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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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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연재수 :
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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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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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4,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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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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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수술

DUMMY

“네 이놈. 한 번 더 씨부려 보거라. 살아 있는 우리 세자의 배를 어쩐다고?”


중전은 마침내 벌떡 일어서더니 장희재가 들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중전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목에 핏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한 번 더 씨부려 보거라, 이놈아. 내 이 칼로 당장 네 놈의 주둥아리를 발기발기 찢어 놓을 테니 어서 씨부려 보아라, 이 백정놈아아아아아아.”

“마마. 이놈을 죽여주십시오.”

“그래, 네 놈이 소원하지 않아도 죽여줄 테니, 어서 씨부려보란말이다아아아.”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장희재가 중전에게 달려들어 칼을 뺐었다.


“마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세자저하가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희재의 말에 세자를 쳐다본 중전은 그제야 몸을 털썩 내려놓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심한 통증이 있는데다가 놀라기까지한 세자가 토해내는 울음이 동궁전을 뒤흔들었다.


“탕제로 치료해봅시다. 침으로도 고칠 수 있다하지 않았소?”


중전이 그에게 간청했다.


“그렇사옵니다. 하지만 급한 장옹은 수술을 해야 합니다, 마마.”

“급한 장옹인지 덜 급한 장옹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 않았소?”

“송구하옵니다. 소인의 재주가 그것 밖에 안 되옵니다.”


그는 그러나 내심 급한 장옹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일단 탕제와 침으로 해보고 안 되면 그 때 칼로 세자의 배를······.하이고.”


중전은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마마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임치두를 돌아보며 일렀다.


“약재실로 가자. 어서 앞장 서 거라!”

“스승님. 약재와 분량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준비해 오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직접 하겠다.”

“그건 곤란합니다. 내의원의 약재는 의관이 아니면 함부로 손댈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나만 아는 비방(祕方)을 가르쳐달란 말이냐?”

“그런 뜻이 아니라······.”

“허 의원이 원하는 대로 해주게.”


임치두도 중전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시지요, 스승님.”


그는 임치두와 함께 내의원으로 갔다.


덜 급한 장옹이면 시호계지탕(柴胡桂枝湯)에 금은화(金銀花) 1돈(3.75그램)을 넣어서 쓰면 웬만하면 낫는다.


그러나 세자저하에게는 이 처방은 이미 늦었다.


조금 더 급한 장옹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준영은 시호계지탕보다는 대황목단피탕(大黃牧丹皮湯)에 마음이 더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병태가 워낙 위중해 대황목단피탕도 큰 효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대황목단피탕!


대황(大黃)과 망초(芒硝) 각 1돈 반


목단피 도인(桃仁) 과루인(瓜蔞仁) 각 2돈


“치두야. 너라면 어떤 처방을 쓰고 싶으냐?”

“글쎄요. 도인승기탕(桃仁承氣湯)을 떠올려보았습니다만······.”

“도인승기탕! 역시 내의원 의관이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아암.”

“스승님은 어떤 처방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도인승기탕도 좋지. 하지만 난 대황목단피탕을 쓸 생각이다.”

“아! 대황목단피탕이오. 어의도 그 처방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의가 왜 그 처방을 안 쓰고 뒷걸음질 쳤을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하셨던 거 아닐까요?”“맞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그러면 어떤 약재를 가미해야할까?”


마침내 내의원 건물이 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금은화입니다.”

“또?”

“소인이라면 황련을 넣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난 금은화도 황련도 넣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면 어떤 약재를 넣으실 생각이십니까?”

“세 가지 약재를 더 넣을 생각이다.”


임치두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 세 가지 약재가 무엇이옵니까?”

“그건 말할 수 없다.”

“스승님만의 비방입니까?”

“비방? 흐으! 비방이라면 비방이지.”

“에헤이. 소용없습니다, 스승님.”


임치두는 피식 웃었다.


“내의원에 드나드는 약재는 다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무슨 약재를 누가, 얼마나 쓰는지. 소상히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어차피 기록을 보면 다 알게 되어있습니다.”

“조금 전 중전마마의 말씀을 못 들었느냐.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줘라. 모든 책임은 중전인 내가 지겠다. 자네 설마 중전마마의 명도 거부하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임치두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침도 준비하거라.”

“침도 놓으시게요?”

“그래야지.”


#


대황목단피탕에 그만 아는 세 가지 비밀 약재를 가미한 탕제.


세자는 탕제를 제법 잘 마셨다.


“쯔쯔. 얼마나 아팠으면 저 쓴 탕제를 꿀물 빨듯 마실까? 평소 같았으면 한 모금도 입에 넣지 않을 세자인데.”


중전은 세자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내의원 출납부에도 기록되지 않은 약재들이다.


만일 세자의 장옹을 못 고치면 거기에 대한 추궁이 있을 것이고, 내의원의 규정을 어긴 죄까지 추가되어 중벌을 받을 게 뻔하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진다 하지 않았소.’


그러나 세자의 병을 못 고치면?


그 때도 중전이 그를 감싸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까?


‘조선을 통틀어 궁궐 최고의 악녀가 장희빈 아닌가?’


그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원래 후궁인 장희빈은 중전인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당당히 중전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


세자의 목으로 탕제가 넘어간 지 일각(一刻: 15분)이나 지났을까!


조급증을 견디지 못한 중전이 그를 다그쳤다.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중전마마. 아직은 탕제의 효과가 발휘될 때가 아닙니다.”


아직 탕제의 효험이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지만 세자저하의 비명이 조금 잦아

들었다.


“세자가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소?”

“아직은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마마.”

“이젠 어찌해야하오. 허 의원? 세자의 병태가 좋아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아닙니다, 마마. 이제 침을 놓을 것입니다.”


침은 이미 준비되어있었다.


그는 축 늘어져있는 세자 앞으로 다가앉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하. 세자 저하. 잠 드셨사옵니까?”


세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침을 놓겠사옵니다. 저하.”

“침?”


그 말 뿐이었다.


평소라면 침을 맞지 않겠다고 난리를 부릴 세자지만 지금은 달랐다.



“침을 놓겠사옵니다, 저하.”


그는 여러 개의 침 중 가장 가는 침을 하나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자침(刺針).


그는 세자의 오른 쪽 무릎의 바깥쪽에서 3촌(약 5cm) 아래, 족삼리(足三里)혈이다.


두 번째 자침.


합곡(合谷)혈이다.


여기까지는 많이 쓰는 혈자리이다.


세 번째 자침.


순간 임치두의 미간의 좁아지더니 눈썹이 곤두섰다.


스승 인 준영이 세자의 오른쪽 귓바퀴 안에 자침을 한 것이다.


‘내가 뭘 잘못 보았나?’


임치두는 고개를 쑤욱 빼더니 눈을 일자로 만들었다.


‘저기도 혈자리인가?’


임치두는 기억을 더듬었다.


귀 주변의 혈 자리 몇 군데가 기억났다.


예풍(翳風), 청궁(聽宮), 청회(聽會), 풍지(風池), 이문(耳門).


스승이 자침한 혈자리는 그 중 어느 곳도 아니었다.


임치두는 몹시 궁금했지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스승이 네 번째 자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승의 네 번째 자침 혈자리를 확인한 임치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분혈(水分穴).


‘수분혈에 자침을?’


임치두는 자신도 모르게 세자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수분혈이 맞다!


임치두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다.


배꼽 위 1촌 부위의 수분혈은 의서에 금침혈(禁)針穴)로 기록되어 있다.


수분혈에 자침할 때 정교하게 깊이를 조절 못하면 소장을 찌르게 되고, 복막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자침을 금하는 것이다.


‘스승님이 당신의 입으로 뭐라 했는가? 급한 장옹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복막에 염증을 일으켜 병자가 죽게 된다, 하지 않았나! 그것도 불과 서너 식경(食頃:1식경은 약 30분) 전에 말이다.’


그런데 복막염을 일으킬 수 있는 금침혈인 수분혈에 침을 놓다니!


침으로 복막염을 일으켜 세자저하를 죽일 셈인가?


‘왜?’


임치두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의는 물론 내의원의 어느 의관도 수분혈에 자침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병자가 길거리의 비렁뱅이라면 실험삼아 저런 짓을 해볼 수도 있을라나?’


그러나 지금의 병자가 누구이신가?


‘머지않아 임금의 자리에 오를 세자가 아닌가? 그런 세자에게?’


이건 분명히 미친 짓이다.


수분혈에 자침이 절대 불가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교한 침술로 깊이를 조절하여 소장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장이 눈에 보이는가?


사람마다 소장의 위치와 깊고 얕음은 조금씩 다르다.


‘소장을 건드리지 않고 자침할 수 있나? 누가 그걸 장담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어린 세자라 신체가 미성숙한 상태가 아닌가?


이렇게 재고 저렇게 따져 봐도 수분혈에 자침을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고서야 저런 짓을 할 수는 없다.


임치두는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위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임치두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위로 흐르는 땀을 훔친 다음 다시 한 번 스승의 얼굴을 살폈다.


스승의 얼굴에서 땀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담담한 표정,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스승은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전혀 담겨있지 않는 눈으로 세자의 병태를 살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임치두의 몫이었고, 장희재의 몫이었다.


그리고 중전마마의 몫이었다.


오직 스승인 준영만이 불안과 두려움의 바깥 세계에 있었다.


#


발침한 지 두 식경(1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으음.”


세자의 몸이 꿈틀거렸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터져 나오는 비명은 아니었다.


그의 눈이 빛났다.


“깨셨습니까, 세자?”


중전이 세자를 덮치듯 다가앉으며 물었다.


의식이 돌아온 세자는 맨 먼저 눈으로 중전마마를 찾았다.


“지금도 배가 아프세요, 세자?”

“아프지 않사옵니다, 어마마마.”


중전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뚝뚝 흘러내렸다.


“그래요? 배가 안 아프단 말이지요?”

“예. 씻은 듯 나은 것 같습니다, 어마마마.”


중전은 한결 밝은 얼굴로 세자의 오른쪽 아랫배를 살살 눌렀다.


“어떻소? 에미가 눌러도 아프지 않소?”

“예. 안 아프다니까요. 귀찮게 자꾸 물으시옵니까?”

“아이고. 미안합니다, 세자. 호호.”


중전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임치두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스승님이 세자저하를 죽일 이유가 없지.’


임치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스승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기뻐하는 기색은 없었다.


안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세자의 이곳저곳을 눈으로 살필 뿐이었다.


잠시 후, 준영이 입을 열었다.


“마마. 소인이 세자저하를 살펴봤으면 합니다.”

“아! 그리 하시게. 당연히 그래야지. 아암.”


중전이 내준 자리를 그가 대신 꿰차더니 오른쪽 아랫배를 눌러보았다.


세자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편안한 표정이었다.


중전의 눈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얼굴 표정. 눈빛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번뜩였다.


“나은 게지요? 허 의원. 우리 세자 깨끗이 나은 거 맞지요?”

“조금 더 살펴 본 다음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마마.”


그런 다음 그는 세자의 손목부위로 손을 가져가더니 맥을 짚었다.


현활삭맥(弦滑數脈).


세자의 맥동이 그의 손끝을 빠르고도 강하게 때렸다.


그리고 매끄러운 구슬이 굴러가듯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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