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무당개구리 님의 서재입니다.

호서虎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무당개구리
작품등록일 :
2020.03.09 23:20
최근연재일 :
2020.03.23 18:4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738
추천수 :
1
글자수 :
75,347

작성
20.03.16 01:44
조회
35
추천
0
글자
10쪽

4장: 무반의 씨족

DUMMY

쥐도령이 겨우 마음을 다 잡고 검을 칼집에 넣을 찰나였다. 우르르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관군이 몰려 왔다. 이런 조그만 고을 관군이라고 해보았자, 지방관이나 향리가 조직한 사병들이 빈약한 무장의 순라병으로 주현군(현에 주둔하는 지방군)에 편입되어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그저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순라꾼들에 불과했다. 양계 쪽의 주진군이라면 정예하였지만 이런 곳의 부대라면 별볼일 없는 오합지졸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잡졸들이라도 숫자가 많으면 혼자서는 맞설 도리가 없었다. 순순히 오라줄을 받고 끌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대장간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한 것도, 무리 중 한 명을 놓친 것도 모두 그의 업보였다.


순순히 오라줄을 받고 끌려가면서 쥐도령은 그를 끌고 가는 무리 사이에서 아까 그가 어깨에 화살을 꽂아 넣은 사내를 보았다. 이죽거리던 사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쓸데없이 자애를 베푼 결과가 이 꼴이었다. 이제 와 오늘의 선택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하나 하나의 잘못이 모여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쥐 도령은 질질 끌려 찬 맨 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그의 보따리와 검, 활은 압수되어 관아에 딸린 창고에 보관되었다. 삿갓도 벗겨져 상투 튼 맨 머리가 드러났다. 관아는 촌 동네 관아답게 초라한 단층 건물이었다. 그를 심문하는 자는 상당히 젊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본래 이런 조그만 고을에는 조정에서도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아 힘 있는 호족 출신이나 마을 양민들이 뽑은 지역의 유지가 공무를 대리하곤 했다.



지금 그를 심문하는 자는 아마 부모를 잘 만나 마을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유지의 아들이리라. 한 눈에 보아도 일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 죄인을 대하는 태도에 원하는 대로 심문을 끌고 가는 여유는 없어 보였다.



“시장 바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게 네놈이냐.”


입을 열었으나 예상했던 대로 소년 티를 벗지 못한 목소리로 죄인을 압도하는 위엄은 없었다.


“그렇습니다.”


“네 칼질에 장정 여섯이 죽었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의 누구이기에 이런 조용한 시골에서 돼지 잡듯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냐.


신분을 밝힐까 말까 하다 쥐도령은 신분을 밝히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와서 밝힌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확인할 길도 없었고 저들이 구태여 그의 신분을 확인해 놓아줄 명분을 만들 이유도 없었다. 쥐도령은 언성을 높이 하여 당당히 본인의 정체를 밝히었다.




“나는 본래 무반의 씨족으로 내 아버지는 응양군의 근장상장군이오. 나의 할아버지는 거란의 침입 당시 양규 장군 700 결사대의 일원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공을 인정 받아 우리 가문은 대대로 2군의 높은 직위를 맡아 왔소. 부랑배들이 감히 내 물건을 빼앗고 내 핏줄과 어미를 능멸하기에 본 때를 보였을 뿐이오.”



쥐도령이 막힘 없이 밝힌 자신의 정체는 좌중을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응양군의 근장상장군이라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무관이었다. 비록 벼슬은 정 3품으로 그 위에 정 1,2품 문관들이 수두룩했지만 나라의 군사력을 한 손에 넣고 통괄하는 근장상장군은 재상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쥐도령의 말이 맞는다면 마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촌부들이 그런 자의 아들을 찬 바닥에 앉히고 국문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을의 시정잡배들이 고관의 자식과 시비를 붙어 피를 보고 그것을 문제 삼아 그를 꽁꽁 묶어 심문하는 것이 모자라서 처형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조정에서 보복할 것이다. 유지의 아들만이 아니라 마을 백성 여럿이 문초를 당하고 마을은 향이나 부곡으로 격하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쥐도령의 말이 맞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였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기에 쥐도령은 허풍을 떠는 거짓말쟁이나 광인이었다.



“닥치거라. 이 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황당무계한 거짓으로 우리를 능멸하러 드는구나.”


“젊은 주인님.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매를 처 옥에 가둔 뒤 내일 끌어내 저자에 효수 하십시오.”


하인과 그에게 딸린 사졸들이 쥐도령을 미친 사람 취급하거나 그들이 촌부라고 황당한 거짓말로 속여 넘기려 한다 하여 괘씸하게 여겼으나 그를 심문하고 있는 호족의 젊은 아들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쥐도령은 여섯 명을 한꺼번에 벤 무예나, 그 당당한 무인다운 기개, 그리고 귀공자다운 기품까지 나라 최고 무장의 자식다운 면모를 지닌 것은 사실이었다.


함부로 목을 베어 효수하거나 했다가, 고을 전체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 행색이 거지꼴이라지만 무슨 바람이 들어 전국을 돌며 무예 수행을 한다든가 누가 알 길이 있겠는가.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젊은 아들이 으레 상황을 모면하던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내일이 오면 근처 마을 혼인 잔치에 갔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그때까지 눈 앞의 살인자를 가두어 두면 아버지가 알아서 처분할 일이었다. 만일 범인이 근장상장군의 자식이 맞는다면, 후환이 적지 않겠지만 그 또한 아버지라면 능히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봐라.”


“예 젊은 주인님.”


“이 자를 끌어내 옥에 가두어라. 처분은 내일 아버지께서 하실 것이다.”


여섯이나 죽인 살인마를 바로 죽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으나 젊은 주인이 아버지에게 일을 떠넘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사졸들은 쥐도령을 일으켰다. 손이 뒤로 묶여서 인지 쥐도령은 순순히 따라왔다. 옥이라 보기에 조잡하게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에 불과했지만, 본래 쌀을 보관하던 장소라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좁은 창이 어른 남자 키 두 배 정도 되는 위치에 나 있을 뿐 문을 닫으면 탈출할 길이 없었다.


사졸들은 쥐도령을 대충 던져 놓은 뒤 문을 닫고 사라졌다. 옥 안에는 짚을 깔아 놓아 의외로 푹신했다. 이런 촌구석에 흉악한 죄인이 흔히 나오는 것은 아니니 평소라면 잡범들에게 이 정도 배려는 못해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고요한 고을에 풍파를 몰고 온 것 같아 쥐도령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지네를 잡은 고래등 같은 대감의 집이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 이 근처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개경과 평양 사이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아마 그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주인과 달리 그의 아버지가 오면 처분이 결정될 것이다.




근장상장군의 아들이란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부자의 연을 끊고 집을 나 온지 만으로 두 해 째 되어가고 있었다. 내일 국문을 하여 어째서 이 나라 최고 무반의 아들이란 자가 이런 거지꼴로 촌구석에서 사람이나 죽이고 있는지 대답하지 못한다면 목이 베일 것이다.


무예 수련을 위한 여행 중에 시비가 붙었다 정도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도 있겠지만 그는 낯빛도 바꾸지 않고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진실을 용감하게 고할 자신은 있었지만 능글맞게 없는 사실을 꾸미는 대는 자신이 없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나 생각하던 그 때였다. 창가에 달빛을 가로막으며 무엇인가 앉아 있었다. 쥐도령은 그가 무언가를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비비었으나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여우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사뿐히 내려왔다.


재주를 넘는가 싶더니 여우는 이내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까 간을 주고 헤어졌던 소녀였다. 소녀는 손바닥을 탁탁 털더니 특유의 활달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리, 다친 데는 없사옵니까?”


“너는 산으로 돌아가라 했거늘 참 말을 안 듣는구나. 내 뒤를 밟았더냐.”


“나리가 걱정되어서 대장간을 나올 때부터 쭉 지켜보았사옵니다.”


“내가 걱정되어서 뒤를 밟았다는 건 무슨 소리냐”


“나리는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은인의 뻔한 곤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사옵니까?”

“내가 저자에서 싸우는 것도 보았을 것 아니더냐. 너는 그런 내가 두렵지 않더냐”


소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이내 원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쥐도령은 그녀가 대담한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소녀 그보다 더한 것도 보았사옵니다. 나리는 정말 무반의 씨족이시옵니까?”


“그렇다.”


“그럼 어쩌다 이런 촌구석에서 그런 부랑배들과 칼을 맞대게 되었나이까?”


“부자 간에 오해가 있어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응양군에 들어가 아버지를 만나면 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다.”


쥐도령은 감출 기색 없이 자세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하였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품 속에서 열쇠 한 뭉치를 꺼냈다.


“소녀, 도술로 옥지기를 재우고 열쇠를 꺼냈나이다. 나리 몸을 묶은 줄을 풀어드리고 바로 여우로 돌아가 광의 문을 밖에서 열 테니 제가 신호하면 나리는 그저 문을 밀기만 하면 되옵니다.”


소녀와 이야기하던 도중 처음으로 쥐도령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믿은 상대에게 덕을 베풀면 나중에 그것이 자신에게도 돌아온다는 부처의 가르침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잠시 주저하던 소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리 외람되지만 소녀가 나리를 구해드리는 대신 소녀의 부탁을 한번만 들어 주시면 안 되겠사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호서虎鼠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공지 20.03.20 52 0 -
17 5장: 여우와 쥐(완결) 20.03.23 44 0 1쪽
16 5장: 여우와 쥐 20.03.18 33 0 7쪽
15 5장: 여우와 쥐 20.03.18 29 0 19쪽
14 외전 소녀의 하루 20.03.17 32 0 9쪽
13 외전 쥐도령은 평소에 무엇을 먹을까? 20.03.17 35 0 7쪽
» 4장: 무반의 씨족 20.03.16 36 0 10쪽
11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6 0 10쪽
10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3 0 9쪽
9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6 0 10쪽
8 3장: 여우굴 20.03.14 41 0 8쪽
7 3장: 여우굴 20.03.12 39 0 9쪽
6 3장: 여우굴 20.03.11 46 0 7쪽
5 2장 : 어둑시니 20.03.10 46 1 14쪽
4 2장 : 어둑시니 20.03.10 48 0 9쪽
3 1장: 오래 묵은 것 20.03.10 50 0 14쪽
2 1장: 오래 묵은 것 20.03.10 50 0 9쪽
1 1장: 오래 묵은 것 +2 20.03.09 100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