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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cal 님의 서재입니다.

등가의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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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cal
작품등록일 :
2023.05.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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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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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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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DUMMY

“자. 실밥은 다 제거했고. 다 아문거니까 내일부터 바로 샤워 가능하시구요. 그래도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마시구. 음. 흉이 좀 남긴할텐데. 그래도 점점 괜찮아질거니까. 그리고 남자애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약만 일주일치 줄테니까. 하루 3번 밥 먹고 나서 아침 점심 저녁 써있는 걸로. 먹으면 끝. 알겠지?”


모든 퇴원준비가 마쳐진 레이의 왼팔의 실밥을 의사선생님이 제거하자. 메르시와 레이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병원을 나섰다.


이른 시간 수업이 있어 캐치와 호프는 오지 못하였고. 레이는 메르시의 차에 태워져서는 자신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혼자서 괜찮겠어? 내가 도와주는 게 낫지 않아?”


“아뇨. 괜찮아요. 저 말짱하다니까요. 지금까지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메르시는 영 불안해했지만. 레이는 극구 사양하였다. 레이는 붕대를 다 풀렀어서 전혀 차이가 없었고, 짐 자체도 별것이 없어 들어줄 것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실밥을 제거하며 운전에 대해서 물어보니. 격렬한 운동을 한 달 정도 조심히 하라는 것 외에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하였고, 뼈에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격렬한 운동도 평소 하는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레이가 느끼기에도 자신의 왼팔은 무리가 없게 느껴졌다. 조금 병원에 있으면서 살이, 아마 근육이 많겠지만. 어쨌든 살이 좀 빠진 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가끔 약간 쑤시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만약 자신의 차가 병원에 있었다면. 자신의 차로 돌아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차는 가나안 숲에 있던 것을 캐치가 기숙사 주차장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르시의 차를 탔던 것이었다.


메르시의 차를 타는 게 싫은 일인 건 아니었다. 메르시의 옆에 있는 것이 싫은 일인건 아니었다. 매번 볼 때마다 햇살과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매순간순간이 꿈같이 느껴졌고. 만나는 모든 시간마다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고. 말하고 있어도 또 말하고 싶었다. 성적인 욕망도 없지는 않았으나, 왜인지 낮에는 성적인 욕망보다도 그저 행복을 느꼈고. 행복을 느끼면서도 행복을 더 찾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보고 있으면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 구부러지면 안 된다. 녹아버리면 안 된다.


메르시와 같이 있으면 구부러질 것 같았다. 녹아버릴 것 같았다. 자신이란 틀이 무너지고 녹아내려 부서질 것만 같았다.


“후우...”


방 안에 들어온 레이는 가장 먼저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2주 정도가 지났다. 사제단의 수업이나 훈련은 2주 정도 더 빠져도 된다. 내일부터 바로 참여해도 문제는 없을 팔이지만. 혹시 모른다. 괜히 팔이 문제가 되어 주목받는 일은 더 피하고 싶었다. 주어진 2주를 충분히 다 쉬고. 나가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팔이 다치지 않은 것처럼 있고 싶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레이는 벌써 겨울인가 싶었다.


메르시의 차 안에서도 눈이 옅게 흩날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레이는 창밖을 응시하면서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16살. 지금은 아직 이번 해의 겨울이었다. 세계는 북반구에 위치했기 때문에. 6월이 겨울이 되지는 않았다.


곧 있으면 한 해가 지나갔다. 17살이 되는 것이었다. 16살과 17살이 무슨 차이일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우 큰 차이로 다가왔다. 일단적으로 이번년도에 그것도 최근 몇 달간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아마 분명 수십 년 후에라도 최근 몇 달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의 인생 전부에 극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의 일들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당장 거리에 누구 하나를 붙잡고 ‘당신 등가의 주사위라는 능력 있어?’ 라고 물어보면 아무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누운 채로 왼팔을 들어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실밥을 제거한 부위는 정말로 씻은 듯이 나아있었다. 라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실밥을 제거한 부위의 살은 정말 못생겨서는 살이 잘려있었던 부위가 선명하고도 불쾌하게 보였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못생기게 봉합을 시켜줄 수가 있는거야. 라는 마음이 확 들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그어져있는 수많은 베인 자국들이 보였다. 자신이 지금껏 행해온 수많은 능력이었다.


그러자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 바로 어제인데도 그 밤이 꿈처럼 그리고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마치 자신의 왼손에서는 메르시의 손이 만져지는 것 같았고. 자신의 오른손에서는 메르시의 팬티 속 음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레이는 자신의 오른손을 자신의 코에 갖다대고는 자신의 입술에 갖다대었다. 자신의 손냄새와 손맛밖에 나지 않았지만. 심장이 조금 더 두근거리며 메르시의 냄새와 메르시의 맛이 나는 듯이 느껴졌다.


이내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왜인지 울고 싶었다. 레이는 자신이 왜 울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울어지지는 않았다. 울음을 내려고 노력한다면 울 수 있을 것이고, 눈물도 나올 것이었으나. 그 감정도 토해져 나올 것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레이는 창 밖을 다시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은 내리지 못하고. 흩날리는 눈. 혹은 진눈깨비일 지도 모른다. 그런 눈이 내리고 있어. 아마 쌓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레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두 번 다시 메르시와 밤을 보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레이는 감각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어제는 정말로 마지막 날이었다.


레이는 깊은 숨을 내쉬고는 견딜 수 없어 몸을 돌려 누운 채 마음으로 흐느꼈다.


/


한참을 누워있다 정리를 하고 있던 레이의 방에 호프와 캐치가 찾아왔다. 축하파티였긴 하지만. 레이가 술을 마실 수는 없었기에 이전 병문안에 왔을 때와 비슷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레이가 2주간 더 쉬겠다고 말했을 때. 호프와 캐치는 멀쩡한데 노는 것 아니냐면서 부러워하며 성냈고. 후에는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했다. 부상휴가인 이상 비상소집의 경우에도 의무는 없었고. 2주간 쉬는 데 그냥 보내는 건 아깝지 않냐는 이야기였다.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2주간 뭐할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보 적이 없었다. 그저 병원에서의 2주와 같이 하릴없이 산책이나 하고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병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운동도 포함해서 할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가 3명이서 다 같이 여행을 가잔 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이번 2주간만큼은 3명 모두에겐 무리였다. 이 2주간은 특히 새로운 과제와 수업과 훈련이 많았고. 호프와 캐치 둘 다 모범생이었다. 둘 다 레이였으면 빠졌을 거다. 라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과제와 수업과 훈련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4인 1조로 진행되는 사냥 과제였다. 중간에


“너 덕분에 4인1조로 바뀌었잖아.”


라고 캐치가 말하고 호프가 웃었을 때. 레이도 웃었다.


“그러니까. 4인 1조인데 사냥도 사슴이 뭐냐고. 사슴이...”


“게다가 검 금지인 거 웃기지 않냐?”


“그러니까. 소집은 소집대로 할 거면서 이런 게 의미가 있냐고.”


호프와 캐치가 웃으며 하소연을 했을 때. 레이도 함께 웃었지만 순간 자신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즐거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수업 이야기 훈련 이야기. 왈라프에 대한 이야기. 상처는 어떻냐는 이야기. 언제 한 번 다시 모이자는 이야기. 메르시에게 감사하다고 전해달라는 이야기. 사제단에 어서 빨리 나오라는 이야기. 레이도 수도사제단에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 수도사제단에 한 번 내년에 다같이 지원해보자는 이야기. 서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각성에 관한 이야기. 펌프킨에 관한 이야기. 수술 받은 다음에는 몸에 뭐가 좋다는 이야기. 어떤 음식이 좋다는 이야기. 자신도 쉬고 싶다는 이야기. 시간이 참 빠르다는 이야기. 눈이 온다는 이야기. 눈이 와서 쌓이면 같이 밖에서 놀자는 이야기.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가고 전해진 이야기만큼 시간이 지나갔고. 겨울의 저녁은 빨라서는 캐치와 호프도 레이의 기숙사를 떠나갔다. 어차피 각자 자신의 방으로. 갔을 뿐이지만 말이다.


레이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신기함을 느꼈다.


어제까지는 병원에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기숙사 자신의 방에 있다. 어제까지는 메르시오 같이 있었는데. 오늘은 다시 이 주 전의 평소처럼 자신의 침대에 혼자 누워있다. 그런데도 평생 오늘과 같았던 것 같았다.


자신이 평생 사제단에서 평생 이렇게 기숙사에서 평생 이렇게 누워있었던 것만 같다. 수업. 훈련. 에도 참여함 없이. 이렇게. 평생을 누워있었던 것만 같았다. 인간의 적응력이라는 건 정말 놀아웠다.


호프와 즐겁게 대화하면서도 메르시의 일에 대해서 호프에게 전혀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느껴지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겠지만.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조금 웃기다고. 자신이 조금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치와 대화하면서는 즐겁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왈라프 이후로 캐치와는 좀 더 보이지 않는 연결끈이 생긴 것 같았다. 따지고 본다면 전부 캐치는 모르는 자신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것까지 고려되지는 않았고. 캐치와 더 가까워졌단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도랄까? 시간보다도 더 많은 일이 그 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렇게 레이 자신이 시간을 알차게 쓴 적이 인생에서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었다.


2주간의 기간동안 여행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아까 대화속에서 나온 이야기. 레이는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어떤 것을 여행이라 봐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적으로 레이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행에 관한 기억은 없었다.


호프와 캐치의 말이 맞는 말같이 느껴졌다. 다들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오고. 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괜찮았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바다로 갔고. 어떤 이는 산으로 갔고. 어떤 이는 수도로 가기도 했고. 어떤 이는 호텔로 가기도 했다. 호텔도 여행이라 쳐야할까? 싶기는 하지만...


레이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다. 산? 바다? 여행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즐거움이 재미라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있어 산과 바다보다는 수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를 말로는 들어봤지만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호프와 캐치는 수도에 다 가본 적이 있었고. 호프와 캐치가 아니더라도 같은 사제단의 모두 웬만하면 수도 한 번씩은 다 다녀온 듯했다. 레이는 결심했다. 쉬는 2주간 길게는 아니더라도 잠깐 시간을 내어 수도에 가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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