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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블루 님의 서재입니다.

불면증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공포·미스테리

장준해
작품등록일 :
2013.08.11 03:42
최근연재일 :
2016.02.06 03:4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595
추천수 :
8
글자수 :
12,203

작성
16.02.06 03:49
조회
91
추천
1
글자
9쪽

[DAY 2] 늑대(2)

불면증




DUMMY

창문틀이 얼어붙어 열리지도 않는다. 진절머리나는 추위가 보름 동안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그만큼 거리에 떠드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한동안 털북숭이 짐승으로 변해버린 나 자신이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다르다. 보통 인간들이 절대 느낄 수 없는 강력한 속도로 달릴 수도 있고, 마치 달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된 기분이다. 응징할 인간들이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왕으로 군림하던 밤을 그리워한다.

보름달이 뜨자 나는 습관처럼 네 발로 문밖을 기어나갔다. 왕이라기보다는 들개처럼 무언가를 찾아다니듯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발자국 하나 없이 소복이 쌓인 눈 위에 달빛만 파랗게 반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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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 대학에서 졸업을 앞두고 실습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는 아무도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다니려 하지 않았다. 그 날은 해부학 실습을 끝내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나와 동기들은 덩치가 제법 큰 남자들인데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골목길로 들어섰다. 가장 나이가 어린 진우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우리와 반대쪽 길이었다.


"선배님들 그럼 내일 뵐게요. 괜히 겁먹지 말고 집으로 얼른 들어가세요!"


진우는 선배들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는 잔뜩 어깨를 움츠리며 빠르게 걸어갔다.


"진우가 제일 겁먹은 거 같은데?"


친구 선호가 코웃음을 치고는 갈 길을 재촉하듯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몇 미터 가지 않아 나는 진우가 걱정이 됐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동기들을 먼저 보내고 진우가 갔던 길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발목이 빠질 만큼 눈이 쌓인 길 위에서는 뛰어갈 수도 없었다. 걸어가는 내내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갑자기 진우의 것이 분명한 남자의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온 힘을 다해 달려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휘청거리며 일어서려는 진우를 본 순간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왜 그래 진우야! 무슨 일 있었어?"


진우는 입술까지 새파랗게 질려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봤어요…. 내가 분명히 봤어요…."

"보다니 뭘 봤다는 거야?"

"그 늑대요! 정말 늑대였다고요!"


눈길을 달려와서 주저앉은 진우를 보았을 때, 늑대가 정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진우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났다.


"너 잠이 모자라서 그래…. 카데바에 온종일 시달리느라 많이 허약해졌나 보다."


심하게 떨고 있는 진우를 간신히 일으켜 세워 번화가까지 데려가 택시에 실어 보냈다. 진우를 진정시키긴 했지만, 다시 그 길로 되돌아가야만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냥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아침에 학교로 갈까 생각했지만, 집이 학교 바로 옆인데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게다가 늑대가 있을 리 없다고 큰소리친 마당에 있지도 않은 늑대를 피해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걸음은 빨라지고 심장은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가로등이 보이는 길모퉁이에 다다라서야 심장은 다시 정상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안경에 서리가 껴서 뿌연 탓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먼발치에 사람도 다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람도 아니고, 확실히 개는 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네 발로 걷는듯하더니 자연스럽게 두 발로 걸어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그것은 나를 보지 못했다. 조금만 더 일찍 골목길로 들어섰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떠나간 자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발자국이 보였다. 확실히 개의 발자국이라고 하기엔 그 크기가 상당히 컸다. 커다란 개일 수도 있지만, 개 발자국에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이어지는 모양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발자국이 끊어진 건물은 보통의 다세대 주택 건물이었다. 반지하부터 4층까지 이어진 평범한 원룸촌 건물. 이런 집에서 그렇게 큰 개를 기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목숨을 건다면 우습지만, 인생에서 가장 용감한 모습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호기심보다도 일종의 영웅 심리가 발동한 것이었다. 낯선 괴물의 정체를 밝혀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계단 위로 희미하게 눈이 녹은 물이 떨어진 자국을 따라 올라갔다. 1층에서 센서 등이 환하게 켜지자 나는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하기도 했다. 그대로 얼어붙어서 그것이 사는 곳으로 추정되는 집의 현관 앞에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당장 건물을 빠져 나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현관을 열고 뛰쳐나와 단번에 나를 해칠 수도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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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새벽이라지만, 너무 오래 돌아다니다가는 누군가의 눈에 띌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길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분명 나를 동네 개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심술 기가 발동한 나는 남자를 향해 두어 번 그르렁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준 뒤에 재빠르게 구석진 길로 숨어 들어갔다.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가는 정체를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어슬렁거리다가 남자가 사라지면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남자 때문에 귀찮게 돼버렸다. 몇 분 뒤에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털에 묻은 눈 덩어리를 털어낼 틈도 없이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짓도 계속 할게 아닌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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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를 듣고 식당에서 진우와 점심을 먹으며 지난밤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진우는 자기가 본 것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내 말대로 심신이 허약해져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다시는 혼자서 그 골목에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다. 진우에게 그것의 실체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허약한 진우의 상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진우가 내 말을 믿어줄 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래도 나는 그것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습도 없는 휴일 오후, 해가 쨍쨍한 날을 골라 그 건물 근처를 배회했다. 혹시라도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뚫어져라 그 개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개도 그날 밤 내가 목격했던 그것과 견줄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점심때가 되어 그냥 돌아가려던 찰나에 그것이 들어갔던 건물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반지하가 아닌 위층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여자였다. 사실 꽤 예쁘게 생긴 여자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는 수수한 차림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여자가 그것일 리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여자가 그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기 위해 건물 옆쪽 구석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가 1층에 사는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 여자가 나타났고 나는 1층 집의 현관문이 보이는 건물 외벽 창문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자는 1층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 본 것이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옴니버스 식 스토리


작가의말

이쁘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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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 2] 늑대(2) 16.02.06 92 1 9쪽
2 [DAY 2] 늑대(1) +3 16.01.20 155 2 6쪽
1 [DAY 1] 1506호(1) 13.08.11 34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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