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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SeaL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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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캣
작품등록일 :
2020.12.15 22:03
최근연재일 :
2020.12.20 23:35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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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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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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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chapter 1. 형이······ 아니,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DUMMY

intro.

다들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답답한 인생 속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그것만큼 매력적인 것도 드무니까.

그런데 말이야.



“테르티오님! 깨어나셨습니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는데.

진짜로.



용사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chapter 1. 형이······ 아니,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1.

“테르티오님, 아침입니다.”



뿌연 꿈을 뚫고 무언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시했다.



“테르티오님, 아침입니다.”



계속 들려오지만 더 열심히 무시했다.



“테르티오니이임!”

“아, 왜······.”

“일어나시라고요! 벌써 두 시간 째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이불 밖은 위험하대. 이불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했어.”

“도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습니까?”

“넌 모르는 누군가가.”

“하아······.”



눈앞에 서있는 나의 가신, 세바스찬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테르티오님, 요즘 사교계에서 테르티오님 보고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하는데?”

“나무늘보랍니다, 나무늘보! 그 느림보 게으름뱅이 나무늘보요!”

“어, 그거 괜찮은데? 귀엽잖아.”

“후우······.”



가신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을 목소리로 한숨을 푹 내쉬는 세바스찬.



“왜 그래? 한숨 너무 쉬면 오래 못 산다더라.”

“그 수명이 줄어드는 게 누구 때문인데요? 예?”

“와, 내 가신이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그럼 주인답게 행동하시던 가요! 가신이 이렇게까지 말해야하는 이유 좀 생각해보십시오!”

“됐네요. 난 오늘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하도록 해.”

“그러시던가요. 앞으로 30분 후에 마님이 오신다는 건 알고 계시죠?”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뒹굴 거리던 내가 로켓이 쏘아지듯 이불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제 말하긴요, 두 시간 전부터 깨우면서 말씀드렸는데.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세바스찬이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옷을 내민다.



“머리를 다듬어드릴 테니 빨리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주세요.”

“알았어!”



세바스찬이 준 옷을 허겁지겁 입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5분.



“끝났습니다.”



5분 만에 나의 머리는 귀족 살롱가에서 다듬은 것처럼 완벽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넌 정말 천재인 것 같아.”

“천재라뇨, 과찬이십니다.”



세바스찬이 싱긋 웃었다.



“모시는 분이 게으르시다보니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더군요. 이게 다 주인님 덕분입니다.”

“······.”



이놈의 성격······ 분명 한 7년 전만 해도 말수도 적고, 내 말에는 예예 하던 녀석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다 주인님 덕분이죠.”

“어? 뭐야, 너 내 마음 어떻게 읽었냐?"

“마치 예전에 말 잘 듣던 놈이 왜 이렇게 됐을까 하던 표정이셨으니까요.”

“······.”



내 표정이 그렇게 구체적이었냐?

그건 또 처음 알았네.




2.

테르티오 데 마케아론.

<레바테인 전기>에 등장하는 제국 3대 공작가인 마케아론 공작가의 삼남.

문과적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뇌섹남 장남과 무력적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짐승남 차남에 비해, 완벽한 실패작 취급받는 게으름뱅이.

사교계에서의 별명은 ‘나무늘보’.

아, 뜬금없이 테르티오 데 마케아론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이유가 뭐냐고?

왜긴.



“테르티오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 ‘테르티오 데 마케아론’이 바로 나니까 그렇지.



“응, 좋은 아침이야, 알프레도.어머니는?”

“막 도착하셔서 응접실로 안내해드렸습니다.”

“알았어.”



복도에서 마주친 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뚜벅뚜벅 익숙한 복도를 걸어갔다. 문득 창밖을 보니, 어느새 봄꽃이 펴있었다.



‘벌써 봄이네.’



시간 참 빠르다. 얼마 전만 해도 살이 에일 듯 추웠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전생했을 때도 이 즈음이었지.’



7년 전 이 즈음이었다. 겨울에서 막 봄으로 넘어가려던 즈음. 약간 서늘하면서도, 따뜻하던 즈음.



‘하아, 그 땐 진짜 놀랐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 낯선 방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꿈인 줄 알고 온갖 현실도피를 다 했지만 결국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그 이후, 지난 7년 동안 ‘테르티오’로 살아왔다.



‘그래도 테르티오로 전생해서 다행이지······.’



왜냐고?

내가 주인공이나 핵심 인물로 전생했으면 강해지기 위해 뼈빠지게 수련하거나, 혹은 목숨의 위협을 겪어가며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을 걸?



‘하지만 나는 엑스트라지.’



즉, 나랑 메인 스토리는 아예 연관조차 없다는 것!

게다가 삼남이라고는 해도 공작가다, 공작가.

금수저를 넘어 킹아다만티움핵비브라늄수저급은 되는 것이지!

결론적으로, 세계멸망의 위기는 용사님이 다 해주실 거고, 돈도 걱정 없고, 힘든 일도 형님들에게 맡기면서 편-안하게 꿀 빨면서 지내면 된단 거지.



‘뭐? 평판~?’



나무늘보든 뭐든 뭔 상관이야~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지.

아, 물론.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



이 상황만 좀 넘긴다면 말이야.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응접실에서 만난 나의 어머니이자 마케아론 공작가의 안주인, 마르가리타 데 마케아론 공작부인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나의 인사에도 답하지 않은 채, 찬찬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는 대대장 앞에서 사열 받는 병사가 된 기분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오늘은 제대로 입은 것 같구나.”

“아, 아하하······ 예. 신경 썼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약간이라도 흠이 있었으면 얼마나 갈구셨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앉거라.”



그녀가 의자에 손짓하고, 내가 냉큼 앉았다. 그녀가 우아하게 내 맞은 편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들었다.



“그래,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세바스찬이 가져온 차를 우아하게 마신 어머니가 나에게 묻는다.



“그, 아직 제가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요.”

“음? 연락이 안 갔나 보구나.”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비르엘 남작이 주최하는 경매에 다녀오도록 하거라.”

“비르엘 남작이요?”

“그래.”



나는 머리를 굴리며 비르엘 남작이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비르엘 남작.

평민 출신이지만, 사교계 내에서 귀한 물품의 경매로 인지도를 쌓고 남작 직위까지 받은 인물.

그리고 우리 마케아론 공작가와 정치적으로 같은 파벌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와 주기적으로 라인을 만들려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남인 내가 간다는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제가 가도 되는 겁니까?”

“다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



장남도, 차남도 아닌 삼남인 내가 그 경매에 간다는 것.

그것은 공작가가 공식적으로 남작을 홀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아, 또 이런 일을······.”



아무리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 나라지만, 그래도 싫은 소리 듣는 게 싫은 건 당연한 거다. 어머님께 약간의 볼멘 소리 좀 하려던 순간, 나는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사교계에 재미있는 소문이 돌더구나.”



응접실의 온도가 -30도는 떨어진 기분이었다. 냉기가 피어오른다.



“어느 공작가의 삼남이, 공공연히 나무늘보라고 불린다는 소문이었는데.”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 그게······.”

“왜, 혹시 아는 게 있느냐?”

“어······.”



어머니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지만, 나는 그 미소를 보며 떨 수밖에 없었다.

저 미소가 결코 좋은 상황에서 나오는 미소가 아니란 걸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물론 평판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단다.”

“······.”

“하지만, 마케아론 공작가의 안주인으로서······ 삼남이 나무늘보로 불린다면,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니?”

“그······ 어······ 그럼요, 절대 나무늘보로 불려선 안 되겠죠.”

“그렇지? 알아서 잘 할 것이라 믿겠다.”

“네, 알겠습니다.”



에휴, 젠장.

말단이 다 그렇지 뭐.




3

“테르티오 도련님! 어서 오십시오!”



비르엘 남작의 경매는 비르엘 남작의 대궐 같은 저택에서 이루어졌다.



“잘 지내셨습니까, 남작님.”



왕만두가 걸어다니는 것 같은 비주얼을 자랑하는 비르엘 남작의 인사에 나도 최대한 만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이 승냥이 같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응? 왜 승냥이 같은 인간이냐고?



“모습을 보기 어려운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주최하는 경매를 꼭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초대장을 보내셨으니 온 건데요, 뭐.”

“하하, 그것도 그렇지요. 제가 이만큼 대접받은 것 같아 기쁩니다.”



이런 식이니까. 겉으로는 기쁘다는 척 정중하지만 속으로는 가시가 돋쳐있는 말이다.

장남이나 차남이 안 오고, 고작 삼남인 내가 왔으니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다.



“대접받을 만큼의 행동을 했으니 대접받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



돌려 말하지도 않은 나의 돌직구에 비르엘 남작의 눈이 날카롭게 세워진다. 하지만 곧 눈가의 힘을 풀고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다른 손님들을 마중하러 이만······ 경매를 재미있게 즐겨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뭐 씹은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남작을 보며 나는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다.

물론 겉으로는 공작가 삼남이라는 입장 때문에 웃을 수는 없지만.



“테르티오니임······.”

“응?”

“남의 연회에 와서 주최자를 화나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어차피 내 평판은 여기서 더 떨어질 일도 없잖아. 게다가, 가문 입장에서도 이 정도는 상관없을 걸?”



애초에 나는 삼남. 상대를 홀대한다는 걸 명백히 보여주는 포지션이다. 이 정도는 해도 상관없다는 말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면 됐지 뭐. 아, 케이크 먹을래?”

“아뇨······.”

“싫음 말구.”



한숨을 내쉬는 세바스찬을 뒤로 하고, 적당히 가문의 품격을 지키는 선에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 한 조각을, 냠!



‘와, 겁나 맛있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연회장에서 이런 거라도 있어야지!

챙챙챙

홀의 가장자리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종소리. 보통 사교계에서 주목을 끌기 위한 소리였다. 웅성거리던 사교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오늘 비르엘 남작님의 경매에 찾아와주신 많은 신사숙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짝짝짝

마법이 걸린 확성기로 목소리를 증폭시킨 말쑥한 차림새의 사회자가 외침에 참가한 귀족들이 박수를 치고, 나도 시큰둥한 태도로 성의 없이 따라 쳤다.



[오늘의 경매물품은······.]



앞에서 사회자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신나게 말을 이어갔지만, 나는 전혀 듣지 않은 채 오로지 맛나 보이는 케이크에 집중했다.



“도련님, 제발 집중 좀 해주십시오.”



나의 태도를 보다 못한 세바스찬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왜? 나 집중하고 있잖아.”

"어디가 집중하신 모습입니까.”

"케이크.”

“하아, 정말······.”



세바스찬이 다른 귀족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격식 있는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땅 꺼지겠다, 임마.



“아니, 왜? 내가 경매 참가할 것도 아닌데.”

“그래도 보이는 모습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알았어, 알았어. 보는 척이라도 하란 거지?”



세바스찬이 도끼눈을 떴다.



“다 아시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당연하지.”



그리고 케이크 하나를 더 집어 입에 넣었다.

냠. 맛있긴 진짜 맛있네.



“자꾸 그러시면 마님께 보고할 겁니다.”

“뭐? 왜!”

“마님께서 이런 태도들을 보일 때마다 보고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이런 태도가 어떤 태도인데?”

“지금 하시는 태도요.”

“젠장. 알았다, 알았어. "



나는 투덜거리며 들어 올렸던 케이크 한 조각을 내려놓고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

영혼 없는 박수와 함께 경매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유려한 자태를 뽐내는 은빛 도신을 가진 검이었다.



[첫 경매는 먼 북쪽왕국에서 온 명검입니다! 요즘처럼 마수가 날뛰는 때에 본인의 기사에게 수여하기 좋은······.]

“그러고 보니, 요즘 마수가 늘었다고 하던가?”

“예.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바스찬이 의문을 가진 채 말꼬리를 흐렸지만, 나는 어느 정도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제 슬슬 원작에 돌입할 시점인가?’



마왕의 봉인이 약해지는 시점. 약 400년 전, 전대 용사가 어마어마한 희생을 내며 마왕을 봉인했지만 그 봉인은 나날이 약해지고 있었다.

마왕의 힘이 강대해지면 덩달아 마수의 힘도 강해진다. 그러니 마수가 늘어날 수밖에.



‘그러고 보니 이틀만 지나면 ‘성 미카엘의 축일’이니까······ 그 때 신탁이 떨어지겠네.’



용사가 나타났음을 내리는 신탁은 봄을 맞이하는 3월 1일, 최초의 용사였던 ‘성 미카엘의 축일’에 내려진다.

그건 앞으로 사흘 후.

즉, 사흘 후면 본격적으로 메인 스토리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뭐,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메인 스토리랑 상관없는 엑스트라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마왕과 용사라는 고래가 싸우는데 나 같은 새우가 끼어들면 내 등만 펑펑 터져나갈 걸?



‘역으로 말하면 끼어들지 않으면 내 등도 멀쩡하다는 거지.’



즉, 편안하게 팝콘과 콜라만 준비하면 된다는 거지!



‘용사님이 다 해주실 거야!’



난 꿀만 빨면 된다!



[자, 물건은 이것으로 끝! 이제부터는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 노예경매로 넘어가겠습니다!]



어느새 경매는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사회자의 신명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귀족들 사이에서 오오, 하는 감탄성이 흘러나온다.



[자, 이번에는 북방 마이아라 숲에서 온 사스키족 여성입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여우귀를 가진 여성이 거칠게 끌려온다.

여우귀를 꼿꼿이 세운 그녀가 계속해서 몸을 비틀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쇠사슬에 묶인 그녀는 어떠한 힘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자, 보시는 바와 같이 상태도 팔팔하기 그지없습니다! 밤일로 쓰셔도 좋고, 노동력으로 쓰셔도 좋은 노예! 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백!”

“이백!”

[이백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은······.]

“······.”



신나게 소리치는 사회자와 신난 관중들.

그런 그들을, 나는 나른하게 기댄 채로 바라보았다.

제국에서 인신매매는 금지다.

하지만, 이종족은 인간이 아니다.

그 때문에 당당하게 인신매매가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종족’이라 해도 분명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니까.



‘젠장, 이래서 이런데는 오기 싫었는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생의 기억이 있으니 이런걸 보는 게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작 공작가 삼남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침묵하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가문인 마케아론 가문도 이런 노예경매에 반대한다는 것 정도.



‘뭐, 왈가왈부해봐야 비겁한 변명이겠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외면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



‘세상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까.’



좋든 싫든 공식적인 자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어느새 경매는 막바지도 치달아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소개할 물건은 뿔을 잘라낸 레바테인입니다!]

‘레바테인?’



무대 위로 쇠사슬에 묶인 은발의 여자아이가 힘없이 끌려와 무대에 선다.



“저게 그 레바테인인가?”

“저게 그······.”



주변에서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레바테인.

보통 하얀 백발에 붉은 눈을 가진 종족. 그리고 마치 산양처럼 긴 뿔이 나있는 종족.

하지만 레바테인은 유명한 이유는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레바테인들은 이종족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죠!]



‘타고난 전사’라 불릴 정도로 타고난 전투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상당한 마력을 보유하는데다가, 본능적으로 그 마력을 이용하여 신체까지 강화한다.

별다른 수련이 없어도 개개인이 강력한 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족이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레바테인은 아름다운 외모도 가지고 있지요! 자, 외모를 보시죠!]



사회자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던 아이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렸다. 그러자 귀족들 사이에서 오오, 하고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안전을 위해 마력의 핵이 되는 뿔을 잘라냈고, 또 그래도 남는 마력은 마력 구속구로 알맞게 봉인해놨습니다! 검투용으로 사신다면 나중에 자라날 뿔을 자르지 않으시면 되겠지요!]



사회자가 뿔과 구속구를 연달아 가리킨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보통 붉은 눈을 가진 레바테인 종족 안에서 특이하게도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희귀품입니다! 아마 이 레바테인 때문에 이 경매에 오신 분들도 많으시겠죠!]



하하하하하······.

해설자의 너스레에 가벼운 웃음이 귀족들 사이에 오간다.



‘보라색 눈동자?’



그러고 보니, <레바테인 전기>의 주인공이었던 용사도 레바테인 종족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졌던 거로 기억한다.

신기하네. 그렇게 드문 건 아니었나?



[그럼, 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백!”

“이백!”

“삼백!”



아니, 잠깐만······ 분명 소설 내에서는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게 보라색 눈동자라고 했었는데?



“사백!”

“오백!”



용사가 쌍둥이였던가?

아니, 분명 쌍둥이는 아니었잖아?



[오백! 그 이상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저건······!



[그럼 오백만 골드에 낙차······.]

“처어어어어어어언!”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니, 용사가 왜 여기서 나와?!


작가의말

-Alone Talk


어디서 보신 것 같다고요?

죄송해요...아마 맞을 거에요...

개인사가 복잡한 일이 많았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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