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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견(自遣)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무주의자(無主義者)

기본적으로 나는 무주의자(無主義者) 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아무런 주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칙적으로 그것을 배제하려고 애쓰고 있다. 요컨대 나는 주의, 'ism' 이라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는 뜻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대표적인 '주의'는 민족주의이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나~' 어쩌구나 ''단일민족이~' 어떻다 하는 소리는 지금의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한국인이니까 서로 도와야 해 라는 소리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가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수많은 각양 각색의 인간들을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어느 나라던지 이런 저런 사람이 있고 그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씨가 좋다, 누구씨가 싫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국적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가 어느 국적이던지 그 사람을 보고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던 뭐든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은 것이다. 만약 내가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 축구선수들을 응원한다면 그 이유는 내가 그 선수들의 팬일 경우와 그 팀의 팬일 경우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끔씩 해외에서 선전한 스포츠 혹은 각 방면의 대가들을 보며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얼마나 잘했건 그건 그의 몫인 것이다. 열심히 한 그의 노력의 결과이고 그가 한국인이란 것은 그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가 잘했다고 해서, 그가 세계의 정상에 섰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자랑스러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때로는 대리만족으로 나를 대신한 이미지로 그에게 열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국가를 대입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이 땅에서 사십 수년을 살았다. 런던에서의 짧은 몇년을 제외해도 사십년인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혹은 다른 누가 봐도 나는 완벽한 한국인이다. 그런 내게 누군가가 '당신은 한국을 좋아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이다.
 
말 그대로다. 나는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러운지 수치스러운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고 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설사 답을 생각한다고 해도 한마디로 그것을 일축할 자신도 없다. 이 땅에는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왔고 그만큼의 싫은 녀석들이 있어 왔다. 또한, 수많은 좋은 일이 있어 왔고 역시 그만큼의 싫은 일 역시 있어 왔다. 좋고 싫고를 퍼센티지로 나눠 '이쯤이면 좋아한다고 해야하나?' 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주의가 없는 남자다. 박찬호를 멋진 야구선수로는 생각해도 멋진 한국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인인 것이 수치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자랑스럽지도 않다. 아니, 관심도 없다. 그런 것 따위는...
 
자랑스럽다면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야 하고 수치스럽다면 역시 나 자신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기를 원할 뿐이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 뿐이다.
 
인간이 먼저인가..아니면 국가가 먼저인가...어렵다면 어려운 문제지만 쉽다면 쉬울 수도 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저런 말을 써왔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고 또 그럴 자격도 없다. 단지 나는 서로가 자신의 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나의 답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답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굳이 남의 답을 힐끔거리며 참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 남의 답이 틀리다고 떠들어댈 필요도 없다. 자신이 믿는 것을 믿으면 된다.
 
결국 말이 많아지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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