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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거울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 교관은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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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거울
작품등록일 :
2021.07.26 14:45
최근연재일 :
2021.10.05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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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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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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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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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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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3화

DUMMY

43화



아리아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서 시부모님과 저는 슬픔을 묻고 버텼어요. 그랬는데..."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아리아의 목소리가 이제까지 중에 제일 서글픈 목소리가 떨림을 안고 울렸다.


"진통이 시작되었고, 병원으로 가고는 있었지만 너무 멀었어요. 어찌어찌 도시까지는 왔는지 한 카페가 눈에 들어왔고, 그 장면을 끝으로 전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아리아는 감고 있던 눈을 더욱 질끈 감았다.


"그게 문제였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병실이었고, 모든 것이 끝나 있었어요. 출산도 아이도 평화로운 일상도, 시부모님의 애정까지도요."


그녀의 목소리에 좌절감이 느껴졌다.


강유는 아리아의 말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시부모님이 병실로 들어온 순간 전 제 시부모님이 아닌 줄 알았어요. 그만큼 두 분은 평소와 너무도 달랐거든요. 그래도 소중하고 한없이 애정을 주셨던 시부모님의 심각한 모습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물었어요."


아리아는 자신의 입술을 한번 살짝 물었다 떼고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저한테 떠나라 하시고, 무슨 일로 그러느냐 물으니 시어머님이 잔뜩 화가 나셔서는 제 머리를 잡으시더라고요."


"네? 이제 막 출산한 사람의 머리를 말인가요?!"


조용히 들어주기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그동안 사랑으로 대해주던 사람들이, 하나뿐인 아들이 남긴 아이를 낳은 며느리한테 고생했다는 말도 못 해 줄 망정 머리채를 잡았다니.


강유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헛숨만 내쉬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시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감히 바람을 피웠냐고, 너 때문에 내 아들이 부정 타서 죽은 거라고, 너도 나가 죽으라고 말이에요."


아리아는 슬며시 눈을 뜨고는 강유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


강유는 도무지 이유를 예상할 수 없어 눈을 맞춘 상태로 고개만 작게 저었다.


"딸이었데요."


강유는 그만 고개를 갸웃했다.


강유의 반응에 아리아는 작게 미소를 잠깐 지었다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제가 낳은 아이가 딸이라서, 5대 독자 집안에 딸을 낳아서, 그게 제가 바람을 펴서 딸이 태어난 거라고, 자신들의 핏줄이 아니라서 딸이 태어난 거라고, 그래서 부정 타서 남편이 죽은 거라며 제 머리채를 잡으셨던 거예요."


강유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한 없이 벌어지려하는 입을 손을 올려 가렸다.


"차라리 여기서 끝이면 다행일까요?"


강유는 여기서 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끝이 아니라 말하냐는 의미가 담긴 흔들리는 동공으로 입을 여전히 다물지 못한 상태로 아리아를 바라봤다.


"제 아이를, 제 딸을 시부모님이 빼돌리셨어요. 버리셨데요. 감히 제 아들을 죽이게 한 핏줄도 아닌 아이를 내버려 둘 수 없다면서요. 전, 단 한 번도 바람을 핀 적이 없는데 말이에요."


아리아는 담담하게 조곤조곤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증오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자신들의 아들이 소중하듯, 아리아가 배 아파 낳은 아이도 아리아에게는 정말 소중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성별만으로 자신들의 핏줄이 아니라며 부정할 뿐 아니라,

갓 태어난 아이를 엄마가 보지도 못하게 버렸다니.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고 모든 것이 증오스러울까.


만약 자신이 아리아의 입장이었다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쳤을지도 모른다.


강유는 작게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유전자 검사만 했어도 핏줄이란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너무도 시골에 사는 분들이라 모르셨나 봐요. 아니면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싫으셨거나요. 옛날 분들이시니..."


설사 옛날분이라 할지라도 아이를 엄마와 떨어트려 놓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는 알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자식을 낳아 키운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강유는 문득 예전 아리아와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럼 카페에서 아이를 잃은 곳이라 하셨던 건."


"제가 아이를 잃기 전에 본 마지막 장소가 그 카페 간판이었어요. 제가 정신을 잃지 않았으면 아이를 잃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곳이니까요."


"그러면 복수의 대상은 시부모님인 건가요."


강유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리아를 바라봤다.


한때는 누구보다 행복했던 평화로운 삶이 사랑하는 남편과 소중한 아이를 잃고,

사랑을 주던 시부모님마저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삶에서 보는 세상은 얼마나 처참할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업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외면받게 된 자신의 삶은 몰랐다 해도 자신의 탓이기도 하고,

내 마음 하나 잘 다스리면, 혹은 타인과 접촉을 최대한 줄이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처음부터 마이너스의 당연하게 느껴지던 삶이었다면.


그녀의 삶은 행복이 무엇인지 마음 깊이 행복에 절여질만큼 너무도 행복한 삶이었다.

그랬는데 누리고 있던 모든 행복이, 그런 세상이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높은 곳에서 한없이 낮은 곳으로 순식간에 처박혀 끔찍해져 버린 지옥 같은 삶이 되었다니.


그것도 천륜이라 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이 타인에 의해 끊어져버린 지옥.


그러나 아리아의 다음 말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강유의 정신을 다시금 끌어올렸다.


"시부모님들은 아니에요. 정말 끔찍하고 증오스러웠지만, 시골로 돌아가시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두 분 모두 돌아가셨거든요. 결국 증오도 복수도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네? 그럼 복수의 대상은 없는 게 아닌가요?"


아이와 떨어지게 만든 대상이 죽었다면, 그녀의 복수의 대상은 사라진 게 맞지 않는가.


여기서 누구한테 복수를 할까.


이미 존재하지 않고,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한테 복수할 수는 없지 않나.


강유의 그런 의문들에 아리아는 소름이 끼칠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어요. 제 모든 불행을 조작한 사람이."


"조작이요?"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제 이야기 속에 등장한 남자예요."


아리아는 확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몰랐어요. 끔찍한 세상에 홀로 남은 저에게 적어도 아이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하는 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거든요."


강유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제 인생을 나락으로 이끈 모든 불행을 만든 자라는 것도 안 지 얼마 안 되었고요."


"그 남자가 무슨 짓을 한 거죠."


"시신조차 온전하지 못하게 남편을 죽인 것도, 마을에서 안 좋은 소문으로 제 평판이 나빠진 것도, 시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그리고 버려진 아이마저도 그 남자가 한 짓이었어요."


아리아의 눈에는 고이지조차 않는 눈물이 글썽이는 듯 보였다.

눈빛만으로도 이미 그녀가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서글픈 눈동자였다.


"전 그럼에도 당장 그 남자에게 복수를 할 수가 없어요. 그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어요. 벗어나려면, 벗어나서 복수하려면 먼저 그를 위해 한 가지를 반드시 해야만 하거든요. 그것이 더 이상 저를 사람으로 남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요. 안 할 수도 없고요."


"그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너무도 주고 싶었다.

그만큼 그녀는 지치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유의 말에 아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강유는 너무도 답답했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강유의 눈에도 힘들고 지친 것이 보이는데,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도와주겠다는 손길을 어째서 거부하는 것일까.


"혹시 제가 그 남자처럼 나쁜 사람일까 봐 그러는 건가요?"


강유는 만약 그래서 도움받는 게 두려워져서 그런 거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줄 때까지 조심히 설득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리아는 계속해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서가 아니에요. 이강유 교관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저, 이 문제는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그래요."


강유는 아리아의 말이 도움을 거절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말해 줄 수 없어서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유는 그녀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지옥 같은 삶에서 자신이 증오하는 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벗어날 수도 없는데 도움도 받을 수 없다니.


그녀의 현재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겨울지 자신의 마음마저 아려올 지경이다.


"알겠어요. 그래도 만약, 그에게서 벗어나게 된다면. 벗어나지 못하더라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제가 줄 수 있는 도움이라면 곤란한 일이라 해도 도와 드릴게요."


강유의 진심이 전해진 걸까.


아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같은 그림 같은 미소가 아니라 눈까지 접힌 미소가 말이다.


강유는 그 미소에서 자신의 아내의 미소와 닮았다 생각해버렸다.


그건 아내에게도 아리아에게도 실례인 생각인데 말이다.

거기다 둘의 생김새도 전혀 닮지 않았는데 아내를 떠올려 버리다니.


아리아의 삶처럼 아내의 삶이 조금이지만 비슷한 부분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떠오른 것일 것이다.


강유는 실례되는 생각을 접고는 그녀의 진심 어린 미소를 바라보았다.


아리아는 눈을 한 번 깜박이고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망가시는 건 아니길 바랄게요."


"하하, 네."


강유는 자신이 한 그간의 행동을 다시 한번 꼬집는 말에 뜨끔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강유가 어색함에 눈동자만 슬쩍슬쩍 굴리는 모습을 본 아리아는 강유를 귀엽다는 듯이 보고는 먼저 입을 열어 어색한 침묵을 깨 주었다.


"덕분에 제 삶에 잠시나마 평화롭고 든든한 시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녀의 말은 어쩐지 다시 볼 수 없는 이와의 이별의 감정이 느껴졌다.


"제가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해도, 이강유 교관님과 함께 한 며칠간의 일은 오래도록 기억할 거라 생각해요."


"네. 그래야 저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강유는 이별이 느껴지는 말에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는 의미로 빠르게 말했다.

그러나 아리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움을 요청해야만 도와주실 건가 봐요."


"그,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셔도 도와드릴게요.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요."


강유의 덧붙인 말에 아리아는 다시금 눈웃음을 그렸다.


하지만 강유는 그녀가 정말로 이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강유는 더욱 단단히 다짐했다.


우연이라도 위험한 상대라 할지라도, 정말 그녀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머뭇거리지 않고 도와주자고 말이다.


강유는 속으로 작은 바람을 기도했다.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는 오기를.

그녀가 지옥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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