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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님의 서재입니다.

전기세를 내려다 도시의 지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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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활
작품등록일 :
2023.05.10 18:07
최근연재일 :
2023.05.11 23:20
연재수 :
2 회
조회수 :
77
추천수 :
5
글자수 :
10,228

작성
23.05.10 21:03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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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1. 율

DUMMY

전기세를 내려다 도시의 지배자가 되었다.



1. 율



그 생각을 떠올린 건 집의 전기가 끊겼다는 것을 통보받은 직후였다.

<이리스>에서 눈을 뜬지 이제 2주가 지났다.

이 게임 <여신의 이름>은 내가 제작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시나리오를 작성한 작품이다.

기본적인 설정은 민간우주기업인 <미리내>로부터 받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니, 미리내는 자사에서 개발, 추진하고 있는 인공위성을 소재로 한 게임을 제작하고 싶어 했다.

좀 더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던가.

마침 미리내의 대표는 게임회사 <스푼소프트>의 대표작인 <아웃 어스>를 무척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모양이다.

미리내의 대표는 스푼소프트에 자사의 인공위성을 소재로 한 게임의 제작을 요청했고, 충분한 투자와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게 3년 전의 일이었다.

고작 인원이 스무 명 남짓한 중소기업인 우리 입장에서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당시부터 스푼소프트의 시나리오 라이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미리내에서 넘겨준 설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를 토대로 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작업했고, 그 결실을 보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바로 이 상황.

그러니까 자신이 작성하던 게임 시나리오와 똑같은 세계가 현실이 되었음을 2주 전에 깨닫게 되었다는 거다.

지금의 나는 스푼소프트의 시나리오 라이터 임찬수가 아닌, 서기 2112년을 배경으로 한 이 도시, 이리스의 소시민인 중 한명인 <율>이 되어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아무래도 나는 적응이 꽤 빠른 편인 것 같다.

바로 첫날에 나는 이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였고, 둘째 날부터는 먹고 살아갈 방법을 고민했다.

운이 좋게도, 통장 안에는 한 달쯤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율은 내가 직접 설정한 캐릭터였다.

약간의 <능력>을 지니고 있고,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탐정사무소를 운영했다.

율이 지닌 능력은 탐정으로 활동하기에 몹시 적합했는데, 덕분에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인 나라도 그럭저럭 흉내는 낼 수 있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입에 풀칠할 수준은 된다.

현실의 나와 비교해서, 딱히 못할 것도 없다.

게임 시작시점에서는 별다른 비중이 없는 엑스트라였고, 메인 퀘스트에서 율이라는 이름이 언급될 쯤에는 이미 죽어서 고인이 된 인물이다.

쓸데없는 이벤트에 엮인 대가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위험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나는 해당 이벤트에 엮일 생각이 없고, 예상대로 이야기가 진행 된다면 율의 데드플래그야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생존에 대한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

이제 남은 건 의식주인데.

탐정사무소의 일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만화나 드라마, 게임에서나 본 탐정의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이니 되니 좀처럼 쉽지 않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고, 이틀 전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싶었던 통장의 돈이 집세며, 카드 값으로 죄다 빠져나간 것이다.

한순간에 통장의 잔금은 며칠을 버티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간당간당해졌고,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전기가 끊겼다는 통보와 함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메일함에는 벌써 전기세가 석달이나 밀렸다는 고지서가 날아와 있었다. 이번 달에도 납부 하지 않으면 전기가 끊길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2112년이라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문명의 수준은 내가 알던 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2023년, 소행성이 달에 충돌.

반쪽이 될 만큼 부서진 달과, 그 부서진 달의 파편에 의해 대충 망해버린 세계.

그로부터 장장 80여년에 걸쳐 가까스로 복구된 인류 최후의 도시, 이리스.

그게 바로 이 세계의 배경이 된 게임의 설정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확인할 수 있는 부서진 달의 형태는 일러스트레이터인 가영씨가 그린 컨셉 아트와 완전히 똑같다.

충돌의 영향으로 지구와의 거리가 과거의 6배 이상 가까워진 달은, 실제로 보고 있자면 가히 장관이다.


“후.”


이 멋진 풍경 아래에서, 하필 끊긴 전기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니.

이게 맞나 싶다.

게임속 세계에 떨어졌다면 으레 있을 법한 전투나 히로인과의 이벤트, 또는 기상천외한 사건은 여기 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건 차라리 현실보다 더하지.

어쨌건 그렇다.

이 처참한 사태를 앞에 두고, 나는 한 가지를 떠올렸고, 그리고 결심했던 거다.

조금만 치트를 쓰자.

엄밀히 말하자면 치트까지는 아니다.

일종의 클리어 특전.

2회차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된 시스템이자, 또는 엔딩 이후의 세계를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라고 보면 된다.

본래라면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나 얻을 수 있겠지만, 이 세계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나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다.

마구 남용할 생각까지는 없다.

어디까지나 지금의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조금 완화시키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굶어 죽거나, 거지가 되어 나앉는 전개는 너무 비참하다.

최소한,

현실의 내가 갖고 있던 정도는 끌어와도 괜찮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리스에는 총 열두 곳의 리프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3만 6천 미터 상공.

그곳에 있는 정지궤도의 <어떤 인공위성>과 직접적으로 통신할 수 있는 단말기다.

그 중 대부분의 단말기는 스토리를 진행하며 잠금을 해제하고 사용할 수 있으나, 예외적으로 시작부터 쓸 수 있는 단말기도 하나가 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지역이기에 이동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리스는 월미도에서 서울 용산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한, 과거 서울 이상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외곽 지역인 해당 단말기가 있는 장소까지는 거의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두 번을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대기 시간을 포함한 시간이다.

버스에 내려서 또 한참을 걸었다.

아마 1시간 이상을 걸었을 거다.

목적지는 과거 오이도라 불리던 지역의 끄트머리에 있다. 현재의 지명은 엔수스 남부, 7번 외부 도로 주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달의 파편에 의한 대재해는 세계지도가 바뀔 정도의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이곳에는 깎아내린 듯 큰 절벽에 생겨 있었는데, 바로 그 끝에 위치한 등대가 바로 내가 목표한 장소였다.

이 버려진 등대의 지하에, 저 하늘 위 정지궤도에 이르는 리프 네트워크. <초도약통신단말기No.09>가 위치해 있다.

준비해온 빠루를 들고 문을 뜯듯이 열었다.

내부는 아주 오랜 시간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아 쌓인 먼지가 가득했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방치되어있었음이 분명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메마른 모래바다를 앞에 둔 이 절벽위의 등대에, 굳이 찾아올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숨겨져 있었다.

만약 누가 찾아왔어도, 이 텅 빈 등대를 면밀히 조사했던 사람은 없었던 거겠지.

누군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 해당 단말기를 발견했다고 해도 별로 의미는 없다.

이에 접속하기 위한 패스워드가 없다면,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는 깡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마 쓸데없이 커다란 낡은 단말기가 있다고 생각 했을 뿐, 무슨 용도인지조차 알 수 없었을 거다.

기껏해야 등대로서 기능하기 위한 항해 보조 장치쯤으로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 단말기의 기능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등대의 꼭대기에 위치한 안테나를 통해 저 지상으로부터 3만 6천 킬로미터의 정지 궤도에 위치해 있는 인공위성에 접속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접속암호를 알고 있는 건, 적어도 내가 설정한 바에 의하면 이 세계에 아무도 없다.

커넥트 패널을 열고 손바닥을 올렸다.

짜릿한 감각과 함께 단말기의 나노머신이 반응했다.


[입력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혹시나 암호가 틀리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짧은 로딩과 함께 단말기는 무사히 인공위성에 접속했다.

이 게임, <여신의 이름>의 메인 소재중 하나.

민간우주기업 <미리내>가 쏘아올린 인공위성이자, 만능 도우미로 작성된 슈퍼 AI.

달의 파편에 의해 지상이 멸망 한 뒤, 지구의 문명을 복구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연산을 계속하던 AI는 마침내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무너진 인류의 문명을 복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구문명의 유산.

민간우주기업 미리내는 오직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만능 도우미 슈퍼 AI의 이름을 신화 속 여신의 이름을 따 <엘렉트라>라 불렀다.


[리프 네트워크를 통한 클라이언트 접속을 확인.]

[이전 관리자의 접속일로부터 32417일 22시간 39분 27초가 지났습니다.]


인류 최후의 도시, 이리스의 어머니이자 모든 인프라의 권한을 가진 관리, 통제 시스템.


[안녕하세요? 만능 유저 지원 관리 시스템 엘렉트라입니다. 새로운 관리자를 환영합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율.”


나는 대답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 도시의 지배자가 된 경위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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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율 23.05.10 4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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