

“아아··· 그렇군요. 으음. 음.”


어째서 분하다는 표정을 짓는 걸까? 과거에는 보지 못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해하던 그때.


꼬르르륵-


“아.”

“배고프구나?”

“······.”


한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에 우리 둘의 시선이 라일라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배를 움켜쥐는 녀석의 모습을 본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짓다 이내 아리아 아가씨에게 정중히 부탁해본다.


“녀석이 아무래도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라도 남은 간식 같은 것이 있다면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용병들 간식은 워낙 투박한지라···.”

“빈속에 딱딱한 육포를 밀어 넣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죠. 후후. 잠시만요.”


부스럭-


마치 비장의 무기라도 되는 듯, 그녀는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오. 사탕이다. 포장지로 보아 꽤 고급스러운 사탕이 분명했다.


“사탕 정도면 괜찮겠죠?”

‘오. 사탕 정도라면 식사 시간까지 시장기를 줄이게 해줄 수 있겠지. 천천히 녹여 먹일 수도 있고 말이야.’

“자, 받으렴. 사탕이야.”

“······.”

“받으렴 라일라. 아가씨께서 널 위해 주시는 거야.”


내 품에 얼굴을 숨겼던 라일라는 그녀 손에 있는 것이 본능적으로 먹을 것인 것을 알았는지 사탕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키더니 이내 어린애 특유의 쭈뼛거리는 동작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재빠르게 손에 있는 사탕을 집어 들어 보인다.


와사삭-


“녀석, 껍질은 까고 먹어야지. 자, 이렇게 하는 거야.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 먹어보렴.”

“오물오물 우움!”

“맛있나 봅니다.”

“제도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점에서 사 온 사탕이에요.”

“분에 넘치는 것을 받았군요. 라일라, 아가씨께 감사하다고 해야지.”

“우물우물- 감사··· 합니다.”

“후후. 감사는 무슨, 별거 아닌데 뭘. 아이 귀여워라.”


입안에 사탕을 밀어 넣어 볼빵빵 다람쥐가 되어버린 라일라는 내 말에 눈치를 보다 아리아 아가씨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마냥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함박웃음을 짓다 이내 턱을 괴고 라일라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귀엽게 생긴 아이예요. 후후.”

“라일라, 여기서 얌전히 있으렴. 아가씨 말 잘 듣고.”

“우우.”

“그런 불안한 표정 짓지 말렴. 마차가 한번 멈춘 다음 다시 만날 테니까.”

“그래, 라일라. 제이든은 용병이기 때문에 상단을 호위해야만 하거든.”

“그럼 녀석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보죠.”

“예. 아가씨.”


잠결에 눌려 산발이 된 녀석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정돈해주곤 그대로 마차에서 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라일라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맡은 임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상행 의뢰만 끝나면···.’


맡은 의뢰만 마무리된다면 용병일을 그만둘 생각이다. 위험한 용병일 보다는, 그나마 덜 위험한 모험을 하며 라일라와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다. 배운게 그것 밖에 없기도 했고, 돌아다니다 정착할 곳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 했다.


또 과거에는 하지 못한 스승으로서의 일도 제대로 하고 싶고, 말이지.


물론.


‘라일라가 따라 준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멀어진 마차를 애써 힐끔 바라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생존자가 있다고?”

“아. 상단주님.”


들려오는 인기척과 목소리에 나는 자연스레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고,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는 그리핀 상단의 상단주 자온 노바로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며 허리를 펴본다.


“완벽하게 전소되었다고 봐도 좋은 폐허에서 생존하다니, 하늘이 도운 일일세. 제이든.”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상단주 자온 노바로. 그는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마을과 부모를 잃었다고 하니 참으로 딱하군. 그 아이가 괜찮다고만 한다면 내가 거두어 줄까 하네만.”

“거두신다면···.”

“우리 상단에서 아이 하나 못 거둘까. 차근히 일을 배우게 한 뒤, 상단의 사람으로 자라게 해도 될 일이지. 변변찮은 제국의 보육원 시설보다는 나을 테니 말일세.”

“!”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는다. 그리핀 상단으로··· 라일라가 간다고?


‘운명을 비튼 것만으로도 이런 선택지가 나오다니.’


자연스레 입술에 살짝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라일라를 만나면 자연스레 나의 제자가 될 줄로만 알았으니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위험한 길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용병일을 그만두고 모험가의 길을 떠난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 게다가 언젠가 라일라의 천재성이 발휘될 테니까. 아예 검에서 떨어뜨리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


섬뜩했다.


혹 같은 미래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검을 잡고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그리핀 상단에 소속돼도 나쁘지 않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상단주도 선한 사람인 것 같고 그분의 따님인 아가씨도 라일라를 귀여워라 하는 것 같으니.’


상인으로 일하는 라일라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확실히, 더 안전하고 좋은 환경의 선택지였다. 그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아려온다. 검을 잡지 않는 라일라의 행복과 다시금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렬히 충돌한다.


“그 아이를 데려온 자네 생각은 어떤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는 상단주의 말에 나는 깊게 빠졌던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이.”

“?”

“아이가 원한다면··· 그게 맞겠지요.”

“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구했다고 한들 강요할 순 없으니 말일세. 아무튼 알겠네. 그럼 나중에 보세.”

“예.”


목례하며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은 나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래. 라일라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지.


‘다시금 스승이 된다면, 그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했는데.’


어쩌면 이번 생은 스승이 아닌 타인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난 괜스레 울적해질 수밖에 없었다.






장기간 상행의 마지막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용병들은 도적들을 만났던 기억에 오는 동안 긴장감을 풀지 못했지만 결국 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도적은 보이지 않았고 상단의 핵심은 상단사람들과 물건도 안전했으니까.


즉, 다사다난했지만 결국 의뢰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으그그- 결국 도착했구나. 이젠 밖이 아닌 침대에서 자고 싶어.”

“그러게, 말이야.”

“난 술이나 잔뜩 마시고 싶어.”

“창녀촌 리키가 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뭐- 그렇기도 하지. 하하하.”

“하하하하!”


긴장을 풀고 미소를 짓는 개인용병들 사이로 이제 제법 친해져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소녀 라일라와 상단주의 따님 아리아 아가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떤 색이 좋아?”

“웅··· 노란색이요!”

“호호, 나도 노란색 좋아해. 우리 집 근처에 노란 꽃이 봄마다 많이 피거든.”

“와~”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보니, 요 며칠간 라일라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흐려진 듯했다. 아마, 같은 여자라서 좀 더 통하는 것이 있었겠지.


‘저렇게 보면 라일라가 그리핀 상단으로 가는 것이···.’


상단주의 말을 듣고 며칠을 고민했다.


과연 내가 라일라를 온전히 제자로 받아들여 잘 성장시키게 할 수 있을지, 상단으로 가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옳은지 말이다.


물론, 확고하게 정해지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당연히 안전한 상단에서 일하며 지내는 것이 녀석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마음으로는 역시나 라일라를 놓을 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과거로 돌아온 것.


그것 역시 라일라를 위해서 하늘이 그렇게 정해준 것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라일라가 그리핀 상단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가슴은 찢어지겠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막을 순 없겠지.’

“어! 제이든 아저씨다! 아저씨!”

“아. 라일라.”


순간 눈이 마주쳐서일까? 라일라가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아리아 아기씨의 모습.


힘껏 달려와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오는 동안 힘들지 않았니?”

“네!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 엄청나게 커다란 마을이네요!”

“마을이 아니라 제도란다. 마을보다 수백 배 커다란 곳이지.”

“우와···.”

“힘들지 않게 잘 왔다니 다행이구나.”


나는 손으로 갈색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녀석의 얼굴을 눈에 자세히 담으려고 애썼다.


마을에서 라일라를 구하고 난 부터의 버릇이다.


놓쳐버린 미래의 라일라에 대한 미안함과 어쩌면 이제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에 녀석의 얼굴을 계속 머릿속에 담아보려고 혼자 애쓰는 것이다.


검댕에 빼빼 말랐던 모습은 이제 없다.


상단에서 먹을 것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씻기도 잘 씻으니 귀여운 꼬마 숙녀가 튀어나왔고 그 덕에 상단사람들도 용병들도 라일라를 귀여워라 했다.


다들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니까.


‘과거엔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


그냥 껄끄러운 찬밥신세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다른 과거의 라일라는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녀석을 데려온 내게 더 짐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라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 좋은 분위기를 감지했겠지 아마.


그리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아려온다. 녀석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방치했으니까.


참.


라일라에게 나는 못된 스승이었구나. 물론 그때는 스승이 되기 전이라지만 말이야.


“아리아 아가씨가 그러는데 자기네 집에 엄청나게 많은 꽃하고 나무가 있대요!”

“하하. 그리핀 상단 아가씨의 집이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구나.”

“정말 부러워요! 라일라의 집은 이제 없는데···.”

“······.”


살았던 마을 그리고 집, 부모님이 생각났는지 좀 우울한 표정을 짓는 녀석. 그래, 완벽히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순 없겠지. 아마, 평생 그 끔찍한 기억이 문득문득 튀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마치, 내가 라일라를 놓아주었던 그때의 기억처럼 말이야.


“하지만 괜찮아요!”

“···씩씩하구나. 라일라.”

“헤헤.”


애써 미소를 짓는 녀석. 어린 나이지만 힘든 경험에 정신적으로 성숙한 느낌을 품게 되었다.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기에, 그저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줄 수밖에 없었다.


싫어할 만도 한데, 라일라는 내 손길이 기분 좋았는 지 피하지 않는다. 이동중에 가장 이야기를 자주 했던 것이 아리아 아가씨 아니면 나였으니까.


“아저씨 저건 뭐예요?”

“저긴 여관이란다.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는 장소지.”

“저긴요!”

“저기는-”


그렇게 한참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녀석은 무언갈 들고 찾아온 아리아 아가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간식으로 유인하다니, 아가씨도 제법 라일라를 다루는 법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다시금 빠진 고민에 손이 저절로 턱을 매만질 때였다.


“뭘 그리 생각해?”

“아, 예커젝.”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놈이 보인다. 예커젝. 어떻게 보면 과거로 돌아온 후 가장 많은 대화를 한 인물을 꼽자면 녀석을 꼽겠다. 그 다음은 라일라고.


뭐, 대화의 질을 따지면 용병일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 영양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표정을 보니 라일라 때문이겠군.”

“그게··· 보이나?”

“보이지. 네가 라일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뭐랄까, 음흉함은 절대로 아닌데···.”

“어이.”


농담을 뱉는 녀석의 엉덩이를 발로 올려치자, 녀석은 잽싸게 피하곤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흐흐. 마치 딸처럼 보더군. 그 짧은 시간 정이들었다니, 역시 뭔가 바뀌었어 제이든.”

“······.”

“아주 좋은 방향으로 말이야.”

“···쯧.”

“그래서? 저 아이의 후원자라도 되고 싶은 거냐? 꼬맹이 라일라도 널 무척이나 따르던데.”


진지하게 묻는 녀석에게 나는 속에 있는 마음을 답했다.


“후원보다는 라일라를 데려가고 싶어.”

“뭣?”

“말 했잖아. 용병일을 그만 한다고.”

“아아··· 그랬지 분명.”


함께 돌아오면서 예커젝에게는 넌지시 말했었다. 용병일을 관두고 모험가의 길을 걷겠다고 말이다. 배운게 검을 잡은 것 뿐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녀석도 말 했었지.


“라일라만 괜찮다면 거둘 생각이야. 그리고 함께 돌아다니고 싶다.”

“어이, 잠깐! 양부라도 되겠다는 말이야?”


숨겨진 딸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는 예커젝이 놀란 눈으로 끔뻑이자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양부가 아냐.”

“?”

“스승이다.”


그리고 내 말에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그러진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고개를 돌려 아리아 아가씨와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라일라의 선택에 맡기자.






의뢰를 마쳤으니 자연스레 헤어짐의 시간이 찾아왔다.


“모두 멋지게 일을 마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허허허.”


상단주 자온 노바로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용병들 의뢰금을 전달했고 용병들도 각자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짐의 시간을 갖는다.


“다음에 또 보자고!”

“크흐흐. 그땐 죽지나 말고 계셔!”

“흐하하핫!”


물론 어떤이들은 합이 잘 맞았는 지 함께 술을 찾아 떠나기도 했고, 어떤이들은 처음보다 사이가 틀어졌는 지 인사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라일라,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


나 역시 그 헤어짐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라일라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는 표현이 옳겠지.


함께 가자 손을 내미는 그리핀 상단주 아가씨, 아리아 아가씨의 모습을 올려다보는 라일라. 그리고 그 장면을 멀찍이 지켜보는 나와 예커젝.


소곤소곤-


“어이, 저 아가씨가 라일라를 퍽 마음에 들어하나 본데?”

“···귀여워하더군.”

“어쩌려고!”


내 마음을 알고 있는 예커젝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표정으로 내게 소곤거렸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라일라만 바라보았다.


‘선택은 라일라가 하는 거야.’


제자가 되어라.


그렇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물론.


‘가슴이 아플거야.’


라일라가 그리핀 상단을 따라가면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프겠지. 하지만 그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는 것이다.


부들부들-


“제이든 너···.”

“라일라의 행복은 라일라가 결정한다.”

“······.”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나를 발견한 예커젝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도 내 말을 이해한다는 뜻이겠지.


“···아저씨는요?”

“!”

“아. 저 아저씨들은 용병이라 우리와 가는 길이 달라. 나를 따라오면, 라일라는 상단에서 지내게 될거야. 그러면 공부도 할 수 있고, 간식도 먹을 수 있고, 예쁜 꽃도 볼 수 있어.”

“예쁜 꽃!”

“후후, 맞아. 게다가 폭신한 침대에서 잠도 잘 수 있게 해줄게.”


라일라가 궁금하다는 듯,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그에 아리아 아가씨는 라일라의 두 손을 살며시 잡고, 충분히 좋은 말로 라일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라일라 또래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제안.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라일라. 응?”


그 말에 라일라가 그리핀 상단으로 가겠구나 싶었는데.


“으응. 나는 제이든 아저씨랑 같이 갈래요!”

“어?”

“!”

“어, 어이- 제이든!”


방금 들었냐는 듯 예커젝이 호들갑을 떨며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른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에 좀 벙쪄서 나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저, 저 아저씨를 따라간다고? 왜?”

“으음-”


당연히 그리핀 상단으로 갈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라일라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참 가관이다.


“제이든 아저씨가 지켜준다고 했어요!”

“···아.”


폐허가 된 마을에서 했던 말.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당돌한 말을 뱉은 라일라는 아가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향해 달려온다.


“제이든 아저씨!”


덥석!


폭 안기는 녀석. 그에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 모습에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리아 아가씨와 괜스레 콧잔등을 긁적이는 예커젝의 얼굴이 스친다.


아아. 라일라.


“저 아저씨 따라가도 돼요?”

“···물론이지. 하지만 아저씨가 가는 길은 좀 험한데 괜찮겠니? 라일라가 좋아하는 과자도, 푹신한 침대도 없어.”


자조적인 내 말에 녀석은 방긋 웃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켜주실 거죠?”


그 말에 한쪽 가슴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울컥한 감정을 억눌러본다.


“그래··· 그러마.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하나는 약속하마.”

“그럼 괜찮아요! 난 아저씨가 편하고 좋은걸요.”

“으하하! 당돌한 꼬마 아가씨인걸?”

“시끄러워 예커젝.”


나는 라일라를 품에서 놓아주곤 그 작은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에 아쉽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아리아 아가씨.


“이것 참.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네요.”

“상황이··· 좀 민망하게 되었습니다. 아가씨. 하하.”

“라일라를 잘 부탁할게요. 제이든. 솔직히, 아직도 그 아이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가지만요.”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한번 제도로 놀러 오세요. 그때는 라일라와 함께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아가씨.”

“후후, 잘 가 라일라.”


꾸벅 인사를 하곤, 나도 라일라도 그 자리에서 천천히 벗어났다.


“아저씨,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모험하기 위해 준비를 할 거란다. 그리고 떠나는 거지.”

“모험!”


어떤 모험이냐고 한다면, 처음엔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제도와 가까이 있는 검성 게일 바르노딕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시 라일라와 만나고, 변화된 미래의 흐름을 보니 목표가 뚜렷해졌다.


“행복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이지.”


스승으로서 라일라가 무사히, 행복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론 아저씨가 아닌, 스승님이라고 부르렴. 앞으로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많거든.”

“스승··· 님?”

“그래. 스승님. 넌 앞으로 내 제자야. 라일라.”

“···스승님.”


그녀의 가슴 속에 항상 머무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제 양부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스승은 가능하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의 실패는 없게 하리라.


라일라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끔뻑이며 배시시 웃는다. 스승. 그 단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네! 스승님!”


그 맑은 목소리가 날 기쁘게 했다.


그런데.


“음음. 하긴, 여정을 이어가는데 아저씨 아저씨 거리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군. 부녀지간도 아니니 말이야.”

“이봐, 예커젝··· 넌 왜 따라오는 거야?”


예상치 못한 인물이 우리 둘을 따라왔다.


“행복한 보금자리라면 서쪽으로 가야 할 거야. 그곳엔 일년내내 기후도 좋고 마물도 잘 오지 않아 평안한 곳이라고 들었거든.”

“그러니까 왜 따라오느냐고.”


바로, 덩치 큰 곰 같은 녀석. 예커젝. 녀석은 허허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그야, 나도 마침 모험가가 되고 싶었거든. 용병은 질렸어.”

“뭐어?”

“게다가 좋은 여잘 만나 정착도 하고 싶고 말이야. 듣기론 서쪽엔 미녀가 많다더군.”

“···뭔 소리야.”

“무슨 소리긴. 즉, 너희와 가는 길이 같다는 거지. 으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녀석. 라일라에겐 ‘모험은 여럿이서 함께여야 즐겁단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걸까? 착한 라일라는 ‘우와!’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말이야.


그에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손으로 비빌 수밖에 없었다.


“맘대로 해라.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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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천재와 유령(3). 24.03.19 2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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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떠나는 길. +1 24.03.14 53 3 12쪽
» 3.스승과 제자. +2 24.03.12 66 2 32쪽
2 2.다시 만나다. +3 24.03.12 83 3 40쪽
1 1.제자의 죽음. +1 24.03.12 10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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