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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 님의 서재입니다.

호서虎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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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무당개구리
작품등록일 :
2020.03.09 23:20
최근연재일 :
2020.03.23 18:45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739
추천수 :
1
글자수 :
75,347

작성
20.03.15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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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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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장: 무반의 씨족

DUMMY

어찌나 빨리 산을 내려왔는지 아직 미시(13:30~15:30)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물이 훤히 비쳐 보이는 지금이라면 내를 건널 수 있었다. 쥐도령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주저없이 내에 뛰어들었다. 물은 얼음장처럼 찼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건넌다면 견딜 만 했다.


문제는 소녀였다. 그녀는 치맛단을 걷어 올리는 듯 했다 도로 내리며 쉽사리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애꿎은 쥐도령의 발만 물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쥐도령은 애써 짜증을 억누르며 안절부절 하고 있는 매구를 돌아보았다.


“무얼 하느냐? 어서 뛰어들지 않고.”


“나리 물이 너무 차서···”


“당당하던 기세는 어디 가고 고작 추위 앞에 그러느냐? 따라 오지 않는다면 버리고 가겠다.”


아마 그를 치고 도망간 두 괴한은 이 마을에 묵고 있거나. 거쳐 갔을 것이다. 한 시가 급했다. 괴한들은 내를 건넜고 마을에 들어가 온갖 냄새와 뒤섞였을 테니 더 이상 소녀가 그들을 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입장에서 약조한 것만 아니었더라면 버리고 가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장부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옵니까? 보잘것없는 소녀를 상대로 너무하옵니다.”


역시 소녀는 그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요물이라 하나 겉모습은 소녀인 여우를 상대로 능력을 이용해 먹고 입을 싹 씻은 다음 버리는 것은 쥐도령이 지켜오고자 한 도의와 어긋나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미물을 상대로 할지 언정 장부라면 약조한 바를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소녀를 재촉해 물에 뛰어들게 할 수도 없었다. 본인의 주장대로 그 연령의 갓 성인이 된 여자라면 재촉한다고 꺼리는 것을 악물고 할 것 같지 않았다.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남은 방안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업히거라.”


소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지금까지 봐온 사내라면 본인이 끈질기게 쫓는 목적을 위해 남을 얼마든지 이용할 사람 같았고, 사람 아니며 사람을 해코지 하는 것에 깊은 증오를 품어 그녀 같은 매구라면 약조 따윈 내팽개칠 위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등을 내보인 사내에게서 짜증이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속으로 어찌 생각할지 알 수 없어도 분명 지금은 본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녀를 배려하고 있었다. 업힐까 말까 지체하던 소녀는 그의 발이 물에서 덜덜 떨리는 것을 보고 등에 사뿐히 업히고 말았다.


사내의 등은 보기보다 좁았으나 단단했다. 옷이 가로막고 있었으나 오랜 역경으로 단련된 몸이 느껴졌다. 말 만한 처녀를 등에 업었으니 휘청휘청할 법도 했으나 쥐도령은 미동도 없었다. 표정 역시 전처럼 변하지 않고 과묵했다. 목덜미와 얼굴은 먼지로 지저분했으나 특유의 반짝이는 눈빛은 등에 업힌 상태에서도 보이는 듯 했다.


낯선 외간 남자에게 업히는 것은 소녀로서는 처음이었다. 벼슬 하는 집안의 규수들처럼 혼인 전까지 남자 그림자도 못 보고 산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매구가 된 이후로 이렇게 가깝게 얽힌 적은 없었다. 가만히 업혀 내를 건너고 있으니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전까지 그녀의 오라비가 이렇게 소녀를 업고 내를 건너고 했다.


쥐도령은 소녀처럼 긴장하지 않았으나 그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소녀를 업으며 겸사겸사 그녀의 정체를 확인할 기회라 생각했다. 본래 물이나 거울에 비치면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라도 본래의 모습이 비쳐 보이는 법이다. 만일 죽어 여우가 된 망령이라면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물에 비치는 소녀의 모습은 수줍어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를 상대로 당당한 것을 넘어 뻔뻔한 태도를 보였던 그녀였지만 말에는 거짓임 없었던 셈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에게도 기구한 사연이 존재함은 확실했다. 그는 처음으로 동병상련에서 나온 것일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정심을 느꼈다.





내를 건넌 것은 금방이었다. 쥐도령은 능숙하게 물살이 빠르고 깊은 곳을 피하며 신속하게 건너편에 다다랐다. 그가 허리를 굽혀 내리기 전에 소녀가 먼저 풀쩍 등에서 내려왔다. 어쩔 수 없는 말괄량이라 생각하며 쥐도령은 보따리에서 새 버선과 짚신을 꺼내 신었다. 이제 짚신도 얼마 남지 않아 마을에서 새로 사 놓아야 했다. 그가 발을 바짓단으로 대충 닦고 짚신을 신고 있으니 소녀는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기세 좋게 앞장서던 소녀는 입구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100년은 더 넘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켕기는 것은 없었으나 마을의 수호신 앞에서 소름이 쭉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몇 달 전에 다른 마을에서 입구로 당당히 들어오다 나무로 된 입을 벌려 잡아먹으려 드는 장승에게 된통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잡귀나 역병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장승은 그 역할을 다해 요 근래에는 역병이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산 사람이야 그냥 보내주었지만 지금 매구가 된 그녀를 들여 보내줄지 알 수 없었다.


비단 장승만이 아니라 마을의 터주신 역시 그녀를 그대로 들여보내 줄 지 알 수 없었다. 게으르거나 마음씨가 곱길 바랐지만 까다로운 터주신이라면 사정 따윈 관심 없이 일단 매구인 그녀를 내쫓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간만의 인가 행차로 들떴던 소녀의 마음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쥐도령이 다가와 옆에 섰다. 사실 그도 신나게 앞서 나가던 소녀가 왜 발길을 장승 앞에서 멈췄는지 알고 있었다. 쥐도령은 나지막하지만 깊은 목소리로 그녀의 불안을 풀어 주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바싹 붙어 따라오너라.”


그에겐 영검이 칠성검이 있었다. 어지간한 신장(장군신)도 그런 검을 소유한 그에게 공연한 시비를 거는 일이 없었다. 칠성검을 지닌 그의 일행이라면 마을의 수호신도 눈 감아 줄 것이다. 입구를 바짝 붙어 통과한 이후에는 그와 떨어져도 별일 없을 터였다.


소녀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그의 옆에 붙어 섰다. 그의 말처럼 입구를 통과해 마을에 들어설 때도 장승은 움직이지 않았다. 집 몇 채를 지나쳐 한참을 걸어도 마을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소, 돼지를 잡는 양수척(흔히 말하는 천인)을 찾아야겠군.”


아마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고기를 잡아 파는 천인 무리가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청자잔과 함께 매구에게 약속한 간도 얻고 이 마을을 거쳐간 수상쩍은 이방인이 있는지 소식도 물을 작정이었다. 본래 마을 토박이가 아닌 이방인인 양수척들은 마을의 은밀한 소문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천인이더라도 예를 갖추어 대하면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다리 밑에서 고기를 팔고 갈대를 엮어 옷가지를 만드는 양수척들이 보였다. 흔히 마을 원주민들이 터를 잡지 않는 이런 장소에 대충 움집을 지어 천한 일을 도맡아 겨울을 나다 봄이 오면 다른 마을로 홀연히 떠나곤 하는 이들이었다. 여름이라면 오수가 모여 악취가 진동하곤 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심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쥐도령이 당당한 걸음으로 이들의 움집이 옹기종기 모인 한가운데 들어서자 천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래 위로 백의를 입은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누런 장의를 두른 그와 여인인 소녀는 눈에 확연이 띄었다. 쥐도령의 외양은 걸인의 그것이었으나 행동거지는 기품 있었기 때문인지 흥미로운, 또는 경계하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눈 앞 손님의 신분에 따라 그들의 행동거지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쥐도령처럼 양민인지 천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객이 대하기 까다롭기도 했다. 쥐도령도 상대의 곤란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 쪽에서 고기의 주인인 듯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초로의 사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고기를 사러 왔소이다.”


힘이 실려 있었지만 정중한 말투였다. 아마 어느 벼슬아치 집의 심부름꾼이리라, 막 고기를 도축하고 늘어놓은 참이었던 사내는 생각했다.


“어느 분 상에 올릴 용으로 어떤 부위를 원하십니까?”


“상에 올릴 물건은 아니오. 내장을 주시오. 낚시나 미끼 용으로 내가 쓰려고 하오만.”


사내에겐 생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으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짐승을 잡는 사냥꾼들이 미끼를 구해가고는 했으니까. 손님 본인이 사냥꾼 같지는 않으니 어느 벼슬아치 집안에서 심부름을 나온 터였다.


“창자로 하시겠습니까? 간으로 하시겠습니까?”


“간으로 주시오. 아 그리고 어제나 오늘 들린 외지인이 없었소? 내게 볼일이 있는 사람 둘이 이 마을에 들렸을 터인데.”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 명은 키가 작고 다른 한 명은 매우 키가 큽디다. 아마 키가 작은 쪽이 지팡이를 짚고 다닐 텐데.”


“그 사람들이라면 어제 어염집에서 하루를 묵고 저녁 먹기 전에 대장간을 들린다 했습니다만..”


쥐도령의 가슴이 뛰었다. 예측했던 것보단 너무 쉽게 괴한들은 그에게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대장간에 그들보다 먼저 들러 화살과 칼을 산 다음 머리를 베고 시체에 화살을 꽃아 넣으리라. 속으로 이를 갈며 다짐한 그는 고기를 판 양수척 사내에게 청자잔으로 값을 치렀다.


쥐도령의 속을 알 길 없이 보잘것없는 저질의 내장과 귀한 청자를 맞바꾼 양수척 사내는 그가 생각했던 대로 높은 벼슬아치의 심부름꾼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쥐도령이 그를 뒤로 한 채 더러운 천쪼가리에 대충 싸인 고기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리 밑을 나서자 소녀가 종종 걸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소녀는 간을 맛 볼 기대감과 험상궂은 천인 무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에 쥐도령이 단단한 주먹을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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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리메이크 공지 20.03.20 52 0 -
17 5장: 여우와 쥐(완결) 20.03.23 44 0 1쪽
16 5장: 여우와 쥐 20.03.18 33 0 7쪽
15 5장: 여우와 쥐 20.03.18 29 0 19쪽
14 외전 소녀의 하루 20.03.17 32 0 9쪽
13 외전 쥐도령은 평소에 무엇을 먹을까? 20.03.17 35 0 7쪽
12 4장: 무반의 씨족 20.03.16 36 0 10쪽
11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6 0 10쪽
10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3 0 9쪽
» 4장: 무반의 씨족 20.03.15 37 0 10쪽
8 3장: 여우굴 20.03.14 41 0 8쪽
7 3장: 여우굴 20.03.12 39 0 9쪽
6 3장: 여우굴 20.03.11 46 0 7쪽
5 2장 : 어둑시니 20.03.10 46 1 14쪽
4 2장 : 어둑시니 20.03.10 48 0 9쪽
3 1장: 오래 묵은 것 20.03.10 50 0 14쪽
2 1장: 오래 묵은 것 20.03.10 50 0 9쪽
1 1장: 오래 묵은 것 +2 20.03.09 10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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