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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블루 님의 서재입니다.

불면증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공포·미스테리

장준해
작품등록일 :
2013.08.11 03:42
최근연재일 :
2016.02.06 03:4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596
추천수 :
8
글자수 :
12,203

작성
16.01.20 01:54
조회
155
추천
2
글자
6쪽

[DAY 2] 늑대(1)

불면증




DUMMY

1인용 침대,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기다란 책상, 컴퓨터 모니터보다 작은 소형 티브이, 계절마다 항상 입는 몇 벌의 낡은 옷이 걸린 작은 옷장. 그녀의 몸은, 작지만 단조로운 이 공간의 일부로 녹아 붙어 버린 듯 보였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오게 되었을 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작지만 아늑하고 깔끔한 내부 실내장식도 좋았고 대학가 중심에 자리 잡은 위치 덕분에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점은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다. 침대 머리맡 바로 위에 창문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길가 소음 정도는 그다지 불평할 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집주인 할머니는 80세가 넘은 세월을 말해주는 주름진 얼굴에서도 단번에 온화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미소가 멋진 분이다. 게다가 요즘같이 각박한 세태에 내가 착해 보인다는 이유로 파격적으로 월세를 깎아주기도 했다. 이 점 때문에 할머니의 온화함이 더 돋보이는 게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어쩌다 할머니와 마주치게 되면 항상 나에게 착하고 예쁜 학생이라며 매번 같은 칭찬을 쏟아내신다. 나는 학생도 아니고 착한 인간도 아닌데 말이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고 밤이 되면 그녀는 의식처럼 샤워한 뒤 머리카락이 마르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날은 유난히도 욕실에서 한참 동안 면도날과 사투를 벌였다. 남들과 다른 존재로 사는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익숙하게 행동했다. 온몸에 돋아난 은색 털은 달밤에도 눈에 띌 정도로 눈이 부시게 그녀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물론 보름달이 뜨는 날만 아니면 그다지 크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무뎌진 면도날로 수없이 긁어낸 까닭일까, 온몸의 피부가 거칠어 진듯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욕실 배수구가 꽉 막혀버리는 바람에 짜증이 온몸을 휘감아버렸다. 내 피부보다 더 부드러운 베개에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짜증이 사라지는 듯 잠이 들 수 있었지만, 수면과 각성 상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점에서 나의 잠을 깨워버린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창밖은 자동차 한, 두 대는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널따란 골목이다. 이따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와 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참을 수 있었지만, 술에 잔뜩 취한 대학생들이 고함을 치며 내 머리맡을 지나갔다. 말도 안 된다고 외쳐봤자 그들은 이미 나의 잠을 깨우고 시시덕거리며 거리를 지나간 뒤다. 짜증이 잔뜩 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번에는 가만 안 두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녀가 살았던 집 주변은 대학가에서 원룸촌이라 불리는 지역인 데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번화가로 이어지는 한적해 보이지만 번잡한 지역이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술에 취한 젊은 남녀가 제멋대로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가 몇 달을 시달리다가 경찰에 신고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경찰이 출동한 뒤엔 이미 소음의 주범들이 사라져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인내심은 이쯤 돼서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밤하늘의 달은 점점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종일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일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것들이 조용히 나를 내버려두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젠 그러면 안 된다는 결심이 간절한 생각을 막아버렸다. 이성이 감정을 이길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곤히 자는 나를 괴롭히는 그 소리에 나의 이성은 철저히 박살 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성을 가장한 나의 감정이 나에게 물었다. '뭐 어때, 조금 겁만 주면 되는 거잖아.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살짝 겁만 주자. 그래 이 방법밖엔 없어!' 나의 감정에 이성이 답할 틈도 없이 내 온몸은 이미 잔뜩 성난 은색 털이 덮어 버렸고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날카로운 이빨로 문고리를 열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집에서 한참 떨어져 걸어가는 남녀 무리의 뒤까지 바짝 쫓아갔을 때에는 희미해져 가는 이성을 더욱 붙잡으려 했다. 그리고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으르렁 짖어댔다. 눈을 뜨니 침대 위에 누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 몸이 느껴졌다. 다행히 입에 피가 묻어있지 않은걸 보니 나는 확실히 계획한 대로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얼핏 기억하기에 남녀 무리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거나 몇몇은 줄행랑을 쳤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키득거렸다. 발바닥은 새까맣게 더러워졌지만, 기분 좋은 아침이다.


그녀가 한바탕 복수극(?)을 벌인 뒤에 동네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떠돌았고, 심지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맹수를 풀어놨다는 말도 안 되는 도시 괴담도 생겨났다. 그녀는 집주인 할머니에게서 그 맹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겉으로 두려운 표정을 연기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 일이 있었던 뒤로는 그녀의 잠을 깨우는 주정뱅이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아예 밤늦은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외지인들은 꽤 자주 그녀를 괴롭혔다. 그럴수록 그녀는 하루 일과처럼 아무렇지 않게 불청객들을 몰아내었고, 그 후에 편히 잠들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녀에겐 일상이 되어버린 일이 이후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만들어 낼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옴니버스 식 스토리


작가의말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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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 2] 늑대(2) 16.02.06 92 1 9쪽
» [DAY 2] 늑대(1) +3 16.01.20 156 2 6쪽
1 [DAY 1] 1506호(1) 13.08.11 34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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