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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을 님의 서재입니다.

노을빛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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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을
작품등록일 :
2022.02.12 23:17
최근연재일 :
2022.05.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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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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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소미의 한여름 ①

DUMMY

소미군 땅거미길 24.

소미군 최초 물류단지.

···가 될 예정이었지만 폐기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위치가 내가 있는 그 위치라고 한다.

하지만 검색창에 ‘소미군 땅거미길 24’를 넣으면 지도에는 한 군데가 찍히는데 건물 하나 없는 텅 빈 땅밖에 없다.

모든 건 영인이 알려준 대로다.

몇 번이나 따졌지만 영인은 그 위치가 맞다고만 할 뿐이었다.

지도에서 위치만 제대로 나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여기서는 다른 전화나 통신은 전부 먹통이라도 인터넷만은 멀쩡하게 할 수 있다.

인터넷 지도도 기존 사이트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내 위치가 서울 한복판으로 찍혀서 그렇지, 사용하는 데 다른 문제는 없었다.

우회 사이트인지 뭔지도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아도 이 역시 쓰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을 테다.

SNS도 볼 수는 있다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복잡하기도 하고 일일이 이름을 찾아야 하는 게 조금 힘들다. 솔직히 찾아보고 싶지 않다···. 왠지 무섭다고 할까.

아무튼···.

오늘은 2020년 7월 28일. 7월이 끝나가고 어느새 여기 온 지 한 달이 지나간다.

공포의 연속이던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어찌 그리도 경악스러운 시절이던가.

돌이켜보면 내가 오버했던 감이 있다. 그 시절 나를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모순’이라는 단어도 잘 어울릴 테다. 그에 비해 많이 진정됐다고 스스로 느낀다.

하지만 불안은 언제든 엄습해왔다.

사실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당연히 불안을 피하는 것이 상식일 테지만 이는 내가 엄마 아빠를 잊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나도 왜 이렇게까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전부 엄마와 아빠의 미련이다.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엄마 아빠가 떠오르기만 한다면 어김없이 닥쳐온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슬픔을 넘어서 죽을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마치 세상이 캄캄해지는 느낌, 아니면 커다란 구멍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과 같다. 심할 땐 숨도 쉬기 어렵고 온갖 공포란 공포는 느낄 수 있다. 떠올리기 싫어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참아보려고는 했지만 말 그대로 구제 불능이 되어 버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대로 미쳐버리는 걸까 무서웠었다. 그리고 나도 이런 내가 무서운데 남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다. 가능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꾹꾹 숨겨왔다. 하지만 공포는 상황을 가릴 것 없이 나타났다.

어느 날 언니랑 있는데 구제 불능에 빠진 적이 있다. 사실 같이 있을 때는 항상 밖으로 뛰쳐나가서 어떻게든 숨겨왔지만 그럴 때마다 언니가 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언니를 덮쳐버리고 말았다. 모든 게 본능적이었다. 흉한 내 모습을 전부 보여버리고 말았다.

분명 언니는 당황했을 테다. 그런데도 언니는 그런 나를 받아주었고 되레 등을 툭툭 두드리며 위로해주었다. 그날부터 그 기분이 들 때마다 언니를 안았다. 안고 있으면 언니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포근한 느낌이 들었고 향수를 뿌린 듯한 언니의 냄새를 맡으면 온몸의 긴장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나는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언니의 인내심, 아니면 이해심 덕분인지 요즘 그런 극단적인 기분이 덜한 듯하다. 이번 주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저번 주까지만 해도 하루에 몇 번이나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언니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스스로 혼자 있어 보려 한다. 언니를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았기에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보답이랍시고 이렇게 혼자 있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저번 주까지는 언니와 컴퓨터실도 같이 왔었는데 오늘은 나 혼자 왔다.

참고로 컴퓨터실에는 항상 현수가 있다. 컴퓨터실에 올 때마다 현수가 있는 게 신기하긴 하다. 컴퓨터실에 없던 순간을 세는 게 더 쉬울 테다. 평소에 식당에도 잘 안 가면서 언제 먹고 잠은 또 언제 자는지 미스터리다.

원래 나는 컴퓨터실도 이 시간에는 잘 안 왔다. 원래는 지금 언니랑 있어야 했다. 오늘은 특별하다고 할까, 변수가 생겼다고 할까···.

사실 오늘 일어났을 때부터 싸한 공기를 직감했다.

옆에 있어야 할 언니는 없었고 방도 어느 때보다 공허해 보였다.

하루의 첫 단추가 잘못 맞춰져 모든 패턴이 달라져 있었다.

음식 냄새가 나야 할 식당에서는 다른 데서도 맡을 수 있는 흔한 냄새가 났고 음식 없는 테이블 앞에는 언니가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니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고, 옷은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위아래 할 것 없이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언니의 눈가가 젖다 못해 눈물이 넘쳐흐르는 모습이었다.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어디론가 가버렸다. 언니가 있던 자리에는 마시다 만 술병만 놓여 있었다.

나는 곧장 영인을 찾아다녔다. 영인도 웬일인지 식당에 없고 방에 가서 찾을 수 있었다. 영인도 어딘가 지친 모습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영인이 전할 소식에 비하면 크게 놀랄 만한 것도 아니었다.

오늘 새벽에 최영이 탈출 시도를 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며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지만 영인은 피곤하다며 거절했고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문을 닫으려 했었다. 그때 나는 급하게 물었다. 앞으로 영이는 어떻게 되는 거냐며. 그러자 영인은 뜸을 들이더니 내일을 봐야 알 거라고만 했다. 그리고 영이가 오늘부로 스트라이크가 세 개가 쌓일 것이라며 쐐기를 박아버렸다. 그 뒤로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문은 닫혀버렸다.

영이도 그렇지만 나는 정영인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영이와 친했던 분이 이런 식이면 안 될 테다. 언니도 그렇게 슬퍼하는데, 그리고 나도 답답하고 분한데! 하지만 정영인은 새벽에 일어나서 피곤하단 말뿐이었다. 왜 평소에 언니가 정영인을 싫어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속으로 욕하며 언니 방으로 갔지만 방에 누워있는 언니를 보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치듯 컴퓨터실로 오는 것 말고는,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이라도 만들어주는 것밖에는···.

언니와 영이의 관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니가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영이다.

영이가 무슨 생각으로 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솔직히 신경 쓰이는 게 살짝 있다.

사실 최근에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며칠 되지도 않았다.

처음엔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정말로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영이 말로는 배달 상자들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누가 보냈는지 적혀있지는 않았는데 나 말고 모두는 누군지 아는 듯했다.

애초에 나한테 편지가 온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었는데 발송자의 이름마저 듣고는 다들 나를 놀리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내게 편지를 보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확실히 주인 말고는 나한테 편지를 쓸 사람은 없을 테다. 거기에다 기분 나쁜 내용까지 써서 나를 떨게 할 사람은···.

그때부터 편지를 열기가 무서워졌고 보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모두 모였을 때 식당에서 편지를 열었다. 나 말고는 열 수 없다지만 보여주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며.

봉투 안에는 종이가 몇 장 들어있었고 글 몇 줄 적혀있는 의외로 평범한 형식이었다. 내용은 어떤 이야기가 적혀있었는데 마치 동화 같았다. 하지만 내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침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였기에 마음 같아서는 버리고 싶었다.

만약 버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지금도 ‘주인’이라는 두 글자만 떠올려도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나중에 나를 직접 찾아오기라도 하려나? 버리기도 무서워서 나는 언니 방에 있는 책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런데 나만 무서웠던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의외로 별다른 반응은 없던 것 같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다. 영이가 방에 찾아와서 몇 번이나 내 편지를 본 적이 있다. 솔직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서 뭘 찾을 수 있겠냐만, 혹시라도 내가 보여준 편지 때문에 일이 일어났다면···. 그런 걸 절대 바라지 않지만 모든 게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말이 된다.

편지에 관심을 가진 건 영이 혼자만은 아니긴 하다. 언니도 종종 방에서 내 편지를 꺼내 본다. 무섭지도 않은지···, 그런데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면 언니도 무섭다며 곧바로 봉투에 도로 넣곤 했다. 언니가 동화를 좀 봐서 그런 걸까? 뭔가 느낄 만한 게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전혀 볼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 언니와 했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왤까? 단순히 과거 언니와 영이의 관계만 알 수 있는 정도일 텐데. 아니 생각해보면 내 편지에 관심을 가진 건 둘뿐이었다. 오히려 둘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혹시 그 둘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이제야 둘의 관계든, 내 편지가 어떻든 생각해봤자···.

낮에 일이 일어났다는 사무실에 가봤었다.

1분 제한이란 것 때문에 오래 있을 순 없었지만 사무실 곳곳에 난 흔적은 모든 걸 알려주었다. 사무실 벽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기에 찌그러져 있었고 모든 벽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잔뜩 긋기라도 했다는 듯이 가느다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돋는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다.

이젠 짜증 나려 한다.

바보 같다.

···그런데 만약에.

그럴 리 없겠지만.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정말로 만약에 영이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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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봄날, 그들의 이야기 ③ 22.05.16 1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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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한여름날의 추억 ⑥ 22.05.06 19 0 11쪽
51 한여름날의 추억 ⑤ 22.05.04 22 0 9쪽
50 한여름날의 추억 ④ 22.05.02 17 0 10쪽
49 한여름날의 추억 ③ 22.04.29 15 0 10쪽
48 한여름날의 추억 ② 22.04.27 23 0 10쪽
47 한여름날의 추억 ① 22.04.25 18 0 10쪽
46 소미의 한여름 ⑩ 22.04.22 16 0 10쪽
45 소미의 한여름 ⑨ 22.04.20 14 0 10쪽
44 소미의 한여름 ⑧ 22.04.18 11 0 10쪽
43 소미의 한여름 ⑦ 22.04.15 13 0 9쪽
42 소미의 한여름 ⑥ 22.04.13 13 0 10쪽
41 소미의 한여름 ⑤ 22.04.11 12 0 8쪽
40 소미의 한여름 ④ 22.04.08 21 0 10쪽
39 소미의 한여름 ③ 22.04.06 12 0 8쪽
38 소미의 한여름 ② 22.04.04 15 0 8쪽
» 소미의 한여름 ① 22.04.01 14 0 10쪽
36 불협화음의 끝 ③ 22.03.20 14 0 10쪽
35 불협화음의 끝 ② 22.03.19 15 0 11쪽
34 불협화음의 끝 ① 22.03.18 15 0 10쪽
33 불협화음 ⑤ 22.03.17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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