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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X 님의 서재입니다.

신들의 왕 :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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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X
작품등록일 :
2015.03.17 21:14
최근연재일 :
2015.03.20 22:05
연재수 :
2 회
조회수 :
332
추천수 :
15
글자수 :
9,787

작성
15.03.17 21:17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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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0쪽

왕으로부터의 면접은 합격

DUMMY

오후 9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사무실 한쪽에 걸린 시계는 정확하게 정각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로소 숨을 돌리고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뺀다. 사실 시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으아, 피곤하다.”


적막 속에서 힐끔, 정중앙에 놓인 자리를 살펴보자면 성격도 참 지랄 맞은 양 부장의 자리가 쏙 비어있다. 시선을 옮겨서 차근차근 나보다 위쪽에 있다고 하는 가시적인 인간들의 자리를 확인했다. 조금 전 퇴근한 박 대리를 마지막으로 모든 자리가 비어있었다.


인턴주제에,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 모두들 나를 한낱 인턴 취급하면서도 내가 가진 열정만큼은 어떻게든 이용하려 들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는. 그 이용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박 대리는 저가 맡은 불합리한 업무에 나를 이용했고 덕분에 나는 이 시간까지 사무실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쪼그려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한낱 인턴일 뿐이기에 같은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는 권한조차 없다.


이게 바로 스물아홉 먹은 늙은 인턴 사원이 가진 숙명이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 올라서 드디어 카톡을 확인해본다. 점심시간 이후로 처음이다. 내가 미숙하기 때문인지, 이 조그마한 회사가 유독 지랄 맞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특별한 매리트는 없어도 급여 사정이 좋고 회사의 보장된 안정성에 다들 그 무언의 법칙을 따르는 모양이었다.


- 명절 대목이라 물량이 많아서 그러는데 퇴근길에 지연이 좀 부탁한다.


소리 없이 뜨는 형의 카톡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카톡이 온 것은 다섯 시 무렵이었다. 지금은 아홉시 팔분. 나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서자마자 그대로 튀어 나갔다.


형이 하는 택배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내가 학생이었고 겨우 알바로 내 갈 길에나 풀칠하고 있는 사이에도 형은 아픈 엄마와 어린 지연이까지 책임지고 있었으니까. 새삼 죄책감을 갖자는 건 아니지만 형은 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형의 딸, 조카 지연이는 형만큼은 대단한 아이였다. 불우한 환경이 두 사람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어디에도 없는 멋진 부녀다.


하여간 지연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공립으로 보통 여섯 시까지다. 늦어도 한참은 늦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이를 덜렁 혼자 두진 않았겠지만 이게 벌써 한 두 번의 일이 아니었으니 되도록 빨리 조카를 데려와야만 했다. 게다가 그 어린애는 겨우 일곱 살이었지만 진작 커버려서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할 줄 알았다.


촉박한 생각에 서둘러 걸음을 옮겨보지만 운동 부족의 몸은 금세 지쳐온다. 회사와 걸어서 겨우 십오 분 거리에 있는 유치원이 오늘만큼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턱턱 차오르는 숨은 둘째로 하고 가슴께가 찡-하고 쑤셔온다.


“헉, 헉, 헉”


빨간 불 앞에서야 내 걸음이 멈췄다. 이 큰 길만 건너면 유치원은 금방이다. 초조하게 빨간 불을 살피면서 호흡을 가다듬어 보지만 목 안쪽이 쓰라리다. 마른 침이 고였다. 빨리 바뀌어라. 빨리.


파란불.


나는 그 신호를 보자마자 최대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생각해보니 나는 고등학생 때도 빠른 편은 아니었다. 차라리 느린 쪽이었지. 그럼 지금 남들이 나를 보면 굉장히 우습겠구나 싶다. 그때였다.


[빠아아아아앙-]


그 소리가 나를 향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클락션에 고개를 돌렸고, 거짓말처럼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남들은 죽는 순간이 되면 주마등처럼 인생이 스쳐간다는데, 내 머리 속에는 단 하나의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빌어먹을.


이렇게 죽는구나.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느꼈다. 팔을 감싸고 있는 기계가 서서히 압박을 해오고 있었다. 낯설고 규칙적인 기계음은 차분하게 들려왔다. 무슨 상황일까.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상아색의 천장이 처음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코 밑에 붙어있는 호스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숨을 크게 들여 마셔본다.


“정신이 드나?”


목소리는 옆에서 들렸다. 뻣뻣한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해보지만 전혀 초면인 사람이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모습이 직장인다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근육질의 몸이라든지 다소 거칠게 보이는 강한 인상의 얼굴이라든지, 평범한 회사원은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간절했지?”


그 분위기만큼이나 중후한 목소리가 물었다. 아무래도 나를 향한 질문인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아직 영문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왜 나는 병실에 누워있으며, 저 중년의 남자는 누구인가.


“자네가 누워있는 동안 인생을 살펴봤어. 그다지 좋은 삶도 아니었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더군.”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평생을 투병 중인 어머니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나와 형의 유년은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거나 재수가 좋았던 편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죽는 게 나을 정도로 힘들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본능적인 공포나 남겨질 현실이 아니었다면 실행했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었다. 나약하다고 해도 좋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간절했나.”


질문이었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편이겠지.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를 내려 본다. 그는 기어코 내 대답을 들을 심산이었다.


“당신은…”


결국 입을 달싹여본다. 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오는데 새삼 내 목소리가 새롭게 느껴졌다. 혀뿌리에 고이는 침을 삼켜내고는 말이 이었다.


“누굽니까.”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를 보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생소한 눈길이었다.


“질문은 내가 먼저였지.”


애써서 뱉어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렇지만 나는 몸에 베인 습관 때문인지 별다른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얼마든지 기다려줄 것처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수한 호기심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저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가 보이는 태도나 연령, 차림새로 짐작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였지만 사실 누구를 가르친다는 의미의 선생은 되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험악한 표정을 더욱 드러내며 고개를 젓는다.


“자네는 죽었다.”


이제 죽이겠다는 소리의 협박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가 죽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내가 진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던 덤프트럭까지도 떠올랐다. 그래,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죽었을 게 확실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


“그렇다면 이곳은 저승이군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담담해졌다. 따지고 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인생이다. 그저 지연이가 부디 잘 돌아갔기를 바랐다. 나중에 커서라도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괜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달관한 사람마냥 평온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게 웃겼는지 남자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비웃는다는 느낌이 강한 웃음이다.


“아니, 자네는 살아있네.”


놀랍게도 말이지.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살아있다니? 나도 누워있는 자세가 불편해져서 몸을 일으켜봤다. 얼마나 아파서 병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통증도 없이 몸이 움직인다.


“내가 계획했고, 바라는 바대로라면 자네는 그때 죽었어야 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살아버렸지.”


이제는 비슷해진 눈높이에서 그를 마주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존재감이 강한 남자였다. 겨우 서른 해 남짓을 살아온 인생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에 이 남자보다 더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사람이 내 죽음을 바랐다니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묻는 거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해서 다시 살아난 건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었다. 죽은 사고도 겨우 기억해낸 나에게 왜 살아났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이쪽에서 되묻고 싶었다. 평소에도 운이나 좋았으면 모를까.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 덤프트럭에 정면으로 치인다면 거의 백퍼센트의 확률로 즉사가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치였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니.


하-. 이젠 어쩔 수 없는 건가. 남자가 탄식하듯 한숨을 뱉어냈다. 그의 나이는 40대 후반 이상으로 보였는데 어떤 남자라도 이상적으로 여길 중년의 모습이었다. 얼굴이나 분위기가 그가 살아온 거친 인생을 대변했고, 그런 야성적인 모습으로 잘빠진 양복을 걸치고 있으려니 현명하기까지 해보였다.


“잘 부탁하네.”


남자가 투박한 손을 건넸다. 뭉툭한 손에는 잔상처가 많았지만 내가 신경써야할 부분은 그가 건넨 인사였다. 잘 부탁한다니. 얼결에 그 손을 맞잡았지만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앞으로 자네와 함께 지내게 될 거 같군. 이태백이라고 하네.”

“아, 네.”


함께 지낸다는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우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는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입을 움직인다. 때로는,


“영물(靈物)을 다스리는 사방신이자 위대하신 현무왕이라고도 불리지.”


이태백 씨와의 첫만남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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