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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로우니님의 서재입니다.

언어의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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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로우니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5
최근연재일 :
2022.06.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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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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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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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1막 감정의 세계 - 1화

DUMMY

1화 감정의 세계



어둑해져가는 밤하늘 아래 도시의 활기와 광기는 더욱더 짙어져만 가듯 환한 불빛을 내지르고 있었다.


누군가 들은 꺼지지 않는 활기에 일을 하거나, 쉬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 들은 활기라는 이름에 광기에 취해 정신을 놓거나, 광기에 취한 자신의 실수를 뒤늦게나마 후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삐......


“하아! 하아! 하아! 하아......! 2048년... 9월 15일 23시 17분... 박태오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기계음만이 울려 퍼지는 4인실 병실 그것에서 거친 숨을 고르던 의사와 간호사들 중 한 남자 의사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최대한 무덤덤한 목소리로 읊었다.


의사로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해야 되는 말을 말이다.


“흐윽...!”


“흑!”


의사의 말을 끝으로 거친 숨소리와 기계음만이 들려오던 병실에서는 제각기 다른 저마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 때문인 건지 모두 커튼으로 앞을 가린 채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병실 사람들과 그들의 보호자에 울음소리가 말이다.


하나, 자신들의 귓가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도 병실 안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행할 뿐이었다.


속에서 차오른 감정과 뜨거워지는 두 눈을 필사적으로 외면한 채 활기라는 이름에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을 오늘도 짊어지고서 말이다.


다만, 그런 병실의 분위기 속에서도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듯 자신의 검은 머리색과 똑같은 검은색 정장 입은 한 남성이 병실 입구에 기대어 선 채 무덤덤한 시선으로 오도카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커피를 음미하듯 입안으로 넘기면서 말이다.


[벌써 몇 번을 봐온 광경이라지만, 역시 몇 번을 봐도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광경이로군그래.]


무덤덤한 시선만큼이나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남성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 남성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인지 병실 안 그 누구도 남성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어지는 남성의 말에도 여전히.


[저자의 본성을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보를 조금이라도 지켜봤다면 어쭙잖은 감정에 의해 흘리고 있는 지금의 눈물을 죽어서도 후회할 텐데...]


그 누구 하나 듣는 이 하나 없음에도 남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관심 갖는 이 하나 없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입에 담으면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너희들은 모르는 것이고 무엇보다 후회 역시 삶의 일부이니까 말이야.]


뚜벅뚜벅.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던 남성은 입구에서 등을 때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남성의 행동에도 남성에게 짧은 눈길조차 주는 이는 여전히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마치 남성이 자신들과 같은 병실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라도 하듯 자신들의 옆을 태연히 걸어가는 남성에게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말이다.


하나, 그런 병실 안 사람들의 반응에도 남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해서 혼잣말을 하듯 입을 움직이며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뚜벅뚜벅.


[이제는 기억도, 감정도 희미해졌지만 나 역시도 너희들과 같은 유한의 삶을 살았을 때는 그랬었을 테니까.]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고작... 두 눈에 비치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지.]


당연하다는 듯 바로 옆을 지나쳐 왔음에도 관심은커녕,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병실 사람들의 반응에도 남성은 별다른 언급 없이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기었다.


조금씩 나눠 마시던 커피를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으면서 말이다.


[...역시 몇 번을 마셔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로군그래.]


이제는 빈 잔이 되어 버린 방금까지는 커피가 들어있던 종이컵을 들여다보며 남성은 말했다.


속이 빈 종이컵을 들여다보는 것치고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얼굴로 말이다.


[마치 몇 백, 몇 천 번을 경험해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인간 세상에만 나오면 감정놀음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야. 흐흐...]


이번에도 역시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는 남성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자조적인 웃음으로 말을 끝맺었다.


텅 비어버린 커피 잔처럼 언제부터인가 텅 비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듯 종이컵을 힘껏 움켜잡으면서 말이다.


콰직...


[이제 그만 끝낼 때가 된 것 같군그래.]


[또 나도 모르는 새 원치 않은 감정놀음의 휘둘릴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으니...]


[물론 원치 않게 죄인의 삶과 엮어버린 죄 없는 너희들의 삶도 한시라도 빨리... 본래의 운명 속으로 되돌려야 되고 말이야.]


여전히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시선을 옮기며 남성은 말했다.


어째선지 측은하면서도 위로가 담긴 시선과 목소리로 말이다.


[너희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지만, 인간들의 삶은 마치 꼬아져버린 실타래처럼 여기저기 얽혀 본인도 모르는 새에 종종 다른 이에 삶과 운명에 휘말려 버리기도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인간들의 삶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 역시 제각기 다르기에 보다 큰 운명에 엮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약육강식처럼 당연한 것인데.]


[뭐, 정작 너희들의 경우에는 큰 운명이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인간의 삶에 제멋대로 개입하고, 피해를 준 것도 모자라... 결국 끝을 보게 만든 저 쓰레기 같은 죄인의 본인조차 감당하지 못할 삶과 업(業)에 휘말려 버린 것에 불가하지만 말이야.]


자신을 인지하지 못함에도 남성은 그렇게 말을 끝맺고도 한동안 측은함과 위로가 담긴 시선으로 병실 안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윈치 않게 휘말려 버린 탓에 본래의 운명대로라면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게 된 그들의 삶을 유일하게 알고 있기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두 눈으로 말이다.


[...앞으로 너희들의 삶에 저놈보다는 덜 하든, 더하는 연놈들이 안 나타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아무쪼록 부디... 이번처럼 절대 포기하지 말거라.]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 세계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져 결국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테니까.]


[물론 그것이 업(業)일지 아니면 구원(救援)일지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너희들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말이야.]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거라.]


자신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며 남성은 말을 이었다.


[지금의 고생이 언젠가 시간이 지나 분명 너희에게 구원(救援) 혹은 그와 중하는 기회(機會)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뭐, 물론... 앞으로의 남은 삶을... 저렇게 허비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안주머니에서 꺼내든 이름이 새겨진 검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말을 끝맺은 남성은 한동안 지그시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종이에 붉게 새겨진 이름과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이름의 주인이 지금껏 살아온 붉은 피와 수많은 원한들로 검붉게 물든 삶을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로군그래.]


[뭐,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 이렇게 직접 나타난 것이겠지만.]


[안 그런가, 박태오?]


시선을 옮겨 방금 막 삶의 마침표를 찍은 이제는 유체(遺體)가 되어버린 50대치고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박태오라는 이름의 남자를 바라보며 남성은 짧은 정적의 휩싸이듯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두 눈에 가득했던 측은함은 어느새 사라져 메말랐다는 것조차 부족할 만큼 차가워진 두 눈으로 말이다.


[...네놈과 같은 쓰레기에게 벌(罰)을 주는 것이 바로 관리자인 내가 짊어져야 되는 사명이니 말이야.]


툭...


자신을 관리자라고 지칭하며 남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박태오의 유체(遺體) 위에 떨어트렸다.


여전히 차가운 두 눈만큼이나 메마르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으면서 말이다.


[귀찮게 숨어있지만 말고 그만 순순히 나오도록.]


[망자(亡者)도 아닌 너 같은 죄인 따위와 어울려 줄 정도로 지옥(地獄)은 이곳 인계(人界)만큼 제멋대로이지 않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아무런 이유도, 일면식도 없는 그 수많은 이들에게 그런 짓들을 해놓고서, 본인은 이리 편하게 끝을 맞으려는 너 같은 쓰레기에게는 더더욱 말이지.]


감정이 메마른 차가운 목소리와 시선 그런 관리자를 인지하는 이는 여전히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산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말이다.


그렇기에 딱 한 명 그 한 명만큼은 관리자가 병실 입구에서 기대어 서있을 때부터 관리자의 존재를 유일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게 삶을 연명하다 결국 마침표를 찍은 이제는 유체(遺體)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속에서 관리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망자(亡者) 조차되지 못하는 박태오의 영혼이 말이다.


“......”


[그래. 그게 네놈의 대답이로군그래.]


유체(遺體)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관리자는 자신의 말에도 마치 살아있는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박태오의 행동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혹시나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는 역시나로군그래.]


[목격자가, 알아차린 이가 하나 없다고 해서 네놈이 범한 죄가 정녕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허, 정말이지 뻔뻔스러울 정도로 가증스러운 놈이로군그래.]


고개를 젓던 관리자는 헛웃음과 함께 더욱더 짙어져가는 차가운 시선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더욱더 짙어져 마치 주위에 모든 것들을 얼려버릴 정도로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알아차린 이가 없다고 할지라도 네놈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죽어서도 두 눈을 감지 못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닌데... 고작 침묵과 외면으로 자유로워지려고 하다니...]


[뭐, 좋다. 네놈이 정녕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미 망자(亡者)의 자격조차 박탈당한 죄인(罪人) 따위에게 차려줄 예의 같은 것은 처음부터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죄인(罪人) 박태오.]


딱...!


관리자는 그렇게 말을 끝맺고는 아무런 미련 없이 몸을 돌리며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모습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산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오직 죽은 이들만이 들을 수 있는 무엇인가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를 말이다.


화르르륵!


“흐윽...! 머, 뭐야?! 뭐냐고 이게?!”


“왜 갑자기 불이 나타나...!?”


관리자의 신호의 맞춰 박태오의 유체(遺體) 위에 올려 진 붉은 이름이 새겨진 검은 종이에서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불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오직 죽은 이들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지옥(地獄)의 업화(業火)가 말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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