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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강아지 님의 서재입니다.

언젠가 본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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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강아지
작품등록일 :
2016.02.15 19:24
최근연재일 :
2016.02.16 17:0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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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6,498

작성
16.02.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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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마지막 통화

DUMMY

“선배 어디 있어요? 나 지금 도착했는데”


그날 그때의 통화와 한 치 다르지 않은 음성이 핸드폰을 넘어왔을 때, 이젠 세상에 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주상이 말을 잇지 못한 이유는 놀라서도, 겁에 질려서도 아니었다. 죽은 연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는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그리움이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넘쳐흘러 비명 같은 통곡으로 토해지려는 것을 힘겹게 내리눌렀다.


“크흠. 길이 좀 막힌다. 추운데 어디 들어가 있어”


정확히 1년 전 오늘 바로 이 시각, 주성은 정반대의 대답을 했었다.


“거의 다 와가.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약속 장소에 막 도착했을 때 본 장면은, 영원토록 잊히지 않을 악몽이 되었다. 눈길 대형 트레일러 전복 사고. 인도를 덮친 화물 컨테이너에 행인 4명 사망 1명 중상. 간결하게 또 친절하게 사고를 요약해준 기사를 통해선, 희생자들이 겪었을 마지막 순간을 짐작 할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처참한 현장을 뒤늦게 목격한 주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진 시신의 모습에서 마지막 순간의 끝 모를 공포와 고통을 짐작하기란, 산 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만큼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녀를 죽게 한 자가 돌려받아야할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자신의 몫이었다.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끝없이 자신을 학대해온 주성이었다. 의식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 장소에서 만나려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었다. 매 순간 그 광경을 되새겼다. 매 호흡 그 통화를 되뇌었다. 자살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죽고 편해져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성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영원히 괴로워해야 마땅했다. 아니, 사실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주성의 시간이 그때로부터 흐르지 않았던 탓일까, 혹은 붕괴되어가는 정신 속에 후회만을 거듭한 덕일까. 사자(死者)와의 통화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다른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던 건.


“거기 있지 말고 들어가 있어. 좀 더 걸릴 거야”

“아냐 그냥 더 기다릴래. 눈 오는 게 예쁘잖아요”


안 돼. 이제 곧이란 말야. 설명할 시간도 달랠 시간도 없어. 주성은 가장 빨리 효과를 볼 방법을 떠올렸다. 침착하게 숨을 들이 마시고, 핸드폰 너머로 고함을 질렀다.


“길도 막히는데 자꾸 짜증나게 할래! 토 달지 말고 들어가라면 들어가!”


대답이 없었다. 조용했다. 몇 초의 침묵이 영원처럼 무거웠다.


그녀는 얘기했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이 독선적이고 폭력적이라 많이 힘들고 아팠다고. 자신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주성이 많이 고맙고, 그래서 또 많이 좋다고. 그런 그녀에게 고성을 내질러놓고도 주성은 미안하지 않았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아니었다. 미안해할 자격 같은 걸 가지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에게 미움 받을 ‘자신’에 대한 걱정 따위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불안해진 주성은 슬쩍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전화는 이미 끊겨져 있었다. 그녀가 끊은 것이다. 주성은 다급히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몇 차례 이어지고 딸칵,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받지 않고 끊었을 때의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다시 걸었다. 마찬가지로 끊어졌다. 또 다시 걸고 다시 걸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새에 사고가 일어났던 시각이 지나있었다. 주성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구 떨리는 손 탓에 통화버튼을 누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연결음, 딸칵,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살아있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틀어막았다. 손 떨림이 심해져서, 아니 이젠 온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해서, 폰을 떨어뜨릴까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


“이제 와서 무슨 전화예요? 와 그러고 보니 딱 1년 만이네. 술이라도 마신 거예요? 갑자기 감성적이 되기라도 했나 봐요? 그런데 나는요. 어울려줄 생각이 없어요. 사과는커녕 먼저 연락 한 번 안한 사람이. 내 연락은 그렇게 다 씹고. 나타나지도 않던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양심으로 전화를 한 거래요? 그냥 차단하려다가요. 한 번 들어나 볼까 싶어서, 대체 뭐라 할지 궁금해서, 할 말이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받아봤어요. 해봐요 할 말”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 이후를 생각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1년 동안 사라진 건 주성이었다는 그녀의 말이, 그녀가 계속 살아왔을 그 1년이, 이미 주성에게는 벅찬 환희였기에 더할 말은 전혀 없었다. 주성은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년 만의 웃음이었다. 다시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에서 짠 맛이 느껴졌다. 그 감각조차 새롭게 여겨졌다.


“... 혹시 지금 우는 거예요? 왜? 왜-”

“여보세요? 주성 선배?”


갑자기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뺏는데! 내 전화야!’, ‘잠깐만. 아니 그냥 내가 얘기할게’, 주성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선배 저 선우예요. 기억하실진 모르겠지만”


주성은 기억할 수 있었다. 선하고 순박한 인상, 큰 키로 내려다보며 항상 서글서글 웃던 후배.


“오랜만이에요. 집에만 계속 계신단 말은 들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걱정했잖아요.”


진심으로 걱정한 듯한 목소리였다. 왠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선우의 말이 이어졌다.


“선배, 현희 지금은 저랑 잘 만나고 있어요. 현희가 정말 힘들어했었는데요. 이젠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러니까 이제 연락 안하셨음 해요. 현희 폰으로는 차단할게요. 죄송해요. 따로 연락드릴게요”


전화가 끊어졌다. 주성은 한참을 그대로 멈춰있었다. 참았던 숨을 들이쉴 때, 커다란 해방감이 느껴졌다. 주성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이제는 완전히 만족할 수 있다. 드디어 끝을 허락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씩 웃고는, 힘을 주어 몸을 밀어내었다.


작가의말

-과거와의 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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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통화 16.02.15 150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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