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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전기세를 내려다 도시의 지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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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3.05.10 18:07
최근연재일 :
2023.05.11 23:20
연재수 :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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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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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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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8

작성
23.05.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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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 블루캣

DUMMY

2. 블루캣



도시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권리를 손에 쥐고 내가 처음으로 한 것은 밀린 전기세를 지불한 일이다.

정확히는 돈을 내기 보단 전기세가 밀렸다는 사실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는 렌지에 인스턴트식품을 돌려 먹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집에 전기가 돌아오고, 오는 도중에 사온 인스턴트 스파게티와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이 금액은 통장에 2만 크레딧을 입금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현실과 환율을 맞춰보자면 100:1정도가 된다.

요컨대 2만 크레딧은 200만원.

낯선 세계에서 삶을 시작한 지원금으로 딱 적절한 액수다.

이정도 지원금은 받을 수 있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흔히 관념적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엘렉트라>의 경우는 다르다.

이 도시, 이리스에서 태어나고 죽는 모든 것은 엘렉트라의 영향아래에 있다.

전기나 수도, 교통은 물론, 경찰, 은행이나 병원, 학교, 농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엘렉트라의 관리를 받으며, 그것이 여기 인류 최후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이리스가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해서, 엘렉트라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진 내게 통장에 돈을 얼마쯤 꽂는 거야 세상 간단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이 갑자기 생겨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겠지만, 고작 2만 크레딧 정도가 문제될 일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치트처럼 엘렉트라를 사용할 생각은 없지만.’


게임이든 현실이든 마찬가지다.

정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지.

나는 렌지에 대운 스파게티를 한 젓가락 집어 먹고는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


“아포칼립스 한 잔. 온더락으로.”

“끼야~ 아포칼립스? 역시 율씨! 통이 완전 커서 멋져!”


바Bar 블루캣.

미글렛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에 위치한 이 바는 고급바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나쁘게 말하자면, 살짝 싼티가 난다.

술에 취한 손님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배경음마냥 깔려있다.

한마디로 좀 시끄럽다.

그럼에도 내가 블루캣을 이용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나름의 분위기도 싫지 않고, 스토리에서도 비중 있게 등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건 이 바의 종업원 하나하나가 내 손을 탄 캐릭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여기 케이트는 제법 심혈을 기울인 캐릭터다.

캐릭터 디자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거기에 설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건 나다.

도저히 술집 아가씨로는 보이지 않는 순수한 얼굴로 그려놔서 고민이 좀 많았지만, 덕분에 상당히 갭이 있는 재미난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작은 키.

긴 검은머리에 흰 피부. 새까만 눈동자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소녀 같은 분위기가 가득하다.

프로필상의 나이는 약 30대 중반. 정확한 나이는 설정해 두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온 손님들은, 갓 성인이 된 10대의 소녀라고 생각할 만큼 동안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내 모델링과 설정이다.

현실이 된 케이트는 뭐랄까. 거기까지 어려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30대 중반이 10대로 보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 풋풋한 분위기가 있고, 그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은 아이처럼 반짝인다.

화장기 하나 없어 보이는 청순한 얼굴이지만, 실은 고도의 기술로 완성한 ‘한듯 안한듯한 화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저런 얼굴로 술을 만들고 있으니, 홀라당 넘어가 비싼 술을 생각 없이 주문하는 손님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어째 나를 말하는 것 같군.

하지만 그건 자신이 창작한 캐릭터가, 생각한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존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감동이 좀 더 크다.

그러다보니 이렇듯 비싼 술도 주문하게 되는 거다.

아포칼립스는 블루캣에서 파는 술 중 가장 비싼 술이다.

잔당 2천 크레딧은 된다.

이렇게 비싼 술을 거의 매일 같이 와서 마시는 손님이라니, 케이트의 눈이 반짝이는 것도 당연했다.

현실이면 평생 내돈주고 사먹을 일이 없었겠지만······.

그래.

인간이란 욕망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진실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난 엘렉트라의 관리자가 된지 사흘 만에 맛집 탐방을 시작하게 되었고, 신호등은 단 3초를 기다리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며, 급기야 이렇듯 시나리오에 등장하던 술집에 와서 매일 밤 가장 비싼 위스키 한잔을 즐기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처음 이곳에 찾아왔을 때는 적당히 싸구려 술이나 한잔 마시고 갔지만,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해보자.

인간이란, 욕망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엘렉트라의 권한을 얻은 지, 정확히 열흘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정말 율씨는 뭐하는 사람이야?”

“말했잖아. 평범한 탐정이야.”

“평범한 탐정이 그렇게 비싼 술을 매일 같이 마실 리가 없잖아.”

“능력 있는 탐정이라면 다르지.”


어쩌다 이렇게 허세가 섞인 대답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능력의 정의를 <수신자>로 바꾼다면, 이는 분명히 참이 된다.

딸그락.

얼음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주문한 술이 나왔다.

아포칼립스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노을빛색을 띈 위스키다. 나는 여유롭게 잔을 들고 입에 가져갔다.

그건 묵직하게 턱을 후려치는 알싸한 감각이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화끈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술은 마지막에는 입안에 은은한 단맛을 남긴다.

이래서 비싼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이렇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야말로 꿀잠을 잘 수 있다.

만약 현실로 돌아간다면, 이 나날을 제법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나야 매출만 잘 나오면 좋지만. 게다가 여기 율 오빠의 얼굴은 꽤 취향이기도 하고.”


오빠라니, 주책도 다 있다.


“내 생각에는 케이트가 누님이지 싶은데.”

“무, 무슨 말이야? 이렇게 귀여운 누님이 어디 있데.”


덧붙여, 율은 제법 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다.

조금 딱딱해 보이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남성적인 맛이 있다.

거기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내 생각보다 율의 이미지에 딱 맞았다.

그건 본래의 내 모습과는 다른 점이다.

현실의 나는 비교적 가벼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고, 게다가 그다지 잘생긴 편도 아니다. 동료들이 말하길, 체크무늬 남방만 입으면 어디 공대생이라고 오해받기에 딱 좋다고 했던가.

아무튼 현실의 내 모습에 별로 불만은 없었지만, 지금 율이 된 이 잘생긴 얼굴도 싫지는 않다.


“그런데, 매일 밤 이런 곳에서 술이나 마셔도 정말 괜찮아? 여자 친구가 싫어할걸?”


그러니까 이렇게 은근 슬쩍 떠보는 말도 다 듣게 되는 거다.


“있다면 그렇지.”

“정말 없어?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아부는 잘하네. 좋아, 하나마츠리를 한잔 추가할까.”

“에헷, 뭐야, 나한테 술을 사주는 거야?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싫으면 말고.”

“아냐아냐, 손님이 사주는 술은 잘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겠는 걸? 잘 마실게.”


케이트는 직접 술을 섞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하나마츠리는 적당히 동서양 각국의 분위기를 내기위해 만든 설정의 술이다.

어쨌건 이 도시, 이리스는 인류 최후의 도시이고, 이 도시에는 과거의 국가를 초월하여 온갖 인종이 모여살고 있다.

대충 일본인이 만들었겠지.

자세한 설정은 해두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제법 달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트에게 선물하면 호감도가 많이 오른다.

가격도······ 물론 높다.

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벚꽃마냥 분홍색이 감도는 술을 눈앞에 따른 케이트는 소녀답게 두 손으로 잔을 모아 쥐고는 예쁘게 마신다.

본래의 나이를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엔 역시 주책이다 싶지만, 어쨌건 겉보기에는 귀여우니까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응~ 달아. 맛있어.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는 거 아니야?”

“원래 남이 사주는 술이 맛있는 법이거든.”

“정말이라니깐.”


바의 내부는 적당히 소란스러웠고, 그래서 나는 뒤쪽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생긴 걸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짝’하고 누가 뺨을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끝까지 술과 함께 약간의 잡담이나 하다가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고개를 돌리자, 뒤쪽의 테이블에서 뺨이 빨갛게 달아오른 점원과, 이를 노려보는 중년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싼 술을 거절하면 쓰나. 뭐라고 했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구인줄 알고, 기껏해야 천 크레딧이면 가랑이를 벌리는 년들 주제에.”


케이트의 얼굴이 굳었고, 나는 살짝 한숨이 나왔다.

내가 저런 대사도 넣었던가? 술집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법한 랜덤 이벤트에, 비슷한 대사를 만들어 넣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이 상황이 그 같은 이벤트와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는 기껏 술 한잔과 함께 보내던 좋은 시간을 삽시간에 망쳤다는 점이다.


“저기, 율씨, 잠시만 갔다 올게. 미안.”


마스터와 함께 케이트도 자리에서 일어나 트러블이 일어난 테이블로 향했고, 실랑이가 계속 이어졌다.


“이딴 식으로 나오면 다신 여기서 장사를 못할 줄 알아. 이 조삼홍이가 호구로 보이나 보지?”

“저기, 손님 일단 진정하시죠.”


마스터가 정중하게 말했지만, 상대는 막무가내다.


“진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술집년이면 술집년답게 얌전히 술이나 따르면 될 것이지. 이봐, 거기. 정 그렇게 불면이면 네가 한잔 따라보면 어때?”

“아하하······ 그럼 제가 한잔 따라드릴까요? 세아, 너는 들어가 있어.”

“하, 하지만 케이트씨······.”

“얼른.”

“그래,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케이트의 예쁘장한 얼굴을 확인한 중년인은 그제야 만족한 듯 자리에 앉았다. 케이트가 술을 따라준다는데, 끓던 화도 가라앉을만하지.

하지만 난 못 봐주겠다.

케이트가 조삼홍의 옆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술을 따르려 할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거기 아가씨는 나랑 대화 중이었지 싶은데.”

“이건 또 뭐하는 개뼉다구야? 넌 뭔데 끼어들어?”

“나? 이 가게에서 가장 비싼 술을 산 사람.”

“저, 저기 율? 지금은······.”

“기껏 네가 마실 술까지 주문했는데. 여기서 싸구려 술이나 따르고 있으면 안 되지.”

“아하하하······.”


케이트가 곤란한 얼굴로 날 올려다봤지만, 이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엘렉트라. 조삼홍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이름 조삼홍. 남자. 나이는 마흔 둘. 헥센 공업의 관리직입니다. 직급은 부장. 독신으로 최근에 오른 주식 덕에 작은 건물을 한 채 구입했습니다.]

‘뭐 상세한 정보는 필요치 않고······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군. 최근 돈을 좀 만져서 기분이 어깨에 힘이 들어갔나?’


조삼홍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지만, 그 이상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조삼홍의 입장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테고, 이런 상황에 대뜸 나설 만큼 간 큰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뭣하면 나보다 비싼 술을 시키던지. 그렇게 잘났으면, 그 정도는 해야 나도 물러날 수 있겠는데.”

“하, 이깟 술집에서 파는 술이 비싸 봤자지. 뭘 시켰지?”

“아포칼립스에 하나마츠리. 각각 한잔.”

“좋아, 나도 똑같은 거로 주문하지. 이거면 됐겠지?”

“이 자리에서 결제를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조삼홍은 불만스런 얼굴로 주섬주섬 품에서 크레딧 카드를 꺼냈다. 말대로 여기서 파는 술쯤은 충분히 살 수 있겠지만, 그게 맘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결제해. 이거면 됐겠지?”


마스터는 조삼홍의 크레딧 카드를 받아 술을 결제를 하려했으나, 이는 승인되지 않았다.


“저기, 결제가 안 된다고 합니다만······.”

“그, 그럴 리가? 이리 내놔! 내가 결제할 테니!”


물론 결제가 될 턱이 없다.

엘렉트라에게 부탁해, 조삼홍의 크레딧 카드를 잠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주문한 술값이 만만찮은 모양인데······. 무단 취식범을 이대로 둘 건가?”

“자, 잠깐! 이건 뭔가 오류가······.”


백번을 시도해봤자 되겠냐.


“마스터. 경찰 안 부르고 뭐합니까. 얼른 보내시죠.”


귀찮게 말다툼도 할 필요가 없다.

다행이 경찰을 부르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조삼홍은 신분증을 대신할 크레딧 카드와 입고 있던 외투까지 맡기고 술집을 도망치듯 빠져나갔고, 그렇게 모든 상황은 정리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케이트가 눈을 깜빡거리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되긴. 술을 살 돈도 없는 양아치가 와서 허세를 부린 거겠지.”

“하지만, 저 손님은······. 아니, 뭐 됐나. 아무튼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야.”

“그런 거지.”


나는 마시다 남은 술을 마저 입에 털어 놓고는, 다시 금 분위기를 즐길 겸 아포칼립스를 한잔 더 주문했다.



<계속>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81 까만하늘별
    작성일
    23.05.12 00:08
    No. 1

    이렇게 귀여운 누님이 어디 있데---》어디 있어/ 어디 있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까만하늘별
    작성일
    23.05.12 00:13
    No. 2

    초반에 200만원만 입금 시키면서 벌어서 적당히 어쩌구 하더니... 너~무 금방 바뀌었네요.
    뭔가 특별한 계기도 없이 ... 애초에 설정을 바꾸시던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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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블루캣 +2 23.05.11 36 3 13쪽
1 1. 율 23.05.10 4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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