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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닉스 님의 서재입니다.

블랙우드와 학파의 날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무협

래닉스
작품등록일 :
2019.10.02 01:04
최근연재일 :
2019.12.04 03:55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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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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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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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로벤 산맥_IX

DUMMY

학파 일행은 아침 일찍 이동하기로 했다. 스텔라와 개들이 날카롭게 기상을 알렸다. 각 조는 신속하게 야영지를 정리했다. 행군을 시작할 땐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고지대는 공기가 찼고 수풀이 삼삼했다. 나무 덩굴이 기름진 산발처럼 엉기성기 얽혔는데, 경사가 몹시 험했고 숲이 어두웠다. 그들은 컴컴한 구릉지에서 사흘을 보냈다.


넓은 평야가 눈앞에 나타났다. 작은 군대는 산자락을 빙글 돌아서, 도적 패의 숙영지였던 빈터에 도착했다. 미딜라 계곡이 잔잔하게 흘렀다.


돈이나 무기는 줄어있지 않았다. 막사 몇 개는 천이 뜯겨나갔고, 불한당 시체가 곳곳에 놓여 썩은 내음을 풍겼다. 세브라의 시체도 마찬가지였다. 끔찍한 냄새가 가죽 재킷 사이에서 피어올라 일행의 콧구멍을 찔렀다.


욕지기가 스텔라의 목구멍에서 치밀어 올랐다. 헬로나는 상스러운 욕설을 뱉더니, 시신을 밟기도 하고 침을 뱉었다.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에서였다.


“헬로나 님, 저희와는 큰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뭐 헬로나 님께서 하시는 일이야 제가 어찌 간섭할 수 없지만은, 어찌한 까닭이 이들이 전몰하였는지 알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프리드리히가 헬로나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황당한 일이었다. 수석 사범 제반니는 반응을 안 했고, 그의 초록 머리 부관 역시 무신경했다.


그들은 폰쉘카 진지와 멀지 않은 평야에 야영지를 세웠다. 능숙하게 천막을 올렸고, 보급 당번은 강에서 물을 퍼 왔다. 총책임자 제반니 헬도르가 원생과 사범들에게 명령했다. 폰쉘카 숙영지로 다가가지 말라고.


부관 라케시스는 도적단 몰락과 학파 임무는 상관없다며 일축했다. 더불어 돌발상황을 막기 위해 내린 명령이었다고 냉담하게 덧붙였다. 취침 시간이 빠르게 찾아왔다. 스텔라는 로이를 데리고 막사를 돌았고, 학생들은 어둠 속에서 도적단을 두고 잡설을 나눴다.


달은 반달에 가까웠다. 달무리가 은은했고 별이 석영처럼 빛났다. 불 조 여자들은 헬로나 탓에 잠을 못 잤다. 적발 사범이 옆 사람 담요를 둘둘 말아 빼앗았다. 긴 발로 아래 누운 사람을 걷어찼으며 코를 엄청나게 골았다.


스텔라는 다른 이유로 잠들 수 없었다. 수수께끼가 머릿속 선반에서 줄어들 줄 몰랐다. 그는 이불을 걷고 숙소를 나왔다. 불 조 원생과 금 조 원생이 섞여 누운 곳에서 빠져나왔다.


야경꾼 얼굴이 익숙했다. 검고 야윈, 삭발한 남자. 페틴이었다. 스텔라는 마침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페틴이 그에게 나온 이유를 묻자, 사범 보브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람 좀 쐬려고 나왔어. 로벤은 밤공기가 꽤 좋잖아. 안 그래?”


수석 사범은 임무 도중 단독 행동을 엄격히 관리했다. 그러나 페틴은 규율과 거리가 멀었고, 더군다나 딱딱한 제반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스텔라 편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시랍니까, 느긋하게 다녀오시죠.”


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간단히 경례했다. 스텔라는 들릴 듯 말 듯 손가락을 튕겼다. 개 두 마리가 그에게 걸어왔다. 제라는 팔다리가 길고 가늘었다. 눈동자 끝이 날카로웠다. 자세가 꼿꼿하니 도도했다. 다른 쪽은 린네였다. 뒷다리를 절룩였으며 눈동자는 민들레처럼 노랬다.


스텔라는 도적들의 군락으로 갔다. 규율은 중요했으나, 수수께끼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체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원생 숙소에서 한참 멀리 왔다. 스텔라가 코를 막고 폰쉘카의 천막을 들췄다. 제라는 겁 없는 듯 먼저 들어가 안을 살폈다. 약탈한 보물이 가득했다. 검과 창, 제사에 쓰는 양날 도끼, 수공예품들이 벽에 몸을 기댔다.


금붙이 은붙이가 선반 위에 많았다. 폰쉘카는 펜던트나 브로치, 반지와 팔찌를 한곳에 모았는데, 귀중품은 하나같이 세공이 내밀했다. 안경 장식이 화려했고 방패엔 성 그림이 그려졌으며, 돈주머니도 적잖게 남았다. 갑옷만 유독 좋은 것이 없었다.


은발 사범의 눈엔 값비싼 물건이 밟히지 않았다. 직감이 스텔라를 재촉했다. 단서가 여기에 있다. 한 사람과 두 마리는 산처럼 쌓인 물건 사이를 파헤쳤다. 무기며 보물이 선반 위에서 떨어졌다. 제라는 정리하는 솜씨가 능숙했다. 린네는 침착하고 신중했으나 호기심이 많았다. 스텔라가 제일 급했다.


무기가 놓인 찬장을 살폈다. 도리깨와 칼은 철제로 광이 났다. 창은 천막에 기대어 있었는데 날 끝이 녹슬었다. 특별한 물건은 없었다. 괜히 조급했다. 제라가 스텔라의 종아리를 두드렸다. 보브는 고개를 돌렸다. 린네가 파피루스 한 장을 발견했다.


개는 앞발을 들어 종이를 건넸다. 스텔라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필체가 끔찍한 악필인데 익숙하다. 교주(校主) 안티모스의 손글씨다. 보내는 사람 이름은 없었지만 받는 사람 이름엔 폰쉘카라 적혀 있었다.


인기척이 천막 입구에서 났다. 스텔라는 황급히 종이를 숨겼다. 편지를 미처 읽을 새도 없었다. 구둣발 소리가 낯익었다. 실루엣이 익숙했는데,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머리칼이 희게 샜다. 키는 팔 척이 넘는 장신으로 달리 셈하면 여섯 자 반이다.

사범 헬로나 포엘스크림의 부관, 프리드리히 레이선이었다.


“보브 사범, 도대체 이곳엔 어인 일이요. 수석 사범이 접근을 금지하지 아니하였소.”


목소리가 무겁고 진중했으며 고압적이었다. 은발 보브는 금방 냉정함을 찾았다.

“폰쉘카를 쓰러트린 자들에 대해 추리하고 있었습니다. 포로는 전부 사라졌지만, 돈이나 보물은 거의 그대로 남았습니다. 이건 그들이 대규모가 아니란 뜻입니다.”


스텔라는 스치듯 보고 지나간 부분을 세세하게 기억했다. 도적들의 시체에 총탄 자국이 있었던 점을 들어 무리 가운데 기술자가 있으리라 짐작했고, 화살의 방향과 재질을 두고 활잡이가 프리셀데라 출신임을 밝혀냈다. 그는 편지를 발견한 일만 쏙 빼놓고 자잘한 사실을 전부 설명했다.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 역시 규율에 엄격했으나, 그는 주관적인 옳음을 규칙보다 앞에 뒀다. 이번만큼은 스텔라의 독단적인 행동과 뜻이 맞았다.


“아마도 그 걸인들은 네다섯 정도로 보이오. 머무른 흔적이 근처에 있었다오. 대략 사흘은 흐른 듯 보였소만, 도란데라로 향했다면 도착했을 것이오. 반면에 얠델로스 방면으로 향했더라면 멀어도 한참은 멀 터지. 어느 쪽이든 우리가 손 쓰긴 어려울 거요.”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목소리였다. 억양은 도드라진 부분이 없었으나, 목을 긁는 북부식 발음을 많이 썼다.


“혹여 도란데라로 향했다면 쾌한 일이 못 될 터지만, 일단 그네들은 제쳐두고 이야기하겠소. 본론부터 말하지요. 나 레이선은 수석 사범이 폰쉘카 진지 접근을 불인한 데 반대하오.”


그의 음성은 몹시 단호했다. 스텔라는 자연히 귀를 기울였다. 잡동사니 부딪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분명 호기심 많은 린네다.


“거리를 벌려 야영지를 세우는 편보다, 차라리 이곳에서 묵는 게 좋았소. 도적놈들이 미리 천막을 쳐 놓았으니 수고를 덜었겠지. 원생들은 주인 없는 보물을 얻으니 사기가 올랐을 테고, 더군다나 물가도 더 가깝다오.”


“수석 사범 그자가 이 부분을 놓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 않소. 여하간에 나 레이선은 오전에 여유를 두고 학생들을 이곳에서 쉬게 할 생각이요. 앞서 말했다시피 돈도 나눠 주고. 그리하면 기운이 충천해 앞으로 임무가 순조로울 거요.”


은발 사범은 프리드리히의 의견에 동감했다. 도적단 숙영지를 빌리면 훨씬 나았다. 제반니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걸까? 의문이 하나 더 생겼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헬도르 사범도 레이선 선생이 설명하시면 동의할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도적들의 시체가 문제입니다. 냄새도 지독하고, 벌레도 날립니다. 이것들을 그대로 두면 원생들의 사기가 오르긴커녕 떨어질 겁니다.”


스텔라가 떠올린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은발 사범은 시체를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수석 사범 제반니가 도적단 숙영지에 묵지 않은 이유라고 쳐도, 너무 사소했다.


“그건 그리 곤란한 문제도 아니요. 헬로나께서 금세 해결하실 터요. 보기에 비록 방종해 보이시나, 그대도 알다시피 어느 원생도 그분의 실력만은 의심하지 않소. 걱정일랑 추호도 갖지 마시오. 아, 천막 안은 조금 답답하지 않소? 괜찮다면 함께 바람이나 쐬시지요.”


프리드리히는 유유히 막사를 나갔다. 스텔라는 고민에 잠겼다가, 과감하게 그를 따라갔다. 제라도 망설임 없이 따랐다. 린네는 분위기를 살피며 눈동자를 굴리다, 이내 발을 절며 갔다. 걸쭉한 점액 한 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반달이 자로 재어 나눈 듯 반듯하다. 별들은 까마중 빛깔 벨벳 위에 오순도순 매달렸다. 밤바람은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이 들 만큼, 기분 좋게 선선했다. 가죽나무는 느릿느릿 고개를 흔들었다.


스텔라와 프리드리히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은 암벽 아래를 둘렀다. 자작나무가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


“밤공기가 선선하니 좋소.”


프리드리히가 말했다.


“예, 맞습니다.”


스텔라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백발 사내는 그의 반응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유창하게 말을 이었다.


“오래간만에 밤 산책을 나오니 옛 생각이 나외다. 요새는 이리하랴 저리하랴 바쁘기를 참 바빠, 밤마실은커녕 반 식경 산보할 여유도 없었다오.”


사내는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걸었다.


“나는 리어프리트에서 나고 자랐소. 귀인이건 걸인이건 제국, 제국 하는 그곳 말이오. 알다시피 참 추운 곳이었소. 여기 로벤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오. 프론만큼이나 어두운 숲이 구천에 널렸고, 남방은 땅이 꽤 비옥했지. 특히 보리가 일품이었다오.”


제라는 둘과 걸음을 맞췄다. 박자도 보폭도 정확하게 맞았다. 린네는 길가를 두리번거렸다. 청미래덩굴을 뜯고, 제비꽃에 맑은 눈을 디밀었다. 아차 싶을 때면 주인과 거리가 벌어졌고, 제라가 딴지를 줄까 황급히 뒤따라갔다.


“작은 도르반 사범이 리어프리트로 떠나지 않았습니까?”


스텔라가 바로 기억을 떠올려 맞장구쳤다.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를 받았다.

“그렇소. 작은 도르반 사범이 그리로 갔다지요. 요제핀? 요제프? 그렇소, 요제프. 제국 태생도 아닌 자가 제국 식 이름을 붙이고,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라오. 그 오라비는 총명하고 영리한데, 그자는 어려 철이 없소. 이렇게 설명하면 쉽겠군.”


프리드리히는 오른손을 들어 단안경을 광대에 맞췄다.


“제국은 꼭 그자와 어울리는 곳이오. 힘을 가질 자격도 없는 교만한 치들이 힘을 쥐고, 무지렁이들은 꾸벅 고개나 숙인다오. 위대한 오뒤안의 기상은 어디로 가고! 요제프 그도 다를 바야 없소. 말로는 힘을 부르짖는다지만, 정작 힘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요.”


작가의말

여행을 다녀와따, 작가놈도 같이 다녀왔다.

할일이 많은게 문제다. - 글올리는 래닉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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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벤 산맥_IX 19.12.04 20 0 11쪽
8 로벤 산맥_VIII 19.11.06 13 0 10쪽
7 로벤 산맥_VII 19.10.31 14 0 10쪽
6 로벤 산맥_VI 19.10.26 21 0 9쪽
5 로벤 산맥_V 19.10.17 20 0 10쪽
4 로벤 산맥_IV 19.10.11 22 0 11쪽
3 로벤 산맥_III 19.10.09 44 0 10쪽
2 로벤 산맥_II 19.10.03 81 0 18쪽
1 로벤 산맥_Ⅰ 19.10.02 287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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