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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곽가입니다.

너는 살인마를 만들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완결

곽가郭家
작품등록일 :
2014.01.27 17:10
최근연재일 :
2014.02.19 11:51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4,610
추천수 :
251
글자수 :
151,757

작성
14.02.14 12:19
조회
248
추천
9
글자
10쪽

21. 온실 속 화초

DUMMY

* * *


나는 범죄전문가가 아니다. 심리학전문가도 아니고. 지금까지 딱히 살인사건 뉴스 기사나 신문 기사 같은 것에도 무관심하다시피, 이따금 혀를 찼지만 어쨌든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도 없고,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단순히 관심이 없었다. 내 일로도 충분히 바쁘고 정신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냥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의 사이코들이 벌인 일이라고 치부하고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연은 해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린지 얼마 안 된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옆에는 아직 깊게 잠들어있는 선영이 있었다. 기연은 몸을 조금 더 일으켜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뒤척이는 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같은 침대에서 잔지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안해서 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이젠 적응을 해버렸는지 오히려 혼자 자는 게 더 싫어졌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안정감. 이렇게 생각해보면 혼자서 어떻게 잤는지 싶기도 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그 따뜻함을 모르고 어떻게 지냈는지….

기연이 머리를 간질이자 선영이 기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몇 시야?” 선영은 잠에 덜 깬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6시 43분.”

“으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선영은 뒤척이더니 어느새 기연의 얼굴까지 다가와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기대며 물었다. 아이 같다.

“글쎄? 어쩌다보니 이렇게 일어났네.”

“왜? 하고 싶어?”

선영은 기연에게 야릇한 눈빛과 미소를 보냈다.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

선영의 이마를 ‘찰싹’ 하고 때렸다.

“아야! 아파.”

선영은 맞은 이마를 기연의 품에 비볐다. 티셔츠 사이로 들어난 선영의 어깨선으로 시선이 갔다. 조금의 군살도 없는 어깨. 그 위로 기연의 손이 올라갔다. 천천히 그 선을 따라 등허리를 감싸 안는다.

“요즘 살쪘어?”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물론 농담이다.

선영은 기연의 품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뭐? 정말? 미치겠네! 정말 살 쪘어? 살 찐 거 같아? 요즘 쉬면서 잠깐 관리 못했다고 그새 찐 거야?”

정말 놀랐는지 연신 기연을 다그쳤다. 기연은 선영의 행동이 귀여웠는지 미소 지으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안기라는 거다. 그러자 선영은 못이기는 척 기연의 품에 안겼다. 심장과 심장이 맞닿았다. 규칙적인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고요한 바다 위 바람 소리처럼 아늑하다.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숨소리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성욕이 아니다. 아늑함.

“농담이야. 살 안 쪘어.”

귀가에 살며시 말했다.

선영은 기연의 어깨를 꽤 세게 깨물었다.

“아!”

“정말이지… 짓궂어.”

선영이 말했다. 싫지 않은 눈치다. 심장박동이 더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기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겨준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지나며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코를 간질이는 머리칼에 잠시 눈을 감았다. 선영은 기연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가슴은 더욱 뛰어오는 심장박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오늘 일 있어?”

선영은 귀가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기연은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으로 대답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고 싶어서.”

선영은 말했다.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띄었다. 아름답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제대로 옷을 갖춰 입지도 않았지만 기연은 그런 선영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곁에 있다. 모든 사람이 내게서 등을 돌려도 이 사람만은 꼭 안아줄 그런 사람. 돌아오는 길 반갑게 마중 나오고, 떠나는 길 두 손 꼭 모아 기도해줄 사람. 왜 이제야 느끼는가.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한다는 걸, 존재했다는 걸, 왜 이제야.

아무도,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도심 속 바쁜 출근시간 그 속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 제 갈길 가기 바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가로수 같은 사람. 그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왔다. 이유는 없다. 그냥 살 뿐이다. 아침에 눈이 떠지니 뜰 뿐이고, 밤에 눈이 감기니 감을 뿐이고, 배가 고프니 먹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목표도 없고, 목적이 없으니 수단 또한 없고, 방법 또한 존재할리 만무하다.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하는 만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파이낸셜플래너 같은 이들에게 내 자산을 위탁한다. 남들과 다른 것은 프리랜서라는 것이고, 나름대로 이름이 꽤 알려졌다는 거다. 그 외에는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버는 만큼 쓸 뿐이고, 쓴 만큼 벌고 있다. 오늘 십만 원을 번다고 해서 내일도 십만 원을 번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길 자청한 걸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단절한 채 인위적인 형광등 불빛이 밝히는 그늘진 집 안에서 사회와 소통하길 거부해왔다. 그런 나에게 글은 사회를 나와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하지만 이젠 내 품에 안긴 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리고…….

“오늘은 집에 있을 생각이야?”

선영의 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선영은 내 품에 더 꼭 안기며 대답했다.

“응. 자기는?”

“나는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요즘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집필 작업하는 건 알고 있는데, 어딜 그렇게 다녀?”

“인터뷰 하고 있어.”

이제 보니 선영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했었다. 굳이 숨길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까닭도 없었다. 뭐… 이야기해도 상관은 없지만.

“어디로 다니는 건데?”

“교도소.”

“뭐? 교도소? 누굴 만나는데 교도소를 가?”

선영은 내 예상대로 몹시 놀랬다. 그럴 만도 하다. 약혼자가 교도소로 누굴 인터뷰하러 간다는데 안 놀란다면 더 이상한 거겠지.

“교도소에 누굴 인터뷰하러 가겠어? 범죄자지.”

“어떤 범죄잔데?”

“살인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은 나와 달리 선영은 그렇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더니 눈을 부릅떴다.

“가지마.”

“응? 무슨 소리야. 단지 인터뷰하러 가는 거라니까?”

“그래도 가지마.”

“뭘 그래도 가지마야? 일이라고, 일. 걱정 안 해도 돼. 변호사니까 잘 알잖아.”

“자기가 글 때문에 인터뷰하러 갈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살인자일 거 아니야. 그런 자들한텐 병 같은 게 있다고. 그러다 옮아.”

논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말을 한다. 병이라니? 거기다 옮는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단지 인터뷰야. 그리고 이건 일이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일’을 강조했다. 선영은 그제야 조금이나마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슨 글을 쓰는데 살인자하고 인터뷰가 필요해?”

“살인자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얼추 전부이기도 하다.

“살인자가 살인을 택하는 이유? 내가 알고 있는 살인자들은 돈이나 복수, 사고 같은 경우인데, 대부분 여기에 속하지 뭐.”

선영은 매우 손쉬운 일처럼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반사회적인 성향을 띄고 있지. 대부분 정신병자야.”

“반사회적 성향? 그럼 친사회적 성향은 뭐야?”

“친사회적 성향이라니? 조금 흑백논리 같은 걸.”

“반사회적 성향이라는 건 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 반하는 성격의 사람들을 말하는 거잖아. 그렇다면 모두가 하나같이 친사회적 성향을 띄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야? 공리주의잖아 그거.”

나는 조금 열을 냈다.

“어쩔 수 없잖아? 많은 사람이 엉키어 사는 사회에서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당연한 거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 법이라는 건 사회규범이잖아. 사회규범은 원래 공리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원래라고? 그렇다면 최대다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원래 괴로워야해?”

“내용이 조금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은데… 법은 정의가 아니야. 규칙이라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규칙이란 말이야. 그 규칙을 어긴다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준다는 거고, 그로서 처벌을 받는 건 옳은 거잖아.”

“네 말이 맞아. 규칙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근데 그 규칙을 만든 사람들은 다수잖아. 최대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이잖아. 그럼 그 다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법을 만들 때 다수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소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치 않는 법을 지키면서 살아야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원래부터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 같네.”

“좀 이상해. 왜 그래 갑자기? 논리가 전혀 맞지 않아. 자기답지 않잖아.”

“아, 아니야. 이러다 늦겠다. 난 이만 나갈 준비할게.”

나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역시나 이상하다. 이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선영과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난 변했다. 그냥 변한 것이 아니라 마치 그처럼 변했다. 나는 불과 몇 십분 전까지 그가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온 냉소적인 그 말은 내 입에서 나왔으나 내 말이 아니다. 나는 왜 그라도 된 듯이 생각하고 말했지? 나는 선영이 말한 것 같은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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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완결. 새는 날아올랐다 +6 14.02.19 400 9 11쪽
28 27. 엉킨 실타래를 푼다 +1 14.02.19 362 8 11쪽
27 26. 엉킨 실타래를 푼다 +3 14.02.17 387 6 9쪽
26 25. 엉킨 실타래를 푼다 14.02.17 409 7 14쪽
25 24. 호접지몽(胡蝶之夢) +2 14.02.14 585 6 19쪽
24 23. 호접지몽(胡蝶之夢) 14.02.14 392 8 8쪽
23 22. 호접지몽(胡蝶之夢) 14.02.14 378 8 8쪽
» 21. 온실 속 화초 14.02.14 249 9 10쪽
21 20. 온실 속 화초 14.02.14 399 6 15쪽
20 19. 온실 속 화초 14.02.14 390 9 15쪽
19 18. 나이 많은 어린아이 14.02.14 390 8 12쪽
18 17. 나이 많은 어린아이 14.02.14 426 8 11쪽
17 16. 나이 많은 어린아이 +1 14.02.13 329 6 13쪽
16 15. 나이 많은 어린아이 14.02.13 434 7 14쪽
15 14. 나무늘보의 새하얀 이는 붉게 물들었다. 14.02.13 364 6 14쪽
14 13. 나무늘보의 새하얀 이는 붉게 물들었다. +1 14.02.13 413 7 13쪽
13 12. 나무늘보의 새하얀 이는 붉게 물들었다. 14.02.13 426 9 11쪽
12 11. 한 걸음 +2 14.02.12 435 6 11쪽
11 10. 한 걸음 +1 14.02.11 431 9 12쪽
10 9. 한 걸음 14.02.10 430 10 9쪽
9 8. 한 걸음 +1 14.02.07 466 10 11쪽
8 7.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2.06 1,094 9 12쪽
7 6.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2.05 523 9 12쪽
6 5.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2.03 495 10 10쪽
5 4.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1.30 463 18 9쪽
4 3.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1.29 611 9 17쪽
3 2. 권력, 그리고 탐욕 +1 14.01.28 599 13 10쪽
2 1. 권력, 그리고 탐욕 14.01.27 801 10 11쪽
1 0. 서장 +1 14.01.27 1,530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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